누가 내 지갑을 조종하는가.

2012년 2월 1일

A는 퇴근길에 마트를 들른다. 물건의 위치가 바뀌어서 조금 헤맨다. 그러다 새로 나온 샴푸를 보게 된다. 함 사볼까. 큰 카트에 넣는다. 채소 코너. 물방울이 맺혀 있는 채소들이 싱싱해 보인다. 건강을 위해 저칼로리 시리얼을 골라야지. 계산대에서 목욕/미용용품 쿠폰을 내민다. 포인트 적립카드 있으신가요? 네. 집으로 가는 도중에 택배 기사에게 전화가 온다. 경비실에 맡겨주세요. 그루폰을 통해 싸게 구입한 물건이 왔구나. 흐뭇한 미소를 짓는 A.

이 친숙한 광경을 “누가 내 지갑을 조종하는가” 에 의거하여 분석해보자. 물건의 위치가 바뀐 이유는 소비자가 더 오랫동안 마트에 머무르게 하여 더 많이 사게 하기 위해서다. 새로운 브랜드의 샴푸? 사실 A는 페이스북에서 친한 친구들이 이 브랜드에 대해 야그하는 걸 봤다. 사람은 광고로 받은 정보보단 아는 사람한테 들은 정보를 신뢰하는 경향이 크다. 물방울이 맺혀 있는 채소는 신선함을 가장한 것이다. 일부러 물을 뿌려서 신선하다는 암시를 준다. ‘건강○○’ 이라는 이름의 저칼로리 시리얼. 자연산, 항산화, 생과일이라는 단어들처럼 입증할 수 없는 눈속임에 불과하지만 강력한 효과를 발휘한다.

다음. 목욕/미용용품 쿠폰과 포인트 적립 카드의 관계는 밀접하다. 대기업들은 ‘데이터 마이닝’ 기술로 소비자들이 언제 어디서 무엇을 사는지 적립카드로 축적된 기록을 분석하여 미끼(쿠폰)를 적절한 시기에 내보낸다. 그런 거 동의한 적 없다고? 아무도 보지 않는 가입 약관에 복잡한 어휘로 아주 작게 새겨져 있었다. 그루폰과 같은 소셜 커머스 사이트는 제한된 시간에 제한된 물량을 거부할 수 없는 가격에 내세워 소비자들을 유인한다. 소셜 커머스는 초대된 사람만 살 수 있다는 배타성과 즐거움 같이 중독성 강한 게임이 지닌 요소들을 그대로 지니고 있어 소비자들은 스릴과 성취감에 쉴 새 없이 구매버튼을 누르게 된다.

마케팅과 광고 세상에서 우연이란 없었다. 마케터와 광고업체들은 물건을 팔기 위해 소비자를 압박하고, 부추기고, 거짓과 조작을 예사로 사용하며 심지어 싶은 곳에 뿌리내리고 있는 두려움과 꿈, 욕망까지 먹이로 삼는다. 개인 정보까지 털려 더 이상 숨길 게 없다. 어케하지?

저자는 이렇게 과도하게 네트워크로 연결된 광고 회사와 소비자의 관계를 역으로 이용해보자고 한다. 클릭 한 번으로 기업들의 비밀을 알게 된 세상이 온 이상 가상에서 혹은 현실에서 인맥을 맺고 있는 소비자들이 권력의 주인이 될 수 있다. 결국 개별의 소비자가 아닌 집단으로서 움직이자는 거다. 아직 기업이 갑인 현실에서 다소 맥빠지는 결론이긴 하지만 덕분에 내가 브랜드와 맺고 있는 복잡한 관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지갑을 열더라도 한 번 생각은 해보고 열게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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