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다.

2011년 11월 3일

나에게. 잊는다. 잊다. 잊어버렸다. 피동. 잊히다. 반의. 기억하다.

잊는다. 잊고 있다. 잊으려 한다. 수많은 가요에 나오는 잊다의 쓰이는 법이다. ‘잊다’ 라고 쓰고 생생히 ‘기억한다’ 라고 이해하면 된다. 상당히 의도적인 표현으로, 잊으려 하지만 자꾸 떠오르는 상황을 암시한다. 다만 기억한다해도 과장과 윤색을 거쳐 가공된 기억일뿐.

잊다. 일상생활을 할 때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불안정한 상태로 과거의 사건과 연관된 사물을 접하면 기억이 불쑥 튀어나온다. 이쯤 되면 트라우마와 비견될 만하지만 트라우마의 세 가지 특징인 과각성, 침투, 억제와는 상당히 거리가 멀다. 그냥 꿈에서만 떠오를 수도 있다. 사람에 따라 갑작스레 떠오르는 기억에 대하는 자세는 다르다. 씩 웃거나. 술을 찾는다.

나에게.
‘잊는다’ 와 ‘잊다’의 중간 상태.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보면 발현. 눈을 보면 천천히 운전하거라. 네. ‘경원대’ 세종관 비탈길을 운전하다 미끄러져 본초밭의 수호신이 될 뻔. 어디서 달려오는 관리인 아저씨. 아이구 가드레일 값 물어내야 겠네. 네? 지금 산골짜기에서 지낼 때도. 자꾸 물어본다. 여기 눈 많이 오나요? 당근요.
‘잊다.’ 몸이 힘들 때. 꿈을 꾼다. 지금 내 상태에서 50kg 불어난 상태로 깨어나는 꿈을. 무슨 꿈을 꾸었느냐. 살 뺀 꿈을 꾸었습니다. 왜 그리 슬피 우느냐.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을 꾸었기 때문입니다.

잊어버렸다. 아무리 기억해내려 해도 기억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의식을 가진 상태에서 혹은 아닌 상태에서 뭔가 본듯한 사물을 대할 때. 내가 어디서 이걸 본거지? 머릿속를 긁어대도 떠오르지 않는다.

나에게.
‘잊어버렸다.’ 6주동안 군립요양원에 방문 진료를 나가게 되었다. 세 번째 주까진 날 반가워 한다. 네 번째 주. 날보고 긴가민가 한다. 누구? 다섯 번째. 날 무서워 한다. 여섯. 흐리멍텅. 외할머니가 생각났다. 누구? 할머니 손자에요. 응? 엄마. 왜? 엄마가 날 기억하지 못하면 어케 하지? 어쩌긴. 우리가 다 거쳐야 할 길인데.

피동. 잊히다. 반의. 기억하다. 사진은 묘한 매체이다. 2개월 전 대림미술관 “주명덕 사진전”에서 어느 한 사진에 시선이 멈췄다. 1971년의 논산의 한 마을에서 사람들이 단체로 나온 사진. 논산. 훈련소땜에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곳이긴 하지만 아버지의 고향아닌가. 1971년. 아버지가 중3일 때다. 물론 사진에는 없지만 어렸을 때의 아버지를 찾는 마냥 몇 분이고 그 사진을 바라봤다. 사진이 찍힌 연도와 장소를 증거 삼아 내가 존재하지도 않았던 시기를 기억하려 한다. 일주일 전 관훈갤러리에서 ‘기억의 방’이란 사진전을 본 적이 있다. 후원. 국방부. 6.25당시 전투기 앞에서, 막사 안에서 모두 다 활짝 웃는다. 아무리 봐도 나보다 어린 나이들이다. 사진에선 웃지만 그들은 곧 죽는다. 그리고 유해조차 발견되지 않는다. 잊혔다.

#잡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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