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일출

2018년 8월 14일

일요일에 잠을 청하다 바닷가에서 일출 보면서 시가를 펴보면 어떨까 갑자기 궁금하더라. 마침 화요일이 쉬는 날이기도 하고 1박하고 올까 고민했다. 찾아보니 휴가철이라서 그런가 숙박요금이 꽤나 비쌌다. 그래서 결국 청량리에서 출발하는 밤 열차를 타기로 했다. 무려 5시간 40분이 걸리지만 2만원 남짓한 돈으로 숙박도 해결할 수 있으니까.

오랜만에 타본 무궁화호 열차는 생각보다 꽤 지저분하고 좌석도 좁았다. 요즘엔 KTX를 많이 타고 다녀서 비교가 많이 되더라. 여튼 기차가 출발하고 준비해둔 목베개에 기대어 잠을 청하였다. 졸다 깨다를 반복하다 제천을 지나 사북-고한역 구간에서 잠이 깨버렸다. 급히 내리는 승객들을 잠결에 보면서 이 새벽에 카지노라도 땡기러 가시나 중얼거렸다.

동해역을 지나면서 기차 옆으로 펼쳐지는 바다 풍경을 기대했지만 웬걸, 해가 뜨지 않았으니 뭐가 땅인지 바다인지 알 수가 없었다. 정동진역에 다다르니 기차에 타고 있던 대부분의 승객들이 내렸다. 다들 해돋이 보로 왔구나. 사실 나도 정동진에서 내릴까 생각했으나 이동 수단이 마땅치 않아 포기했다.

강릉역에 내리니 역 주변은 조용했다. 내리는 승객도 별로 없었고 심지어 역 앞에서 기다리는 택시도 없었다. 편의점에서 커피 한 캔 까면서 고민했다. 경포대? 강문해변? 제일 사람 없을 것 같은 강문으로 선택하고 택시가 오자마자 타고 갔다. 미리 알아둔 일출 시각은 5시 39분였다. 해변에 다다르니 하늘이 붉게 밝아오고 있었다.

선 채로 시가에 불을 붙이고 한 모금 빨아들였다. 어둑하던 하늘은 점점 밝아지고 덩달아 더워졌다. 꼬냑도 한 모금 할까 했지만 빈 속이라 포기했다. 일출은 본 감상은 뭐랄까,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뭔가 고양되기는 커녕 더워져서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사진은 몇 장 찍어야지.

늘상 하는 생각이긴 하지만 새해의 일출에 뭔가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들을 보면 의아해진다. 우리가 임의로 분절한 시간에 뜨는 해를 보면서 올해엔 꼭 뭐뭐 해야지 하고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똑같은 일을 반복한다. 문득 허무해져서 서울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그래도 이건 비싼 시가릴로니까 더 피고 가야지.

6시반 서울 행 KTX를 예매했다. 1시간 반 동안 강릉에 있었고 해변에 있었던 시간은 고작 30분도 되지 않았다. 오고가는 경비를 대충 합해보면 5만원이더라. 그러니까 이런 허무함과 짜증이 무려 5만원 짜리인 셈이다. 그 5만원이 아까워 서울역에 도착하고 홍대까지 가는 그 순간까지 폰을 들어 이 글을 쓰고 있다.

피로와 짜증, 허기가 겹쳐 급히 DQ로 달려가 무중력 아이스크림을 주문했다. 역시 맛있었고 세상은 살만하게 느껴졌다. 일출이고 뭐고 당이 이 세상을 구원할 거야.

자, 오늘은 뭐하고 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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