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2013년 10월 9일

태풍의 습격으로 텅텅 빈 해운대의 게스트하우스에서 책을 계속 읽는 것도 꽤나 지루한 일이다. 그러나 밖의 굉음에 겁먹어 나가지도 못하겠고. 미리 사온 맥주를 마시면서 책을 읽는다. 적적하군. 자정이 넘어 게스트하우스의 불은 꺼지고 냉장고와 정수기의 간헐적인 소음만 들려온다. 잠이 오지 않는다. 매일 새벽 3~4시에 자다 보니. 창문을 두드리던 빗소리는 잦아들고 마침 맥주도 떨어진다. 함 나가볼까? 바람에 꺾인 입간판, 찌그러진 우산들이 거리에 널브러져있다. 술집엔 아직 사람들이 있다. 물론 의식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다만. 원래 맥주를 산다는 목적을 까먹고 갑작스레 산책으로 변질된다. 24시간 카페가 있으려나? 지금까지 연 펍은 있을까? 바다를 본다. 여전히 파도는 높다. 어디 가지?

밤 1시. 아무런 목적 없이 해운대를 거닌다. 어라? 여태 연 카페가 있었구나. 청소 중인가 보다. 많은 의자들이 테이블 위로 올라간 가운데 띄엄띄엄 앉은 몇몇 이들은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거나 폰을 쳐다보거나 혹은 꾸벅꾸벅 존다. 건물 사이의 골목에선 담배를 피우고, 누군가에게 전화 상으로 열변을 토하고 있다. 세차고 어두운 바람 사이에 둥둥 뜬 듯한 그들의 존재. 그림 하나가 이런 광경 위로 겹쳐 보인다. 에드워드 호퍼의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 의미 없이 말을 툭 던질 수도, 아님 등을 돌리고 맥주 한 잔을 할 수도 있고. 난 그림에 등장하는 이들 중 누구라도 될 수 있을 것 같아. 여긴 갓 태풍이 지나간 해운대이고 난 방황하는 불면증 환자이지만..

문득 정신을 차린다. 맥주 사야지. 역시 편의점은 24시간이구나. 6900원입니다. 영수증 드릴까요? 아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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