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저는 죽어야 한다.

2012년 10월 9일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거둔 수확. “시저는 죽어야 한다.”

이탈리아의 어느 교도소. 강력범 재소자들이 셰익스피어의 “시저”를 연습한다. 그들은 대사를 읽으며 자신의 상황과 동일시하고 감옥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각자의 과거사를 떠올리며, 혹은 그들간의 실제 관계와 연관시켜 티격태격하며 리허설을 진행한다.

감옥에서 이뤄지는 리허설은 죄수들의 세계와 “시저”의 세계가 연결된 순간을 보여준다. 작품에 깔려 있는 음모, 살인, 배신을 내면화한 그들은 곧 시저이고 브루투스였으며 카시우스였다. 이 광기에 가까운 가상 공간은 단 한 번의 공연으로 닫히고 죄수들은 감방으로 돌아가지만 연극으로 감옥의 벽을 넘어선 경험은 각자의 가슴 속에 새겨지고 그 재미를 알아버린 그들은 예전의 그들이 아니었다. <예술을 알고 나니 이 작은 방이 감옥으로 여겨지는구나!>

영화는 작품 속에 자신을 온전히 던지고 그 안에서 허우적대는 <야수적 독서법>(1)을 제시한다. 희곡의 대사가 죄수들이 품고 있는 내면의 기억과 “시저” 사이에 가능한 최대한의 일치를 이루는 변형을 겪듯이 우리도 그렇게 읽어보면 어떨까? 텍스트라는 거울을 통해 우리의 불확실성, 광기와 대면할 위험은 있지만 말이다.(2) 그래도 그 과정을 거치고 나면 영화의 죄수들처럼 이 세상이 조금은 다르게 보이지 않을까?

답답한 이 세계를 초월하고 돌아보게 하는 문학의 힘! 이 영화가 보여주려 한 게 아닐까 싶다. 흑백 장면을 넣어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흐물흐물하게 만든 기법도 절묘했고 출연한 이들이 실제로 죄수였다는 거에 정말 놀랐고.. 휴, 이 영화가 한국에 정식 개봉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게 아쉬울 뿐이다.

(1) 살인자의 건강법, 아멜리 노통브
(2) 읽지 않은 책에 대해 말하는 법, 피에르 바야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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