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의 배신

2012년 10월 25일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하면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던 시기가 있었다. 하지만 2000년 이후로 화이트칼라 직종의 실업률은 높아지고 중산층의 몰락은 점점 가시화되고 있다. 만사를 ‘올바르게’ 해온 사람들인데 왜 이런 일이 생긴 걸까? “노동의 배신”의 저자, 바버라 에런라이크가 이런 상황을 조사하기 위해 직접 취업전선에 뛰어든다. 그런데 처음부터 일이 꼬여버린다. 기업의 내부에서 위기에 몰린 중산층을 취재하는 게 목표였는데 일단 취직이 되야 말이지. 구직 활동을 하는 동안 저자는 기막힌 현실을 만나게 된다.

구직을 한다는 건 곧 자기자신을 상품으로 파는 것이었다. 우선 미심쩍은 인성검사를 통해 기업에 어떻게 비춰지는지 분석을 하여 결점으로 판단되는 모습을 고쳐야 한다. 외모, 말투, 성격,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말이다. 직업 코치의 도움을 받았건만 구직에 여전히 실패한다. 이젠 인맥 쌓기로 방향을 틀어보자. 어쩌나. ‘네트워킹’ 행사에 나가 봤더니 다들 실직자 혹은 해고 직전의 직장인들뿐 인데 무슨 도움을 받을 수 있겠나. 교회를 가보자. 모든 짐을 신에게 넘겨 봐도 여전히 취직은 되지 않는다. 6개월이 지나고 도처에서 미끼가 날라온다. 다단계와 프랜차이즈의 마수!

저자가 구직 활동을 하면서 소름 끼치는 관점을 접한다. <경기 침체, 부동산 시장 등으로 궁지에 몰렸다고 생각하지 마라. 바뀌어야 하는 건 세상이 아니라 바로 ‘너’다> 바닥에 추락한 이에게 모든 문제는 전적으로 네가 만든 것이라고 하는 건 정말 잔인하지 않은가? 이제 사람은 생산 방정식의 한 가지 변수에 불과한 ‘물건’으로 여겨지고 그 ‘물건’은 손익 숫자에 따라 언제든지 내버릴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버려지지 않으려면 사실과 논리와는 상관없이 자기 감정을 버리고 순응으로 자신을 마비시켜야 한다.

“희망의 배신” 이 책은 결국 구직 실패기, 몰락한 미국 중산층에 대한 보고서가 되어버렸다. 이 풍경이 낯설진 않다. 바로 우리나라 이야기이기도 하니까. 저자는 언제든 처분 가능한, 그리고 이미 처분당한 회아트칼라 노동자들이 뭉쳐 자신들의 존엄성과 가치를 지킬 것을 역설한다. 과연 그런 각성의 순간은 언제쯤 올까?..

 

같은 저자의 ‘배신’ 시리즈
노동의 배신 : http://suhhyng.pe.kr/?p=1059
긍정의 배신 : http://suhhyng.pe.kr/?p=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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