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ta.matrix [nº1-10]

2012년 10월 22일

나에겐 음악을 들을 때 분석하며 듣는 습관이 있다. 지나치는 곡도 무슨 이름인지 알아야 하고 무슨 악기를 쓰는지 가사의 의미는 무엇인지 등등 알아야 직성이 풀리는, 그런 편집증에 가까운 버릇이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료지 이케다의 “data.matrix [nº1-10]”를 보고 들으면서 순식간에 무장해제되었다. 치직거리는 화이트 노이즈 위에 무작위로 나오는 사인파들의 조합과 영화 매트릭스에서 볼법한 픽셀 덩어리들. 뭔가 반복되었다는 걸 알아차리기도 전에 소리의 패턴은 바뀌어서 분석 자체가 무의미해지고 스쳐 지나가는 시각화된 데이터의 양에 압도된다. 그런데도 정제된 소음 덩어리 속에서 점점 편안해진다. 음악 이전의 음이 바로 이런 걸까? 다른 음악을 들을 때 오, 감동이야! 할만한 요소가 이 설치 작품에는 전무하지만 그 자리에서 매료되었다.

갈 시간이다. 10개의 모니터 앞에서 계속 서성거리다 미술관을 나와 인사동으로 걷는다. 엄청난 소리가 나를 덮친다. 쌍용차 노동자를 살려내라! 종북좌파를 척결하라! 서울패션위크! 하나님을 믿으세요! 중국은 파륜궁에 대한 탄압을 중단하라! 백혈병 환자를 도와주세요!

잠시 무균질의 소리를 듣다 나왔을 뿐인데 세상의 폭음에 어질어질해진다. 아, 내가 “data.matrix [nº1-10]”를 접하며 그토록 편안해 했던 것은 그 소리 안에 인지할 수 있는 메시지가 없었기 때문이구나. 미술관에서 들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소음은 기묘하게 아름다웠다. 그것은 감정이 씻겨진 아름다움이었고 격렬함이 거세된 아름다움이었다.

data.matrix [nº1-10]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 서울시립미술관 3층. 2012년 11월 4일까지 전시됩니다~ 이걸 라이브로 연주한 버전도 있군요..;; 느낌은 다르지만 강추! http://youtu.be/k3J4d4RbeWc CD발매버전 http://youtu.be/F5hhFMSAuf4

#듣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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