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

2012년 10월 16일

아, 저 까마귀를 보라. 그 깃털보다 더 검은 것이 없다. 그런데도 홀연 젖빛 흐르는 금빛깔이 번지는가 하면 다시 석록빛깔로 반짝이기도 하고, 해가 비추면 자줏빛이 튀어 올라 눈에 어른거리다가 비췻빛으로도 바뀐다. 그렇다면 내가 저 새를 ‘푸른 까마귀’라고 불러도 될 게고, ‘붉은 까마귀’라 불러도 무방하지 않겠는가. 저 새에게는 본래 일정한 빛깔이 없었으니 내가 눈으로 먼저 그 빛깔을 정했기 때문이다. 어째서 눈으로만 정했으랴. 보기 전에 먼저 마음으로 정했지 않은가.

까마귀를 그저 검은색이라고만 해도 충분한데 또다시 까마귀로써 천하의 모든 색깔을 묶어두려 하느냐고? 까마귀가 정말 검기는 하다. 푸른 빛과 붉은 빛이 그 검은 색깔 안에 들어 있었던 줄을 누가 알았으랴. 그러나 검은 물체를 일러 ‘어둡다’ 함은 비단 까마귀 색깔만 알지 못해서가 아니라 검은 빛깔이 무엇인지도 몰라서이다. 물은 검기에 능히 비출 수가 있고, 옻칠도 검기에 능히 거울이 됨을 모르기 때문이다. 반드시, 빛깔이 있는 모든 사물에는 빛이 들어가 있기 마련이며, 형체가 있는 모든 물체에도 맵시가 있기 마련이다.

-“연암집”, 연암 박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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