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 배신

2012년 6월 29일

‘열심히 일해야 남보다 앞선다.’ ‘열심히 일한 덕분에 이렇게 살 수 있는 거야.’ 이처럼 ‘열심히 일하는 것’ 이 성공의 비결이라는 야그를 많이 들어왔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리 일을 해도,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일을 해도 점점 더 가난해지고 빚만 늘어갈 수 있다는 야그는 들어보았는가?

“노동의 배신”에서 칼럼니스트 바버라 애런라이크는 한 가지 실험에 뛰어든다. 비숙련 노동자들이 받는 임금만으로 실제 생활이 가능할까? 목표는 간단명료하다. 진짜 가난한 사람들이 수입과 지출을 맞출 수 있는지 시험해보는 것. 그녀는 웨이트리스, 물품 정리, 슈퍼마켓 계산원, 청소 대행 업체, 요양원 간호사 보조 등등 온갖 직업을 전전하지만 뭔가 단단히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아무리 뼈빠지게 일해도 집세에 비해 임금이 너무 낮아 생활이 불가능했다. 집을 포기하면 차 안에서 숙식을 해결해야 하고 당장 내일이 급하니 몸이 아파도 일을 쉬지 못한다. 그럼 돈을 더 많이 주고 집세가 낮은 곳으로 이사하면 되지 않은가? 저소득 노동자들은 ‘경제적 인간’ 과는 달리 이동수단의 제한도 크거니와 조언을 구할 곳도 없고 오직 구인 광고를 통해서만 정보를 접한다. 물리학의 몇몇 명제가 그렇듯이, 빈곤 속의 삶도 시작 조건이 모든 것을 결정했다.

또 다른 의문. 노동자들이 이직하는 것이 어렵다면 왜 직장에게 개인적 혹은 집단적으로 더 나은 대우를 요구하지 않는 걸까? 작가의 경험담을 들어보자면 바로 핵심은 기만과 인격모독에 있다. ‘우리’는 동료이니 인내를 가지고 일하라, ‘우리’는 하나다 라는 말을 계속 주입하고 갑자기 가방을 뒤지거나 약물검사를 시행하여 스스로 신뢰할 수 없는 사람으로 낙인을 찍는다. 가난이 범죄가 되는 순간이다.

예전에 일어난 홍익대 청소 노동자 사태, 은마 아파트 청소노동자의 감전사가 떠오르기도 하고 지하철 첫 차를 탈 때마다 마주친 꾸벅꾸벅 조는 할머니들이 생각난다. 10년 전의 미국 사회의 한 단면을 그린 르포이지만 왜이리 지금 한국과 겹쳐 보이는지.. 그들의 기운, 건강, 생명의 일부 덕분에 내가 이렇게 편하게 살고 있잖아. 저자는 죄책감을 느끼는 것만으로는 한참 모자라다고 말한다. ‘우리가 느껴야 마땅한 감정은 수치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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