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맹

2018년 8월 25일


5개월만에 주문한 종이책 “문맹”.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을 쓴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에세이집이다.

작가들의 개인적 배경을 근거 삼아 소설을 이야기하는 걸 피하는 편이다. 그래도 망명 작가의 언어에 대한 고민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작가의 소설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한 번 읽어볼만한 책이다.

전자책만 산다는 방침을 바꿔서 전자책으로 절대 나오지 않는 종이책도 같이 사서 읽어야겠다. 말랑말랑한 여행 에세이나 장르 소설을 결코 폄하하는 건 아니지만 전자책으로 나오는 신간들이 무척 한정되어 있다. 책에 대한 갈증을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일주일에 한두 권 사되, 다 읽으면 다음 책을 사고 읽은 책을 알라딘 중고서점에 팔아야지. 색다르고 빡센(?) 책은 읽고 싶지만 짐이 쌓이는 것도 골치 아프니까. 물론 전자책도 계속 읽을 예정이다.

문맹, 아고타 크리스토프

2018년 8월 24일

이것은 <네>라는 제목의 책을 쓴 천재적인 작가가 사회가 보내는 마지막 ‘아니오’였다. 이 책은 <콘크리트>, <몰락하는 자>, <음성모방자>, <벌목> 그리고 다른 책들과 함께 놓여 있다. <네>는 내가 읽은 베른하르트의 첫 번째 책이다. 나는 어떤 책을 읽고 이렇게 많이 웃어본 적이 없다고 말하며 이 책을 여러 친구들에게 빌려주었다. 그들은 끝까지 읽지 못한 채 내게 책을 돌려주었다. 그만큼이나 이 책이 그들에게는 ‘우울하고’,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책의 ‘웃긴 점’을 그들은 정말 어디에서도 발견하지 못했다.

책의 내용이 끔찍한 것은 사실이다. 왜냐하면 이 책의 ‘네’는 정말 ‘네’이지만, 죽음에 대한 ‘네’이고, 그러니까 삶에 대한 ‘아니오’이기 때문이다.

–<문맹>, 아고타 크리스토프

늙음

2018년 8월 16일

자리가 난 곳은 공교롭게도 내 모교인 무아상 중고등학교였어. 나는 조금 망설였어. 아주 나쁜 추억이 있는 곳이라 그럴 만도 했지. 하지만 세 시간쯤 요모조모 따져보고 나니까,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늙는다는 게 바로 그런 걸 거야. 감정의 반응은 무뎌지고 원한도 기쁨도 별로 간직하지 않게 돼. 그 대신 몸 여기저기에 이상은 없는지, 기관들의 균형이 무너져 있지는 않은지에 주로 관심을 갖게 되지.

-알라딘 eBook <소립자> (미셸 우엘벡 지음, 이세욱 옮김) 중에서

씨티 체크카드

2018년 8월 15일

집 앞 마트에서 쓰레기 봉투를 사려고 카드를 내니 현금 결제를 해달라고 하더라. 가지고 있던 현금이 없어서 짜증이 났다. 그러다 씨티체크카드를 쓰면 세븐 일레븐의 롯데 ATM 수수료가 무료라는 게 생각나서 집 주변 편의점에서 돈을 뽑았다. 이제 일본에서도 출금 수수료가 부활해서 큰 사용 가치가 없어진 체크카드인데 이럴 때 쓸모있네.

물론 날씨가 이렇게 덥지 않았음 주변 주거래 은행까지 걸어갔겠지..

시가, 일출

2018년 8월 14일

일요일에 잠을 청하다 바닷가에서 일출 보면서 시가를 펴보면 어떨까 갑자기 궁금하더라. 마침 화요일이 쉬는 날이기도 하고 1박하고 올까 고민했다. 찾아보니 휴가철이라서 그런가 숙박요금이 꽤나 비쌌다. 그래서 결국 청량리에서 출발하는 밤 열차를 타기로 했다. 무려 5시간 40분이 걸리지만 2만원 남짓한 돈으로 숙박도 해결할 수 있으니까.

오랜만에 타본 무궁화호 열차는 생각보다 꽤 지저분하고 좌석도 좁았다. 요즘엔 KTX를 많이 타고 다녀서 비교가 많이 되더라. 여튼 기차가 출발하고 준비해둔 목베개에 기대어 잠을 청하였다. 졸다 깨다를 반복하다 제천을 지나 사북-고한역 구간에서 잠이 깨버렸다. 급히 내리는 승객들을 잠결에 보면서 이 새벽에 카지노라도 땡기러 가시나 중얼거렸다.

동해역을 지나면서 기차 옆으로 펼쳐지는 바다 풍경을 기대했지만 웬걸, 해가 뜨지 않았으니 뭐가 땅인지 바다인지 알 수가 없었다. 정동진역에 다다르니 기차에 타고 있던 대부분의 승객들이 내렸다. 다들 해돋이 보로 왔구나. 사실 나도 정동진에서 내릴까 생각했으나 이동 수단이 마땅치 않아 포기했다.

강릉역에 내리니 역 주변은 조용했다. 내리는 승객도 별로 없었고 심지어 역 앞에서 기다리는 택시도 없었다. 편의점에서 커피 한 캔 까면서 고민했다. 경포대? 강문해변? 제일 사람 없을 것 같은 강문으로 선택하고 택시가 오자마자 타고 갔다. 미리 알아둔 일출 시각은 5시 39분였다. 해변에 다다르니 하늘이 붉게 밝아오고 있었다.

선 채로 시가에 불을 붙이고 한 모금 빨아들였다. 어둑하던 하늘은 점점 밝아지고 덩달아 더워졌다. 꼬냑도 한 모금 할까 했지만 빈 속이라 포기했다. 일출은 본 감상은 뭐랄까,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 뭔가 고양되기는 커녕 더워져서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사진은 몇 장 찍어야지.

늘상 하는 생각이긴 하지만 새해의 일출에 뭔가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들을 보면 의아해진다. 우리가 임의로 분절한 시간에 뜨는 해를 보면서 올해엔 꼭 뭐뭐 해야지 하고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똑같은 일을 반복한다. 문득 허무해져서 서울로 돌아가고 싶어졌다. 그래도 이건 비싼 시가릴로니까 더 피고 가야지.

6시반 서울 행 KTX를 예매했다. 1시간 반 동안 강릉에 있었고 해변에 있었던 시간은 고작 30분도 되지 않았다. 오고가는 경비를 대충 합해보면 5만원이더라. 그러니까 이런 허무함과 짜증이 무려 5만원 짜리인 셈이다. 그 5만원이 아까워 서울역에 도착하고 홍대까지 가는 그 순간까지 폰을 들어 이 글을 쓰고 있다.

피로와 짜증, 허기가 겹쳐 급히 DQ로 달려가 무중력 아이스크림을 주문했다. 역시 맛있었고 세상은 살만하게 느껴졌다. 일출이고 뭐고 당이 이 세상을 구원할 거야.

자, 오늘은 뭐하고 놀지?

귀찮은 이사

2018년 8월 8일

어제 14킬로 가까이 걷고 홍대-합정을 5번 왕복했음에도 이사가 완료되지 않아서 분통이 터졌다. 거기다 더위까지 먹은 상태에서 퇴거 청소를 따로 돈 들여서 하기로 했으니 더 짜증이 나더라.

오늘 아침에 일어나보니 원룸이 사람사는 집으로 바뀌어 있었다. 3주 넘게 매크리스 한 장과 TV하나로 살았으니 뭔가 임시 천막 같았는데 지금은 그럭저럭 살만하게 느껴졌다.

3년 전에 동생과 함께 살기 위해 상상마당 근처의 서교동 집을 내놓고 합정동 집으로 이사했다. 그 때 메르스가 터지는 바람에 서교동 집 보러 오는 사람도 없어서 3개월치 월세를 쌩으로 날렸다. 그 때 돈 깨졌던 거 생각하면 지금은 오히려 돈을 절약한 셈이지.

이러나저러나 이사는 넘나 귀찮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