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거짓말을 한다

2018년 6월 28일

페이스북은 친구들에게 내가 얼마나 괜찮게 사는지 자랑하는 ‘디지털 허풍약’이다. 페이스북 세상에서 보통의 성인들은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카리브해로 휴가를 가고, 《애틀랜틱》을 정독한다. 실제 세상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화가 잔뜩 난 채 슈퍼마켓 계산 줄에 서 있고, 《내셔널인콰이어러》를 몰래 보고, 수년간 잠자리를 함께하지 않은 배우자의 전화를 무시한다. 페이스북 세상에서는 가정생활이 완벽하다. 실제 가정생활은 엉망이다. 얼마나 엉망인지 아이 가진 것을 후회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페이스북 세상에서는 토요일 밤이면 모든 젊은이들이 근사한 파티에 간다. 실제로는 대부분이 집에서 혼자 넷플릭스Netflix 드라마를 몰아서 본다. 페이스북 세상에서 여자친구는 남자친구와 다녀온 행복한 휴가 사진을 26장 올린다. 실제 세상에서는 이런 사진을 올린 직후, 구글에 ‘남자친구가 나와 성관계를 갖지 않으려 해요’라는 질문을 올린다. 이때 그 남자친구는 〈최고의 몸매, 최고의 섹스, 최고의 구강성교〉를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알라딘 eBook <모두 거짓말을 한다> (세스 스티븐스 다비도위츠 지음, 이영래 옮김) 중에서

칠레의 밤

2018년 6월 22일

삶은 계속되고 계속되고 계속되었다. 마치 알갱이마다 미세하게 풍경을 그려 넣은 쌀알 목걸이 같은 삶이었다. 모든 사람이 그런 목걸이를 하고 있지만, 그 누구도 목걸이를 벗어 눈에 가까이 대고 알갱이마다 담겨 있는 풍경을 해독할 충분한 인내심이나 용의가 없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쌀알 미니어처가 살쾡이나 독수리의 눈을 요하는 측면도 있고, 그 풍경들이 관(棺), 공동묘지 조감도, 인적 없는 도시, 심연과 정상(頂上), 존재의 하찮음과 그 존재의 우스꽝스러운 의지, 텔레비전을 보는 사람들, 축구 시합을 하는 사람들, 칠레의 상상력을 순회 항해하는 거대한 항공모함을 방불케 하는 권태 등의 불쾌한 놀라움을 안겨 주곤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진실이었다. 우리는 권태에 찌들어 있었다. 우리는 책을 읽었고, 권태를 느꼈다.

-알라딘 eBook <칠레의 밤>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우석균 옮김, 알베르토 모랄레스 아후벨 그림) 중에서

투쟁 영역의 확장

2018년 6월 20일

나는 초원의 태양 아래 드러눕는다. 초원의 너무도 다정하고 안정되고 온화한 풍경 한가운데에 누워 있는 나는 지금 몸이 아프다. 참여, 기쁨, 감각의 조화 따위의 원천이 될 수도 있었을 모든 것이 이제는 고통과 불행의 원천이 되었다. 그와 동시에 나는 아주 격렬하게 기쁨의 가능성을 다시 맛본다. 몇 년 전부터 나는 이론적인 파라다이스에서 세상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살고 있는, 나를 닮은 유령의 주변을 맴돌고 있다. 오래전부터 나는 그를 만나는 것이 내가 할 일이라고 여겨 왔다. 그런데 이제 끝났다.

-알라딘 eBook <투쟁 영역의 확장> (미셸 우엘벡 지음, 용경식 옮김) 중에서

야밤의 츠키지

2018년 6월 12일


야밤의 츠키치에서 참치.

긴자에서 츠키치까지 슬슬 걷다보니 새벽의 명동과 을지로 사이를 걷는 느낌이 나더라. 간간히 비틀거리는 취객과 빽빽한 택시 행렬 빼곤 너무 조용한 분위기였다. 오늘도 또 스시잔마이 츠키치 본점을 오긴 했지만 이 시간대에 오니 뭐랄까, 망원동 강화통통생고기 느낌이 났다. 물론 망원동에선 고기를 굽고 여기선 스시를 먹는 게 다르지. 안주를 입에다 넣고 술먹는 분위기는 비슷하네.

모리바


공항에서 기분이 상했지만 호텔이 생각보다 매우 훌륭했고 모리바 와서 마티니 한 잔 마시니 유쾌해졌다. 바에 가서 마티니를 주문할 때마다 농담처럼 “슈퍼 드라이 마티니”로 만들어달라고 한다. 혀를 벨 듯한 날카로운 드라이함이 마티니의 매력이라고 생각했는데 여기 마티니는 다르네. 여태 마시던 거랑 대척점에 있는 마티니이다. 일단 서빙 온도가 생각보다 높아서 그런지 향이 굉장히 풍부하다. 그래서 천천히 마실 수 밖에 없네.

다음에 뭘 주문하지? 스터 기반 칵테일을 주문하는 게 좋다던데 생각나는 게 맨하탄 정도 밖에 없다. 라프로익 프로젝트 같은 괴랄한 거 만들어달라고 하면 어떨까? 그냥 올드패션드를 만들어 달라고 할까? 술병들을 보니 메이커스 마크 빼곤 딱히 눈에 띄는 버번이 없네..

전화가 오지 않는다

2018년 6월 9일

나를 적극적으로 찾아야할 사람들한테서 연락이 없다.

한 명은 이번에 바뀐 집주인으로 월세를 부쳐야할 계좌번호를 알려주지도 않고 무소식이다. 전에 이사간다고 연락까지 했더만 전화도 잘 받지 않아서 결국 부동산 대리인이랑 연락이 될 정도였으니. 어차피 8월에 계약만료이니 가만히 있어볼까? 대리인한테까지 전화하기 귀찮다.

또다른 한 명은 합정동 예비군 중대장이다. 일이 바빠서 2년 정도 예비군을 가지 못해서 3월까지 참석 독촉전화에 경고장까지 보내다가 그 이후로 무소식이다. 중대장한테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아니면 드디어 국가가 나를 포기한 건가? 제발 포기좀 해줬으면 좋겠다..

아싸

2018년 6월 1일

병원 대표 원장님 두 분 중 한 분께서 오전에 나오지 않으셔서 뭔 일인지 궁금했다. 감기 기운이 심해지셨나, 간호사에게 물어보니 어제 병원 회식이 있어서 좀 늦게 나오셨단다. 그랬군요. 저도 나름 부원장 직함을 달고 있는데 왜 모를까요? 하하.

직장에 들어와서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개인적인 교류를 거의 하지 않는 편이다. 출근할 때 인사, 회진돌 때 인사, 퇴근할 때 인사 그리고 진료할 때 뭐 필요한 거 있음 말하는 정도다. 환자를 상대할 때는 달리 직장 동료들과는 하루에 열 마디도 하지 않는 것 같다.

대표 원장님이 나보고 말수가 너무 적으니 이런 저런 교류를 해보자고 하셨지만 일단 병원일도 많이 바쁘다보니 없던 일이 되었다. 무표정에다가 원체 말이 없어서 그런가, 같이 일하는 간호사들도 대체 내가 무슨 생각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한 적도 있다.

돈 받은 만큼 내 일을 열심히 하면 되었지 직장 안에서 친목질을 할 필요는 없잖아. 어제 뭐하고 쉬셨어요? 질문에 솔직하게, 도쿄에서 술먹다 왔습니다. 어제는 전주에서 술먹었습니다. 그리고 공연 보러 갔죠. 올해 4일 정도 빼고 계속 술먹었습니다. 어제도 맥주를 만들었습니다. 아주 비극적인 내용의 연극을 봤죠. 그리고 술마셨습니다. 이럴 필요는 없잖아.

이 곳에 취직해서 4개월 넘게 모든 말엔 단답형으로 대답하고 점심식사는 사람들이 적은 시간에 5분 만에 해치우니 존재감이 점점 희미해지는 것 같다. 이런 걸 아웃사이더, 아싸라고 하지. 드디어 어제 회식이 있는지도 모르고 누구도 알려주지 않을 정도의 경지라니. 정말 뿌듯하다. 더 정진해야지.

퇴직할 때까지 아싸로 살아가야지.

바이~ 앵그리버드

3개월 넘게 열심히 해오던 게임 “앵그리 버드2”를 지웠다. 처음에는 새 종류 모으고 렙업하는 재미가 있었지만 반복되는 레벨 디자인과 현질 유도에 점점 질리더라. 게임이 업데이트되면서 새로 들어온 ‘아기새’라는 시스템은 대놓고 현질 아니면 노가다를 요구하더라. 아기새의 레벨을 유지하려면 먹이로 줄 사과을 계속 모아야 하는데 하루종일 게임을 붙잡을 거 아니면 결국 현질을 해야하는 구조였다.

나는 FPS를 비롯하여 단판에 끝나는 게임을 좋아해서 이렇게 질척거리는 게임은 질색이다. 그래서 어렸을 때도 RPG장르를 피하고 남들 다하는 WoW도 무시했다. 이런 나에게 고작 모바일 게임이 노가다를 요구하다니, 미련 없이 지웠다.

20대에 게임 때문에 인생을 조졌던(?) 적이 있어서 그런지 게임을 멀리 하는 편이지만 그래도 앵그리버드2는 오래 하긴 했다.

책이나 읽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