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해야하나.

2018년 5월 31일

여태 6, 7월 근무 일정표가 나오질 않아 아침부터 원무과에 가서 빨리 보여달라고 재촉했다. 일정표를 보니 띠용. 6월 6일에 쉴 줄 알고 도쿄행 항공권까지 끊어놨더만 6일은 내가 근무하는 날이었다. 수수료 4만원 날리고 항공권을 취소했다. 괜찮다. 빨간 날에 일하면 수당 주니까 돈이나 벌자.

오전 회진을 마치고 생각난 게 오늘이 바로 종합소득세 신고 기간중 마지막 날이었다. 작년에 전 직장 급여 연체 때문에 대진 알바를 몇 군데 뛰었었지. 비정규직으로 4개월 정도 주말 근무 해주고 받은 급여를 따로 신고해야 했는데 절차가 생각보다 복잡하더라. 지인에게 도움을 받은 끝에 겨우 처리했다. 갑자기 전 한의원 원장 욕이 나왔다. 개새끼. 제 때 월급 줬으면 알바 안 뛰어도 되고 지금 와서 귀찮게 세금 신고할 필요도 없잖아.

오후 회진 돌고 외래 보고 세금 신고하니 벌써 퇴근시간이었다. 문자를 확인하니 월급이 들어왔다. 어차피 통장을 스쳐지나갈 돈이지만 기분이 조금 나아졌네. 크원 가서 기름진 로디드 프라이즈를 먹어줘야겠다.

그나저나 도쿄 갈 때 쓸 유심을 사놨는데 어쩌지? 6월 중으로 다른 날 항공권을 알아볼까?..

세이지 오자와

2018년 5월 18일

일괄적으로 싸잡아 말하면 안 되겠지만, 일본 음악가는 뛰어난 기술은 갖췄어도, 기법에 파탄이 없는, 평균점이 높은 연주가 가능해도, 명확한 세계관이 전달되지 않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기만의 독자적인 세계를 이룩해서 그걸 있는 그대로, 날것으로 다른 사람한테 전하고 싶다는 의식이 다소 약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오자와 그런 게 음악에서 제일 안 좋은 경우죠. 그러기 시작하면 음악 자체의 의미가 없어집니다. 정말로 잘못하면 엘리베이터 음악이 돼요. 엘리베이터를 타면 어디선가 들려오는 음악. 내 생각엔 그런 게 제일 무서운 종류의 음악이에요.

-알라딘 eBook <오자와 세이지 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 (무라카미 하루키.오자와 세이지 지음, 권영주 옮김) 중에서

택시 중독

2018년 5월 17일

택시가 잡히지 않아 오랜만에 대중교통을 타고 출근했다. 택시를 타면 집 앞에서 직장까지 15분 만에 갈 수 있으련만 오늘은 왜이리 택시가 없을까?

9호선 급행을 타고 그래 세계에서 이만한 대중 교통수단은 없지 하며 애써서 위안삼고 있었지만 마을 버스를 타니 모든 게 깨져버렸다. 급정거에 문도 닫히지 않았는데 출발하고 에어컨도 켜지 않아 왜이지 눅눅한지.

출근하면서 진이 빠져버리더라. 내일은 조금 더 일찍 일어나서 꼭 택시타고 출근해야지..

2018년 5월 5일

그러니까 우리에게 말이란 모든 문제의 원인임과 동시에 해법이었고, 우리 관계에 있어 시작과 끝이었고, 사실상 모든 것이었고, 그것이 사라진다면 그녀와 나 둘로 이루어진 공동체는 존재의 의미를 상실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우리라는 공동체의 의의를 잃는 방식으로 공존하느냐, 우리의 구성 요소를 유지하면서 이 공동체가 회복 불가능한 형태로 부서져가는 것을 끝까지 지켜보느냐 하는 기로에 서 있었던 셈이다

-알라딘 eBook (박민정 외 지음) 중에서

뭐 듣지?

2018년 5월 4일

이제 뭐 마시지? 냉장고에 있는 페트병을 하나 골라서 마셨다.

돈 좀 들여서 공방의 발효조를 10개 교체하고나니 나오는 맥주들이 그럭저럭 괜찮은 것 같다. 공방 멤버들이 우스갯소리로 ‘공방내’, ‘군내’로 통칭하는 구수한 곡물향이 확실히 줄긴 줄었다.

오늘도 동생이 외박을 하나 보다. 그래서 거실에 음악을 크게 틀고 냉장고에 있는 술을 천천히 마시고 있다. 꼬냑 한 잔 남은 거 비우고 캔 한 잔 마시고 내가 만든 맥주들을 조금씩 맛보고 있다.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4번을 크게 틀어놨다. 뭔가 우울한 음악을 듣고 싶어 고른 건데 예전 병이 도졌다. 스베틀라노프/국립러시아교향악단을 듣다보니 자꾸 므라빈스키/레닌그라드필하모닉이 생각났다.

차이코프스키를 처음 들은 건 중3이 막 끝나던 겨울방학이었다. 야탑역 근처 쇼핑몰에서 우연히 산 라이센스 음반이었다. 므라빈스키/레닌그라드필하모닉 1960년대 차이코프스키 마지막 세 교향곡 녹음이었다.

그 음반을 수십 번 듣고나서 중3병인가, 심히 우울해졌다. 옆에서 엄마가 우스갯소리로 뭐 안 좋은 일 있냐 물어서 별 거 아니라고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웃기긴 하다만 꽤 심각한 감정이었다.

아직 동생이 들어오지 않았다. 내일 출근해야 할 텐데. 뭐, 알아서 하겠지. 기억을 더듬어 나름 우울한 스트리밍 목록을 만들어 듣다가 놀랐다. 예전에 들었던 음악을 찾아 들어도 이젠 그 느낌이 아니구나.

옛날 듣던 음악들이 그저 어떤 기록으로만 느껴졌다. 그래, 이런 건 이럴 때 들었지만 지금 별로군. 우울하기 보단 신나잖아? 옆 방에서 고양이들이 우당탕탕 뛰는 소리가 들렸다. 들어가서 배나 긁어줄까? 맥주를 한 병 더 깠다.

돈 좀 들여서 공방의 발효조를 10개 교체하고나니 나오는 맥주들이 그럭저럭 괜찮은 것 같네. 공방 멤버들이 우스갯소리로 ‘공방내’, ‘군내’로 통칭하는 구수한 곡물향이 확실히 줄긴 줄었다.

이제 뭐 듣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