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진 소감

2016년 7월 29일

이번 주 동안은 수유역 근처 한의원에서 대진 알바를 뛰고 있다. 일당이 쏠쏠해서 지원한 거긴 하지만 다른 한의원 시스템은 어떤가 궁금한 것도 조금 있었다. 전 직장의 명성(?) 덕분에 쉽게 알바 자리를 찾은 터라 조금 부담되긴 했으나 예상보다 빨리 적응한 것 같다.

여기서 진료를 보면서 느낀 건, 같은 서울이라도 지역에 따라 환자 성향이 많이 다르다는 거였다. 예전에 목동에서 마주쳤던 환자들은 까다로운 분들이 꽤 많아서 마음 고생을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허나 여기는 한두 명 빼곤 다들 털털하신 분들이라 수월했다. 아마 전 직장에서 단련된 게 크겠지.

또 하나 여실히 느끼는 건 로딩이 적다는 점? 이건 좀 어폐가 있긴 하다. 열심히 책 읽으면서 오늘은 널널하네, 이랬는데 확인해보니 30명이나 진료했다. 이 곳의 시스템이 잘 되어 있다는 증거이겠지만 전 직장에서 체험한 노동 강도랑 차이가 크더라. 역시 지난 2년 동안의 경험을 절대 무시할 수가 없구나. 맨날 4~50명 보다가 30명 정도는 뭔가 쉬엄쉬엄 일하는 것 같네.

일하면서 뭔가 노는 것 같다느니, 이런 태평한 소리를 늘어 놓고 있긴 하나 역시 출근하는 건 여전히 귀찮다. 갑자기 다음 주에 어디론가 여행가고프지만 다른 곳을 출근해야 하니 뭔가 슬프군. 이러나 저러나 돈은 벌어야 하니까.

오늘도 평화로운 합정동

2016년 7월 28일

옆집 사는 할머니가 이번에 또 우리 집 베란다로 넘어와 동생한테 잔소리를 했나 보다. 고양이 먹이 주지 말라고. 동생이 들은 척도 안 하고 나에게 바로 연락을 했다. 아이고, 이따 저녁에 가서 지랄 좀 해줘야겠구나.

퇴근하자마자 옆집 문을 두드렸다. 할머니, 왜 우리 집으로 넘어오셨어요? 할매가 거품 물면서 너네 집에서 고양이 밥을 주니까 우리 집 근처에 똥을 싸놓는다고. 아니, 이 근처에 길고양이가 얼마나 많은데 우리가 다 책임져야 하나요? 그리고 할 말 있음 저녁에 초인종을 눌러야지, 왜 남의 집을 들여다봅니까?

할아버지까지 나서서 몇마디 거들었다. 젊은 사람이 따지고 드네. 원래 이 집도 우리 거였어. 제가 보증금 내고 월세 내고 사는데 무슨 소리인지? 우리가 이 동네에만 50년을 살았다고! 50년을 살든 1주일 동안 있든 주거침입을 왜 합니까?

이런 식이었다. 남의 말을 듣지 않다가 딴소리만 떠들고 이도 저도 아니면 나이 들먹이며 훈계질로 이어졌다. 나도 지지 않고 계속 야그했다. 우리집 들어오지 말라고. 그리고 우리집 보일러 환풍구에 숨어사는 고양이 한 마리한테만 밥을 주는 거니 여기저기 있는 똥을 우리 책임으로 돌리지 말라, 반복해서 말했다.

참 웃기는 건 동생과 내가 있는데 그 노인네들은 동생한테만 떠드는 거였다. 저 보고 야그하세요, 저 보고. 항상 그런 식이다. 젤 만만해 보이는 젊은 여자한테 화를 푸는 거지. 동생한테 들어가라고 하고 30분 넘게 야그했다. 앞으로 집에 들어 오지마세요.

타인과 자신의 영역 분별에 대해 혼미한 두 노인네한테 연속하여 경계선을 그어줬다. 여기부터 들어 오심 안됩니다. 두 명도 지쳤는지 들어가려고 하더라. 따라가면서 소리쳤다. 할 말 있음 저녁에 초인종 누르고 하세요! 또 이런 일 있음 뒤집어 엎습니다!

이렇게 합정동의 저녁이 저물어간다..

금테안경


자다 깼는데 잠이 다시 오지 않아 누가 집에 남기고 간 쏘오오오주를 베이스로 한 언더락을 마셨다. 5시간 후에 힘들 거란 걸 알면서도 한 잔 더 마셨다. 마침 읽던 책에서 마음에 드는 문장을 발견하였다.

“안다는 것은 이해하는 것, 더는 궁금해하지 않는 것, ‘내버려두는 것’과 같았다.”
– <금테안경>, 조르조 바사니.

취직?

2016년 7월 24일

결국 인천쪽 한방병원에 취직됨. 주5일이긴 하나 근무시간이 야릇하다. 수목금토일. 토일요일엔 오후 두 시까지 일하는 거라 전체 근무시간이 짧긴 하네. 생각보다 너무 일찍 취직되어서 뭔가 아쉽다. 다다음주부터 근무시작인데 다음 주엔 다른 곳에서 일주일 대진을 뛰기로 확정했다. 일복은 참 많구나.

남들 놀 때 같이 놀자는 게 내 신조인데 그걸 어기다니. 그래도 일월화 여행 다녀올 시간은 생겼으니 그걸로 위안을 삼아야겠구나.

공방 멤버 모집

2016년 7월 21일

Itaewon Experimental Brewers(가칭)에서 새로운 멤버를 모집합니다. 기존 구성원에서 몇 명이 빠질 것 같아서 두세 명 정도 합류하셨음 좋겠네요.

Itaewon Experimental Brewers는 이태원에 있는 반지하 가정집을 맥주 양조 공방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월세와 전기수도 요금을 인원 수대로 나눠서 납부하고 있습니다. 예상 금액은 3~4만원 수준으로 사용량에 따라 더 내려갈 수도 있고 조금 올라갈 수도 있습니다. 회비만 내면 몇 번이고 사용을 할 수 있으니 다른 유료 공방에 비해서 아주 저렴한 수준입니다.

공방에는 2구 화덕과 다수의 당화조 그리고 냉난방기로 온도(에일 발효 온도)가 유지되는 발효실이 갖춰져 있습니다. 병입된 맥주와 효모를 보관할 수 있는 쇼케이스 냉장고와 홉 보관용 냉동고도 있습니다. 처음 보면 누추해 보이겠지만 웬만한 건 다 있어서 양조하기 편합니다.

구성원을 더 모으려는 이유는 정체기에 빠진 공방에 조금이라도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서입니다. 같은 장르 혹은 비슷한 재료로 다른 맥주를 만들고 상대방의 맥주를 평가하는 자리도 마련하고 이외에도 여러 재미난 걸 해보고 싶네요.

맥주를 만들어 보고 싶은 열의가 있으신 분은 저에게 연락 부탁드립니다. 두세 명의 범위 내에서 기존 공방 멤버들의 동의를 얻어 가입시켜드리겠습니다. 양조에 대한 지식이 없으면 가르쳐드립니다. 기존에 양조하시던 분이 오셔도 환영합니다.

메시지나 댓글로 문의해주세요~

영국에서 사흘 프랑스에서 나흘


오늘날에는 연락이 두절되는 경우가 적다. 휴대전화, 이메일, 페이스북, 트위터 등으로 쉬지 않고 연락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게 항상 도움이 되는가? 나는 잘 모르겠다. 때로는 그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연락이 되는 게 내가 정말로 함께 있고 싶은 사람들과 같이 있지 못 하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깨우쳐 주는 것에 불과하다.
– <영국에서 사흘 프랑스에서 나흘>, 이안 무어

서류는 읽어 봅시다.

2016년 7월 20일

오늘 양재, 송파 두 군데로 면접 보러 갔다. 폭염을 버티며 간 건데 좀 허탈하더라. 할 줄 아는 게 뭐뭐 있는지, 진료 시간은 언제부터 언제고 연봉은 얼마인지 등등 업무와 관련된 야그를 나눌 줄 알았다. 근데 어색한 소개팅 자리마냥 초점 잃은 대화가 이어졌다. 예전 직장에서 뭐 했는지 몇 번 물어보는 건 그렇다 쳐도 그게 대화의 주 내용인 건 좀 그렇지 않나? 취조를 받는 줄 알았다. 어색한 침묵이 흐르다 대뜸, 학교를 좀 오래 다니셨네? 하시길래 시원하게 대답했다. 네, 1년 쉬(꿇)었습니다. 아아 네.

두 군데 다 없던 부원장 자리를 새로 만들어서 채용하는 곳 같아서 조금 이해는 가지만, 제출한 서류는 꼼꼼하게 읽어 보시고 사람을 부르셨어야죠 하하.

내일도 인천으로 면접보러 가는데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궁금하다. 덥지나 않았으면 좋겠네.

김태춘 앨범 발매에 부치는 글

2016년 7월 19일

씨없는수박김대중과 김태춘을 거의 비슷한 시기부터 좋아했다. 그리고 그게 내 홍대 유람의 시작이기도 했지. 5년 가까이 지나서 보니 그 두 명의 행보가 꽤 갈린 것 같다. 씨없는수박김대중도 여기저기서 공연을 하곤 있지만 김태춘에 비해 많이 정체된 모습이라 안타깝네.

김태춘의 첫 번째 정규앨범 “가축병원블루스” 발매 기념 단독 공연에 간 게 별로 안 된 것 같은데 벌써 3년 된 일이다. 그 동안 미니앨범 한 개 내놓고 공연 갈 때마다 이런저런 신곡을 내놓아서 기대하게 하더니 이제 두 번째 정규 앨범이 나왔다.

나는 홍대에서 인디라 자칭하며 달달한 음악을 들려주는 그룹을 매우 혐오한다. 너무나 뻔하고 정답이 정해진 편한 노래들이니까. 그에 반해 김태춘은 답도 없고 꿈도 희망도 없는 노래를 들려준다. 저렇게 언제나 패배와 증오로 가득찬 음악을 연주하면 어떻게 버티나 싶지만 그는 꿋꿋하게 노래한다.

그의 음성은 매우 날카롭다. 공연할 때도 마찬가지다. 둥글둥글함이라곤 찾아보기 어려운 분위기 속에서 지옥과 저주를 자주 언급한다. 그런데 그게 나한테는 카타르시스를 주는 터라 여러 해 동안 팬질을 해오고 있다.

이번 앨범에서도 그의 색깔은 여전한 것 같아 기쁘다. 어서 음악이나 듣자.

“저질 저질 그래 우릴 저질이라 불러줘
저질스럽게 우린 춤추고 노래할 거야~” 김태춘의 두번째 정규음반 [악마의 씨앗]이 오늘 발매되었습니다.
멜론,네이버뮤직, 지니,벅스뮤직 등 웬만한 스트리밍서비스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이런거 가입안하신 분들은 밴드캠프페이지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자기소개서

2016년 7월 18일

요즘 여기저기 뿌려대는 자기소개서. 애절함이 부족하다. 나 이런 사람이니 뽑아 주시던가 말던가 툭툭 던지는 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 밖에 쓰지 못하겠네.

자기 소개서

경기도 성남에서 초, 중, 고등학교를 나와 경원대학교(현재 가천대학교)에서 한의학을 전공했습니다. 한의사 면허 취득 후 공중보건한의사로서 경상북도 영양군 보건소에서 근무를 시작했습니다.

특히 근골격계 질환에 중점을 두고 공부를 하였습니다. 또한 많은 노인 분들과 대화를 하며 상담에도 관심이 생겨 따로 사이버대학교에 입학하여 상담심리학을 3년 동안 공부하였습니다. 공보의 업무와 더불어 ‘한의사를 위한 임상아카데미’에서 2년 동안 조교로 활동하였습니다.

지역 보건소의 한의약공공보건사업에 참여하여 중풍예방, 관절튼튼, 치매예방 등 다양한 노인 질환 관련 사업을 진행한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독거 노인 방문진료와 만성 질환 예방에 관한 강연을 여러 차례 한 바 있어서 많은 노인성 질환에 익숙한 편입니다. 포항의 요양병원에서 일하면서 한방 진료 및 요양원 촉탁의로 활동하였고 주 2회 당직을 선 경험이 있습니다. 서울의 최수용 한의원에서 2년 가까이 비만, 근골격계 등의 다양한 환자군을 치료하였습니다. 체침 및 약침과 봉침을 많이 사용하였고 Thompson 방식의 추나요법을 치료에 응용하곤 했습니다.

짧은 경력이지만 나름 다양한 경험을 해본 편이라 자부합니다. 잘 접해보지 않은 질환도 열린 마음으로 공부하면서 진료에 임하려 합니다.

한국남자

2016년 7월 16일

오늘 국립극장에서 “한국 남자”라는 이름을 건 공연을 봤다. 좋아하는 뮤지션들을 보러 간 건데 많이 불편하였다. ‘불쌍한’ 한국 남자를 다룬다는 기사를 보고 실소를 터뜨렸지만 공연에서 그런 이야기를 실제로 할 줄이야.

프렐류드의 베이스 주자인 최진배 씨가 진행의 대부분을 맡으면서 계속 언급한 “한국 남자”의 대략적인 이미지는 다음과 같다. ‘당연히’ 결혼을 하였고 가족 부양에 힘쓰나 가정에서 발언권이 없고 ‘억눌린’ 남자들. 나는 내 돈 내고 간 공연에서 이런 헛소리를 연달아 들을 줄은 몰랐다.

여태 받아온 주입식 교육은 인생의 특정한 경로를 착실히 밟아야 인정받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 경로엔 결혼, 출산, 내 집 장만 등등이 포함되어 있겠지? 힘들더라도 그런 임무를 꾹 참고 완수해야 “한국 남자”로서 엣헴하며 몇 마디 할 수 있는 거고.

근데 어떡하나? 나는 결혼을 꼭 하겠다는 생각이 그다지 없고 출산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그리고 특정한 경로를 따라 살아서 성공했다고 믿기엔 이미 나이가 들어 버렸다. 공연을 보면서 혼잣말로 내 자신에게 질문했다. 나는 “한국 남자”인가?

최진배 씨가 내놓는 야그에 함축된 논리는 이성애자/동성애자 그리고 군필/군미필 혹은 결혼/비혼 등등 수 많은 상황 등을 깡그리 무시하고 하나의 길만을 “한국 남자”의 삶이라 강요하고 있었다. 게다가 논쟁적인 젠더에 관한 이슈조차 화해니 이해니 태평한 소리를 늘어 놓다니 견디기 힘들었다.

나는 아티스트가 내놓은 작품과 평소 내뱉는 언행을 따로 놓고 생각하려 애쓴다. 그리고 오늘 들은 최진배 씨의 멘트 또한 여우락 페스티벌의 기획자가 연출한 거라 믿고 싶다. 음악이 귀를 즐겁게 하였으나 사람의 말이 내 귀를 더럽힌, 이런 흔치 않은 상황은 너무나 당혹스러울 뿐이다.

아이고 음악만 들었음 좋았을 것을..

알아지즈

2016년 7월 14일

오랜만에 양조하고 이태원 거리로 나섰다. 저녁 약속까지 시간이 좀 비는데 살짝 배고프더라. 미스터 케밥 이런 건 식상하여 뭐 새로운 거 없나 해서 이슬람 사원 쪽으로 슬슬 걸어 갔다. 못 보던 케밥집이 있어 들어가 주문을 했다. 소고기와 양고기 들어간 거 주세요. 스파이스 넣어주시구요.

나는 성질이 아주 급한 편이라 소위 패스트푸드라는 음식이 늦게 나오면 화를 낸다. 고작 이런 걸로 나를 기다리게 해? 이러면서 말이다. 여긴 케밥집인데 왜 이렇게 오래 걸리나? 화가 나려는 찰나 직원이 반죽을 꺼내서 얇게 펴기 시작했다. 소스와 고기를 토핑한 다음 반죽을 오븐에 넣는다. 어라, 여기 케밥집 아니었나?

6천원입니다. 어리둥절하며 음식을 받아 들었다. 소스와 고기를 넣고 갓 구운 빵이 맛 없을 수가 없는데. 이러며 한 입 베어 물었다. 음. 그냥 행복했다. 내가 여태 알던 케밥이 아니었다. 6천원 짜리 길거리 음식 먹으면서 기분이 좋아질 줄이야.

나중에 양고기 추가해서 스파이스 잔뜩 넣어달라 해야지.

뭐할까?

2016년 7월 12일

여행 가려던 계획이 불투명해져서 앞으로 뭐할지 고민하고 있다. 다른 여행 계획을 세워서 떠나던가 아니면 구직 전선에 뛰어들던가. 아, 8월까지 놀려고 했는데. 지난 밤에 잠이 깨어 책도 읽히지 않고 그래서 이력서를 쓰기 시작했다. 역시 이번에도 쓸 건 많지 않았다. 2년 가까이 한 군데에서 근무하고 환자도 많이 보긴 했다만 쓸 말이 없네. 약침, 봉침, 추나 등등 다양한 술기 다 가능합니다. 원하시면 모든 걸 다 보여드리겠습니다!

서울 안에서 일하고 싶긴 하나 그게 내 마음대로 되나. 이동 반경을 어디까지 넓혀야 하는가? 아이고 이런 고민도 9월부터나 할 줄 알았는데. 시간 자체가 붕뜨고 집에 가만히 앉아 책이나 읽는 게 참 어려워서 말이지. 여행과 일을 겸해서 휴가철 내내 전국 대진이나 뛰어 볼까? 창원 여수 찍고 안동으로! 이력서 쓰다가 생각난 김에 실업 급여 신청 서류도 넣었다.

그래도 다행인 게, 2년 동안 추가된 게 몇 줄 안되더라도 마음은 편하더라. 어디서든 밥은 먹고 살 수 있겠지.

휴가철 전국 대진 해드립니다. 헤헷.

미국 동부 철도 관람기

2016년 7월 11일

미국 동부 철도 관람기.

맥주 마시러 미국 간 거였지만 철도에 워낙 관심이 많아 일부러 기차와 역을 보러 다니곤 했다. 가치를 탈 일이 없어도 뉴욕의 Penn station, Grand Central에 들러 플랫폼도 구경했지. 지하철과 기차 둘러 보면서 나오는 건 한숨이었다. 엉망진창이구나.

사실 뉴욕의 지하철은 꽤나 오밀조밀하게 되어 있어 차 없이도 이동이 편했다. 다만 퀸즈나 브루클린 구석으로 가면 야그가 달라지지만. 뉴욕에 도착한 첫 날, 굉장히 인상적이었던 건 매우 낡은 지하철 동차와 역에서 나는 악취 그리고 내 팔뚝만한 쥐들이었다.

뉴욕의 지하철 역사야 100년이 넘어가니 지저분한 건 어쩔 수 없다 해도 지하철의 급가속과 급제동은 너무 하더라. 그러다 갑작스레 급행으로 변해서 목적지를 지나치는가 하면 그런 중요한 공지사항은 잘 들리지 않는 스피커로 대충 알려주고 운행했다.

같은 노선을 경유하는 지하철 노선이 많아 신기했다. 그런데 한 곳에서 신호기 고장이나 보수 공사를 한다하면 엿가락처럼 운행 시간이 늘어나기가 일쑤였고 이 또한 왱왱거리는 스피커로 공지하였다. LTE나 3G도 터지지 않는 곳이 워낙 많아 지하철 안에선 스마트폰이 쓸모 없었다.

그래도 보스턴 가니 뉴욕의 지하철은 양반이었다. 보스턴 시가지를 산책하면서 길가에 웬 철로가 있나 했더니 지하에서 조그만한 동차가 올라오더라. 설마 보스턴에선 저런 걸 지하철이라 부르는 건가? 노면 전차에 가깝고 속도도 매우 느린 Green Line은 나에게 문화충격을 선사하였다.

다시 뉴욕으로 돌아와 머무르다가 보스턴의 Trillium Brewing에서 캔 제품이 나온다 해서 함 들러볼까 했다. 펜역에서 Acela Express 타고 갈까? 기차 시간표를 보니 뭔가 이상했다. 거의 네 시간이나 걸리네. 뉴욕에서 보스턴까지의 거리는 대충 서울에서 부산까지랑 비슷할 텐데.

한국과 비교를 해보자. itx-새마을호 이하의 속도로 서울역에서 부산역까지 가긴 가는데 요금은 무려 100불이 넘는다. 이런 기차에 express라는 이름을 붙이다니. 그냥 비행기를 타는 게 낫겠는데? 아님 아예 싼 메가버스를 타거나.

펜 역을 구경하면서 실망감은 더 커졌다. 뭔가 플랫폼은 굉장히 많은데 중구난방이었다. Amtrak과 LIRR(롱아일랜드철도), NJ Transit 플랫폼이 다 나눠져 있고 한 역이라고 보기엔 각 노선 간의 거리도 상당했다. 회사가 다르니 그럴 수도 있겠다만, 짐 들고 기차 타려는 사람들에겐 고역이지.

많은 노선에 전철화도 되어 있지 않고 선형도 불량하며 공유하는 몇몇 노선은 이미 포화 상태라 연착이 다반사인 미국 동부의 철도를 보니 이런 걸 어케 돈 내고 타나 싶었다. 뭐 익숙해진 미국인이야 그러려니 하면서 타겠지만.

철도에 있어서 만큼은 미국은 천조국이 아니었다.

힘들다..

미국 갔다와서 맥주에 대한 흥미가 확 줄었다. 물론 워낙 많이 마셨으니 귀국하면 맥주 좀 쉬자 이런 생각은 하긴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술이 질린 건가? 그건 아닌 것 같다. 바 가서 칵테일은 맛있다며 쭉쭉 마셨으니까.

아무래도 아메리칸 스타일에 질려버렸나? 홉이 팡팡 터지는 이파는 나에게 미각적인 피곤함을 안겨줄 뿐이고 버번 위스키 배럴에이징한 임페리얼 뭐시기들은 무지막지한 취기를 선사하였다. 맛이야 있었지. 어케 만들었을까 감탄하게 만드는 맥주도 많았고.

약간의 좌절감도 있었다. 내가 맥주 업계 쪽 종사자는 아니지만 한국에서 이런 수준을 맥주를 만들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자주 했지. 신선한 홉을 때려 박는 계열은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몰트와 이스트 중심의 맥주는 잘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스타우트나 사우어 혹은 벨지안 계열들 말이야.

허나 내 생각 자체도 말이 되진 않는다. 뉴욕, 보스턴, 메인, 버몬트, 플로리다 등등에서 날고 기는 브루어리를 고르고 골라 간 건데 한국의 양조장들과 직접적인 비교를 하긴 무리잖아. 미국이야 워낙 시장이 커서 수준이 떨어지는 곳도 아주 많을 터이고 그런 곳들은 ratebeer에서 걸러졌으니까.

뉴욕에서 케밥에 쿠어스 라이트를 마시며 존나 좋군 중얼거리고, 엄청난 바틀 라인업을 자랑하는 홀푸드마켓에서 달랑 Bellhaven의 스카치 에일 하나를 사와 감탄하면서 마시긴 했으니 그냥 혀가 지친 것인가?

이러고선 며칠 있음 이것저것 잘 마시겠지. 이건 이거고 저건 저거고 물은 물이요 산은 산이로다, 이러는 현자 타임이 얼마나 오래 갈 지는 모르겠다. 그저 퓰러스의 ESB와 런던 포터로 위안을 받고 싶다.

멀리 있는 방

2016년 7월 7일

<멀리 있는 방> 페드로 코스타, 후이 샤페즈

쨍쨍한 햇빛에 시달리다가 갑작스러운 어둠 속에 빠지니 당황스러웠다. 점차 어둠에 익숙해지니 영상과 오브제들이 강렬하게 다가오더라. 이렇게 절묘한 무채색의 세계라니.

2016.07.01 어느 잡화점에서.

2016년 7월 4일

2016.07.01 어느 잡화점에서.

대체 무슨 약을 파는지 궁금해서 잡화점(Pharmacy Store)에 들렀다. 소화제, 소염제, 해열제, 수면유도제, 항히스타민제 등등 종류가 다양했다. 진열대의 다채로움에 감탄하기 전에 이럴 수 밖에 없는 사정을 생각해봤다. 형편 없는 의료 보장성 때문에 병원에 잘 가지 못하는 사람들을 노린 시장이 매우 큰 게 아닐까? 고용량의 아세트아미노펜(타이레놀)도 거슬렸는데 스테로이드 외용제도 의사 처방 없이 팔리고 있어 식겁했다. 미국은 참 대단한 나라야. 그게 좋은 쪽이 아니라서 문제다만.

2016.06.30 MoMA

2016.06.30 MoMA

MoMA의 전시들이 생각보다 보수적이라 놀랐다. 회화만이 미술인가? Modern Art를 모아놓은 Museum이라는데 정작 Modern함은 잘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1960년대 이후의 작품에선 거의 미국 화가들의 작품이라 오만함마저 느껴졌다. 뭐, 미국이 세계 미술 시장을 선도하는 건 분명한 사실이지. 허나 유럽이나 아프리카에서도 날리는 작가들을 주목하지 않는 편협함이 아쉬웠네.

미국 음식 소감.

2016년 7월 3일

미국 가서 미국식(?)이란 걸 먹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짜고 달고 느끼한 동맥경화의 맛을 미국식이라 칭할 수 있으려나? 딱 마음에 든 건 베이컨과 달걀로 범벅된 아메리칸식 조식이었다. 든든해서 기분 좋으니까.

음식을 가리지 않는 편이라 웬만하면 한국 음식을 피하려 했다만 결국 먹은 건 아시아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쌀국수, 라멘, 케밥 그리고 중국 음식. 아무래도 각잡고 먹을 시간이 없고 많은 자원을 맥주에 바쳐서 그런 것 같다. 게다가 길거리 푸드 트럭의 가격도 나무나 매력적이었고.

미국 떠날 즈음 생각나는 건 wohop의 chow fon(넓다란 면), Katz’s Delivatessen의 무지막지한 고기 샌드위치, 할랄가이즈의 beef over rice(필라브케밥)?

다 필요 없고 라멘베라보나 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