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의 상상초월 작업실

2015년 8월 29일

EIDF2015 피터의 상상초월 작업실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드는 의문중 하나는, 카메라를 통해 보여지는 장면들이 과연 진실인가? 감독이 보고 있는 시각에 촬영된 사람의 견해도 반영되어 있는지, 혹은 감독의 개입으로 인해 등장 인물의 삶이 달라진 것이 뭔래 그러한 것 마냥 포장되었는 지 등등 다양한 생각을 하게 된다. 눈 앞에서 펼쳐지는 영상은 근거 없는 신뢰감을 심어줄 수 있으며 매우 강렬한 인상을 남길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많은 다큐멘터리들은 극적인 서사를 위해 포장을 마다하지 않는다. 이 사람은 끝내 재능을 펼쳐 유명하게 되었다, 잘 먹고 잘 살게 되었다, 이렇게 말이다. 희열 넘치는 결말을 보여 줄 수 있으니 참 근사한 방법이긴 하다만 질문을 던지게 된다. 과연 이건 진짜인가? 아쉽게도 진실은 지루하고 비참할 텐데 아름답고 훈훈한 결말은 현실에서 얼마나 많이 찾아볼 수 있을까?

서두가 길었다. EBS국제 다큐영화제에서 “피터의 상상초월 작업실”을 보며 든 생각들이라. 물론 이 다큐는 포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더 몰입해서 본 것 같다. 아무리 봐도 저장강박에 시달리는 아웃사이더 예술사 피터. 감독은 분명 무명의 화가가 전시회를 열어서 유명해지거나 아님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는 영상을 찍고 싶었을 거다. 웬걸, 다큐의 중간부터 휴먼드라마의 도식이 깨진다.

피터에겐 어두운 과거가 있었고, 아니 역겨운 과거가 있었다. 감독조차 촬영을 포기할까 고민할 정도로. 그리고 전시회조차 그닥 성공적이지 않다. 피터는 여전히 궁핍한 생활에 시달리고 혼자 힘으로는 살아갈 수가 없다. 대체 어떻게 해야할까? 이 시점에서 “피터의 상상초월 작업실”는 여타 휴먼드라마와 다른 궤도를 탄다. 포장과 미화 없이 현실과 과거를 대면한다.

꼭꼭 숨겨두고픈 기억을 꺼내는 과정 자체가 고통스럽고 심지어 폭력적이겠지만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었다. 피터는 그 관문을 회피하여 삶은 엉망이 되었다. 본인이 당당해질 때까지,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과거가 들춰진다. 결과는? 글쎄다, 비극인지 희극인지 잘 모르겠다. 가장 중요한 건 원제 “Almost There”이 암시하는 것처럼 거의 다 끝난 삶이라도 해방구가 있으며 삶은 어떻게라도 이어진다는 게 아닐까?

언제나 EIDF를 보며 뭔가 건지겠지 하며 기대를 하곤 하는데 이 작품이 눈에 띄더라. Almost There. 그렇다. 거의 막장까지 간 것 같아도 아직 끝은 아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모르겠지만.

낯선이 와 12시간.

2015년 8월 18일

2주 전에 거의 생판 모르는 이와 충동적으로 부산 여행을 한 적이 있다. 술 먹다 부산 간다는 날 따라오길래 집에 보내려 해도 가지 않길래 어쭈? 이러며 KTX 첫차 타고 같이 내려갔다. 그 날 본래 목적이 있어 부산 간 거임에도 불구하고 일행이 하나 붙어 버리니 모든 일정이 엉켜 버렸다. 거야 그렇다 치고 일단 간 거니 무사히 다시 집으로 돌려 보내야 하잖아. 그래서 데리고 다녔다만 정말이지 끔찍했다. 여행 함 다녀보면 그 사람의 민낯을 볼 수 있다는 걸 처절하게 체험했다. 물론 내가 워낙 혼자 다닌 터라 나만의 방식에 길들여졌다 해도, 도대체 나랑 맞는 게 없었다. 내가 아무리 외롭다 해도 아닌 건 아닌 거구나. 내가 맞춰줄 수 있는 것도 한계가 있음을 인정하게 된, 씁쓸한 충동여행이었다. 그냥, 휴가 가서 혼자 뭐할까 고민하다 2주 전 일이 생각나 끼적여봤다.

롤모델

2015년 8월 13일

어제 사계에서 술 먹다 두 명한테 내가 그 분들의 롤모델이라는 말을 들었다. 대체 왜 그런 말씀을 하셨는지 모르겠고, 뭔가 오해가 있는 듯하다..

난 맥주가 뭐가 뭔지 모르겠고 술도 모르겠다. 심지어 술도 잘 마시지 못하고, 전공분야를 제외하곤 아무것도 아는 게 없다.

물론 농담이었겠지만, 무지몽매의 중생이 롤모델이라니 정말 몸둘 바를 모르겠다. 저처럼 살지 마세요.

어서 출근이나 해야지.

국적불명

2015년 8월 5일

어쩌다 학교 후배들과 연락이 닿아 맥주 한잔 했었다. 한의원 운영 등 일과 관련된 이런저런 이야기 하다 역시 연애 이야기로 흘러 갔다. 나야 퇴근하고 일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건 좋아하진 않았으나 잠자코 듣고 있었지. 그러고 보니 일행 중 나만 솔로라, 화제가 연애로 넘어 가서도 할 말이 없었다.

연애 안 하냐. 지금 이 상태가 제일 좋은데, 뭘. 만날 때 잘 해주고 굳이 다시 만날 마음을 가지지 않는 게 편하지. 어디서 뭘 하고 무슨 생각하니 이러며 신경 쓰지 않아서 좋고. 이렇게 살다 보면 진짜 혼자 살 것 같다만 하하. 야, 완전 아메리칸 스타일이네. 그런가? 며칠 전 또 다른 후배를 만나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걔는 이걸 일본식 개인주의라고 했었지.

아메리칸, 일본식 뭐라 이름을 붙여도 상관은 없다만 냉정히 생각하면 일종의 고립 아닌 고립을 택하는 것과 비슷하다. 어느 시점에 가 보면 학교 동기들은 다 결혼해있을 거고 어쩌다 모임이라도 나가면 멀뚱히 할 말 없이 있다 오겠지. 그 자리에서도 아메리칸, 일본식 같은 이름을 붙이며 내 행동양식을 규정하려나?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가는 동안 상념에 잠겼다. 오랜만에 바가 아닌 홀에서 다른 손님처럼 아는 사람들과 이야기한 게 낯설어서 그런 걸까, 아님 미래의 모습을 예견해서 씁쓸해서 그런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