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예고제

2015년 7월 25일

서울 올라온지 벌써 1년이네. 3년 반 동안 매주 800km를 이동했던 시절도 벌써 아련하네. 서울에 정착(?)하면 평범하게 살자 다짐했지만 요모양 요꼴이라, 틀린 것 같다. 병원장님께 퇴사한다고 말씀드렸다. 후임을 구하고 인수인계하는 등 여러 일이 남아 있긴 하다만, 홀가분해지더라. 3년 반 동안의 경상도 생활을 이렇게 마무리하는 건가. 대구 가서 경북도청에서 공중보건의 지역 뽑기를 한 게 2011년인데, 아직도 생생하다. 눈 올 때 목숨 걸고 산골에서 빠져나오고, 길이 얼어 차 버리고 고개 넘어 지소로 복귀하고, 온갖 에피소드들이 주마등처럼 흘러간다. 여튼, 끝이다.

주말이고 게다가 퇴사와 귀향이라니. 이걸 핑계삼아 안주삼아 술을 마시고 싶어졌다. 이따 밤 9시 반쯤 이태원에 도착해서 맥주를 마시고 있겠지. 근데 어쩌지? 내일 오전 부원장 면접이 잡혀있다. 것두 목동에 있는 한의원인데, 분당 집에서 넉넉히 잡아도 두 시간은 걸리는 거리라. 서울역에서 바로 분당가는 버스를 타는 게 가장 합리적이긴 하나, 나는 비합리적인 알콜 물物신론자라서.

분명히 나도 모르게 내 몸이 지하철 4호선을 탈 거고 삼각지역 쯤 6호선으로 환승하면서 정신을 차릴 거다. 아아. 셈을 해본다. 사계에서 세 잔, 리틀 에일에서 한 잔, 로비본드에서 한 잔 그리고 시금치 퓨레. 그래, 다섯 잔만 마시고 집에 일찍 들어가야지. 늦어도 새벽 1시까지 집에 들어가야 해. 아침에 아주 말쑥한 모습으로 면접을 보러 가는 거야. 진짜 음주는 내일 하자.

펍 직원 분들 협조 부탁드립니다..

#기승전술
#음주예고제

콜리마 이야기

2015년 7월 23일

오늘의 마무리, 오비 필스너와 콜리마 이야기.

오랜만에 지독한 작품을 마주쳤다. 러시아 문학 그 중에서도 수용소 문학으로 간주할 수 있는 소설이면서도 그 유명한 도스토예프스키의 “죽음의 집의 기록”, 솔제니친의 “수용소군도”와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와는 궤를 달리 하는 작품이다.

구타, 기아, 질병, 약탈 등 삶과 죽음이 뒤엉켜 있는 수용소의 현실을 너무 무자비할 정도로 무심하게 묘사를 한다. 어떤 사건에 대해 울분이나 공감 그런 거 없이 그저 천천하고 간략하게 보여준다. 안톤 체호프가 수용소에 들어갔으면 나올 법한 소설이랄까?

글쎄다, 안톤 체호프가 쓴 사할린 섬은 자세한 르포르타주에 가깝다면 콜리마 이야기는 여러 인간 군상들의 짧은 에피소드를 점묘화처럼 모아서 콜리마 수용소 이야기를 차츰차츰 쌓아간다. 그 점과 같은 이야기들조차도 짧고 단순해 보이나 가볍게 지나칠 수 없는 무게를 지니고 있다.

오랜만에 접하는 러시아 문학이자 수용소 문학. 전원 예찬, 노동 착취, 이별, 죽음, 배고픔, 애착 등등 다양한 엽편 소설로 이루어져 있어 맥주 한 잔이 잘 넘어가지 않을 정도네.

즐거워 보여

2015년 7월 18일

새로 들어오신 부원장님이 유부남인 터라, 한의원에서 일하는 남자들 중 총각이 나 밖에 없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가, 오늘 점심 식사 중에 대표원장님이 불쑥 이야기를 하시더라. 서원장도 어서 짝을 찾아야 하지 않겠냐고. 대답했다. 저는 지금이 제일 행복합니다. 원장님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시면서, 맞아 내가 봐도 너무 즐거워 보여..

내가 너무 즐거워 보이나.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