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비극

2014년 12월 26일

“노년의 비극은 늙었다는 것이 아니라 젊음을 기억하는 것이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오스카 와일드

장가, 단상

2014년 12월 23일

여행 갔다 와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 주었다. 여기 가고 저기 가서 뭐 마시고 등등. 원장님께서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이야기하셨다. 서원장, 나중에 장가가기 어렵겠어. 그렇게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니.

그러게요. 수긍할 수 밖에 없었다. 이미 예전에도 그런 말을 많이 들어서 익숙해진 탓도 있겠지만 여태 내가 살아온 거에 그럭저럭 만족하는 편이고 결혼이라는 게 개인의 인생을 평가하는 기준이 되기 어렵지 않나, 여러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설령 결혼으로 내가 더 성숙해지고 삶의 폭이 커진다고 해도 내 대답은 한결 같을 거다. 어쩌라고? 딴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계속 뭔가에 몰두하는가에 행복감을 느끼는데, 성숙 그리고 성장이라는 단어가 끼어들 틈이 없다.

내가 아직 어려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어떤 사람을 오래 만나다 보면, 보고 싶지 않은 면도 접하고 끊임 없는 충돌과 싸움이 기다리고 있다.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SNS용 예쁜 사진 아래에는 질척질척한 인간 관계의 밑바닥이 있을 텐데 난 그런 걸 감당할 인내심이 부족하다.

끝나버린 관계들 이후에 나는 상실의 눈물을 흘리기 보단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끝나서. 피곤한 시간은 지나가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움직이기 시작한다. 공허함을 채우려는, 허나 채워지지 않음을 충분히 알면서도 외면하며 뭔가에 몰두하는 거지. 거참 답이 없군.

내가 독신주의, 비혼非婚주의를 선언하는 건 아니다. 내 자신을 분석하며 장밋빛 환상 대신 있을 법한 미래를 그려보는 것에 불과하다. 말은 이렇게 해도 주위 친한 사람들이 결혼한다면 열렬히 축하해준다. 몇 주 전에 친한 형이 결혼한다 했을 때, 그 형과 함께 한 난장판들을 회상하며 눈물을 머금고 덕담을 건넸지.

형, 정말정말 축하해요. 형 인생은 이제 끝장이군요. 한잔 하시죠.

다행이다, 아직 살아있으니.

정말 힘들다. 서울에서 놀다 비행기 타고 도쿄에서 놀다 다시 서울에서 맥주로 마무리. 몸이 부서질 정도로 힘든데 자꾸 웃음이 나온다. 지난 4일 동안 12시간도 자지 못했는데 뭔가 흐뭇하네. 불꽃이 꺼지기 직전의 타오름인가, 이렇게 돌아다닐수록 살아있다는 느낌이 든다. 남들이 미쳤다고, 그러면 오래 못산다고 하지만 어쨌든 내일 일어나서 커피 한잔 마시고 출근하겠지. 한번에 훅 간다 다들 경고를 하나, 그런 건 훅 간 이후에 고민하자. 다리가 풀리고 기력이 쇠하면 그때 가서 후회하면 되지 뭐. 인생은 후회의 연속이니 두세 번 정도 더 한다 해서 차이가 있겠는가.

정말 힘들다. 다행이다, 아직 살아 있으니.

책이란 무엇인가.

2014년 12월 18일

책이란 나에게 무엇인가. 그것은 나에게 애愛와 증憎을 동시에 일으키는 대상이다. 책 사랑만 했다고 할 수 있다면 간단하겠지만, 몸과 마음이라 그렇지가 못하다. 마치 우리의 인생이, 삶의 내용이 희노애락이라는 넉 자로, 그야말로 허전하게 요약되듯 책이란 나에게는 삶의 그런 희로애락과의 등가물인 셈이다.

그릇은 음식을 담기 위한 도구이다. 그릇 없는 식탁 문화는 생각할 수가 없다. 제대로 된 그릇은 그릇 그 자체만으로도 가치를 지닌다. 잘 요리된 음식이 격이 어울리지 않게 때로는 아무것에나 담겨져 나오기는 해도, 값진 그릇에는 값진 음식이 담겨지게 마련이다. 허기의 도가 넘치면 그릇이고 뭐고 아무것도 안 보일 테지만, 사람들은 요리를 궁리하면서 동시에 그릇 만들기를 하지 않았는가. 음식은 그릇과 더불지 못하면 문화가 되지 못한다.

<정병규 북 디자인> 후기 – “그때 그 디자인”에서 재인용

따라서 나는 책을 표지 보고 산다. 변명처럼 들리겠지만.

집 떠난 지 3개월.

2014년 12월 15일

집에 들어간 지 3개월이 넘어간다. 신기하다. 지방에서 일할 때는 무리해가면서 집으로 오더니, 서울로 올라온 이후엔 아예 가질 않네. 부모님 얼굴도 가물가물해질 지경이다. 바로 내가 불효자인가? 불효자는 놉니다, 울지 않고 놉니다.(1)

26살까지 나는 집귀신이었다. 집에 처박혀 게임을 하고 음악 들으며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살 빼고 군 복무하느라 지방 보건소로 가면서 많은 게 달라졌지. 수백 킬로미터 이동하는 건 예사였고 그 자체를 즐기게 되었다. 점점 길 위, 바깥에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안과 밖이 뒤바뀐 생활. 이번 주말만 따져봐도 자취방에 있던 시간을 합치면 12시간이 되지 않는다. 딱 잠만 자고 밖을 나돌아다닌 셈이다. 진료하고 술 먹고 술 만들고 음악 듣고 술 먹고 음악 듣고. 다들 집 가느라 막차 시간 확인하고 바쁘게 달려가는데 나는 코웃음 치며 마셨다.

이런 생각도 한다. 옛날에는 방 안에 처박혀 컴퓨터를 만지작거리며 뭔가 다른 삶을 꿈꾸었다면, 지금은 돌아다니면서 내 머릿속에 뭔가를 자꾸 집어넣으려고 하는 건 아닐까? 움직임의 정도는 바뀌었을지라도 행동의 경향은 여전한 거일지도.

이상하다. 집에서 보고 들은 건, 언제나 가족에게 충실하고 이러나 저러나 집에 일찍 들어가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아버지는 그런 삶을 사셨다. 술을 입에도 대지 않고 가족만 챙기는 삶. 그런데 나는 그렇게 하기가 정말 어려웠다. 지루해.

어머니한테 전화가 왔다. 아버지 생신인데 집에 올 거냐고. 당연히 가죠. 그런데 식사만 하고 잠은 거기서 안 잘 거에요. 당혹스러워 하시다가, 그럴 거면 네가 자주 가는 이태원에서 가족 회식이나 하자. 그러는 게 너한테 편할 거 아니냐. 네, 뭐 그러죠.

아버지 생신엔 집에 갈 줄 알았는데, 결국 이렇게 되었구나. 오히려 편하다, 잘 되었다 이런 생각이 드는 게 이상한 건가?

집에 들어간 지 3개월이 넘어간다. 4개월, 5개월..

(1) http://youtu.be/l5wnskIO7H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