뺑뺑뺑

2014년 6월 30일

연극이란 게 참 묘하다. 간단한 소품, 조명, 그리고 배우의 연기만으로 관객들을 이야기의 환상에 빠지게 하니 말이다. 영화랑 비교해보자.(1) 영화는 일단 실물을 보여 줘야 한다. 바다에서 일어나는 로맨스? 그럼 바다가 나와야 배우가 연기를 하지. 허나 연극은 다르다. 파란 조명과 효과음으로 여기가 바다라는 전제가 깔린다. 얼마나 경제적인가? 그래서 연극은 장소 전환이나 시간 배경의 제약이 훨씬 덜하다. 몇 백 년을 확 뛰어넘을 수 있고 배경이 되는 나라가 바뀔 수도 있다.김은성 작가의 신작 “뺑뺑뺑”은 앞서 열거한 연극의 경제성(?)을 극한까지 확장한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배경? 한국인이 있는 곳, 그러니까 세계. 시간? 곰이 쑥과 마늘 먹고 인간으로 다시 태어나던 때부터 핸대까지. 그러니까 시공간을 초월한 작품이다. 극에 나오는 인물들은 영수와 영희로 여태 역사적으로 반복되어 왔던, 민초들에게 닥쳐왔던 시련이 여러 배우를 통해 재현된다.

키워드, 이별. 일본의 징병에 의해 이별하는 부모, 한국전쟁 때문에 이별하는 연인, 농촌을 떠나 뿔뿔이 흩어지는 가족, 아이를 해외로 보내는 기러기 아빠. 키워드, 첨탑. 파업으로 대형 크레인에 오르는 사람들, 항의의 표시로 대형 송전탑에 오르는 사람들, 자신의 뜻을 표시하기 위해 높은 곳에 올라야 그나마 인정받는 시대.

영수와 영희란 인물은 이렇게도 다양한 주제와 역사를 배경으로 종횡무진 변주된다. 보면서도 감탄했던 게, 연극 역사상 이렇게 대담한 시도가 있었나? 다이나믹한 한국사를 두 시간 내에 여러 씨줄과 날줄로 엮어내려는 작가가 있었나? 게다가 앞서 말한 시간과 배경의 변화의 소품은 달랑 의자 몇 개들이다. 대학로의 한 소극장 안에선 12명의 배우들이 군무로 한국사 민중의 역사를 훑어내고 있었다.(2)

이야기의 전개속도가 따라가기 버거울 정도로 빠른 것 등, 아쉬운 게 없는 건 아니다만, 이런 시도엔 박수를 쳐줘야 하지 않나 싶다. 시간이 맞지 않아 다소 늦게 본 게 안타깝네. 다음에 재공연되길 간절히 기원한다.

u003C뺑뺑뺑>, 김은성 작, 부새롬 연출, 극단 달나라동백꽃
선돌극장 (2014.6.19~7.6)

(1)예전에 쓴, 연극과 영화를 비교한 짤막한 글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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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연극 마지막엔 노래 “단결한 민중은 결코 패배하지 않는다”가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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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상했단다.

2014년 6월 29일

지난 주말 뜻하지 않게 서현고 총동문회에 갔다. 아무 생각 없이 이태원에서 술 마시고 있는데 갑작스레 연락이 와서, 술 한잔 더 할까 싶어 택시 타고 달려갔다. 아쉽게도 늦은 시간이라 이미 파장 분위기였고, 동기보단 선배님들이 훨씬 많았다. 사람들 사이에 잠시 앉아있다 보니 문득 고등학교 때 생각이 나더라.

한 때 내 자신을 굉장히 내성적이고 부끄러움을 타며 조용한 성격이라 단정지은 적이 있었다. 사람들 사이에서 눈에 잘 띄지 않고, 존재감이 없었으며 친구들과 별로 어울리지 않는 소극적인 사람이랄까? 그래서 고등학교 시절을 굉장히 무미건조하게 보냈고, 딱히 즐거운 기억이 없었던 것 같았다. 인생 한방, 수능 한방이라는 기조 아래 수능시험 준비만 3년 내내 했지.

이렇게 야그를 해왔고 그 시절을 그렇게 기억했더랬다. 허나 같은 초, 중, 고등학교를 나온 내 친구는 이런 말을 듣자마자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넌 내가 본 사람 중에 가장 싸이코였어. 뭐? 중학교 땐 잘 몰랐는데 고등학교 같은 반 되고 나서 확실히 알았지. 넌 정말 이상했어. 뭐?

난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격이었어. 웃기고 있네. 음, 그래 다시 고등학교 시절을 회상해보자. 고 1때 담임선생님과 자주 싸웠다. 그 당시 나의 모토는 ‘모의고사 점수는 충분히 나오니 날 건드리지 마시오.’였을 거다. 선생님은 내 모습을 보시고 답답해 하시면서 자주 면담을 하셨다. 사고를 바꿔야 한다, 그렇게 행동하면 안 된다. 돌이켜보면 사람 하나 만들어보겠다고 그 분께서 그렇게 노력을 하신 거였는데, 결국 실패였다. 담임선생님은 나가 떨어지고, 나는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였다.

외골수에 고집불통, 그리고 내 하고 싶은 대로 다하고, 그러다가 혼자 놀고. 앞서 서술한, 내가 생각한 ‘서형탁’의 모습이랑 정반대였다. 써놓고 보니 정상이 아니었군. 하긴, 대학교 와서도 이런 모습이 유지되었다. 최근에 아는 형님이랑 술 마시면서 야그 하다 보니, 그 분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더라. 너무 특이해서 사회와 동떨어져 계속 그렇게 살까 걱정했다고.

그럼, 지금은 좀 달라졌나? 글쎄. 요즘 가장 호의적인 평은 ‘넌 사회화된 덕후야.’ 이 정도? 물론 ‘넌 독보적으로 이상한 사람이야’ 이런 평도 공존하는 터라 바뀌었는지 모르겠다. 뭐 어떠랴. 이렇게 홀로 망상에 빠져있다 정신을 차려보니 다들 명함을 교환하면서 총동문회 뒤풀이를 마치려 하시더라. 아, 술을 더 마시고 싶었다. 고등학교 시절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 없는 게, 내가 이상해서 그랬나.

술이 부족해. 결국 집으로 돌아가는 선배 택시를 얻어 타고 이태원으로 돌아왔다. 새벽 두 시가 되어가는 시점, 아무데나 열린 펍에 들어가 맥주를 마시며 중얼거렸다.

난 내성적이고 조용한 성격의 평범한 사람인데..

플라토노프

아, 체호프의 작품만 보면 말이 많아지네.. 글 보실 분은 가독성을 위해 아래 링크로 가시길.
http://ift.tt/1x4fYsr“나는 체호프를 게걸스럽게 읽는다. 그의 글을 읽으면 삶의 시작과 종말에 대해 무언가 중요한 생각을 곧 만나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 u003C증언>중에서, D.쇼스타코비치

쇼스타코비치의 말에 공감한다. 체호프의 극은 다양한 인간 군상들을 다정스럽게 그리고 가차없이 그려낸다. 한 사람의 파릇파릇한 시작과 시시하거나 우울한 종말을 볼 수 있다 하면 너무 과장일까? 언제나 기대를 가지고 그의 작품을 보러 다니곤 한다. 뭔가 힌트를 얻기 위해서 말이야.

이번엔 체호프의 “플라토노프”를 보고 왔다. 접하기 어려운 작품이고 해서 상연 소식이 들리자마자 예매를 해뒀다. 그가 19살에 쓴 작품으로 나중에 나올 주요 작품들의 원형이 담겨 있더라. 일단 극의 주인공 플라토노프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자. 스스로 패배자의 삶을 살고 있다고 느끼고 있으며 지나치는 인연에 대해 잠시 희망을 품기도 하지만 허상에 불과하다.

삶에 대한 확신 없이 이리저리 흔들리는 인간. 극의 주인공인데 전혀 주인공 같지 않은 모습이다. 그렇다. 이게 바로 체호프의 특징이다. 주인공 같지 않은 인물들이 무대 위에서 군무를 펼친다. 권태로운 생활을 벗어나기 위해 사랑을 하고, 새로운 시작을 위해 사랑을 한다. 그러나 모든 것은 시시하거나 우울하게 끝난다.

플라토노프 주위의 여자들도 마찬가지다. 그저 껍데기만 남은 채 겨우겨우 버텨내고 있다가 플라토노프를 버팀목 삼아 살아내려 한다. 그런데 플라토노프가 뭘 해줄 수 있겠는가? 자신의 몸도 챙기지 못하고 불확실한 그 자체의 존재한테 뭘 기대할 수 있을까?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다들 술에 빠져 산다.

“마셔도 죽고 안 마셔도 죽는다면, 그래! 마시고 죽자.”

이야기가 너무 어두울 것 같다만, 그렇지 않다. 불쌍한 인간 군상들을 보노라면 슬프다 못해 웃기기까지 한다. 단조의 코미디랄까? 웃다가 저 사람들 중에 내 모습을 발견하고 웃음을 멈춘다. 이 또한 체호프의 특징이기도 하지. 바보 군상들이라 쉽게 단정하고 타자화하지만, 그 안에 내가 있을 수도 있으니까. 그 깨달음의 순간, 플라토노프는 외친다.

“코미디는 끝났다!”

그래, 코미디는 끝났다. 허나 삶은 끝나지 않는다. 플라토노프는 자살을 시도하나 실패한다. 단지 겁이 나서 총을 치워버린다. 얼마나 애달픈가! 불쌍한 플라토노프.

앞서 “플라토노프”에서 나중에 나올 작품의 원형을 볼 수 있다고 했지. 함 살펴보자. 껍데기만 남은 채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을 살아내는 이들. 여기서 “벚꽃동산”이 느껴진다. 한 때 잘나가고 뭔가 훌륭한 걸 해낼 줄 알았으나 스러지는 인생. 이건 “갈매기”의 향기가 나네.(1) 이야기를 종결시키지 못하는 종속변수의 삶, 이건 “바냐아저씨”(2). 뭔가를 얻으면 어디를 가면 누군가를 만나면 행복이 있을 거라 굳게 믿는 이들, 요건 “세자매”(3)..

스무 살도 되기 전에 이미 체호프는 완성되었구나, 싶었다. 후기 작품들보다 훨씬 날 서있으며, 약간 거친 면도 있으나 그걸 상쇄하고 남을 만큼 매력이 있었다. 물론 원래 작품을 편집하여 상연한 거라 다소 이야기의 비약이 있긴 했지만 뭐 어때. 많은 인물의 원형이 담긴 플라토노프를 볼 수 있었으니 기쁠 따름이었다.

u003C플로토노프 – 암탉이 우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병훈 연출,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 극장, (2014.6.28~7.6)

(1)갈매기의 등장인물, 트레플레프에 관해 쓴 글이 있다.

http://ift.tt/1iMqKRt

(2)예전에 본 바냐아저씨 감상평.

http://ift.tt/1iMqKRv

(3)이 또한 예전에 본 세자매 감상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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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생각한다

2014년 6월 26일

어린 시절 이사를 자주 다녔다. 초딩 6년 동안 5개의 학교를 다녔으니 말이야. 상도동의 마당 딸린 집을 제외하면 안정감을 주는 집은 별로 없었다. 낡은 아파트라 매일 수리를 해야 했거나 아님 전세로 사는 터라 이사가 이미 예정되어 있었거나 그랬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부모님께는 집이 재산 형성의 수단이 아니었을까 싶다. 하긴, 그 당시의 부동산 거품을 무시하긴 힘드셨겠지.집이 집 아닌 듯한 느낌은 군 복무 때문에 덜컥 지방으로 내려갔을 때 훨씬 더 심해진 것 같다. 이부자리와 널려진 책, 좌식 의자와 조그만 접이식 탁자, 아직 뜯지 않은 이사 박스들. 4년 내내 자취방의 풍경이었다. 좀 있으면 옮겨 갈 테니까, 주말엔 어디론가 여행을 가고, 그리고 또 어디로 이사 가니까 그랬지만 지금 보니 참 막 살았던 것 같네.

아, “집을 생각한다”을 읽고 옛 일들이 생각나서. 건축가 나카무라 요시후미는 집이 갖추어야 할 풍경 열두 가지를 제시한다. 풍경, 원룸(1), 편안함, 불, 재미, 주방과 식탁, 아이들의 꿈, 감촉, 장식, 가구, 세월, 빛. 내가 살았던 집들을 생각해보면 이런 조건을 충족시켰던 곳은 없었다. 미화된 어린 시절의 기억임이 틀림없겠으나, 마당 딸린 상도동 집이 그나마 가까울 지 모르겠다.

풍경과 아무런 관련 없이 쑥 튀어나온 아파트, 그리고 자신을 거리와 격리시키는 담장과 정원. 개성 없이 똑같이 찍어낸 집의 구조, 무시되기 쉬운 일조권. 책과 어긋나는 걸 찾는 게 더 빠를 정도이다. 물론 책에 나온 게 절대적인 가치라는 건 아니다. 그래도 이런저런 사유거리를 던져 준다. 과연 나는 오래도록 함께 할 수 있는 집에 산 적이 있던가?

크고 화려하진 않으나 있을 것은 다 있고 가구 하나하나의 촉감은 편안하고, 잠시 들어가 쉴 비밀 공간이 있으며 멀뚱히 바라볼 따뜻한 불과 밝으면서도 과하지 않은 빛이 들어오는 집. 아, 이거 참 나열하면서도 생경스럽게 느껴진다. 과연 내가 그런 집에서 살 수 있으려나? 혹자는 그냥 지방 내려가서 살라 할 수도 있겠다. 과연 도시에서 불가능한 삶일까?

집. 사람이 살면서 기본적인 요소로 분명 잠만 자는 곳 이상의 가치를 지녔을 텐데. 이렇게 책 하나로 잊고 지나쳤던 것들을 깨닫게 되는구나.

(1) 집의 구성요소 중 많은 걸 제외하고 남은 핵심적인 요소를 말한다. 즉, 건축가의 가장 기본적인 생각을 살필 수 있는 집의 구조라 한다.

뭉크 전시회

요즘 미술관에서 뭐하나 검색하던 차에 뭉크 전시회가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아, 그럼 이번엔 “질투”시리즈(1)도 오려나? 작년에 삼각지역 환승통로에 뭉크 그림들의 복사본이 붙여져 있었다. 뭉크 탄생 150주년, 노르웨이 수교 기념이랑 맞물려서 그랬나. 여튼 이태원으로 술마시러 가는 도중에 마주쳤던 그림들 중 “질투”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왜 난 이런 거에 끌리는 건지. 예술의 전당에서 전시회가 열린단다. 그 그림이 있을지 확실치는 않다만 함 가봐야겠다.뭉크, 영혼의 시 (2014.7.3~10.12)
예술의 전당 한가람미술관
공식 홈피 : http://ift.tt/1yU5Fcj

(1)톨스토이의 “크로이체르 소나타”가 생각나는 그림이기도 하다.
예전에 써둔 글 : http://ift.tt/1jUirxB

경주 밀면

2014년 6월 25일

포항 날씨가 하도 후덥지근한 터라 갑자기 새콤 시원한 밀면 한 그릇이 땡겼더랬다. 포항은 잘 모르겠고, 일단 경주에 있는 밀면집이 생각나 바로 퇴근하자마자 차를 몰고 경주로 행했다. 그러고 보니 경주에 1년 정도 살았지만 딱 이거다! 이런 맛집은 없었다. 동국대 부근에 술과 식사를 곁들여 하는 곳은 많다만 꼭 가야 할 정도로 특색 있는 곳도 아니다. 그냥 동네 사람들이 자주 찾는 곳이면서도 보통 이상의 맛을 내주는 몇몇 가게들만 찾았을 뿐이다.경주 시내에 있는 “밀면전문”. 아마 이 집도 평범하면서도 맛난 곳 목록에 넣어놔야 할 듯싶다. 관광객들보단 동네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은 곳으로 사계절 내내 비빔, 물밀면만 파는 곳이다. 밀면 하면 일단 부산이 떠오르고 부산의 여러 밀면 집도 가봤으나 여기도 만만치 않다. 관광객들은 찾기 쉬운 경주의 “부산가야밀면”에 자주 들르는 것 같다만 양이나 깔끔함을 따질 때 이곳이 더 나은 것 같다. (경주시 황오동 331-4)

말 나온 김에 내가 자주 가는 곳을 두 곳 더 소개하겠다. 경주 보건소에서 일하던 시절 저녁에 출출하면 항상 찾던 돼지국밥집이 있다. 경주에 국밥집이 참 많지만 안정적인 맛을 내주는 곳은 몇 없다. 원조할매국밥 성건점은 그저 믿고 찾아가는 곳이었다. 요즘 돼지국밥 한 그릇 가격이 500원 올랐지만 고기가 땡긴다면 아예 돈을 더 내고 살코기국밥을 먹는 것도 괜찮다. 경주 중앙시장 근처에 있다. (경주시 성건동 340-22)

경주 하면 생각나는 카페가 “슈만과 클라라”이다. 관광지에서 가기 위치도 애매하고 가격도 만만치 않아서 한두 번 가보고 말았는데 그 완벽한 대체재는 바로 “Coffee Place”이다. 자체 로스팅한 원두를 가지고 드립, 더치 등 다양한 커피를 저렴하게 판다. 카페치고 케이크를 팔지 않는 게 신기하다만, 제철과일로 만든 쉐이크 등 먹을 게 많다. 100g 단위로 원두도 파니 사는 것도 괜찮다. 계절마다 블렌드 원두가 나오는데 이 또한 특색 있으니 보이면 살 것. 경주 시내 각지에 분점이 많은데 일단 대릉원 근처의 지점으로 가시길. (경주시 노동동 43-1)

나 밀면 먹는다 자랑글 올리려는 게 어느새 경주 소개글이 되어버렸구나.. 하하

외근

2014년 6월 24일

한 달에 한 번 외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꼭 월포 해수욕장을 들른다. 거의 매일 걷다시피하는 북부 해수욕장하곤 달리 진짜 동해의 느낌이 살아 있다. 파도도 훨씬 거칠고 바람도 다른 듯하고. 여름인가봐. 여태 한적했던 곳이 슬슬 손님맞이 정비를 하고, 몇 없지만 피서객들도 보인다. 그러나저러나 바다 보니 술이 땡기네. 이번 주엔 금요일 당직이라 불금도 못 보내고. 그저 노래 한 곡 크게 틀어놓고 바다를 바라본다.내게 술과 돈을 워어~

술과 돈 – 김간지x하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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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승전술

스토리텔링 애니멀

2014년 6월 23일

“우리는 스스로를 일인칭 드라마에 나오는 결함이 있을지언정 고귀한 주인공으로 둔갑시키는 이야기를 평생 만들어 낸다. 삶 이야기는 우리가 본질적으로 어떤 사람인가, 즉 어디에서 왔고 어떻게 해서 지금의 자리에 왔으며 이 모든 것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설명하는 ‘개인 신화’이다. 삶 이야기는 곧 우리 자신이자 우리의 정체성이다. 하지만 삶 이야기는 객관적 서술이 아니다. 전략적 망각과 교묘하게 빚어낸 의미로 가득한 정교한 서사이다.… 달리 말하자면, 미래처럼 과거도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둘 다 마음속에서 창조한 환상이다. 미래는 우리가 살고 싶은 세상을 만들어내기 위해 머릿속에서 돌리는 확률 시뮬레이션이며, 과거는 미래와 달리 실제로 일어났지만 우리 마음 속에서는 마음 시뮬레이션으로 표현된다. 기억은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정확하게 기록한 것이 아니다. 사건을 재구성한 것이며 크고 작은 세부 사항 중에서 상당수가 의심스럽다. .. 기억은 완전한 허구는 아니지만 원본이 아니라 각색에 불과하다.” – u003C스토리텔링 애니멀>, 조너선 갓셜

나는 언제나 이야기에 빠져 산다. 평상시엔 소설을 한 권씩은 꼭 들고 다니고, 주말엔 연극 아니면 영화를 한 두 편은 보니까. 그리고 나에 대해 서술하는 글을 페이스북 아니면 블로그에 꼬박 올린다. 삐딱한 생각이겠다만 이야기라는 건 결국 자신이 인지할 수 있는 요소들을 연결 해놓은 집합체 아닐까 싶다. 그게 그럴 듯하면 다른 이들도 빠져드는 거고. 예전에 읽은 책 내용 중에 ‘거리’ 개념이라는 게 생각나네.(1) 이야기가 작가와 독자 사이의 거리를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생애주기가 결정된단 주장인데, 결국 공감을 어케 얻고 그럴듯하게 들리는지에 따라 성패가 갈린다는 거지. 여기서 중요한 건 사실 여부가 아니라 ‘그럴듯함’이다.

왜 그럴듯해야 하지? 아마 사람들이 불확실성과 무의미함을 견디지 못해서일 거다. 개인에게 어떤 사건이 일어났을 때 앞뒤 불충분한 단편들의 공백을 채워서 한 편의 이야기를 완성해야만 하는 게 사람의 본성 아닐까? 어찌 보면 종교가 그 공백을 채워주는 데 있어 큰 역할을 하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종교를 믿는 것일지도.(2) 내가 즐겨 읽었던 탐정 소설들을 돌이켜 봐도, 이야기의 공백을 채워 확신에 찬 어조로 해결을 선언한 캐릭터들이 인기를 얻었지. 셜록 홈즈나 에르큘 포와로 등등 말야.(3)

u003C스토리텔링 애니멀>을 읽으며 개인적 차원에서 이야기가 주는 영향에 대해 대충 끼적여 봤는데, 책은 사회 생활의 접착제로서 집단을 정의하고 결속하는 기능까지 범주를 확장한다.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 참 방대한 내용을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니. 평소 이야기에 대한 고민 혹은 망상이 많은 터라 몰입하면서 읽었다. 내가 여태 듣고 읽었던 이야기들을 돌이켜보게 하는구나.

(1)u003C망친 책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 피에르 바야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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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u003C종교 본능>, 제시 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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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u003C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 피에르 바야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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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모습이 나였다.

2014년 6월 22일

침 놔드릴게요, 할머니. 싫어, 너 일본 순사지! 옆에 있던 간호사가, 신경 쓰지 마세요, 가끔씩 헛것을 보기도 하시니까. 하하, 괜찮습니다. 제 할머니는 저를 빨갱이 공산당으로 오인하고 피하시거든요. 문득 외할머니 생각이 나더라. 이미 치매의 친구가 되어 혼자만의 세상에 갇혀 버리셨지. 6.25시절의 악몽을 끊임없이 되새기시면서 말이야.

어릴 때부터 나는 할머니를 무서워하면서도 경외의 대상으로 여겼다. 모든 일에 대해 당황함이 없이 초연하셨다. 그리고 행동력이라고 해야 하나? 한 가지에 몰두하여 추진하시는 능력은 발군이셨다. 주위에서 쉬시라 그러면 병나신다 만류를 해도 언제나 끝을 봤다. 하긴 6.25 당시 약관의 나이에 남동생만 데리고 청진에서 속초로 배타고 피난을 오시고, 서울에서 거의 맨주먹으로 장사를 시작하셨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에도 혼자 힘으로 네 자녀들을 모두 대학까지 보내셨으니까. 대단하신 분이지.

몇몇 에피소드가 생각난다. 치매의 친구가 되시기 전, 할머니는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셨다. 할머니, 어디세요? 나 지금 모로코야. 거기가 어디죠? 나중에 사진 보여줄게. 며칠 뒤, 나 지금 속초다. 며칠 전 모로코 아니었어요? 그랬지. 엄마 바꿔줄래? 엄마는 할머니가 어디에 계시든 놀라지 않았다. 그저. 미역이나 멸치 좀 사다주세요. 중고딩 때 지리를 배우면서 놀랐다. 인간의 동선인가. 그런데 지금 돌아다니는 나의 모습을 보면..

유년 시절, 할머니 집에 잠시 산 적이 있었다. 명동 근처로 자주 밥을 먹으러 나오곤 했었다. 메뉴는 단 두 가지. 함흥냉면 혹은 돈까스 우동. 그러다 돈까스 우동으로 메뉴가 고정되어버렸다. 할머니, 딴 것 좀 먹으면 안되요? 할머니는 언제나 쿨하게 대답하셨다. 먹기 싫음 먹지마. 어느 정도로 자주 갔냐면, 모임이나 약속이 있으면 할머니는 그 돈까스 우동집으로 장소를 잡았다. 주위 친구들도 질려하실 정도였으니. 이런 상상을 하기도 했다. 설마 할머니가 우동집의 주인이신가. 하하. 그런데 사계에서 맥주 마시는 나의 모습을 보면..

회진을 돌고 진료실로 돌아오니 엄마에게 전화가 왔더라. 좀 쉬어라, 형탁아. 쉴 수가 없네요, 원체 가만히 있질 못하겠으니. 아프면 쉬어야지 중얼거리며 비 맞으며 음악 듣고, 밤 새서 축구를 보고, 지난 주말 3일 동안 10시간 잤나. 아침에 기차 타고 경주 찍고 포항으로 출근했지. 너 또 이태원 그 펍 갔어? 네. 어이구, 지금 어디야? 이제 포항 병원이죠. 너 네 할머니랑 참 많이 닮았어. 그 피가 어디 가겠니.

갑자기 할머니가 보고 싶어졌다. 물론 나를 기억하시진 못하겠지만. 상태 나쁘실 땐 나를 총든 공산군으로 오해하시겠지만. 그냥 이렇게 야그하고 싶다. 세상에, 할머니, 할머니 옛 모습이 바로 지금 제 모습이에요. 하하.

씨 없는 수박 김대중

2014년 6월 18일

왜 좋아하는지 모르겠지만, 무의식적으로 트는 노래들이 있다. 정신을 차리고 보면 역시 그 사람 노래다. 길을 걷다 나도 모르게 흥얼거리는 노래들이 있다. 음, 역시 그 사람 노래다. 술 먹고 있다가 옆에서 누군가 흥얼거린다. 다 나 때문에 너무 자주 들은 노래라 옆 사람도 외웠나 보다. 그렇다, 역시 그 사람 노래다.씨 없는 수박 김대중. 이 분의 공연이 있으면 단독 공연이든 게스트로 출연하시든 시간이 허락하는 한 간다. 지역이 어디든 말이다. 서울에서 단독 공연이 있다 하면 표 두 장을 예매하여 사람들을 끌고 간다. 항상 맨 앞자리에 앉지. 공연이 끝나고 같이 간 사람들의 반응은 다 이렇다. 내가 못 볼 걸 봤어. 내가 너 덕분에 평생 보지 못할 신기한 걸 봤구나. 이해는 간다. 블루스라는 걸 접해보지 못했거나, 약간 알고 있더라도 이건 씨 없는 수박 김대중만의 블루스이기 때문이다.나는 이 분의 노래를 뽕끼 블루스라 칭한다. 블루지하면서도 위태위태하게 뽕짝으로 넘어갈 듯한 노래들이 많아서 말이다. 아는 형이 술 먹고 자기 야그를 기타 들고 부르는 노래랄까? 웃기다가 갑자기 슬퍼지고 도저히 넘길 수 없는 일들을 허허거리며 아무렇지도 않게 퉁치는 상처투성이 가사들. 아마도 나는 슬픔과 기쁨 사이의 회색지대에서 절묘하게 줄타기하는 것에 막 끝렸나 보다.이렇게 늘어 놓고 보니 노래가 참 많을 것 같지만, 아직 1집 밖에 내놓지 않은 비교적 신인(?) 가수이시다. 보통 운전할 때, 걸을 때, 술 마실 때 홀로 앨범 전체를 되새김질하는데 그 중 가장 좋아하는 노래만 추려볼까 한다. 이러나 저러나 역시 공연장 직접 가서 듣는 게 최고인 것 같다.

유정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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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콜릿을 먹어도 달콤하지 않아요 / 소주를 들이부어도 취하지가 않네요 / 아마 나는 사랑에 빠진 게 분명합니다 / 아마 나는 사랑에 빠진 게 분명합니다.

수상한 이불
예전에 적어둔 글 : http://ift.tt/1l60e4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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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이불을 덮어본 적 있나요 / 낯설은 베개에 얼굴을 뭍었나요 / 불 꺼진 새벽 쓸쓸한 모텔방에서

어째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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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서로 이제 정들었는데 / 나는 널 만난지 석달이 됐고 / 너는 임신한지 4개월 짼데 / 그땐 어째야 하나 어째야 하나 / 어째야 하나 어째야 하나

햇볕정책 – 이 노래로 일베 아니냐는 논란이 있었으나 김대중은 이 분의 본명이다.. 첫 단독 쇼케이스 때 “여기 일베 유저 분 손 들어보세요, 진짜 괜찮아요” 이러셨다. 나오면 쥐어 팰려고 그러셨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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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오월 햇볕처럼 / 그대라면 모든지 다 퍼주고 싶었지 / 하지만 내가 퍼준 것들을 모두 / 그대는 총알로 돌려주었네

안데르센

2014년 6월 16일

이야기나 책을 오랜만에 다시 읽고 나서 놀라는 경우가 종종 있다. 원래 알고 있던 이미지하곤 너무 동떨어져서 말이다. 그 땐 그런 이야기인 줄 알고 넘어갔는데, 이런 내용일 줄이야. 물론 다양한 경험이 쌓이고 달라진 시야만큼 보이는 것도 달라진 것이겠지. 그럼, 어렸을 때 읽고 들었던 동화를 지금 보면 어떤 느낌이 들까?아, 지난 주말에 연극 “안데르센”을 보고 이런저런 생각이 들어서. 극은 소년 안데르센이 자신의 이야기를 낭독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동화들이다. 허나 어린 시절 들었던, 디즈니 식의 해피 엔딩 혹은 좋은 게 좋은 거지 라는 투의 얼버무림과는 영 딴판이다. 그도 그럴 것이 동화는 곧 안데르손의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미운오리새끼’는 외로운 유년기를 보낸 안데르센의 모습이 녹아있다. 자신이 백조였기를 바라는 간절함이 진뜩 묻어난다. ‘인어공주’는 이뤄질 수 없는 사랑을 해온 작가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언제나 상처받고 물러나야 했던 경험이 반영되어 있지. ‘성냥팔이소녀’는 평생 곤궁함으로 고생했던 안데르센의 어머니 이야기이기도 하다. ‘길동무’에는 일찍 세상을 떠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 비친다.

나열해놓고 보니 참 우울할 법도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안데르센은 이야기를 통해 불멸의 영혼을 얻고자 했다. 지금 현실은 답답하고 내 자신도 결핍투성이지만 이야기가 있다면 사람들과 함께 다른 세상에 대한 희망을 가져볼 수 있지 않을까? 안데르센의 동화가 계속 읽혀지는 동안 사람들은 이야기 속 세상에 자신을 비출 테니 그의 소망은 이미 실현된 게 아닐까?

극을 보면서 동화라는 게 아이들만의 것이 아니더라. 오히려 좀더 넓은 범위의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문학 양식인지도 모르겠다. 연극은 실제 탁월한 이야기꾼이기도 했던 안데르센의 모습을 빌려 여러 형식으로 이야기를 생생하게 구현한다. 덕분에 아이들도 재미있게 볼 수 있을 듯 하고,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즐길 수 있는 요소가 충분히 많더라. 내가 그리도 연극을 찾아보는 이유 중 하나가 세상에 대한 다른 시각을 찾기 위해서인데, 연극 “안데르센”을 보면서 동화에 대한 전혀 새로운 해석을 건진 것 같아 기뻤다.

u003C안데르센>, 이윤택 작, 이윤주 연출, 연의단거리패 제작
(2014.6.14~7.6) 국립극단 소극장 판

경주를 걷는다

경주 올 때마다 느끼는 거다만 외계인이 불시착한, 시간이 멈춘 곳 같다. 큰 무덤가 옆엔 작달막한 상점들이 있고, 이따금 나오는 공터엔 여지 없이 문화재 발굴 표지판이 있다. 유래를 알기 힘든 경주빵, 찰보리빵, 주령구빵을 파는 가게들이 대릉원 곁에 주욱 붙어있고, 점점 옆으로 기운다는 첨성대 주변엔 화려한 정원과 콘크리트 건축물이 세워지고 있다. 다시 시내로 진입하면 단란주점에서 강렬한 비트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다방 아가씨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바삐 커피를 나르고 있다. 잠시 숨을 돌리기 위해 고개를 기웃거리면 큰 고분들이 뭔 일 있었냐는 듯이 앞을 가로막는다. 다시 걷는다. 어떤 골목으로 들어가니 낮은 담장과 다 무너져가는 한옥들이 즐비하다. 길이 점점 더 좁아진다. 길을 잃은 걸까? 괜찮다. 늘 그러했으니까. 아, 익숙한 간판이다. 경주빵, 찰보리빵, 주령구빵. 그리고 점점 옆으로 기운다는 첨성대가 나타난다.

바버렛츠 단독 콘서트

2014년 6월 15일

바버렛츠 첫 단독콘서트 – [바버렛츠 소극장#1] 2014.7.6예매 링크
옥션 : http://bit.ly/1i6G5Mh
인터파크 : http://bit.ly/1lLXF7A바버렛츠는 데뷔 초부터 봐온 그룹이라 각별하다. 작년 7월쯤 김태춘의 단독 콘서트 게스트로 나와 아름다운 화음을 들은 게 처음이었지. 그 이후 기회가 되면 공연을 찾아가곤 했다. 이태원의 맥파이 베이스먼트에서의 공연, 씨클라우드에서의 크리스마스 캐롤 공연, 클럽 오뙤르에서의 공연 등등. 이번 봄을 넘기고 나서 앨범을 내고 단독 콘서트를 연다니 그저 기쁠 뿐이다. 여러 매체에서 ‘인디 걸그룹’(?)으로 홍보되고 있는데 글쎄다, 이 정도의 노래를 들려주는 걸그룹이 있는지 모르겠다. 이번 콘서트에선, 저번처럼 강승원 님이 깜짝 게스트로 나오지 않을까 싶다. 아니면 말고. 히히

바버렛츠의 장점을 그대로 보여주는 트랙, “Mr.sand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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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좋아요 1000개 돌파 기념으로 나온 커버 트랙, “Be My Ba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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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내가 좋아하는 트랙. 안신애 님 짱짱! “Mrs. lone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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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너스로, 바버렛츠 공연에서 처음 들은 강승원님의 노래, “나는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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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 소개하실 때 “마흔 즈음에”라 해서 웃었지. 사실 강승원님은 “서른 즈음에”의 작곡가이시다.

로베르토 볼라뇨 컬렉션에 부치는 글

로베르토 볼라뇨 컬렉션 출간에 부치는 글.내가 볼라뇨의 작품을 처음 접한 계기는 단순했다. “전화” 표지가 너무 멋졌다. 난 언제나 책을 표지 보고 고르지 말라는 금언의 정반대를 추구하는 터라. 전화기 위에 덩그러니 여자 한 명이 서있고 계단을 내려가고 있는 표지였다. 오, 이거 사서 읽어 보고 싶다. 알베르토 아후벨이 디자인한 표지로 첫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우중충한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단편집에 곧 빠져들었다. 볼라뇨는 투사였다. 비참한 최후를 알면서도 달려드는 투사. 아래 문단은 그의 문학관을 드러내는 인터뷰를 번역해본 것이다.“질 줄 알면서도 용기를 가지고 전투에 나가는 것, 그게 바로 문학입니다. .. 문학은 절대, 절대 우연이 아닙니다. 말하자면 운명과 같은 것이죠. 주위 환경의 산물인 어두운 운명은 당신의 선택이 되고 곧 당신의 길이 됩니다. .. 문학의 여정은 귀환 없는 율리시스(오디세우스)의 여정과 비슷합니다. .. 그 끝은 언제나 참혹한 죽음입니다. 지금, 과거, 미래 모두 다. 그 끝은 언제나 참혹한 죽음입니다.” – 로베르토 볼라뇨

아래 링크한 감상평에도 쓴 말이다만, 볼라뇨는 ‘언제나 눈을 뜨고 있는 자’였다. 덮고 싶은 일, 어두웠던 과거에도 언제 눈을 뜨고 직시했다. 군부독재를 완전히 청산하지 못한 칠레의 역사적 배경을 알고 있으면 이해가 쉬울지도 모르겠다. 여튼 기억상실증이 전염병처럼 퍼져있는 우리나라의 현실과 맞물려 볼라뇨의 글들은 더욱 파괴적으로 다가온다.

볼라뇨는 체호프, 카프카, 미셸 우엘벡, 밀란 쿤데라와 더불어 내 사고를 더 어둡고 까칠하게 만든 작가였다. 글로써 악을 파괴하고 더불어 악의 모습과 가까워지는 다크 히어로라고 해야 하나. 장편 소설 “2666”에서처럼 볼라뇨는 거대한 악을 이해하기 위한 필사적이고 거대한 노력으로 이루어진, 글로 쓰여진 비석을 세우기도 하였다. 조금이라도 정권에 영합한 작가들을 작품 안에서 기꺼이 처단했으며, 자신을 소진시킬 정도로 처절했다.

‘당신에게 가장 큰 회한은?.. 너무 많습니다. 나는 항상 회한과 함께 잠자리에 들지요. 내 회한은 글을 쓸 줄 알아서 나랑 같이 글도 씁니다.’ – 볼라뇨와의 인터뷰 중에서(볼라뇨, 로베르토 볼라뇨)

한 권, 한 권씩 모아서 다 읽은 볼라뇨의 작품들이 이번에 멋진 책장과 함께 컬렉션으로 출간되었다 해서 기쁜 마음으로 글을 끼적여봤다. 늘 하는 말이긴 하지만 그의 작품을 처음 접하는 사람에겐 나는 “칠레의 밤”을 추천한다. 마지막 문장까지 숨막히게 달려가는, 짜임새가 아주 단단한 작품이다.

아래 링크는 예전에 써둔 감상평들로 지금 읽어보니 기억이 새롭다. 볼라뇨의 작품을 한바퀴 돌아봐야겠어.

“참을 수 없는 가우초” 감상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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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스러운 탐정들” 감상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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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의 밤”, 루이스 세풀베다의 “우리였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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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객의 주말

2014년 6월 14일

주말에 별 악속이 없으면 늘 그러하듯 술에 취해있다. 그 상태로 연극 보고 책 읽고 음악 듣고 걷고 또 마신다. 그렇게 해서 만난 사람들도 참 많고, 사람들과 재미지게 한 잔 더한다. 이렇게 음주로 가득 찬 주말들이 켜켜이 쌓이다 보니 사람들이 오해를 한다. 맨날 취해 있다고, 그럼 진료는 어케 보냐고. 뭐, 충분히 할 만한 오해지. 나는 주말에만 서울에 있고 별 약속 없는 주말이면 취해 있으니까. 그리고 웬만한 주말엔 약속이 없으니까. 허나 주말은 주말일 뿐, 평일은 완전히 딴판이다. 포항에선 아예 술을 입에 대지 않는다. 회식 때도 술을 피한다. 저 소주 잘 못 마십니다. 먼 곳에서 친구가 찾아오면 모를까, 목요일에서 금요일로 넘어가는 그 힘든 시기(내가 맥주 고개라 이름 붙인)에도 맥주 한 캔 가지고 고민을 하다가, 에라 마시지 말자. 혼자 살 때, 홀로 자취방에서의 음주가 얼마나 위험한지도 알고 이미 그 끝까지 가본 적도 있어서. 이부자리, 책상만 있는 자취방. 책이 쌓여 있는 진료실. 점심 먹고 병원 뒷산 산책. 저녁 먹고 바닷가 산책. 이리저리 배회하다 밤늦게 들어와 공부하고 독서하다가 졸리면 자는, 금욕의 평일들이 지나면 다시 금요일이 찾아온다. 오늘은 왠지 취하고 싶어요(1), 노래를 흥얼거리며 서울행 KTX에 탄다. 주중은 라마단, 주말은 카니발. 이렇게 되뇌며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이태원으로 달려간다. 별 약속 없는 주말이니 늘 그러하듯 술 한 잔으로 시작해야지.

(1)돈보다 먼저 사람이 될게요, 씨없는 수박 김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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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장술

“이 시대에 음주는 우리의 보건학이 되어 있었다.” –, 비톨트 곰브로비치

해장술의 묘미를 알아 버렸다. 절망과 불안으로 가득찬 마음을 한데 모아 짜낸 즙에서 온종일 헤엄치는 듯한 숙취(1). 커피를 마셔도, 물을 마셔도 구제할 길이 없을 때 마지막 남은 처방은 한 잔의 맥주. 몇 모금 삼키고 나면 위장관의 씁쓰레함과 꽉막힌 머리가 다시금 상쾌해진다. 물론 안다. 이게 진짜 해장이 아니라는 걸. 그저 진통제의 역할로 지금의 아픔을 뒤로 미루는 짓이라는 것도 안다. 딴엔 맥주 한 잔으로 얄팍히 정상의 대지에 연착륙하려는 시도가 미래의 수명을 깎아막는 일이라는 것도 안다. 근데 뭐 어쩌겠는가. 벌써 한 잔 마시고 기분이 좋아졌는데 말야. 어디 가지. 음악이나 들으러 갈까. 혹자는 이렇게 묻겠지. 그럼 애초에 안 마시면 될 거 아니냐고, 왜 그렇게 마시냐고. 글쎄. 잊기 위해서. 뭘 잊으려고? 부끄러움을 잊으려고. 뭐가 그렇게 부끄러운데? 술 마신다는 게..(2)

(1) 베네딕트 예로페예프의 “모스크바발 페투슈키행 열차”에서 표현을 빌려 썼다. 알콜로 범벅된, 술주정뱅의 고백으로 가득찬 작품이다.
(2)셍텍쥐페리, “어린왕자”에서 빌려온 구절이다.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2014년 6월 12일

언젠가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 내 식대로 소화하고픈 책들이 있다.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도 그 중 하나로, 사전 작업으로 경제학적 철학적 등 여러 방향으로 읽어낸 입문서들을 다 읽어 보고 있다. 최근에 나온 와타나베 이타루의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도 내 나름의 ‘마르크스 입문 카테고리’에 넣어둘 만한 책이다. 저자가 빵을 굽고 유통하는 과정에 빗대어 자본론의 내용을 풀어내고 있다. 여기에 자신의 회사 체험기, 제빵 기술 습득기 등 몸에 와닿을 만한 예를 들어가며 설명한다. 기차를 타자마자 첫장을 펼쳤는데 벌써 반 장도 읽었네. 물론 여기서 멈추면 그저 어떤 이의 독서기를 읽는 거에 불과하겠다만, 그래도 참 읽기 좋게 잘 쓰여진 책이다.이 책을 읽으며 그 전에 접했던 마르크스 입문서들이 생각난다. 그 중 추천해주고픈 책들이 몇몇 있다.

1. 저자가 직접 밝혔듯이 알랭 드 보통이 마르크르에 관한 책을 쓴 듯한 류동민의 “마르크스는 내게 아프냐고 물었다.”

2. 최근 마르크스 연구 결과를 익살스러운 삽화와 곁들여 보기 좋게 써낸 다니엘 벤사이드의 “마르크스 사용설명서”

3. 바탕에 깔리는 헤겔 철학과 마르크스와 동시대에 나왔던 여러 사회주의 사상 등을 중립적인 입장에서 명쾌하게 풀어낸 마르크스 평전, 이사야 벌린의 “마르크스 – 그의 생애와 시대”

전주 가볼만한 곳

2014년 6월 11일

부모님이 전주 여행 가신다 하셔서 예전에 써둔 음식점&카페 목록을 보내드렸다. 혹시 괜히 한옥마을 주위 비빔밥 드실까봐 염려가 되어서. 이 정도면 전주 사람들 자주 가는 맛집 아닐까 싶다.

전주를 드나든지도 벌써 5년 정도 되었다. 심심해서, 국제영화제 때문에, 지나가는 길에 등등 여러 이유로 들렀지. 이제는 시외버스 터미널에 내리자마자 몸이 알아서 움직이는 수준이 되었다. 집처럼 포근해졌지. 뭐 그런 곳이 한 두 곳은 아니다만. 여행하면서 밥을 챙겨먹지 않는 스타일이나 원체 먹고 마실 게 많은 곳이라 알음알음 기록해둔 곳들이 꽤 된다. 나름 전주에 대해 아는 게 많아져서 전주의 나이 지긋한 택시기사가 나에게 전주에서 태어났냐고 물어볼 정도. 아, 전주에서 막걸리 마시며 돌아다니고 싶구나.

-먹을 만한 곳

홍콩반점 – 물짜장

일품향 – 군만두

치맥이 땡긴다면
솜리치킨 – 치맥
전주시에 다수의 분점,
진북점은 터미널과 한옥마을 중간에 있음
전주시 덕진구 진북동 1028-2

상덕 curry – 채식 카레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3가 67-18)

백일홍찐빵만두 – 찐빵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경원동3가 199)
전주시청 근처

베테랑분식 – 칼국수, 만두(나머지는 피할 것)
전주시 완산구 교동 84-10
성심여고, 전동성당 근처

피순대골목 – 남부시장
“조점례남문피순대”가 가장 유명
풍남문 근처

시즌 테이블(간판은 jk 시즌 테이블)
전주인데 파스타, 피자 라고 생각하실 분도 있겠다만 꽤나 맛난 곳.
일단 가성비 최고!
전주시청 근처
완산구 경원동3가 34-1

-가볼 만한 카페

빈센트반고흐 (간판은 그냥 빈센트로 되어 있었음) – 사이폰 커피, 풍성한 파르페
전주시 완산구 고사동 66-5

나무라디오 – 드립커피. 스페셜티커피도 팜
전주시 완산구 고사동 392-4

불효자는 놉니다.

요즘 엄마한테서 자주, 아니 거의 매일 전화가 온다. 말씀 듣자 하니 이제 사촌들이 장가가는 걸 보고 싱숭생숭하신가 보다. 옛날 외할머니 집에서 자기 자식처럼 돌봐줬던 이들이 벌써 결혼한다니 어째 저째 하시다가, 결국 화제의 초점은 내가 된다. 내 새끼라서 하는 말은 아니고 넌 키는 좀 작아도 그럭저럭 괜찮은데. 그러게요, 엄마. 요즘 만나는 사람은 있고? 없죠. 그럼 어딜 그렇게 나다녀? 잘 알다시피, 연극 보고 음악 듣고 여행 다니잖아요. 요즘 왜 그리 술에 취한 채로 집에 들어오니, 무슨 일 있어? 별일 없으니까 술 먹고 노는 거죠. 아이고, 넌 처복이 있다는데. 그건 모르는 일이에요, 엄마. 그래도 희망을 주는 말 아니니? 저한텐 여태 희망은 쓸모 없는 거였어요. 금요일 저녁에 집엔 들어와? 글쎄요, 늦게 아니면 다음 날 아침에 들어갈 것 같네요. 들어오긴 들어오는구나. 모르죠, 부산 갈지 고민 중이에요. 그래, 볼 수 있으면 보자. 네.

매일 이런 통화를 하니 나마저도 싱숭생숭해진다. 부모님에 대한 죄송스러움? 그건 아니다. 남들은 다른 어떤 삶의 방식을 제시하는데 거기에 진입할 방법을 전혀 모르는 답답함이랄까? 다른 사람들은 저렇게 사는데 왜 난 이런 거지? 부러워! 이러기 보다는, 무덤덤하게 남들은 저렇게도 사는구나, 이런다. 음. 그냥 음악이나 들어야지.

불효자는 놉니다 – 씨 없는 수박 김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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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본업은?

2014년 6월 10일

낮에 진료를 보고 나서 무심코 폰을 켰는데 부재중 전화가 8통이나 와있는 거 아닌가! 뭔 일인가 했더니 어제 울산에서 컴을 봐줬던 동기 형이었다. 전화 해보니 어제 윈도우를 다시 설치할 때 전자 차트 백업하는 걸 깜빡하셨단다. 그러니까 개원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쌓인 환자 정보 파일 전체가 날라갔단 소리다. 백업도 하지 않은데다 파티션을 나누고 그 위에 포맷을 한 다음 윈도우를 재설치 했다는 것, 바로 최악의 상황이었다.나도 혼비백산해서 원격 조정으로 형의 컴퓨터에 들어갔다. 일단 다른 드라이브를 물리고 거기에다 복구 솔루션 여러 개를 설치했다. 이젠 시간 싸움이지. 다른 데이터가 환자 정보 파일를 덮어 씌웠으면 어쩔 수 없고, 하지만 그러질 않기를 바라며 데이터들을 유심히 찾아봤다. 진료 보고 데이터 보고, 진료 보고 데이터 보고, 마침 시험 기간이라 공부하다 데이터 보고, 시험 치고 데이터 보고. 형은 더 빨리 안되냐 물으셨지만 난 차분히 대답했다. 기다리세요.

이게 바로 방망이 깎는 노인의 심정인가? 그렇게 하드디스크의 데이터를 검색했다. 소설 속의 노인조차도 하드디스크의 섹터와 클러스터를 볼 줄은 몰랐으리라. 여러 프로그램을 돌려보니 MFT(마스터 파일 테이블)는 이미 깨지고 지워진 데이터도 좀 있었지만 중요 파일들은 살아 있었다. 매달린 지 8시간 만에 차트 파일이 담긴 폴더를 다른 곳에 복구시켰다. 물론 내일 차트 프로그램을 돌릴 때 깨졌는지 여부가 나오겠다만,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웬만한 건 복구시켰어요. 형은 종이차트를 다시 작성해야 하나, 업체에다 복구를 맞겨야 하나 고민 중이셨단다.

내일 확인해보시면 아시겠지만 웬만한 파일은 살려놨어요. 업체에서 출장 와도 이상은 하기 힘들 거에요. 고맙다. 뭘요. 전화를 끊고 데이터 복구 업체들 홈피에 들어가 요금을 살펴봤다. 아, 내가 한의사를 왜 하고 있는 거지?.. 월요일 새벽까지 서울에서 밤새서 술 마시다 포항으로 출근하질 않나, 화요일엔 울산까지 가서 컴을 수리하질 않나, 오늘은 8시간 동안 하드디스크의 깨진 데이터들을 쳐다보고 있었구나. 환자도 보고 시험도 보고 공부도 하면서 말이야. 그런데 아직 수요일. 3일도 채 되지 않았는데 너무나 많은 일이 일어났다. 주말은 언제 오지?

술 땡기네.

#기승전술
#나의직업은무엇일까

덧. 이 글 보시는 원장님들은 데이터백업 철저히 하시길. 지우는 데 몇 초 걸릴까 말까 이지만 복구하는 데는 몇 천 배, 몇 만 배 시간이 걸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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