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가족

2014년 5월 29일

또하나의 가족 – 이문재

누구에게나 가족이 있다
어느 집에나 가족이 있다
또하나의 가족이 있다

텔레비전 냉장고 세탁기
청소기 전자레인지 카메라 오디오
컴퓨터 노트북 태블릿PC
그리고 스마트폰 스마트폰
또하나의 가족이 가족보다 더 많다

가족이 다른 가족보다
또하나의 가족을 좋아할 때가 더 많다
가족들이 다른 가족보다
또하나의 가족과 지낼 때가 더 많다

가족 중 누가 탈이 났을 때보다
또하나의 가족 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더 빨리 알아차린다
즉시 애프터서비스를 부르거나
서비스센터로 달려간다

어디에나 또 누구에게나
또하나의 가족이 있다
옥탑방 반지하 고시원 오피스텔
독거노인 일인가구 병실 요양원
노숙자에게도 또하나의 가족이 있다
유럽 아메리카 아프리카 유라시아
동남아 서남아 중동에도 다 있다

또하나의 가족이
진짜 가족이 되었다
우리는또하나의 가족이 없으면
단 하루도 살지 못하는
가족이 되었다

가족이 자꾸 늘어나서 그런지
우리들은 또하나의 가족을 양산하는
또다른 가족은 생각조차 하지 않게 되었다

주酒기도문

이번 주도 마무리하고 사계의 맥주 앞에 앉는다. 맥주 앞에 앉아야 이번 주가 끝났음을 실감한다. 늘 하던대로 맥주잔을 앞에 두고 폰에다 떠오르는 단상을 끼적인다. 내용은 단순하면서도 다양하다. 돌아올 다음 주에 대한 고민, 집에 언제 들어갈까, 들어갈 순 있을까, 누굴 만날까, 다음 맥주는 뭘 마실까. 적당히 어두운 조명 아래 맥주 한 잔 떠놓고 두 손 모아 스마트폰을 경건히 잡는다. 뭘 적을까. 글쎄 뭐든. 무신론자인 나는 어느새 알콜 물신론자가 되어 주酒기도문을 한 편 끼적인다. 삶에 감사합니다. 묵상의 시간은 끝나고 잔을 잡는다, 마신다. 사계의 맥주 앞에서 중얼거린다. 이번 주도 끝났구나.

자유롭지만 고독하게

2014년 5월 28일

자유롭지만 고독하게
자유롭지만 조금 고독하게어릿광대처럼 자유롭지만
망명 정치범처럼 고독하게토요일 밤처럼 자유롭지만
휴가 마지막 날처럼 고독하게

여럿이 있을 때 조금 고독하고
혼자 있을 때 정말 자유롭게

혼자 자유로워도 죄스럽지 않고
여럿 속에서 고독해도 조금 자유롭게

자유롭지만 조금 고독하게
그리하여 자유에 지지 않게
고독하지만 조금 자유롭게
그리하여 고독에 지지 않게

나에 대하여
너에 대하여
자유롭지만 고독하게
그리하여 우리들에게
자유롭지만 조금 고독하게.

-u003C자유롭지만 고독하게>, 이문재

밥 마일리지

2014년 5월 20일

요즘따라 한의원 컴퓨터 조립 의뢰가 계속 들어온다. 나야 쉬운 일이니 견적을 금방 메일로 날려주고 언제 만나서 설치를 해줄지 약속을 잡는다. 무조건 본인이 직접 원가로 결제하게 하고, 수고비는 주로 알코올 현물로 받는다. 소주를 제외한 모든 술. 아니면 맛난 밥도 좋다. 이렇게 얻어 마신 술, 밥도 꽤 많거니와 아직 써먹지 못한 밥 ‘마일리지’도 쌓여있다. 그리고 한의원에 필요한 오디오 장비, 네트워크, NAS도 상담해준다. 최근엔 광명, 저번엔 울산, 저저번엔 성남에 컴퓨터를 설치해줬지. 이쯤 되니 정체성에 혼란이 온다. 명함을 만들 때 두 가지로 만들어야 하나. 아님 양면으로? 앞에는 한의사 서형탁. 뒷면엔 컴 네트워크 등 설비 일체 수리 및 설치, 전국 출장 가능합니다.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하기도. 취미로 한의사 하는 거 아냐? 그럴지도 모르겠다. 허나 아는 사람들 도울 수 있을 때 도우면 참 좋지 않은가? 만나서 근황 듣고 술도 얻어 먹고.

이렇게 소소하게 밥 마일리지 쌓아 놓고 나중에 이래야지. 밥 사줘. 응? 잘 생각해봐, 전에 내가 널 도와줬을 거야. 아니면. 밥 사줘. 응? 언젠가 나한테서 도움 받을 일이 있을 거니까, 미리 땡겨 쓸게.

딸은 딸이다

2014년 5월 18일

“희생이라니! 얼어 죽을 희생! 희생의 의미가 뭔지 잠깐이라도 생각해봐. 그건 따뜻하고 관대하고 기꺼이 자신을 불사르겠다는 기분을 느끼는 영웅적인 한 순간이 아니야. 가슴을 칼 앞에 내미는 희생은 쉬워. 왜냐하면 그런 건 거기서, 자신의 본 모습보다 훌륭해지는 그 순간에 끝나니까. 하지만 대부분의 희생은 나중까지 – 온종일 그리고 매일매일 – 끌어안고 살아야 하는 거고, 그렇게 때문에 쉽지가 않아. 희생을 하려면 품 아주 넉넉해야 하지. 앤은 충분히 넉넉하지가 않았어..”
-u003C딸은 딸이다>, 애거서 크리스티유년 시절에 애거서 크리스티의 전집을 책장이 닳도록 읽었던 터라, 요즘 그녀가 다른 필명으로 발표한 작품들이 번역되어 나오는 게 참 각별하다. 사람이 죽지 않고 탐정이 나오지 않을 뿐, 그 예리한 필치는 어디 가지 않았어.

덧. 예전에 나온 “봄에 나는 없었다” 감상평 http://ift.tt/1jhf07d

주말만 바라본다.

제대 그리고 취직한 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6시 퇴근한 다음 바닷가 산책과 독서, 사이버 대학 강의. 공보의 생활 연장한 거 아니냐고 반 농담으로 던지는 이들도 있다만, 글쎄다. 내가 만일 서울에서 취직했다면 뭔가 달랐을까? 아마 다른 게 있겠지. 매일 저녁 이태원 사계로 가서 맥주를 마시는, 본격 알콜 의존증의 생활을 이어가지 않았을까? 부모님이야 집에서 밥 먹고 출퇴근 하는 걸 간절히 바라시긴 하지만 혼자 시간을 채워나가는 타향 생활에 익숙해지고, 아주 좋아하게 된 터라. 그냥 외로움 자체를 애증의 룸메이트라 생각하고 살면 편하더라. 그래도 목요일 쯤 되면 힘들고 뭔가 안절부절해진다. 토요일엔 뭐하고 일요일엔 뭘 볼꺼? 계획을 짜면서 말이다. 음. 이러나 저러나 주말만 바라보고 사는 삶은 여전한 것 같다.

서편제

2014년 5월 13일

2014.5.11
뮤지컬 u003C서편제>
(캐스팅: 이자람, 마이클리, 서범석)
@유니버설 아트센터(사진은 커튼콜 때 촬영한 것. 마지막 공연이라 모든 캐스팅이 나와 인사를 하고 있다.)

뮤지컬 서편제의 마지막 장면에 심청가의 한 대목이 나온다. 심봉사가 눈을 뜬다는, 그 유명한 에피소드. 문득 판소리 심청가를 처음 접했을 때가 생각나더라. 고등학교 시험기간. 공부 안 되는 밤중, 라디오에선 바로 그 대목이 흘러 나왔다. 소리를 하시던 분의 성함은 기억이 나진 않는다만 그 땐 정말이지 대단했다. 죽은 줄 알았던 심청이 왕후로 살아 돌아온 걸 안 심봉사가 눈을 번쩍 뜨고. 라이브 녹음이라 그런지 듣던 이들의 탄식과 비명이 오롯이 녹음에 담겨 있었다.

분명 다들 여러 번 읽고 들었던 내용일 텐데 왜 청중들이 감탄하고 나도 몰입했을까? 심청이 팔려가 물에 빠져 죽었다가 어찌저찌 살고, 심봉사와 심청이 재회하고, 거기에다 시각 장애인이 눈까지 뜬다니! 아이고, 여기저기 불가능으로 점철된 내용 아닌가?(1) 그렇다. 이야기는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DMZ의 지뢰밭 마냥 고난이 곳곳에 박혀있는 현실에서 어떻게라도 희망을 찾아야 한다. 희망이라는 환상을 생생하게 전달해줄 이야기꾼과 그 환상을 고대하는 청중들. 이 준비 조건들이 아주 잘 맞아 떨어진다면 절망의 공간을 비집고 들어가 기적적으로 희망의 순간이 재현되고, 그 시공간을 공유하는 이들은 이루 말할 수 없는 환희를 선사 받는다.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이야기의 힘. 아마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나도 그렇고 그 녹음에 기록되었던 청중들도 그 흔치 않은 환희를 맛보았던 거 아니었을까? 다시 뮤지컬 “서편제”로 돌아와보자. 심청가의 모티브인 가슴 아픈 이별과 불가능해 보이는 재회가 그대로 녹아 있는 셈이다. 다만 뮤지컬에서의 재회는 눈물 넘치는 포옹이 아니다. 등장 인물(동호, 송화)들이 심청가의 심봉사 눈 뜨는 대목을 부르며 심봉사와 심청 간의 재회의 느낌을 공유한다. ‘소리’로 헤어졌던 이들이 다시 소리로 뜨겁게 결합하는 장면이라니. 여기저기서 닳고 닳았을 이야기가 다시금 생명력을 얻어 꿈틀거리는 것을 목격했던, 절묘한 순간이었다.

(1)김봉영 연출 소리의 u003C눈먼 이야기꾼의 심학규 이야기>는 이 절망을 극대화시켰다. 심청과 심봉사의 재회 장면은 심봉사가 심청의 묘비 앞에서 울부짖는 절박한 환상으로 처리된다.

http://bit.ly/1slnFpX

靑春 김경호 데뷔 20주년 콘서트

2014년 5월 12일

2014.5.10
靑春 김경호 데뷔 20주년 콘서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난 가수 김경호의 노래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가 한창 인기를 얻고 있었을 때도 특유의 무관심 기질 덕분인가 아님 장르 편중이 심해서 그런 건지 모르겠다만 그의 음악을 귀동냥한 적도 드물었다. 지난 주말 김경호의 콘서트에 가서 들은 곡들도 처음 접한 것들이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환상적인 공연이었다. 락보다는 블루스를, 락보다는 재즈, 그리고 다른 것들보단 클래식을 선택해왔던 나에게 이런 세계도 있음을 알려준 시간이었다. 콘서트에서 들은 것 중에 아직까지 귀에 아른거리는 노래가 있다. 중국 가수 왕펑의 곡 “존재” 실존에 대한 고민이 뚝뚝 묻어져 나오는 가사가 김경호의 음성을 통해 나오는 것을 들으니 굉장한 아우라가 느껴지더라. 재생 목록에 그의 노래들도 추가시켜야겠어.

존재 – 왕펑
(아래 영상은 상해 콘서트 녹화한 거란다)

http://ift.tt/SSmXq7

多少人走着却困在原地 떠나려고 하지만 한 곳에 매여있고
多少人活着却如同死去 살아가고 있지만 죽은 것처럼 사네
多少人爱着却好似分离 사랑하고 있지만 이별과 다름없고
多少人笑着却满含泪滴 모두 웃고 있지만 눈물 흘리고 있네
谁知道我们该去向何处 그 누가 알까 어디로 가야하는 지
谁明白生命已变为何物 그 누가 알까 삶이 어떻게 변한 건지
是否找个借口继续苟活 핑계를 찾아서 살아가야 할까
或是展翅高飞保持愤怒 날개를 펼치고 날아올라야 할까
我该如何存在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多少次荣耀却感觉屈辱 많은 영광 속에서 굴욕을 느끼고
多少次狂喜却倍受痛楚 많은 기쁨 속에서 더욱 슬퍼하네
多少次幸福却心如刀绞 많은 행복 속에서 가슴 찢어지고
多少次灿烂却失魂落魄 찬란한 삶 속에서 정신없이 사네
谁知道我们该梦归何处 그 누가 알까 꿈이 어디에 있는 지
谁明白尊严已沦为何物 그 누가 알까 존엄이 어떻게 변한 건지
是否找个理由随波逐流 이유를 찾아서 떠돌아야 할까
或是勇敢前行挣脱牢笼 혹은 용감하게 벗어나야 할까
我该如何存在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谁知道我们该去向何处 그 누가 알까 어디로 가야하는 지
谁明白生命已变为何物 그 누가 알까 삶이 어떻게 변한 건지
是否找个借口继续苟活 핑계를 찾아서 살아가야 할까
或是展翅高飞保持愤怒 날개를 펼치고 날아올라야 할까
谁知道我们该梦归何处 그 누가 알까 꿈이 어디에 있는 지
谁明白尊严已沦为何物 그 누가 알까 존엄이 어떻게 변한 건지
是否找个理由随波逐流 이유를 찾아서 떠돌아야 할까
或是勇敢前行挣脱牢笼 혹은 용감하게 벗어나야 할까
我该如何存在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알리바이 연대기

2014년 5월 8일

언젠가 부모님 혹은 조부모님의 이야기를 글로 정리해보고 싶었다. 오직 ‘다이나믹’이라는 단어로만 묘사 가능한 한국사를 온몸으로 살아오신 분들이면서, 지금의 나와는 무척 다른 삶의 방식을 가지고 계신 터라. 시대의 굵직한 사건과 함께 그 분들의 삶을 글로 차근차근 정리하면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막연한 생각을 품고 있었다. 더 나아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혹여나 나의 부모 세대들에게 책임이 없었는지 확인하고픈 마음도 있었지.이번 연휴에 연극 “알리바이 연대기”를 보면서 묘한 동질감이 들었다. 극에서는 막내 아들 재엽의 해설을 배경으로 아버지 김태용의 삶이 재구성된다. 뭔가 튀지도 않으나 그렇다고 뒤쳐지지도 않았던 삶. 한국을 끊임없이 뒤흔들었던 역사적 사건들이 터지지만 영어교사였던 아버지는 언제나 한 발 물러나 외국어 책에 몰두하였다. 마치 삶의 터전이 여기가 아니고 책 안에 숨겨진 어딘가인 것처럼. 그는 아들들에게 말한다. 앞서 나가지도 마라. 중간만 해라. 직업을 가져라. 하긴 뭔가 주장을 내세우면 잔인하게 잘려나가던 시절이었으니까.작품을 보다가 등골이 오싹해졌다. 지금 우리는 전 세대들에게 훈계하거나 외칠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는 것 마냥 행동한다. 이렇게 될 때까지 뭘 해놓았느냐? 그저 역사에 무임승차한 것 아닌가? 앞서 내가 부모님, 조부모님들의 이야기를 정리하려 했던 것도 그런 의도가 없진 않았다. 허나 살아 남기 위해 조금씩 숙이고 숙인 게 쌓여 역사는 바뀌고, 나는 그렇게 생존한 이들의 후손이다. 그 앞뒤 맥락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이쯤에서 극의 제목을 상기해보자. “알리바이 연대기” 알리바이. 과거에 그런 일이 있었는데 당신은 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었죠? 시간이 흘러 후손들이 이렇게 묻는다면? 글쎄다. 그 때쯤엔 내가 해줄, 그럴듯한 대답이 있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u003C알리바이 연대기>, 김재엽 작 연출.
국립극단 백성희장민호극장 (2014.4.25~5.11)

돼지국밥

2014년 5월 1일

부산에서 기차 타고 신경주역에 내려서 포항으로 차 몰고 가는 중에 자꾸 국밥 생각이 간절한 거라. 거의 매일 가다시피한 경주 중앙시장의 원조할매국밥에 들러 국밥 한 그릇을 말아 먹는다. 으, 이 맛이지! 혼자 국밥 먹을 때마다 어김 없이 떠오르는 시가 있다. 지난 겨울에는 왜이리 애절하게 느껴졌는지. 그나저나. 히히, 마시쪙.혼자라는 건 / 최영미

뜨거운 순대국밥을 먹어본 사람은 알지
혼자라는 건
실비집 식탁에 둘러앉은 굶주린 사내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고 식사를 끝내는 것만큼
힘든 노동이라는 걸

고개 숙이고
순대국밥을 먹어본 사람은 알지
들키지 않게 고독을 넘기는 법을
소리를 내면 안돼
수저를 떨어뜨려도 안돼

서둘러
순대국밥을 먹어본 사람은 알지
허기질수록 달래가며 삼켜야 한다는 걸
체하지 않으려면
안전한 저녁을 보내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