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이자람밴드

2014년 4월 17일

2012년 6월인가, 내가 아마도이자람밴드를 처음 안 게 그 즈음이었지. 영양군 산골에서 근무하다 습관처럼 안동문화예술의전당 일정을 뒤적이는 중에 듣도보도 못한 이름이 나온 거라. 우스운 이름이었어. 그래도 호기심 때문에 한 시간 반정도 차를 운전해서 시간에 겨우 맞춰 공연장에 입장했지. 그래, 바로 그 때부터 팬이 된 듯싶다. 클래식, 재즈 말고는 듣지 않던 나에겐 참 새로운 음악이었고 꽤 오랫동안 활동했음에도 정규 음반 하나 없는 점 또한 놀라우면서도 안타까웠다. 2013년에 정규 앨범 발매 이후의 콘서트, 이자람의 창작 판소리 무대들도 거의 다 챙겨봤다. 독특한 발성임에도 또렷하게 들리는 가사들 때문인가 자꾸 찾게 되는 음악이라서. 여기에 첨언하자면 그녀가 부르는 재니스 조플린의 노래도 아주 멋지다.

이번에 발매된 <크레이지 베가본드>는 천상병 시인의 시를 가사 삼아 만든 노래가 담긴 앨범이다. 나야 그간 공연에서 자주 들었던 곡이라 친숙하다만, 깔끔한 음향으로 접하니 또 새롭게 다가오네. 작년 EBS 스페이스 공감무대의 앵콜곡이었던 “노래”도 좋고, 돌아다니다 얻어 들은 “나의 가난은”도 근사하다. 아참, 이번 앨범 발매 기념으로 4월 26일에 삼성역 부근의 KT&G 상상아트홀에서 단독공연을 한단다. 바로 전날엔 의정부에서 천상병 예술제 공연을 하고. 관심 있는 분들은 함 가보시길. 물론 난 서울 공연에 갈 거다.

나의 가난은 – 천상병 시, 이자람 노래 (제비다방 공연)

오늘 아침을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는 것은
한 잔 커피와 갑 속의 두둑한 담배,
해장을 하고도 버스값이 남았다는 것.

오늘 아침을 다소 서럽다고 생각는 것은
잔돈 몇 푼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어도
내일 아침 일도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난은 내 직업이지만
비쳐 오는 이 햇빛에 떳떳할 수가 있는 것은
이 햇빛에서도 예금통장은 없을 테니까….

나의 과거와 미래
사랑하는 내 아들딸들아,
내 무덤가 무성한 풀섶으로 때론 와서
괴로웠을 그런 대로 산 인생 여기 잠들다, 라고,
씽씽 바람 불어라 ……

이제. 포항

초중고 대학교까지 성남에서 나온 반半토박이가 어느덧 외지 자취 4년째가 되어 간다. 그것도 매년 옮겨 다니는 떠돌이 신세로. 이런 과정 속에 느는 솜씨는 음식 장만도 아니요, 청결 유지도 아니다. 이사 스킬이 해가 갈수록 늘고 있다. 필요한 짐만 간략히, 쓸데 없는 건 과감히 버리고 책 무더기는 무조건 집으로 배송시키고. 그럼 어찌저찌 레조 한 대에 딱 들어가는 이삿짐을 꾸릴 수 있다. 음. 이게 자랑이 되진 못하겠구나. 이 스킬이 빛을 발하려면 계속 옮겨 다녀야 하잖아.

병원에 출근하여 인수인계를 받고 환영식 겸 선임자 고별식으로 직원들과 점심을 먹게 되었다. 이런저런 질문을 받았다. 다들 인적사항, 개인적인 일까지 거침 없이 물어보신다. 부모님의 연세, 동생이 있느냐, 몇 살이냐. 난감한 것도 있었다. 여친 있어요? 없죠. 아, 요즘에 없다구요? 해맑게 물어보시는 분에게. 아뇨 여태 없었어요,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이렇게 야그 하긴 힘들었다. 그저 미소로 퉁쳤지. 술은 좀 마시나? 최대한 진실에 가깝게 말해야지. 저 술 잘 못 마셔요, 소주 한 잔만 먹어도 다음 날 탈이 날 정도에요. 진짜다. 소주만 못 마신다.

진 빠지는 이삿짐 정리가 끝나니 걷고 싶어졌다. 어제간 영일대 해수욕장이나 거닐어야지. 500번 버스를 타고 선린병원으로 가서. 아, 벌써 포항 사람이 된 것 같네. 웬만한 경우가 아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터라. 광역시, 중소도시 어딜 가더라도 거리낌 없이 시내 버스를 타고 돌아다니는 거, 떠돌면서 쌓인 능력치다. 해수욕장을 걷다가 카페에 들어가 바다를 보며 커피 한잔. 아쉬웠다. 바다가 아니라 커피가. 칙칙한 파도가 일렁이는 검푸른 바다를 보고 있자니 맥주 한잔하고 싶어 돌아다녔다. 아쉬웠다. 바다가 아니라 맥주가. 맥주 마실 곳이 없구나. 포항에 카페겸 펍이나 차릴까?

신발이 젖어갈 즈음. 정신을 차리고 흥해읍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탔다. 왠지 이런 생활을 평일 내내 하지 않을까?..

지금 여기가 맨 앞

2014년 4월 11일

나무는 끝이 시작이다.
언제나 끝에서 시작한다.
실뿌리에서 잔가지 우듬지
새순에서 꽃 열매에 이르기까지
나무는 전부 끝이 시작이다.

지금 여기가 맨 끝이다.
나무 땅 물바람 햇빛도
저마다 맨 끝이어서 맨 앞이다.
기억 그리움 고독 절망 눈물 분노도
꿈 희망 공감 연민 연대도 사랑도
역사 시대 문명 진화 지구 우주도
지금 여기가 맨 앞이다.

지금 여기 내가 정면이다.

-, 이문재

서점에서 문학 잡지 뒤적이다 마주친 시. 다른 시들도 좋은 게 많아 그 자리에서 구입했다.

단속사회

2014년 4월 8일

“자유는 시장자본주의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내가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할 때 그는 자율적 주체가 아니라 욕망의 노예일 뿐이다. 그 욕망이 자신에 의해 점검된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 수현이 깨달은 것이 바로 이것이다. 자신이 선택한 것처럼 보였던 많은 것조차도 사실은 ‘선택’이라는 이름의 강요였다 진정한 자유는 그와는 반대로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고 물러서는 것에서 나온다. 무엇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는 것, 자신이 선택한 것을 선택이라고 여기지 않는 것에서 자유는 시작된다. 고대의 현인들이 여기 있었다면 참다운 자유란 욕망을 절제하는 것 즉 욕망으로부터의 자유라고 말했을 것이다. 세상으로부터 물러나고 고독한 상태가 되는 것에서 비로소 자유는 시작한다.” -, 엄기호

허먼 멜빌의 소설 “필경사 바틀비”가 생각나는 구절이다. “I would prefer not to” 나는 그렇게 안 하는 것을 선호합니다! 하지 않을 자유.. 읽은 지는 몇 개월 되었다만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는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삶에 충실히 맞춰 살아가는 그러니까 ‘역할 밀도’에 찌든 삶에서 잠시 자신을 고독 상태에 놓아 두고 돌아보는, ‘자기 밀도’를 찾아보라. 그러고 보니 몽테뉴의 에세를 언급하지 않을 수가 없는데.. 또 브레인스토밍 시작이군.

소집 해제를 앞두고.

2014년 4월 7일

소집 해제까지 열흘도 남지 않은 이 시점. 괜스레 마음은 붕 뜨고 책을 집어 들어도 글자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짐을 거의 다 뺀, 텅텅 빈 방 안에 우두커니 앉아 지난 3년 간의 생활을 돌아본다.

온갖 사연들 부끄러운 삽질도 많았다만 그래도 내가 제일 잘한 것 중에 하나 꼽으라면, 바로 자취방에 인터넷과 TV를 들여 놓지 않은 것이다. 인터넷 설치 기사를 부르기 귀찮고 TV를 사려니 돈이 아깝고. 진담 반반 호기심 반반 농담 반으로 시작한 거지만 그게 3년이나 지속될 줄은 몰랐다.

아니, 애초에 인터넷과 TV를 멀리 하진 않았다. 대학 다닐 땐 디스커버리, 내셔널 지오그래픽 채널에 열광하고 IT기술에 관심이 많아 외부에서 TV를 그대로 볼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기도 했으니까. 윈도우 모바일 폰에 어플을 깔고 집 안의 서버에 TV카드와 하드웨어 인코딩 카드를 설치한 다음 PHP코드로 접속 페이지를 작성하고, 어쩌구 저쩌구.

TV가 없으니 안 그래도 텅 빈 방이 더욱 공허함으로 가득 차고, 인터넷이 없으니 도무지 시간을 때울 게 없었다. 정 필요하면 느림보 아이폰 테더링으로 메일만 확인하는 정도? 해가 짧은 산골, 낡은 주택에 홀로 앉아 하는, 의도치 않은 자아 성찰은 고통스럽기까지 했다.

그래서였나? 늬엿늬엿 지는 햇살을 붙잡으며 산책을 열심히 했고 너무나 어두워 나가기 힘든 밤엔 한 시간 넘게 운전해서 안동으로 나가 걸었다. 걷기 위해 운전한다라. 이상하게 들린다만 그 땐 실제로 그랬다. 허나 이러는 것도 한계가 있었고 다른 방도를 찾아야 했다. 게임? 아니. 그건 대학 때 지나치게 빠진 적이 있어서 이젠 쳐다보기도 싫었다.

책 읽고, 읽은 거 기록하고, 기록한 거 수정하고, 감상기 쓰고. 커피를 내리고, 급기야 커피를 볶고. 주말에 어딜 돌아다닐지 고민하고. 돌아다닌 곳 기록하고. 판소리 들으러 안동 가고. 해지기 전에 구불구불 국도를 넘어 울진, 영덕의 바다 보러 가고. 모르는 이들과 술 마시고. 공보의 생활을 채웠던 여러 활동들이 이렇게 시작되었다. 어느덧 3, 4개월이 지나고 이런 상황에 익숙해지고 편안해졌다. 남들에겐 일탈인 것들이 나에겐 일상이 된 셈이지.

좀 웃기긴 한다. 남들이 나에게 왜 그렇게 사냐고 묻는 다면. 해줄 대답이, ‘인터넷과 TV가 없으니 할 게 없어서요’ 라니.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