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새는 레죠

2014년 2월 26일

레조에 물이 샌다. 오늘 처음 안 건 아니다. 예전에 빗 속을 달릴 때도 휴지로 틀어막고 운전했으니까. 그런데 이번엔 정도가 좀 심해졌다. 조수석의 시트가 흠뻑 젖어있을 정도이다. 며칠 동안 차를 가만 놔둬야 하는데 어째야 하나. 지난 3년간 받은 충전소 티슈 더미 속을 뒤적거리니 커피통이 나오네. 임시방편으로 조수석에 올려두고 물방울의 방향을 지켜 본다. 잡았다, 요놈! 어찌저찌 조정을 해두고 차에서 나온다.그런데 왜 커피통이 내 차 안에 있지? 종류도 다양하다. 일리, 라바짜, 다비도프 등등. 처음 영양군에서 근무했을 때 매주 서울 영양을 운전하며 다녔다. 참 미친 짓이었지. 특히 새벽 운전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했다. 졸음을 깨기 위해 휴대용 에스프레소 머신을 구입하고 휴게소에서 뜨거운 물을 얻어 즉석에서 에스프레소를 만들어 마셨다.(1) 카페인 중독자의 밤샘 운전에 동반자가 되어 주었던 커피들. 이젠 커피통만 남았고, 그 커피통으로 새는 물을 받고 있구나.

(1) http://ift.tt/1ejJoM1 영상은 참 우아하지만 내가 만들어 마셨을 때는 꽤나 절박한 상황이었다. 어서 커피 주세요,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

무언가 부족한 시간

2014년 2월 20일

무언가 부족한 저녁 – 나희덕여기에 앉아보고 저기에 앉아본다
컵에 물을 따르기도 하고 술을 따르기도 한다

누구와 있든 어디에 있든
무언가 부족하게 느껴지는 저녁이다
무언가 부족하다는 것이 마음에 드는 저녁이다

저녁에 대한 이 욕구를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교차로에서, 시장에서, 골목길에서, 도서관에서, 동물원에서
오래오래 서 있고 싶은 저녁이다

빛이 들어왔으면,
좀더 빛이 들어왔으면, 그러나
남아 있는 음지만이 선명해지는 저녁이다

간절한 허기를 지닌다 한들
너무 밝은 자유는 허락받지 못한 영혼들이
파닥거리며 모여드는 저녁이다

시멘트 바닥에 흩어져 있는 검은 나방들,
나방들이 날아오를 때마다
눅눅한 날개 아래 붉은 겨드랑이가 보이는 저녁이다

무언가, 아직 오지 않은 것,
덤불 속에서 낯선 열매가 익어가는 저녁이다

걷자, 걸어

2014년 2월 15일

버스 터미널, 기차역 등을 둘러보면 지방의 관광명소 이런 거 홍보하는 게 참 많다. 다들 지나칠 만한 걸 나는 유심히 보고 놀라곤 한다. 다 가본 곳들이잖아. 어제만 해도 그랬다. 버스 타고 집에 돌아오는데 버스에 붙여진 영덕군 홍보물 보고 기시감이 느껴졌다. 데자뷰? 아니야, 다 가본 곳들이야. 페이스북이나 일기장처럼 쓰는 블로그에 이따금 사진을 올리기만 했고, 정리를 하진 않아서 그렇지, 그 ‘가본 곳들’을 잇다 보면 동해안이 완성되고, 남해안의 리아스식 해안선을 그릴 수 있지 않을까? 그렇다. 그게 현실이 되었다. 강릉부터 통영까지. 중간에 동해, 삼척이 빠진 게 아쉽다만. 거칠게 정리하면 강릉에서 해안 따라 통영까지 걸어간 셈이다. 아, 3년 동안 혼자서 진짜 많이도 돌아다녔구나.

남해안도 사천, 하동만 빼면 선을 그릴 수 있겠고, 서해안도 몇 군데만 채우면 될 듯하나. 이제 그만 돌아다니자..

주문진(강릉)

http://on.fb.me/1ggq56l

경포대(강릉)

http://goo.gl/HBoEXH

구산해수욕장(울진군 평해면)

http://on.fb.me/1bRRw1M

대진항(영덕군 영해면)

http://on.fb.me/1f1mrgr

장사해수욕장(영덕군 남정면)

http://on.fb.me/1fmzeGz

북부해수욕장(포항시 북구)

http://on.fb.me/1gA7d1I

읍천항(경주시 양남면)

http://goo.gl/PXF41H

태화강(울산)

http://goo.gl/ePIHKZ

죽성해변(부산 기장군)

http://goo.gl/hLpHfm

청사포(부산 해운대구 송정동)

http://on.fb.me/1dPpLXp

해운대 해수욕장(부산 해운대구 우동)

http://on.fb.me/1kvS3zs

광안리해수욕장(부산 수영구 광안동)

http://goo.gl/fPTxzY

이기대(부산 남구)

http://goo.gl/PxUf52

절영해안산책로(부산 영도구)

http://on.fb.me/1bSzCvF

한려수도(거제와 통영 사이 어딘가)

http://on.fb.me/1bwA4Fg

남망산(통영)

http://goo.gl/cfNZQL

욕지도(통영)

http://goo.gl/6N6xoO

Bot, 봇.

2014년 2월 12일

책 읽으면 메모와 목록을 저장해두곤 한다. 심심하면 책 덮고 지금까지 몇 권 읽었는지 세보곤 하는데 공보의 되고 나서 400권 넘게 읽었네. 내친 김에 영화, 연극 본 것도 세어 보니 생각보다 많구나. 2011년 4월부터 지금까지 책을 416권 읽었으며, 영화는 150여 편, 연극은 2012년부터 보기 시작해서 지금까지 107편을 봤다. 누가 나에게 농담 삼아 Bot이라 했는데 꽤나 적절한 표현인 것 같다.뭐랄까, 책을 쓰겠다거나 영화를 찍거나 연극 연출을 하겠다는 등등 그런 목적 의식 따위는 없었다. 단지 비는 시간에 할 일이 없어서. 주중에는 책을 읽는다. 금요일 올라오는 버스 혹은 기차에서 잠을 자지 못하니 책을 읽는다. 성남 집에 도착하고 저녁 먹고 잔다. 이튿날 정오쯤 집을 나간다. 버스 타고 종로로 간다. 물론 약속 그런 건 없이. 대학로 가서 연극을 본다. 비는 시간엔 주위 미술관을 기웃거린다. 신기한 거 있음 그냥 들어간다. 시계를 본다. 마침 영화 시간이랑 맞는다. 영화를 본다. 그럼 대충 저녁쯤 되었을 거다. 홍대로 가서 맘에 드는 공연 있으면 들어간다. 공연까지 비는 시간엔 책을 읽는다. 음악을 듣고 맥주 한잔하러 이태원으로 간다. 토요일이 지나고 일요일. da capo(처음으로 돌아가 반복할 것) 일요일 밤, coda(종결부) 내려가는 버스 혹은 기차.

이렇게 하다 지루해지면 다른 곳으로 떠난다. 커피 마시러 강릉으로. 미디어 아트 보러 대전, 광주로. 음악 들으러 통영으로. 영화 보러 전주, 부산, 제천으로. 연극 보러 부산, 거창, 밀양으로. 거기서도 패턴은 비슷하다. 영화, 책, 영화, 책. 아님 음악, 책, 음악, 책.

Bot이군. 봇, 봇 이러니 애니메이션 ”퓨처라마”에 나오는 벤더라는 로봇이 생각난다. 동력원은 맥주로, 맥주 몇 병만 들이키면 여기저기 빨빨거리고 돌아다니는 캐릭터이다. 볼 땐 몰랐는데 그게 나였군, 나였어.

(참고로 퓨처라마와 심슨가족은 같은 제작자, 맷 그레이닝이 제작에 참여하였다.)

사계의 취객

2014년 2월 10일

매 주말 저녁에 사계 바에 앉아 있으시잖아요. 여기서 사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올 때마다 여기 있구. 예전에 페이스북에 우연히 서형탁 씨 이름보고 타임라인으로 들어간 적이 있어요. 2개월 치 정도 읽어봤는데 글 양도 어마어마할 뿐만 아니라 페이스북을 마치 블로그처럼 활용하더라구요. 궁금한 게. 어떤 이유이든 간에 책, 공연, 전시회를 보지 못해서 한이 맺혔나요? 끝이 없어서 놀랐네요. 이렇게 말하는 거 좀 그렇지만. 데이트 같은 거 안 해요? 보아하니 그 많은 걸 혼자 보러 다니는 것 같고. 아, 뭐라 하는 건 아니고, 정말 대단하긴 한데. 음. 다르게도 시간을 써 봐요.아니, 어느 정도인데 그러시는 거에요? 이 사람 페이스북 좀 보여줘 봐요. (스마트폰을 보고 나서) 음. 음. 와, 완전히 봇이네. 네, 그 봇. B.O.T. bot이요. 문화예술 봇이야.

형한테 도움을 많이 받긴 해요. 어디 가서 가볼 만한 곳, 먹을 데 이런 거 물어볼 때. 다른 사람들은 기껏해야 한 두 군데 알려주고 말거든요. 그런데 형은 목록을 주욱 정리해서 보내주잖아요. 뭘 좋아하면 어디, 뭘 보려면 어디, 뭐가 싫으면 여기 피하고 등등. 네, 저야 데이트 하면서 형 껄 쪽쪽 빼먹었는데. 이젠 그걸 형을 위해 써봐요. 웃지 말고 좀 심각하게 들으세요.

형탁 씨가 주말 저녁에 모습을 비치지 않으면 왠지 안도감이 들어요. 뭔 일이 있구나, 다행이다. 그런데 여지 없이 가게로 들어와서 바에 앉으면.. 안타깝죠. 조금만 드세요.

..11월 중순부터 사계를 드나들었다. 이 펍이 임시 개장할 때부터 다닌 셈이다. 크리스마스 이브, 12월 31일에도 바에 앉아 맥주를 마시고 있었지. 벌써 3개월 째 주말, 연휴의 시작과 끝을 이곳에서 보냈다 해도 과언이 아니네. 곁에서 함께 술 마시던 분들이 한 마디씩 해주곤 하는데 내가 그렇게도 경이와 연민의 대상이었나. 난 그저 평범한 취객일 뿐인데. 하하.

달팽이집

2014년 2월 9일

경주 내려가는 길에 가방 챙기다. 내 가방에 왜 이런 게 있을까? 가방 안에 세계가 담겨 있구나. 하하.예수전 – 김규항
밤주막 – 막심 고리키
괴델의 증명 – 어니스트 네이글
개성의 탄생 – 주디스 리치 해리스
협동의 경제학 – 정태인
즐거운 뇌, 우울한 뇌 – 일레인 폭스
제로 성장 시대가 온다 – 리처드 하인버그
카우치에 누워서 – 어빈 D. 얄롬
일방통행하는 의사, 쌍방통행을 원하는 환자 – 토르스텐 하퍼라흐
봄에 나는 없었다 – 애거서 크리스티
목란언니 – 김은성
서울의 예수 – 정호승
도덕적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만드는가 – 로랑 베그
시사인 설 연휴 특집
월간 잉여 1월호

커피.
이디오피아 툼티차
이디오피아 시다모 모르모라
이디오피아 알마시엘로 모르모라
이디오피아 이가체프 코체레

외로운 남자

2014년 2월 3일

대체로 사람들은 고독 속에서도 홀로가 아니다. 자신과 함께 나머지들을 수반하는 것이다. 이 격리는 홀로 떨어져 있으나 우주적인 절대고독이 아니며 다른 고독, 작은 고독, 사회적인 고독에 불과하다. 절대적 고독에는 다른 아무것도 없다. 당신을 괴롭히고 귀찮게 하는 것은 타인의 추억과 이미지와 존재이다. 지루하고 참을 수 없는 고독이 있는데, 이 고독에서 사람은 타인을 따르고, 타인에게 호소하고, 그들을 필요로 하고, 그들을 회피하기도 한다. 그들의 존재를 믿기 때문이다. 사람은 타인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타인의 무기를 빼앗겠다는 기세로 타인에게 달려든다. 나는 신(神)이 아니고, 이 모든 덧없는 환영과 외관을 발명한 것은 내가 아니다. ‘사람들이’ 그것들을 나에게 제공하고 제시했다. 이 ‘사람들’, 바로 이들이 발명자인 것이다. 나는 당하고 있었으며, 당하지 않기 위해, 또 이 일에 관계하지 않고 단지 관전하기 위해 거리를 두려고 애썼으나 이들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었다. .. 괴롭지 않으려면 체념해야 한다. 나는 체념해야 한다는 생각을 항상 하고 산다. 그리고 자주 그럭저럭 체념하는 데 성공했다. 진실하고 깊은 체념은 아니었다. 가끔 화가 치밀기도 한다. 그럴 때 처음에는 내 안에서 어떤 불만이 자라나고, 나를 엄습하고, 나의 목을 조른다.

– “외로운 남자”, 외젠 이오네스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