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이나 마시자.

2013년 11월 27일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데. 너는 구슬 수천 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꿰질 않는구나.

네가 다른 이에게 다가갈 때 특이한 게 매력이 될 수 있지만 네 문제는 정도가 심하다는 거야. 어떤 이에게 여행, 공연, 연극 보는 것들이 하나의 일탈이자 흔치 않은 삶의 기회야. 그런데 너는 그런 일탈들을 매일매일, 심지어 아무렇지도 않게 행하지. 처음 널 보는 사람이 특이함에 끌렸다가 실상을 알고나면 너는 마치 “세상에 이런 일이”에나 나올 법한 이상한, 그러니까 다가갈 수 없는 사람이 되는 거야.

몇 주 전 아는 이와 술 한 잔 하면서 들은 야그. 칭찬인지, 충고인지. 계속 귓가에서 맴돈다. 물론 내 반응은 이랬다만.

아 몰라, 귀찮아. 술이나 마시자.

또 오셨군요.

2013년 11월 25일

또 오셨어요? 그게 아니라 분당 가는 길에 있어서요. 핑계대지 마세요. 참새가 어찌 방앗간을 그냥 지나가겠습니까. 맨날 오시는 것 같아서요. 이렇게 치자구요, 어떤 카페에 예쁜 알바가 있어서 맨날 커피 마시러 가는 거에요, 예쁜 알바는 여기 맥주인 셈이죠. 완전 맥덕(맥주덕후)이네요. 음, 그냥 매니아에요. 하하. 펍에 앉아 있던 이들이 외친다. 저희도 그래요, 환영해요! 음. 그럼 한잔만 더 할까요?한잔이 한잔이 아니었다. 30분만 앉아 있으려고 했건만 어느새 3시간. 강원, 충남, 전북, 전남, 충북. 전통주와 막걸리 야그가 계속 된다. 이제 경북. 대화가 끊긴다. 내가 야그를 시작한다. 경북도 맛있는 술이 많다구요. 영양군. 영양군 가보셨어요? 아뇨. 가장 매니악한 술부터 시작하죠. 초화주 아세요? 아뇨. 좀있다 12월쯤 새 술이 나올 겁니다. 몇 병 구해오죠. 1. 2월 쯤 같이 마셔요. 저.. 연락처 좀 알려주세요. 아, 네.

바 한 구석에서 싸우는 소리가 난다. 야, 네가 아기 봐. 싫어, 네가 봐. 좀더 이야기 하보자. 싸움 끝에 남편으로 보이는 분이 말을 걸어온다. 저.. 초화주 술병 따실 때 연락주세요. 여자 분이 외친다. 내가 마신다니까! 일단 연락처는 받아놔야지.

저 가야해요. 왜요, 한잔만 더하세요. 그럴까요? 전혀 망설임 없이 맥주 한잔을 더 주문한다. 아버지한테 연락이 온다. 형탁아, 낼 경주로 출근해야지! 누구세요? 아버지요. 저 내일, 아니 오늘 새벽에 기차타고 경주 가야 해요. 전 내일, 아니 오늘 새벽 5시에 일어나야 해요. 전 내일 아니 오늘 6시에 일어나야 해요, 빌어먹을 회사! 그런데 경주는 너무 머네요. 그런 의미에서 한잔 더! 그럴까요?..

다음 주 경주 교동 법주 한잔 마십시다! 네! 다음 주에 뵈요! 한잔 더!

저.. 술은 못하지만 잘 못마셔요. 와, 저도 그래요! 한 잔더! 아까 이야기는 해결하셨나요? 연락주세요, 저대신 아내가 나갈 겁니다 하하.

내일 경주로 어케 출근하지?..

조언을 해주시겠습니까?

2013년 11월 12일

29년째 솔로라서 그런지 주변 사람들이 꼭 한마디씩 조언을 해주려고 한다. 마치 재미있는 소설 낭독 마냥 흥미롭게 듣곤 하는데 무수히 반복되는 조언들 중 의문이 생기는 게 많다.

될 수 있으면 많이 만나봐라. 어디서 만나나요? 땅에서 좀비처럼 기어 나오는 것도 아니고요. 소셜 데이팅 어플 이런 거 써볼까요? 결혼 정보 업체 알아볼까요?..

늦바람 들면 무섭다. 뭔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제가 뭐에 빠지면 항상 상상을 뛰어넘고 무섭긴 하죠. 그나저나 바람 피울 대상도 없는데 이런 소리 듣는 건 좀 비참하군요.

여행 가서 혼자 다니는 여자 좀 눈여겨봐라. 다들 여행에 환상을 품고 계시네요. 저처럼 돌아다녀보세요. 하루에 12시간 정도 걷거나 4편 영화를 보면 꿈과 현실이 구분 안 되요.

동호회 같은 데 가서 상대를 물색해라. 동호회라. 제 큰 단점은. 취미 자체를 어떤 수단이 아닌, 목적으로 여기는 데에 있죠. 누굴 만나는 수단으로 취미에 열중하진 못 하겠더라구요.

너 소개팅 시켜주려 해도 어려워서 고민된다. 듣던 말 중에 좌절스럽군요. 제가 어렵나요? 설마 제가 처음 만나는 사람한테 바흐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의 의의를 설명할까요?

자, 아무 조언이나 해주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