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주는 우리의 보건학

2013년 8월 28일

이 시대에 음주는 우리의 보건학이 되어 있었다. – 비톨트 곰브로비치, “포르노그라피아”

잠이 오지 않을 때 한잔, 배고플 때 한잔, 외로울 때 한잔, 차 시간 기다리면서 한잔.. 나한테도 보건학이 되어 있었군..

나란히 걷는 마음 꽃게 마음..

2013년 8월 24일

잊었다고, 사라졌다고 자책하는 것 중에 소위 ‘가치’라는 게 있다. 예를 들어 순수, 열정, 동심 이런 거. 엄밀히 짚어 보면 그것들 모두 허위에 가깝지 않았을까? 거짓이 아니더라도 과장, 오류로 윤색된 기억을 그리워하는 걸지도.

“추억은 망각의 부정이 아니다. 추억은 망각의 한 형태이다.” – 밀란 쿤데라

인사동의 어떤 갤러리에서 마주친 작품을 보고 드는 생각이라. TV에선 동요대회 영상이 나오고 옆엔 동요 가사가 적혀있다. “한 발 한 발 맞춰서 / 서두르지 않고서 / 앞서 가고 싶은 마음 참고서 / 나란히 걷는 마음 꽃게 마음 / 어깨동무 팔 동무 하지 못 해도 / 따각 따깍 나란히 / 따각 따따각 나란히”

가사만 보면 피식할 정도로 순진무구하다. 역시 아이들이야. 나도 저랬으려나? 하는 찰나. 그런데 저 동요는 순위를 매기는 ‘대회’에서 불려진 노래잖아. 대상, 금상, 은상, 장려상. 과연 저 노래는 무슨 상을 받았을까? 뭐, 무슨 상을 받든 간에 가사의 의미와는 동떨어진 게 된다. 나란히 걷는 마음 꽃게 마음..

저 아이들이야 웃으면서 노래를 부르고, 훗날 사진이나 비디오로 ‘동심’을 추억하겠지. 다만 그 단어 뒤에 숨겨진 순위, 경쟁, 상 등을 쏙 빼버린 채로.

윤하민 개인전 <당신의 거울이 될 거에요> 관훈 갤러리 (2013.8.14~8.26)

남은 갈 곳들.

2013년 8월 21일

이제 남은 갈 곳들. 정신 없이 다니다 보면 어느새 크리스마스가 오고 2014년으로 바뀌어 있겠지.

대구시립미술관 – 쿠사마 야요이 개인전 7.16~11.3
http://www.daeguartmuseum.org/exhibition/pop_exhibition1.html?sid=41&gubun=1

서울프린지페스티벌(홍대) 8.29~9.14
http://www.seoulfringefestival.net/

광주디자인비엔날레 9.6~11.3
http://www.gwangjubiennale.org/gdb/

부산국제영화제(해운대, 센텀시티) 10.3~12
http://www.biff.kr

서울국제공연예술제(대학로) 10.2~26
http://www.spaf.or.kr/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통영, 피아노 부문) 11.3~11.10
http://www.isangyuncompetition.com/

페르디두르케

나에겐 모든 소설을 잘 이어지는 이야기로 다듬는 버릇이 있다. 아무리 질긴 스테이크라도 먹기 좋게 잘게 써는 것과 비슷하지. 간혹 그런 과정을 거부하는 당돌한 작품들이 있는데 비톨트 곰브로비치의 <페르디두르케>를 그 목록에 추가시켜야 할 것 같다. 작가가 대놓고 내용의 부재, 외양과 규칙의 부재를 외쳐서 그런지 읽으면서 위협 비슷한 게 느껴지더라.

하긴 우리는 어떤 사건, 인물, 예술작품 등등을 하나의 틀에 맞추어 이해하기를 원한다. 그 틀이 오류투성이라 할 지라도 존재만 한다면야 우리는 편안함을 느낀다. 곰브로비치는 인정사정 없이 그 틀을 부숴버리며 고정된 문학형식, 계급, 가식을 거부하고 미완, 미성숙을 예찬한다. 자, 한번 다듬어봐! 못하겠지? 이렇게 약 올리면서 실없는 농담과 같은 이야기를 전개한다.

곰브로비치의 세계는 마치 성적 호기심이 왕성한 남자 고등학생의 머릿속과 같다. 정상적인 인물은 없고 들쑥날쑥하며 충동적인 건 기본이요, 자꾸 딴 길로 빠지려 한다. “정상이란 비정상의 심연 위에 늘어뜨려진 곡예사의 줄에 지나지 않는다. 일상적인 질서 속에도 언제나 광기가 섞여 있는 것이다!” 작가는 소설을 독자와의 전장戰場으로 놓고 치열한 전투를 벌이는데 아마 난 진 것 같다. 선형적 줄거리 다듬기는 던져버리고 그저 ‘미완’의 내용을 즐기게 되었으니까. 그의 미성숙 예찬론 중 한 단락을 인용하며 마무리한다.

“사실 인간이 유한하다는 잘못된 가설도 있다. 그러니까 이상이 확고부동하고, 입장 표명이 단호하며, 이념이 확실하고, 취향이 굳건하고, 자기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지고, 행동 양식이 영원히 결정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가설은 뜬구름 같은 것이다. 우리 인간을 이루는 요소는 바로 영원한 미성숙이다.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이 우리 먼 후손에게는 말도 안되게 어리석은 것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모든 것 속에 들어 있는 어리석음, 미래가 되면 드러나게 될 그 어리석음의 몫을 인정하는 편이 낫다. 여러분으로 하여금 너무 일찍 스스로를 한정 짓게 만드는 것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과 달리 절대 인간적인 것이 아니다. 머지않아 우리는 가장 중요한 건 이념과 스타일, 논제, 슬로건, 신앙을 위해 죽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그 안에 갇혀서 외부로부터 고립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오히려 조금 뒤로 물러서서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서 거리를 취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 비톨드 곰브로비치, <페르디두르케>

수상한 이불

2013년 8월 11일

홀로 이곳 저곳을 휙휙 다니곤 한다. 맥주 한 캔 까며 거리를 걷고 배 위에서 일출을 보고 아무도 다니지 않는 저수지 주변을 돌고. 아는 이들이 혼자 다니면 외롭지 않냐고 묻는다만. 물론 외롭기야 하다. 그래도 돌아 다닐 땐 언제나 뭔가에 몰입한 상태이기에 덜 하지. 치명타는 밤에 찾아온다. 아무런 모텔에 몸을 누이고 잠을 청하나 온갖 상념이 날 괴롭힌다. 그런 걸 피하려고 다소 무리가 있더라도 당일치기로 갔다 온 적이 많았지.

1년 전이었을 거다. 오지에 근무하느라 일요일 밤마다 험한 길을 운전해야 했다. 그 날은 깜깜한 길 위에서 차가 고장나 버렸다. 어찌저찌 차를 밀고 밀어서 길가에 대놓고 잘 곳을 찾아 헤맸다. 인가도 드문 그 곳에 웬 모텔 하나가 있더라. 이거라도 다행이지. 그런데 그 모텔은 꽤나 지저분했다. 찐득찐득한 이불, 축축한 베게, 수압이 낮아 물이 질질 새는 샤워기. 정말이지 긴긴 밤이었다. 내일 출근은 어케 하나, 차를 고칠 수 있을까. 그리고. 나는 누구의 체액 위에 누워있는가.

어제 김대중 님의 “수상한 이불”을 들으면서 그 궁상스럽고 쓸쓸한 감정이 재생되더라. 아이고 이거 내 이야기 같은데. 수상한 이불을 덮어본 적 있나요? 낯설은 베개에 얼굴을 묻었나요? 불 꺼진 새벽 쓸쓸한 모텔방에서 서러운 눈물에 잠을 깬 적 있나요? 있습니다..

http://youtu.be/qvgAtvwTwRQ

무궁화호.

2013년 8월 7일

여기저기 오가다보니 무궁화호 막차, 첫차와 친해졌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막차를 타면 뭔가 특이한 사람을 만나고 느릿하니 지나는 풍경이 멋지니까.

달빛 비치는 송정해수욕장(동해남부선), 기차의 불빛에 비친 남한강(중앙선), 답답한 내륙만 지나다 너른 낙동강이 나오는 물금~구포(경부선), 온통 초록색에서 파랗게 변하는 동해~강릉(영동선), 온통 논밭에다 서있으면 쓰러질 정도로 굉장히 커브가 심한 서대전~익산(호남선).

무궁화호 기차타다 약간 쫄깃한 건 기차 안에서 잠드는 거다. 지금 타는 것만 해도 종점이 청량리역이니까. 뭐 이젠 익숙해져 맥주 한 캔에 책 한 권 펴놓고 차창 밖을 보다 보면 어느새 목적지라서.

덕분에 기차 매니아(그러니까 덕후)가 되어서 기관차의 고유번호, 운행번호만 들으면 그 열차가 어딜 지나는지, 디젤 동차, 디젤전기기관차, 전기기관차 인지 바로 아는 정도이다.

거참. 2년 넘게 이러고 다녀도 무궁화호 열차 탈 때마다 가슴이 설렌다. 누굴 만나고 어떤 풍광을 보게 될까? 아, 유랑도 병인양 하여..

쭈뼛쭈뼛한 대화

2013년 8월 6일

도슨트 해드릴까요? 그럼 저야 좋죠. 2층의 주제는 부모와 자식 간의 소통이에요. 여태 넘지 못했던 간극을 극복하자는 거죠. 첫 그림은 딸과 엄마가 각각 그린 옷가게랍니다. 많이 다르죠? 엄마는 굉장히 사실적이라면 딸의 그림은 추상화에 가깝죠. 결국 모녀간에 주제를 교환하기로 했어요. 엄마가 정미소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딸은 그걸 그리는 방식으로. 어머니의 그림 솜씨가 굉장하죠? 정미소 그 자체네요, 맘에 들어요. 정미소를 어떻게 아세요? 이런저런 이유로.. 친숙하죠(1) 딸의 그림은 공상 과학에서 나올법하군요. 맞아요. 딸은 정미소를 본 적이 한번도 없거든요.

어라 웬 글씨들인가요? 이건 다른 작가의 아버지가 쓴 글씨들로 모두 한자에요. 읽어보니 별 말 없는데요? 대한남아가 어쩌고 저쩌고. 어라, 한자 읽을 줄 알아요? 전공이 뭐길래? 중문학과? 아, 그냥 한문이랑 친한 학과입니다. 아버지가 서예에 푹 빠져 있었답니다. 그래서 몇 장이고 글씨를 쓰고 그걸 다 보관해놨죠. 아마, 무심히 지나쳤던 아버지의 취미를 이렇게나마 전시해서 뒤늦은 후회를 하는 게 아닐까요? 뭘 좀 아시네요. 아, 그저 제 생각이에요.

다음에 보실 건 비디오 작품입니다. 이소영 작가의 스크립트에 기반해서 만든 영상이죠. 무슨 대본인가요? 부모에게 이런저런 질문이 담긴 쪽지를 넘기고 답변을 받은 게 대본이에요. 여기 그 쪽지들이 있으니 함 보세요. 살면서 가장 외롭다고 느꼈을 때, 자신만의 콤플렉스.. 아이고, 감정적일 수 밖에 없는 답변이 나오겠군요. 맞아요, 바로 보셨어요. 말로 하면 감정이 앞서는 내용들을 차분하게 글을 적어보자는 거죠. 그걸 안다고 부모를 이해할 수 있을까요? 뭐, 시도가 중요한 거죠. 근데 여기에 왜 여친이랑 안 온 거죠? 저요? 전 그냥 이렇게 혼자 다녀요.

이번 작품은 재단을 세워 부모의 지원을 받는 과정을 그려낸 거랍니다. 말이야 재단이지, 부모한테 손을 벌린 거네요. 그렇죠. 정관을 함 보세요. 재정을 지원하되 작품엔 관여하지 말 것. 하하 갖출 건 다 갖췄네요. 그래도 부모 입장에선 자식이 좀 실망스러웠겠어요. 맞아요, 근데 몇 살이세요? 음. 29이에요. 어려 보이네. 공대 다니는 제 딸은 25인데 엄마인 제가 봐도 답이 없어요. 제가 그 분을 잘 몰라서.. 그래도 절 닮아 좀 이쁘답니다, 하하. 아, 네.

이제, 3층을 보여주세요. 3층은 사진전인데 작가 분께서 안내를 자제해달라고 하셔서. 그래도 해주실 말은 없으신가요? 제 딸 함 만나보실래요? 네?..

<쭈뼛쭈뼛한 대화>, 아트선재센터 (2013.7.11~8.18)

(1) 알다마다. 산골에서 2년 동안 산책한 길에 정미소가 있었지.

축구, 즐거우신가요?

2013년 8월 5일

영화제 가서 하루에 영화 6편 본 것을 열심히 떠벌린 적이 있었다만. 어제 오늘의 경험에 비교할 수 없을 것 같다. 이틀 동안 의료지원 나가 무려 24개의 축구 경기를 지켜 봤으니까. 관중이 아닌 운영진의 일원으로 축구를 보니 관중, 코치들의 반응이 사뭇 다르게 다가오더라.

우리 나라에서 어린 아이가 유소년 축구단에서 들어간다는 것은 어릴 때부터 철저히 타인의 명령에 복종함을 뜻한다. 부모의 욕망, 코치의 야심 등에 휘둘려 꼭두각시 역할을 하면서 점차 자신이 축구를 왜 좋아했는지도 잊어간다. 그냥 목표는 바로 승리!

운동하는데 당연히 이겨야 하는 거 아니냐고, 남자면 끝을 봐야 하는 거 아니냐고 따지면 할 말이 없다. 그저 생활 체육의 한 종목으로 바라보자고 한다면 다들 이상한 눈초리로 볼 것 같아서. 하긴 패스, 트래핑 미스에 욕을 먹고 따로 불러 야단을 치는 분위기에다 지고도 웃으면서 나올 때 부모한테 맞는다면 아이들은 이겨야만 나중이 편할 것이다.

아, 문제가 자못 심각해진다. 이기는 팀이 있으면 당연히 지는 쪽이 있을 텐데. 아이들은 패배를 두려워한다. 성급하게 공을 차놓고 달려가고, 초등학교 4학년이 팔을 능숙하게 쓰면서 상대방을 쓰러뜨린다. 이때 심판이 휘슬을 불면 코치가 난리 친다. 경기 끝나고 부모가 심판 멱살을 잡는다. 욕만 하고 끝나는 건 애교다.

300개 넘는 팀, 아무리 적게 잡아도 7천명의 초등학교 선수. 과연 축구를 직업으로 삼는 이가 얼마나 될까? 축구를 그만두고 이런저런 야단에 길들여져 편법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본대로 행동할 거다. 커서 자기 자식이 실수하면 화를 낼 거고, 눈가가 찢어져도 뛰라 할 거고, 정 안되면 심판 멱살을 잡겠지.

이런저런 욕망이 충돌하는 축구 경기들을 보고 있자니 우리 사회의 서글픈 단면을 반복하여 목격하게 되더라. 다들 능숙한 척 애쓰고, 힘들어도 눈치 보며 맞추고, 본래 즐거움은 잊어 버리고, 자신의 못 이룬 꿈을 자식에게 투영하고. 마침 생각나는 소설 한 구절 읊으면서 마무리하련다.

“그저 달리기만 하기에는 우리의 삶도 너무나 아름다운 것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인생의 숙제는 따로 있었다. 나는 비로소 그 숙제가 어떤 것인지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고, 남아 있는 내 삶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가야 할지를 희미하게나마 짐작할 수 있었다. 그것은 어떤 공을 치고 던질 것인가와도 같은 문제였고, 어떤 야구를 할 것인가와도 같은 문제였다. 필요 이상으로 바쁘고, 필요 이상으로 일하고, 필요 이상으로 크고, 필요 이상으로 빠르고, 필요 이상으로 모으고, 필요 이상으로 몰려 있는 세계에 인생은 존재하지 않는다.

진짜 인생은 삼천포에 있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