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작위 독서

2013년 5월 27일

내가 책을 고르는 기준은.. 예쁜 표지, 특이한 제목, 그리고 남이 읽는 책. 그러다보면 범위를 규정하기 힘든 병렬 독서가 탄생한다. 예를 들어 정신분석학 책을 보는 와중에 어떤 소설을 읽으면 전혀 새로운 면모를 보게 된다. 혹은 상대방이 무슨 생각을 가지고 그 책을 읽었는지 공상하며 읽는 재미도 만만치 않다. 아니면 여행 다니면서 엿듣는 대화와 책이 맞물려 다른 이해를 도출할 수도 있고. 물론 책들의 많은 내용이 휘발되어 단지 몇 단어, 문장으로 내 머리에 남을 것은 확실하다. 그래도 앞서 열거한, 그 맛에 무작위 독서를 하는지도 모르겠다.

우리 아이의 머릿속

2013년 5월 21일

여행 중 이 책 읽다가 오해 받았다. 제목보고 그럴 만도 하겠다 싶어 가져온 책들을 보니 <엎지른 모유>, <컬쳐쇼크>.. 음. 그냥 보던 책 마저 다 읽었다.

책 내용만 놓고 보면 참 흥미진진하다. 아이가 산만할 정도로 질문을 쏟아대고 뛰어다니는 것은 어서 빨리 세상에 대한 인지적인 지도를 구성하여 어른처럼 반사실적 추론(미래에 대한 예측)을 하기 위한 것이란다. 성인은 스포트라이트 식, 그러니까 하나에만 집중하는 사고를 한다면 아이는 주의를 방해하는 사고를 억제하는 대신, 많은 범위의 정보를 얻으려 애쓰는 셈이다.

또한 갓난 아기도 어른 못지 않게 통계적 추론을 통해 사물의 규칙을 파악한다는데 정말이지 책에 나온 저자의 끈질긴 실험이 존경스러울 뿐이다. 아이가 상상의 이야기를 쏟아내는 것은 환상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게 아니라, 끝없는 사고 실험을 통해서 현실에 대한 적응과 사회성 훈련을 하는 과정이라고 한다.

그럼 아이의 성격은 어떻게 형성되는 것일까? 환경의 문제, 부모의 성격, 아니면 선천적인 아이의 기질? 저자 앨리슨 고프닉은 그 모든 가능성을 열어둔다. 아이가 선천적으로 부모에게 보이는 애착의 유형에 따라 문제 여부를 가릴 수도 있지만 이 또한 부모와 아이의 상호작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결국 저자는 양육 환경에 중점을 두어서 사회가 양질의 유치원, 의료 행위 등 아이들에게 안정적이고 밝은 ‘과거’를 보장할 의무가 있음을 역설한다.

원래 인지과학과 관련해서 집어 든 책인데 또 다른 세상이더라. 막 빠져들어 이틀 만에 다 읽었으니. 음. 오해 받을 만하구나. 그래도 전에는 ‘귀찮게 날뛰는구나’ 하고 지나치던 아이들을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게 되었으니 나름 큰 수확 아니겠는가?

이미 육아 관련 책을 많이 읽고 있을 것만 같은 곤에게 추천하고픈 책이다.

트라우마 수리공 : 힐링의 꿈

2013년 5월 15일

보건소에서 일하면서 시청에서 밀고 있는 여러 사업들을 접한다. 그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힐링시티 만들기’ 였다. 지방자치단체가 보유한 수많은 관광자원을 활용해서 요즘 유행하는 ‘힐링’과 결합시켜 지역 경제 활성화의 아이디어는 꽤 괜찮긴 하지만 마음 속에서 자꾸 걸리적거리는 게 있더라. 과연 힐링을 돈으로 사고파는 게 가능한가?

이런 의문은 지난 주말 연극 <트라우마 수리공>을 보면서 증폭되었다. 연극 내용은 대충 이렇다. 은둔형 외톨이로 살아가던 우제에게는 아주 특별한 재능이 있다. 다른 이의 꿈 속으로 들어가 즐거웠던 기억을 되살려줘서 잠시나마 상처를 보듬어준다. 꿈을 잃고 방황하던 친구 승우도 그렇게 위로해주고 승우의 조카 꽃님이의 실어증도 치유해준다. 여기까진 훈훈한 SF이다만 어떤 사업가가 끼어들면서 이야기가 꼬인다. 승우의 소개로 우제에게 도움 받은 사업가는 우제의 ‘치유의 꿈’을 대량생산하자고 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치유의 꿈을 누릴 수 있도록 말이다.

사업가는 우제를 있는 대로 짜내어 온갖 종류의 꿈을 수집한다. 이제 사람들은 돈을 내고 그 꿈을 꾸어서 위안을 느낀다. 익숙하지 않은가? 도처에 널린 힐링의 강연, 책, 운동, 여행 등 상상할 수 있는 모든 형태로 상품화된 ‘치유의 꿈’. 친구를 팔아 넘겼다고 자책감을 느낀 승우는 예전에 받은 우제의 도움을 그리워하나 우제를 직접 만나진 못하고 돈을 내고 꿈을 ‘구입’한다. 웬걸, 원했던 위로는 고사하고 온갖 취향에 의해 다듬어지고 획일화된, 공허한 꿈을 마주친다.

뭔가 차이가 느껴지지 않는가? 연극 초반에 승우가 꾼 꿈은 우제에게 직접 도움을 받아 마련된, 그러니까 인간적 관계에 기반한 ‘위로의 장소’였다. 하지만 나중에 꾸었던 꿈은 그 모든 관계가 거세된 채 돈을 주고 구입한 공산품이었다. 하긴 시장이 지배하는 세상인데 그런 걸 따진다는 게 우습긴 하다. 시장은 제품을 팔 때 어떤 가치를 내걸고 약속한다. 너는 이것을 사면 편안해질 것이다. 자유를 누릴 것이다. 치유 받을 것이다. 그 제품이 ‘힐링’, 치유의 꿈이면 어때? 팔 수 있으면 팔아야지.

많은 소비자들은 이런 마력적이고 불투명한 약속에 알면서도 속아 넘어간다. 하지만 위로, 치유해준다는 그 약속이 그저 눈속임이자 사탕발림이었음을 확인한다면 어떻겠는가? 남는 건 공허감뿐이다. 아차, 분명히 해둘 게 있다. 나는 ‘힐링’ 그 자체를 반대하진 않는다. 여기저기 긁힌 사람들에겐 위로가 필요하다. 다만 수동적인 개인의 소비자로서 힐링을 돈으로 사는 게 아니라, 좀더 적극적으로 인간 관계를 맺고 사회적 연대에 기반해야만 진정한 ‘힐링’이 구현되지 않을까?

요즘 하는 고민과 연극의 내용이 맞물려 글이 길어졌다. 모든 걸 상품화시키는 시장에 맞서 당당하게 ‘아니오!’를 외치는 <트라우마 수리공>. SF적인 상상력으로 가득찬 작품이다만 현실과 묘하게 겹치면서 날 선 질문을 던진다. ‘힐링’의 꿈마저 돈 주고 사시겠습니까?

새로운 과거

2013년 5월 14일

사진이 급히 필요하여 보건소 근처에 있는 아무 사진관이나 들어가 증명사진을 찍었다. 오후에 찾으러 갔더니 사진 속에는 모르는 누군가가 있네. 뉘신지? 포샵질 너무 많이 하신 거 아니에요? 좀 어려 보이면 어때요. 그게 아니라.. 나중에 이거 보면서 옛날 모습 기억하면 좋지. 사진관을 나오며 중얼거렸다. 예전 모습은 이렇지 않았다구요.

운전면허증을 꺼내 든다. 거기엔 내 옛모습이 있다. 120kg의 터질듯한 얼굴이. 뉘신지? 아, 살 빼기 시작한지 벌써 3년이 지났구나. 저녁마다 왜이리 걸으세요? 누구한테 잘 보이려고 운동하는 건가요? 아뇨, 다이어트 중이라. 농담마세요. 영양, 경주에서 사람들이 물을 때마다. 운전면허증을 꺼내 든다. 거기엔 내 옛모습이 있다.

언젠가부터 귀찮아졌다. 굳이 옛모습을 보여주면서까지 설명해야 하나. 그냥. 아, 걷는 걸 좋아해서요. 원래 술 마실 때 안주는 잘 먹지 않아요. 이럴 수도 있잖아. 하지만. 지금과 예전의 나는 완전히 같진 않아도 많은 걸 공유하는 연속된 자아이고, 결정적으로 내 옛모습을 부끄러워하지 않기 때문에. 나는 계속 운전면허증을 꺼내 든다.

뭐, 사진관 아저씨가 무안해질까 싶어 면허증은 꺼내지 않았다만. 그 분이 창조해낸 나의 새로운 과거가 사뭇 충격적으로 다가왔기에 글을 끼적인다.

센트로 히스토리코

2013년 5월 6일

<센트로 히스토리코>는 옛날엔 영광된 과거를 가졌으나 현재 조용한 장소가 되어버린 도시에 대한 추모 혹은 회상이라 할 수 있다. 영화는 포르투갈의 탄생지인 구이마레에스를 네 명의 감독의 각자 다른 시선에 따라 그려내고 있다.

아키 카우리스마키는 아무도 찾지 않는 식당의 주인을 등장시킨다. 회백색의 황량한 배경 위에 둥둥 떠다니는 듯한 원색의 사물이라던지 여기저기 삽입된 뜬금없는 유머가 예전에 본 <르 아브르>(1)를 떠올리게 했다. 페드로 코스타의 “Sweet Exorcist” 편은 장교들이 군부독재 정권에 대항하여 성공한 ‘카네이션 혁명’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혁명에 참여한 군인의 악령(?)과 숨어서 방관하고 있던, 지금은 노인이 된 벤투라 간의 대화가 이어진다. 살아남은 자의 죄책감과 아직도 남아있는 잔재를 청산해야 한다는 감독의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다음 작품인 빅토르 에리세의 “Vidros Partidos”는 오랜 세월에 걸쳐 한 공장에서 일한 노동자들을 회상한다. 이제 공장은 문이 닫혔지만 먼지가 쌓인 식당에 붙여진 사진에는 여전히 그들의 애환이 살아 있고 그 후손이 사진을 보며 아코디언을 따뜻하게 연주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인 것 같다. 마지막 “O Conquistador Conquistado”(정복당한 정복자)에서는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지더라. 옛날에 선조들이 피 터지게 싸운 전장이었건만 지금은 쇠락하여 외국 관광객들의 기념 촬영 장소가 된 구이마레에스. 올리베이라 감독은 글렌 굴드가 연주하는 경쾌한 ‘이탈리아 협주곡’으로 영화를 마무리한다.

고독한 개인, 아픈 현대사, 역사에 휩쓸려 잊혀진 사람들, 그 곳의 치열한 과거를 모르는 채 그저 무심하게 카메라를 찍어대는 관광객들. 이렇게 한 장소를 관통하는 다수의 시선들. 오늘 경주의 밤 거리를 걸으면서 되새김질해보니 영화가 어떤 장소에 접근하는 방식이 근사하게 다가오더라. 지금 우리가 사는 곳을 그렇게 다뤄보면 어떨까? 어디든 많은 이야기 거리가 숨어있지 않을까?

2013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관람함. 원제 <Centro Historico>

(1)르 아브르 감상평 http://blog.suhhyng.com/1301600424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