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월 독서 목록

2013년 1월 30일

나는 시간의 흐름을 곁에 쌓인 책과 술병의 수로 가늠하곤 한다. 벌써 2013년 1월의 막바지이다. 책상에 19권(시리즈 포함해서)의 책이 쌓여있구나. 한 달이 지날 만 하군. 계속 책의 목록만 정리해왔는데 올해부터는 나중에 기억하기 편하게 읽은 책에 짤막한 코멘트를 붙이기로 했다. 모두 자세히 서평을 쓰고 싶지만 쓸 때마다 튀어 나오는 무한 연상을 감당하기 힘들어서. 1월 독서 목록 중 ‘무난하게’ 추천할만한 책은 <당신 인생의 이야기>,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이다. 정말이지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은, 끈기 있는 사람이라면 <인생사용법>을 꼭 읽어보시길.

 

문학(이라 쓰고 소설이라고 읽는다)

1. 인생사용법 – 조르주 페렉 (서평 http://suhhyng.pe.kr/?p=1369 )

삶이라는 방대한 퍼즐을 소설 형식 안에 담아낸 놀라운 작품.

 

2. 당신 인생의 이야기 – 테드 창 (서평 http://suhhyng.pe.kr/?p=1484 )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사고를 풍부하게 하는 작품들의 모음.

 

3. 나와 카민스키 – 다니엘 켈만

예전에 다니엘 켈만의 ‘명예’를 읽었다. 냉정하고 가벼운 필치로 읽는 이를 웃게 하면서 끝에 불편함이 남는 작품으로 크게 인상이 남진 않았다. ‘나와 카민스키’도 비슷한 경향의 작품이지만 더 경쾌하고 유머로 가득하다. 늙은 화가와 젊은 작가의 못말리는 로드무비라니. 결말은 영화 ‘노킹온 헤븐스 도어’를 연상케 하더라. 미술계의 이면을 파헤친다는 점에서 리터드 폴스키의 ‘나는 앤디워홀을 너무 빨리 팔았다’가 생각나네. 나처럼 블랙 유머를 즐기면 모를까 추천하긴 힘들다.

 

4. 아무도 보스를 찾지 않는다. – 오타비오 카펠라니

영화 ‘대부’(마피아 소재)에 쿠엔틴 타란티노의 ‘킬빌’(잔인함, 리듬)을 섞고 가이 리치의 스내치(정신없이 교차되는 사건)를 곁들인 듯한, 영화 같은 소설. 여러 사건이 동시에 진행되면서도 길을 잃지 않는 작가의 서술은 놀라울 뿐이다.

 

5. 고래 여인의 속삭임- 알론소 꾸에또

외모로 인한 따돌림, 어린 시절의 상흔에 시달리는 여자 두 명의 화해와 치유 이야기. 라고 쓰기엔 너무 훈훈하네. 사람 불편하게 만드는 노골적인 감정 묘사가 기억에 남는다. 남자가 쓴 페미니즘 소설인데 이런 묘사가 가능하다니! ‘파수꾼’, ‘캐리’ 등 고교시절의 상처를 다룬 영화 그리고 상반된 두 인물이 거울처럼 같은 내면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쓰카 고헤이의 ‘가마타 행진곡’이 생각난다.

 

비문학

6.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보잘것없이 – 귄터 발라프

기자가 터키인 노동자로 변장하고 노동의 밑바닥 현장을 잠입 취재한 르포. 현대판 노예가 여기 있구나 라는 경악을 하게 만든다. 책은 꽤 두껍지만 본문은 반이고 나머지 반은 이 책으로 인해 작가에게 쏟아진 소송의 기록들이다. 끝까지 이겨낸 귄터 발라프에게 깊은 경의를 표하고 싶다. 다만 이 책을 읽기 전에 같은 작가의 ‘언더커버 리포트’를 읽어볼 것. 독일의 치부가 남김없이 드러난 르포로 한국의 독자들에게도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7. 위로하는 정신, 체념과 물러섬의 대가 – 슈테판 츠바이크 (서평 http://suhhyng.pe.kr/?p=1420 )

내면의 자유를 지키낸 몽테뉴와 자신을 동일시한 작가의 감동적인 기록.

 

8. 내가 고양이를 데리고 노는 것일까, 고양이가 나를 데리고 노는 것일까? – 솔 프램튼

위의 ‘위로 하는 정신’은 평전의 형식을 취한 작품이라면 이 책은 몽테뉴에게 더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도록 여행기, 편지 등을 바탕으로 ‘사람’ 몽테뉴의 모습을 재구성해냈다. 덕분에 ‘수상록’을 읽고 싶게 되었으니 이 책의 임무는 끝난 셈.

 

9. 파스칼의 질문 – 토머스 V. 모리스

파스칼의 팡세에 대한 친절한 해설서. 여러 논증을 통해 신을 믿어야 한다는 결론으로 가긴 하지만 신자가 아닌 입장에서 가볍게 평하기 힘들다. 요즘 이런저런 종교 관련 서적을 읽고 있는데 이후에도 자주 들쳐보게 될 것 같다.

 

10. 절망은 나의 힘 – 가시라기 히로키 (서평 http://suhhyng.pe.kr/?p=1431 )

절망이라는 키워드로 카프카의 산문과 단편 소설을 정리한 에세이. 카프카에 대한 괜찮은 입문서이다. 다만 많은 이들이 이 책만 읽지 말고 카프카의 소설을 접해봤으면 하는 게 내 소망이다.

 

11. 사람의 목소리는 빛보다 멀리 간다 – 위화

위화가 묘사한 열 개의 키워드로 중국의 현재 모습들. 방대한 중국의 일부분에 불과하겠지만 참으로 솔직하고 뜨거운 야그들이 담겨 있다. 작가가 루쉰에 대해 평할 때 쓴 문장이 이 책 전체를 표현해주는 게 아닐지. “그의 문장은 탄환이 몸을 뚫고 가지만 몸 속에 남아 있지 않은 것처럼 빠르고 격렬하게 현실에 다가왔다.” 나중에 이 에세이집을 바탕으로 모옌의 소설을 다시 읽고 서평을 써봐야겠다.

 

12. 깨어나라! 협동조합 – 김기섭

‘협동조합, 참 좋다’를 읽고 더 궁금하여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깨어나라! 협동조합’은 협동조합의 무게추가 ‘소비’로 쏠린 현실에서 협동조합의 가치, 원칙과 철학을 되짚어보고 더 나아가 협동조합이 사회적 기업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는 미래를 그리고 있다. 이 책을 보고 ‘노동’협동조합에 대해 궁금해서 스페인 몬드라곤 협동조합을 다룬 ‘몬드라곤의 기적’, ‘몬드라곤에서 배우자’를 주문하였다. 협동조합의 역사, 발전 과정, 시행착오, 가능성 등이 잘 정리된 책으로 이 방면에 관심있는 사람이라면 거쳐가야 할 책인 것 같다.

 

13. 법은 어떻게 독재의 도구가 되었나. – 한상범, 이철호

저자는 이 책에서 독재 체재에 악용되어 왔던 법을 해부하고 있다. 독일 법철학에 대한 비판의식 없이 형성된 일본식 헌법의 잔재가 결국 독재 체재를 유지하기 쉽게 한 장치라고 하는데. 일단 이 쪽 지식이 일천하니 판단을 유보하련다. 헌법이나 법철학에 관한 입문서 추천 부탁드립니다~

 

만화

14. 아, 팔레스타인! 1권

팔레스타인 문제를 여행자의 시선으로 찬찬히 풀어낸다. 격렬한 감정을 자제하면서 역사적 배경을 비교적 자세히 만화에 담아낸다. 다른 이들도 많이 읽어봤으면 하는 책. 하지만 강렬함만 따지고 보면 같은 주제를 다룬 조 사코의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비망록’을 추천하고 싶다.

 

15. 꿈의 포로 아크파크 (5권 세트) – 마르크 앙투안 마티외

지겹게 반복되는 일상 혹은 꿈에 관한 거대한 농담이랄까. 만화의 한계를 뛰어넘으려 한 만화. 2차원에서 갑자기 3차원으로 발현되는 인물들(3D안경이 들어있다)과 교묘하게 숨겨져 있는 반전의 장치 등 여태 봐온 그래픽 노블 중 가장 특이한 작품이다. 원래 이 작가의 ‘신 신’을 보고 반해 이 작품을 주문한건데. 아방가르드 만화의 최전선을 목격하게 될 줄이야.

지옥은 신의 부재.

2013년 1월 28일

신은 어떤 사람은 눈을 멀게 하고 또 어떤 사람은 눈을 뜨게 하기 원한다는 원칙을 받아들이지 않는 한 우리는 신이 하는 일을 전혀 이해할 수 없다. – ‘팡세’, 파스칼

천사의 강림이 시작된다. 강렬한 섬광이 땅을 뚫고 그것을 목격한 사람들은 기적을 체험한다. 하지만 불행한 사고로 죽는 사람도 많다. 테드 창의 ‘지옥은 신의 부재’ 라는 작품의 서두이다. SF소설집에서 웬 강림이라니. 더 읽어보자. 작가는 복잡한 장치를 심는다. 두 남녀가 있다. 두 명 다 다리가 기형인 채로 태어났다. 남자. 그는 이것 때문에 신을 비난하지 않았지만 믿지도 않았다. 하지만 같이 행복하게 살던 아내가 강림으로 인한 사고로 세상을 떠났고 그녀가 천국에 간 것을 알게 된다. 천국에서 그녀와 같이 있으려면 신을 사랑해야 돼. 여자. 어렸을 때부터 다리 기형을 신이 주신 선물이라 믿어 왔다. 강한 확신과 연설로 명성과 추종자를 얻었고 큰 충족감을 맛보았다. 그러다 섬광을 목격한 순간, 없던 다리가 생기고 완전한 정상인이 되었다. 그녀는 의문을 품는다. 신은 더 이상의 헌신을 바라지 않는 걸까?

작가가 책 뒤에 인터뷰에서 밝히듯이 이 작품은 구약의 욥기를 좀더 꼬아놨다. 갑작스런 재해는 신이 내린 징벌일까? 아니면 하나의 시험일까? 구약에서 욥은 모든 것을 잃는다. 나중에 신은 예전의 상태로 돌려주는, 아름다운 결말이 있긴 하나 찝찝한 교훈을 던져준다. 선善함은 언제나 보상을 받는 것이 아니다. 소설에 나온 두 남녀의 경우가 그렇다. 여태 잘 살아온 사람들이 고통을 겪고 선택의 기로에 선다. 남자는 신을 믿어야 하는가? 여자는 신을 의심해야 하는가? 그들에게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신을 사랑할 수는 없고, 단지 신을 신으로서 사랑하라’라는 메시지가 오히려 고통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작가는 비탄에 빠진 이들에게 종교가 위안을 줄 수 없다면 그 사실 자체를 힘들어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야그를 하고 싶은 게 아닐지.

덧. 재미로 읽기 시작한 소설집이었는데 놀라운 작품들의 연속이더라. 특히 ‘지옥은 신의 부재’는 신자가 아닌 나에게도 다가오는 게 참 많았다. 덕분에 여러 책을 뒤적거려 봤다. 뭐, SF가 아닌 종교에 대한 판타지라고 해야겠다만. 여행하면서 읽은 책 중 이렇게 손에서 놓지 못할 만큼 빨려 들어간 적도 오랜만인 것 같다.

부디, 잘 사세요.

어디까지 가세요? 전 원주에서 내릴 건데 혹시 자고 있으면 깨워주세요. 이상하게 피곤해서. 그런데 안동에는 무슨 일로? 직장이 거기 있군요. 그럼 주말 부부인가요? 네? 그럼 여친은? 이런. 아, 한의사이시군요. 제가 한의원 쪽이랑 많이 친하죠. 삼촌이 약재상하느라. 그리고 양방 약 먹으면 항상 탈이 나서요. 무릎 때문에 침을 자주 맞았어요. 뭐, 나중엔 수술하긴 했지만. 왜 이렇게 요즘 따라 몸에 고장이 잦은지. 너무 막 살아서 그런가? 아뇨, 험한 일 했다는 건 아니고. 예전에 운동을 많이 했는데 참 무식하게 했어요. 고등학교 때 무릎을 다쳤답니다. 그래서 운동 그만 뒀죠. 아, 고향은 원주인데 부산에서 30년 동안 살았어요. 금성고등학교 아세요? 모르시겠죠. 부산진역 근처에 있는데 언덕 꼭대기에 있는 학교랍니다. 제가 고3때 우리 반 분위기가 특이했어요. 다른 반은 보충 수업이다, 뭐다 해서 공부하는데 우리 반은 다 튀었죠. 그러다 허벅지 굳은 살 배기도록 맞고. 영화 ‘친구’ 아시죠? 배경이 부산진 쪽이에요. 제가 66년 생인데 그 영화 보면서 얼마나 반갑던지. 여튼 우리 반이 학기 초엔 60명이었다가 47명이 졸업했어요. 13명은 뭐, 짤리거나 자퇴하거나. 게다가 우리 반에서 3명만 4년제 대학을 갔죠. 반 분위기가 그랬어요. 다들 힘자랑하고, 저도 거기에 휩쓸려서 미친듯이 운동했죠. 지금 돌이켜보면 우습기도 해요. 중고등학교 내내 뭔가 맘잡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주위의 기대라는 게 있어서 바꾸기 어렵더라구요. 평판? 네, 평판을 지키기 위해서죠. 맞아요. 소속감 때문에 그렇죠. 그 땐 그 세계가 전부라고 생각했으니. 한 친구가 기억나네요. 기계체조 하던 정말 힘센 친구였는데, 이 놈이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언젠가 공부 좀 하고 싶다는 거에요. 그런데 주위의 기대 때문에 힘만 쓰고 얘들 패다가. 대학은 당연히 못갔죠. 졸업식 날 어찌나 울던지. 그러다 어디론가 스카웃되서 칼잡이 노릇하더군요. 칼잡이답게 칼 맞아서 은퇴했고. 지금 어느 마트 점장 이라는데. 아 참, 칼은 아니고 깨진 병이었을 거에요. 아오, 걔나 나나 누군가 이끌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이러고 있진 않을텐데. 저만 해도 맨날 가출하고 20대 초반에 2년동안 정처없이 떠돌아다니고. 보헤미안이라구요? 아니에요. 지금 돌이켜보니 다 후회뿐이네요. 20대의 2년은 지금 보면 거의 20년의 가치가 있는 시간인데. 정신차려보니 이제 50을 바라보고 있고. 삶 자체에 대한 미련은 없어요. 하도 이런 저런 데에서 구르다 보니까. 부모님 때문에 사는 거지. 나이 많으시죠.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제가 몇 년 더 살진. 한의사라 그랬죠? 부럽네요. 안정적인 직업이잖아요. 요즘따라 농사 짓고 싶은데 여건도 안 되고. 이제 원주역이네. 잠은 안 자고 이야기만 했네요. 아이고. 부디, 꼭! 잘 사세요.

맥주, 엄마.

2013년 1월 27일

 

내가 어머니한테 물려 받은 게 네 가지 있다. 러시아 문학에 대한 열정, 추리 소설에 대한 열광, 커피에 대한 집착. 그리고 맥주에 대한 애정. 그런데 어머니가 맥주를 끊으신다고 하셔서.

엄마, 이게 뭐야? 무알콜 맥주. 아니, 왜? 그냥. 이게 맛있어? 먹을만해, 특히 맥스 라이트는 진짜 맥주 같네. 웃기지마, 엄마 자신을 속이지 마. 야, 내 맥주 경력이 네 나이를 넘어선단다. 이럴 수가. 내가 아는 사람 중 제일 쿨했던 엄마께서 건강 때문에 무알콜 맥주를 드신단다. 야, 내 나이가 몇이냐, 건강을 챙겨야지. 엄마도 늙는구나. 기분이 울적해졌다. 추운 밤에 무작정 밖으로 나간다. 마트에서 엄마를 생각하며 맥주를 고른다. 러시아, 네덜란드, 독일.. 어디 갔다왔어? 맥주 사러. 뭐 사왔는데? 이런저런 맥주들. 맛만 보자. 러시아 발티카 맥주를 딴다. 이럴 수가, 너무 맛있는데! 미안해, 술 줄이신다며. 야, 며칠 동안 무알콜 맥주 마셨는데. 맞아, 상 받을만해. 난 진짜를 마실 자격이 있지. 당연하지. 500ml 한 캔을 다 마셨다. 다른 것도 가져와봐. 고분고분 맥주를 따른다. 왜 맥주를 피하게 되었는데? 너나 나나 하나 파고들면 끝을 보잖아. 그렇지. 맥주를 마시고 나니까 언젠가부터 기분이 안 좋더라구. 그 기분 나도 알지. 어떻게? 아버지께서 이 광경을 보신다. 아이구, 두 모자가 또 시작이구먼. 어떻게? 엄마가 좋아하는 어린 왕자에서 이런 구절이 있잖아. 무슨? 어린 왕자가 술주정뱅이한테 묻잖아, 왜 그렇게 술을 마시세요, 부끄러운 걸 잊으려고, 뭐가 부끄러운데요, 술마신다는 게. 어쩜, 나랑 문학 취향이 똑같냐. 엄마가 읽어 줬잖아. 내 맘을 표현한 정확한 구절이네. 엄마가 나한테 추리소설로 국어 교육 시킨 거 생각나? 애거서 크리스티! 레이먼드 챈들러, 엘러리 퀸도 포함해야지. 비정파는 싫어, 크리스티가 최고지. 맥주가 떨어졌다. 한 캔 더 따자. 당연하지. 그렇지? 엄마는 진짜를 마실 자격이 있으니까. 이 캔이 마지막이다. 아무렴.

Lancelot

2013년 1월 25일

백발의 아저씨가 갑옷을 입고 어두운 방 안에서 거대한 칼을 휘두른다. 누구랑 싸우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온몸이 부서질 정도로 칼을 휘두를 뿐이다. 그는 이제 슬슬 지쳐간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나지 않고 힘을 짜내 더 치열하게 싸운다. 고독하게 항전하던 그는 마침내 바닥 위에 쓰러지고 만다.

부산시립미술관에서 본 얀 파브르의 ‘Lancelot’. 굉장히 흡인력 강한 비디오 작품이었다. 아티스트란 어둠 속에서 고독하고 치열하게 싸우는 사람이라는 메시지인가. 평소 하던 대로 작품을 보며 머릿속의 글 조각들을 긁어 모은다. 저 고집스런 얼굴, 불굴의 의지를 보니 니체의 말이 생각난다.

“이상주의자란 어둠 속에 홀로 남을 만한 이유가 있고, 그 이유 때문에 어둠 속에 남을 만큼 똑똑하기도 한 동물이다.” – 니체

이어서 생각나는 로베르토 볼라뇨의 인터뷰. 이 쪽이 비디오 작품의 분위기에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내가 스페인어 기사를 옮긴 거라 번역이 좀 어색하지만 문학의 정의에 관해서는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말이다.

“질 줄 알면서도 용기를 가지고 전투에 나가는 것, 그게 바로 문학입니다. .. 문학은 절대, 절대 우연이 아닙니다. 말하자면 운명과 같은 것이죠. 주위 환경의 산물인 어두운 운명은 당신의 선택이 되고 곧 당신의 길이 됩니다. .. 문학의 여정은 귀환 없는 율리시스(오디세우스)의 여정과 비슷합니다. .. 그 끝은 언제나 참혹한 죽음입니다. 지금, 과거, 미래 모두 다. 그 끝은 언제나 참혹한 죽음입니다.” – 로베르토 볼라뇨

‘Lanceot’, Jan Fabre – “말하는 예술가들” 부산시립미술관 (2012.12.22~2013.2.17)

덧. 성만 같은 줄 알았는데 얀 파브르는 ‘파브르 곤충기’ 저자 장 앙리 파브르의 증손자다.

덧2. 유투브에서 이 작품을 찾아봤더니 없더라. 전시회 중에서 가장 맘에 들었는데 아쉽군. 벌써 2주일 전에 갔다 온 미술관 자료를 왜 뒤적거리는지. 또 부산 가고 싶어서 그런가?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

2013년 1월 23일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병균을 시체 뜯어먹는 괴물로 형상화시킨 놀라운 상상력의 산물. 그게 바로 좀비물이다. 괴물들의 위협에 사람들이 어떻게 대처하는가를 지켜보는 것도 이 장르의 매력이기도 하고. 무분별한 독서를 하다 보니 좀비물들을 집대성한 책을 만나게 되었다. 맥스 브룩스의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 좀비를 죽이는데 유용한 무기들. 좀비에 의해 인류가 절멸될 때 생존방법, 좀비 떼에게서 탈출하는 법 등등을 보노라면 이전까지 봐왔던 좀비 영화들이 무한 재생되는 것 같다. 허나 이 책은 영화 설정의 모음집을 넘어서서 저자의 치밀하고 진지한 노력에 의해 하나의 ‘그럴듯한’ 세계를 담고 있다.

괴물들을 보이지 않는 병균으로 환원시켜 보자. 전염병에 휩쓸린 도시는 전기, 수도, 도로 등이 끊기고 도시에 있다는 것 만으로도 생존에 위협을 받는다. 기름 공급도 없으니 차도 몰지 못하고. 말 그대로 전근대 상태로 돌아간다. 그러고 보니 좀비물이란 게, 거의 모든 것을 외부 자원에 의존하는 대도시에 대한 섬뜩한 환상을 구현한 게 아닐까? 저자의 ‘충고’를 따르자면 모든 문명의 이기를 버리고 자연으로 돌아가서 자급자족의 환경을 만드는 게 궁극적인 생존에 이르는 법이라 하는데, 이쯤에서 굉장히 급진적인 생태주의를 떠올린다.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의 백미는 뒤에 부록(?)으로 실려 있는 좀비 사건 연혁이다. 무려 기원전 6만 년경부터 2002년까지 꼼꼼히 기록된, 아니 만들어진 좀비 습격 사례들은 환상적 리얼리즘의 대부인 보르헤스 옹도 감탄하실 만한 생생함을 뽐내고 있다. 기록 끝마다 달린 “이 사건은 정부에 의해 은폐되었다.”도 깨알 같고. 하, 쓰다 보니 진지한 헛소리가 되고 있구나. 여튼 좀비 영화 팬이나 최근 미국드라마인 ‘워킹 데드’를 인상 깊게 본 사람, 맥스 브룩스의 다른 작품 ‘세계대전Z’를 재미있게 읽은 사람이라면 이 ‘좀비 서바이벌 가이드’를 놓치지 마시길.

덧.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나에게 최고의 좀비 영화는 ‘새벽의 황당한 저주’이다.
덧2. 좀비물을 좋아하시는 지명이 형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통영 에피소드

2013년 통영국제음악제 일정(3.22~28)이 나오자마자 숙소를 예약하고 보니 가는 날이 학번 모임이더라. 작년 전주국제영화제 도중 전주에서 강남역으로 가서 학번모임에서 술 마시고 다음 날 다시 전주로 가는 미친 짓을 하였는데 통영에서 그러기엔 좀 힘들지. 여튼 숙소를 예약했으니 세부 계획을 짜자. 무슨 배를 타고 어느 섬을 갈까? 무슨 음악을 들을까? 역시 계획 짤 때가 가장 즐겁다. 지도를 보며 경로를 탐색하다 예전 통영에서의 에피소드들이 떠오른다.

음악회에선 온갖 돌발 상황이 발생한다만 내가 겪었던 일은 특이했다. 협주곡 연주 도중에 어디선가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느린 악장의 어두운 멜로디와 함께 비명소리라. 곡이 끝날 때까지 정체불명의 잡음은 계속 되었다. 짜증이 솟구치면서도 좀 오싹하더라. 나중에 사연을 들어보니 뒤늦게 음악회장을 들어오려던 관객이 바깥 문과 안쪽 문에 갇혀서 어둠 속에서 소리를 질러댄 거였다. 이게 뭐꼬! 중간 휴식시간에 사람들이 거친 경상도 억양으로 욕을 하고 불만을 터뜨리자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마지막 곡 연주가 시작될 때 모두 긴장하였다. 우리 더 이상 망치지 말자. 세상에, 모두들 그렇게 각잡고 음악을 연주하고 듣다니. 기침 소리 하나 없는 고요하고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들려오는 음향. 내가 음악회에서 들은 모차르트 교향곡 연주 중 가장 완벽에 가까웠다.

홀로 여행할 때 ‘2인분의 딜레마’에 빠지곤 한다. 먹을 만한 건 다 기본 2인분이니. 그 날 따라 이른 아침부터 도다리 쑥국을 먹고 싶었다. 중앙시장의 어느 가게로 들어가서. 도다리 쑥국 되나요? 할매가 대답한다. 되지, 근데 2인분인데? 그래도 주세요. 안돼. 네? 다 못 먹을 거야. 먹을 수 있어요. 방금 멍게 들어왔으니까 멍게 비빔밥 먹어. 네. 밥을 비비려고 하는데 할매가 폰을 내민다. 알아 듣기 힘든 사투리를 몇 번이고 들어보니 종이에 적힌 번호를 단축번호 1번으로 지정해달란다. 처음보는 모델이다. 어찌저찌 메뉴를 찾아내 단축번호를 지정한다. 누구 번호에요? 알아서 뭐하게? 아, 네. 식사를 마치고 나오니 할매가 나를 부른다. 네? 고맙네. 뭘요. 담에 오면 1인분 도다리 쑥국을 만들어줄게. 네! .. 올해 통영 가면 그 가게부터 들러야겠어. 그 까칠하신 할매가 계셔야 할텐데.

엔딩노트

2013년 1월 22일

이런 거 해보신 적 있나요? 죽기 전에 꼭 할 일 목록 작성하기. ‘버킷 리스트’라고도 하죠? 이런 목록 보면 여태 돈, 시간, 성격 때문에 해보지 못한 것들이 꼭 들어 가더군요. 해외로 여행하기, 스카이 다이빙하기, 누군가에게 고백하기 등등. 사람마다 다를 것 같은 목록들에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 게 있습니다. 한 번이라도 또다른 나, 그러니까 더 화려하고 재미있는 내 자신을 상상해보고, 가지 않은 혹은 못했던 인생의 길을 맛이라도 보며 떠오르는 잠시 동안의 미소와 만족감.

꽤 오래 전에 봤던 영화 ‘버킷 리스트’가 생각납니다. 암 말기 선고를 받은 두 노인 분들이 여태 해보지 못한 일을 하려 하는데 어마어마합니다. 세렝게티에서 사냥하기, 히말라야 산맥 등정하기, 카레이싱 등등. 죽음에 대처하는 헐리우드 방식인가요? 몸도 가누지 못하는 노인들이 스스로에게 부여한 힘든 미션을 수행하는 걸 보면서 ‘저건 아닌데’ 하며 고개를 갸웃거렸습니다.

지난 주말, ‘엔딩 노트’라는 일본 영화를 봤습니다. 평생 샐러리맨으로 살아온 남자는 정년 퇴직하고 나서 받은 건강검진에서 위암 말기 선고를 통보 받습니다. 여태 일만 하다 좀 쉬려 하는데 삶이 몇 개월 남지 않았다니. 남자는 침착하게 자신만의 ‘엔딩 노트’를 작성합니다. ‘손녀와 있는 힘껏 놀아주기’, ‘한 번도 찍지 않았던 야당에게 투표하기’, ‘가족과 여행하기’, ‘신을 믿어보기’.

앞서 말한 ‘버킷 리스트’들하고는 사뭇 다르죠. 뭐랄까, 좀 소심해 보이기 까지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소박한 생활이라도 그 남자에게는 매우 귀중하였습니다. 삶이 끝나면 다시는 맛보지 못 할 일상의 순간이었으니까요. 이제 남자는 미션을 거의 다 수행하고 가족 곁에서 죽음을 맞이하며 영화가 끝납니다. 영화관을 나오면서 어머니가 자주 하시는 말씀인 “평범한 게 소중한 거야.”를 곱씹어봅니다. 뭔가 하지 못함을 아쉬워하지 않고 지금 할 수 있는 것을 하기. ‘엔딩노트’. 참 담담한 음악과 장면들이었지만 던지는 메시지만큼은 묵직한 영화였습니다.

통영, 마틴 그루빙거

2013년 1월 21일

여행 계획을 짜다 작년 통영국제음악제 생각이 나서. 음악, 바다, 술, 음식이 어우러진 환상적인 여행이었지. 그것뿐 아니라 토마스 그루빙거의 신들린 타악기 연주 덕분에 잔상이 오래 가는 지도 모르겠다. 그루빙거가 K.아베의 ‘오케스트라와 마림바를 위한 프리즘 광시곡’을 기막히게 연주해낸 다음 갑자기 드럼을 가지고 나오더라. 서툰 영어로. 통영의 바다에 반했다. 정말이지 기분 최고다! 이러면서 앵콜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손에 모터라도 달렸나. 그의 드럼 스틱은 128분 음표까지 표현해내는 듯 했다. 원래 프로그램보다 훨씬 더 큰 박수 갈채가 나왔고 내가 방금 전 본 게 진짜였나 싶을 정도로 경이로운 광경이었다. 유투브를 뒤적거리다 비슷한 동영상 하나를 찾아냈으니 함 보시길.

http://youtu.be/Sw1g9qlnOKA

망상, 바냐 아저씨.

2013년 1월 20일

 

야, 너 소개팅 할 때 이러면 안 된다. 왜? 너의 무한 덕력을 감춰야 한단 말이지. 어허 파고드는 걸 덕력이라니, 행복을 위해선 기만과 은폐가 필요하구나. 그렇게 말하지 말고. 충고 고맙다. 뭘. 근데 넌 솔로 잖아? 윽.

H와 대화하다 체호프의 희곡 대사들을 떠올렸다. 서로 대책 없는 이들이 대화하는 장면들. 기차 안에서 그의 희곡을 다시 읽는다. 조용히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각자 답 없는 삶을 견뎌내는 등장인물들이 내게 말을 걸어온다. 웃지마, 너도 다르지 않아. 다행인지 불행인지 작품 여기저기에 사랑이 넘친다. 미적지근하고 망설이다가 이루어지지 않고 지나치는 일방적인 감정들. ‘바냐 아저씨’를 펼친다. 원래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풋풋한 느낌의 ‘갈매기’ 였다만. 요즘 따라 ‘바냐 아저씨’에 나오는 바보 군상의 매력에 빠져들고 있다. 이 어찌할 수 없는 삶들이란. 책에 메모해둔 연출가 레프 도진이 ‘바냐 아저씨’에 대해 남긴 글을 읽어 본다. 체호프의 정수를 잘 표현한 글이 아닌가 싶다.

“인생은 빠르게든, 느리게든 어느덧 흘러 지나가고, 인간은 보물과도 같이 소중한 자신의 시간을 잘 살아내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갈 수도 있었지만 가지 않았던 삶의 다른 길들을 상상해 보기 시작한다. 그 다른 삶 속에서는 비밀스런 꿈들이 실현되고 희망이 이루어지며 가장 달콤한 환상들이 현실이 된다. 그리하여 그는 과거를 소각시키고 현실을 부정하고, 갈 수 있었지만 가지 않았던 삶에 자신을 완전히 내어준다.

삶을 더 깊이 이해할수록, 간극은 더욱 예민하게 느껴진다. 그리고 이 모순은 비극으로 자라난다. 시간은 흐르고 마침내 그는 선택과 마주하게 된다. 삶을 완전히 거부하거나 아니면, 신 또는 운명에 의해 당신에게 주어졌으나 그가 홀로 오롯이 짊어지고 왔던 삶을 자신의 의지와 성격(personality)으로 계속 살아낼 용기를 발견하거나.

체호프은 이 파라독스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고 그는 놀라운 다정함과 때로 거침없는 무자비함으로 이를 분석했다. 이것은 체호프의 연극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바냐 아저씨’를 단순하지만 영원한 주제를 가진, 단순하지만 영원한 멜로디로 창조해낸다.” – ‘체호프의 바냐 아저씨에 대하여’, 레프 도진

4월에는 체호프의 ‘세자매’, 10월경에는 ‘바냐 아저씨’ 공연 일정이 잡혀있는데 아는 이들에게 책을 쥐어주고 끌고 가고 싶은 작품들이다.

그나저나 왜 발리로 가는 버스가 오지 않는 걸까.

Retina (New Tong of Tangier I)

2013년 1월 17일

여행을 갔어. 그 경험을 다른 이들한테 야그하고 싶단 말이야. 그러려면 무엇을 주요 소재로 삼을 것인지 고민해야겠지. 해변가 사진을 올려 내가 여기 있었음을 알리거나 혹은 먹는 것만 보여줘서 식도락 여행임을 암시하거나. 여행기를 구성하려면 일단 ‘선별’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수많은 이미지 중 몇 개만을 선택하고 나머지는 고이 카메라에 저장된 채 잊혀진다. 친구에게 들려줄 사소한 이야기 하나 만드는 데에도 많은 ‘잉여’의 이미지들이 생산되고 버려지는 셈이다.

신로 오타케의 ‘Retina (New Tong of Tangier I)’를 보면서 매우 당황했다. 작가가 탕헤르를 방문하며 받은 인상을 표현하는 작품이라는데 이걸 처음 보고 느낀 건. 웬 쓰레기가 덕지덕지 붙어 있지? 여행하면서 찍은 사진들, 만난 사람들의 명함, 마시고 남은 캔, 거리에서 굴러다니는 광고지, 숙소의 전등갓, 탕헤르에 들끓었던 파리 등등. 평상시 같으면 바로 휴지통으로 직행해야 것들이지만 왜 작가는 그걸 붙여 놓은 건가? 제목 ‘Retina’(망막)이 암시하는 것처럼 신로 오타케의 눈을 스친 모든 것들이 ‘배제’됨 없이 평등하게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어떤 것이 창조되려면 다른 어떤 것이 쓰레기가 되어야 한다. 이 ‘필수’적인 과정은 쓰레기에 양면성을 부여한다. 쓰레기는 모든 창조의 산파인 동시에 극히 가공할만한 장애물이다. 그렇게 매혹과 혐오가 뒤섞인 쓰레기가 나무 판에 붙여진 채 처음엔 공포를 나중엔 경외라는, 독특하게 혼합된 감정을 유발한다. 이쯤에서 현대성이라는 개념을 다시 생각한다. 현대성은 결국 설계 강박증과 설계 중독에 빠진 상태 아닌가? 신로 오타케는 이 무자비한 과정에서 생산되고 잊혀지는 쓰레기에 대한 비석을 하나 세운 게 아닐지.

‘Retina (New Tong of Tangier I)’ – <신로 오타케 개인전>, 선재아트센터 (2012.11.24~2013.1.20)

덧. 이 전시회에 간 게 대선이었으니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신로 오타케의 콜라주 작품을 보고 버려진다는 것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다. 버리지 못하고 모아둔다는 것은 이제 ‘저장 강박’이라는 병명으로 불려지고 있다만. 우린 사물, 사람, 기억 등을 너무 많이 버리고 있는 게 아닌가?

덧2. 지그문트 바우만의 ‘쓰레기가 되는 삶들’, 피에르 바야르의 ‘여행하지 않은 곳에 대해 말하는 법’ 참고.

포로.

2013년 1월이다. 올해는 뭐하고 어딜 돌아다닐까? 계획을 짜려는 순간 갑작스런 기시감에 시달린다. 작년 이맘때 똑같은 고민을 했거든. http://goo.gl/vAiin 계획대로 통영, 전주, 평창, 제천, 부산, 광주에 다녀왔다. 올해도 가겠지? 자주 가는 공연장의 시즌 프로그램을 펼친다. 오, 안톤 체호프의 작픔을 세 개씩이나 공연하다니! 4월, 6월, 11월의 주말 하나씩 잡고. 1, 2, 3, 5, 7월은 어디로? 이렇게 2013년의 퍼즐을 채워나간다. 깨지길 간절히 바라는 혼자와의 약속 조각들. 그러나 굳건하게 지켜질 것 같다. 이로써 순례자의 코스는 완성된다. 순례자라는 단어가 입에서 맴도는 순간 데자뷰인가? 이 단어를 언제 쓰기 시작했지? 재작년 이맘때 똑같은 소리를 들었거든. http://goo.gl/o3Y03 반복되고 있어. 빠져나올 수가 없다. 나 좀 구해줘! .. 201X년 1월이다. 올해는..

올해의 계획을 짜는데 자꾸 멘붕에 빠진다. 누가 보면 행복에 겨운 소리라 할 수도. 뭐 혼자라도 돌아다니지 않으면 할 게 없잖아. 또 이렇게 다니겠지. 마르크 앙투안 마티외의 ‘꿈의 포로 아크파크’를 봐서 그런가? 만화에 난데없는 3차원 회오리라니. 나도 저기에 휘말린 것 같다. 아니면. 원래 그런건가?

절망은 나의 힘.

2013년 1월 16일

카프카의 소설은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 난해하다. 편안하게 이어지는 줄거리는 없고 묘사마저도 간략한, 하나의 추상적인 이미지에 가까운 작품들이어서 몇 페이지 안 되는 단편이라도 쉽게 넘어가는 경우가 별로 없다. 그러면서도 나중에 내가 뭘 읽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고 그저 묘한 여운만 남는다. 하지만 책을 놓고 일상 생활을 하다 어느 순간 마음 뒤 켠에 남아 있는 이미지들이 불쑥 튀어나온다. 굉장히 그로테스크한 느낌으로 소설이 재생될 때, 그게 바로 카프카에 조금이나마 다가간 순간이다.

카프카의 팬인 밀란 쿤데라의 말을 빌려보자. “카프카적인 세계는 이미 알려진 어떤 현실과도 비슷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인간적 세계의 ‘극단적인, 그러나 현실화되지 않은 가능성’이죠. 이러한 가능성이 우리의 실제 세계를 통해서 나타나고 또 우리의 미래를 그려 보여 주는 것처럼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소설이 실제를 탐색하는 것이 아니라 실존을 탐색하는 거라는, 쿤데라의 견해를 듣고 다시 카프카의 소설을 펴보자. 우리가 누구인가를 돌아보게 하는 ‘실존의 가능성’을 염두에 두면 그냥 지나쳤던 글들이 달리 보인다.

이런 감상 방식을 따르지 않아도 카프카에게 다가갈 수 있다. 작품에 개인적 경험들의 흔적이 남아있으니 메모, 편지, 잠언집을 통하면 보다 쉽게 접근이 가능하니까. 그런 면에서 최근에 나온 에세이집 “절망은 나의 힘”은 한 번 읽어볼 만하다. 카프카가 남긴 방대한 개인적 문건들이 읽기 편하게 정리되어 있다. 일독하면 그의 소설이 건조한 추상화가 아닌 그나마 색감 좀 있고 알 듯 말듯한 추상화로 다가올 것 같다. 카프카가 찌질하게 보일 정도로 ‘절망’이라는 주제에만 맞춘 게 아쉽긴 해도 카프카 전집을 처음부터 덜컥 추천하긴 어려우니. 부모, 직장, 인간관계, 꿈 등등 여러 경우에 맞춰 적절한 문구를 배치한 작가의 노력은 참으로 아름답다. 여기에 나오는 글의 분위기는 아래와 같다.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일 때도 또다시 새로운 힘이 솟아오른다. 그것이 바로 네가 살아있다는 증거다. 만일 그런 힘이 솟아나지 않는다면 그때는 모든 것이 끝난 것이다. 다 끝난 거다.”– 카프카

내가 그저 바라는 건 사람들이 이 책에서 멈추지 않고 카프카의 작품을 읽는 것이다. 카프카 참 좋은데, 정말 좋은데 표현할 방법이 없네. 직접 말하기도 그렇고.. 아, 내가 카프카 팬이라 그런가. 이런 책이 나와서 좋으면서도 웬 걱정부터 하는지. 원래 책에 간간히 발췌되어 있는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를 기반으로 내가 세 번째로 좋아하는 단편, Der Urteil(판결) 관련 글을 쓰려 하였는데 어째 작가 감상론이 되어 버렸구나.

위로하는 정신

2013년 1월 15일

여태 별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던 책과 재회했는데 그 책에 빨려 들어간 경험이 있는지? 슈테판 츠바이크의 ‘위로하는 정신: 체념과 물러섬의 대가 몽테뉴’는 그런 독서의 한 순간을 보여준다. 젊은 시절 츠바이크가 접한 몽테뉴의 ‘수상록’은 훌륭한 문체를 지니고 있긴 하나 미지근한 책에 불과했다. 몽테뉴가 그토록 간직하고자 했던 개인의 자유는 1900년대 무렵엔 이미 당연하게 여겨지는 가치였으며 밝은 미래가 인류에게 보장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자유를 빼앗긴 다음에야 그 귀함을 알게 되는 법. 츠바이크는 2차 세계대전이 터지면서 세계가 끔찍하게 추락하는 상황을 마주하게 되었다. 자유는커녕 생존을 지키려는 지점까지 쫓겨나야 했다. 조국 오스트리아를 떠나 영국을 떠돌다 브라질로 망명한 그는 셋집 지하실에서 어느 책을 찾아냈다. 미셸 드 몽테뉴의 두 권짜리 수상록을.. 책에 빠져든 그는 수상록과 기억의 한 구석에 남아있는 책들을 더듬어 몽테뉴의 평전을 집필하기 시작했다.

몽테뉴는 종교전쟁으로 아수라장이 된 유럽 한복판에서 살았다. 르네상스의 향기는 독으로 변해 버렸고 이웃끼리 서로 죽고 죽이는 혼돈의 시대였다. 언제나 이쪽 아니면 저쪽에 설 것을 강요당하던 몽테뉴는 어떤 왕이나 정당에 소속된 적이 없었고 그러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는 자기들이 얻은 ‘새로운 것’이 옮음을 증명하기 위해 생명을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사람들을 경멸하며 자신에게 항상 질문을 던져댔다. “나는 무엇을 아는가?” “나는 어떻게 살고 있나?” 몽테뉴는 광기가 지배하는 시대에서 자신의 내밀한 자아, ‘본질’을 깨끗하게 지키기 위해 정직하고 격렬하게 싸웠고 그 자아를 자기 시대에서 구하여 모든 시대를 위해 보존하는 데 성공하였다. 이러한 ‘자신을 지킨다는 가장 높은 기술’은 그의 책 ‘수상록’에 온전히 담겼고 오랜 시간을 지나, 방황하던 츠바이크의 눈에 들어오게 된 것이었다.

‘위로하는 정신’은 일단 몽테뉴 평전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저자가 힘든 시기에 마주친 몽테뉴의 ‘수상록’을 통해 내면의 자유를 찾아가는 여정이 담긴, 책에 관한 책이다. 과연 츠바이크는 자신의 ‘본질’을 지켜냈을까? 잘 모르겠다. 그는 이 책을 끝마치지 못하고 자살하였으니까. 완성되지 않은 부분들이 맘을 텁텁하게 하지만 ‘체념과 물러남의 대가’이자 ‘진정 위로하는 정신’ 몽테뉴의 모습을 감동적으로 그려낸 작품임은 분명하다.

얼어버린 내면을 쳐부수는 도끼

도대체 우리는 무엇 때문에 책을 읽는 것일까? 자네 말대로 행복해지기 위해서? 그만두게. 책 따위 없어져도 우리는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을 거야. 잘 들어 보게. 우리에게 필요한 책이란, 더 이상 괴로울 수 없을 정도로 슬픈 불행처럼, 자기 자신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처럼, 모든 사람으로부터 분리되어 숲으로 추방될 때처럼, 자살처럼, 우리에게 작용하는 책을 말하는 것이네. 책이란 우리들의 꽝꽝 얼어버린 바다 같은 내면을 쳐부수는 도끼가 되지 않으면 안 되는 거라고. – 카프카가 친구 오스카 폴라크에게 보내는 편지 中.

분재

2013년 1월 14일

어떤 영화나 공연을 보고 나올 때 세상이 조금은 다르게 보이는 경험을 하게 된다. 하늘 색깔, 거리의 광경을 보더라도 평소와 다른 감정들이 솟아오른다. 이 맛에 영화관, 소극장, 미술관들을 드나드는 것일지도. 다만 이렇게 ‘자극’을 찾아 다니는 것에 빠진 나머지 같은 유형, 방향의 작품만 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 생각의 틀을 깨려고 하다 거기에 도금하고 시멘트로 보강까지 하는 꼴이다. 한 발 물러서서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조망하는 게 필요한데. 참 어렵단 말이지. 약간 우울한 상상도 해본다. 단단하게 주조된 사고 방식이 책이나 영화를 본다고 작은 균열이나 생길까? 저 분재마냥 철사와 조임쇠로 정해진 방향대로 뻗어나가는 게 바로 나 자신이 아닐지 자문한다.

<분재>, 쉔 샤오밍 – 부산비엔날레(2012.9.22~11.24), 부산시립미술관.

이번에 부산여행 하면서 시립미술관을 들렀다가 3개월 전에 바로 그곳에서 본 작품이 생각나서.. 그 때 끄적인 메모랑 사진. 좀더 섬뜩한 사진들은 여기 링크로. http://goo.gl/heu6w

할머니, 해운대, 나.

2013년 1월 12일

치매의 친구가 되시기 전, 할머니는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셨다. 할머니, 어디세요? 나 지금 모로코야. 거기가 어디죠? 나중에 사진 보여줄게. 며칠 뒤, 나 지금 속초다. 며칠 전 모로코 아니었어요? 그랬지. 엄마 바꿔줄래? 엄마는 할머니가 어디에 계시든 놀라지 않았다. 그저. 미역이나 멸치 좀 사다주세요.

중고딩 때 지리를 배우면서 놀랐지. 그때 할머니의 움직임은 사람의 동선이 아니라고 여겼다. 이제 집떠나 산골에 살게 된 지금.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니 나도 할머니를 닮은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움직이는 게 더 편하니까. 해운대 바다 보다 문득 요양병원에 계신 할머니를 떠올린다. 어라? 엄마 전화네. 어디야? 부산 해운대에요. 그래. 미역이나 멸치 좀 사다주렴.

오프라인 이미지.

2013년 1월 10일

타인은 나를 어떻게 볼까? 특히 모르는 사람의 경우라면. 아, 그저. 지난 주말에 특이한 일을 겪어서.

종로로 가는 버스를 타고 있었다. 곱게 한복을 차려 입으신 할매가 종이를 내밀며 예식장이 어디냐며 길을 계속 묻는다. 위치가 애매하다. 명동성당에서 내려서 걸어가기도 좀 멀고. 그래서 명동에서 같이 내려 결국 택시를 태워 보내드렸다. 복 받으실 거에요. 연극 상연까지는 시간이 남아 걷기로 한다. 어떤 일본인이 길을 두리번거리다 날 붙잡는다. 관광지도를 보아하니 북촌 구석에 있는 어느 미술관을 가고 싶댄다. 이 또한 애매하다. 처음 가는 사람이 찾아가기 어려운 곳이다. 문득 북촌에 가고 싶어졌다. 미술관이 있는 골목까지 안내해준다. 그 일본인이 정말 고맙다 한다. 뭘요. 대학로에서 연극을 보고 다동에 있는 카페로 걸어간다. 을지로 입구 역에서 어떤 할매가 서있다 나를 부른다. 젊은이! 미안하지만 이 가방 좀 들고 내려가주시겠어요? 다리가 아파서. 개찰구까지 가방을 들어주었다. 고마워요. 복 받으실 거에요. 아까 전에도 들은 소리인데. 카페에 들어가 커피를 주문한다. 또. 누가 나를 부른다. 죄송하지만. 여기 사진 좀 찍어주시겠어요? 그러죠. 여자 4명이 서로 머리를 뒤로 당기면서 미소를 짓는다. 찰칵. 감사합니다. 뭘요. 커피 나왔습니다. 커피를 들고 나오면서. 묘한 날이군. 짧은 시간 안에 고맙다는 말을 네 번이나 듣다니.

동생한테. 야. 왜? 내가 착해 보이나? 응? 아, 오늘 이러저러한 일을 겪어서. 음. 그냥 호구? 아. 그래..

돌아다니면서 낯선 이들에게 받았던 부탁을 되새김질한다. 붐비는 사거리에서 택시기사가 나한테 저기 구걸하는 사람에게 주라고 천원을 받기도 하고.(1) 한적한 영화관에서 상영을 기다리다 어느 노인이 다가와 스마트폰을 주면서 사용법을 모르겠으니 대신 애인인지 아내인지 누군가에게 뜨거운 사과 메시지를 보내달라 요청 받기도 하고. 산을 오르다 아저씨들이랑 쓰러진 나무를 치우기도 하고.. 돌이켜보니 요상한 부탁들을 많이 받았다. 군말 않고 해줬다만. 그러고 보니 불심검문에 계속 걸렸던 유쾌하지 않은 기억도 떠오르네.(2) 그 땐 내가 무슨 범죄형 인상인가 궁시렁댔지.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나의 첫인상은 어떨까?

(1)   http://suhhyng.pe.kr/?p=1397
(2)  http://suhhyng.pe.kr/?p=1243

온라인 자아.

2013년 1월 9일

동생한테. 야. 왜? 내 페북 글 좀 읽고 평해줘. 왜? 사람들 반응이 이상해서. 음. 진지하고 심각하고 특유의 말투가 있는 것 같고. 밝진 않아. 그리고 씁쓸하게 웃겨. 그런 걸 뭐라 하더라? 냉소라 한단다. 그래, 냉소적이야. 잘 모르는 사람이 읽으면 오해하겠는데?
(회상)
연말에 주로 페북으로 보던 어느 선배와 갑자기 연락이 닿아서 만나러 나갔다. 그 분이 날 보더니 대뜸. 오, 많이 밝은데? 네?.. 즐겁게 야그하다가. 다행이다. 생각보다 정상이구나. 네?..
(좀 과거로)
아는 이가 말하길. 형 평소 모습 보면 그냥 동네에서 볼법한 알콜중독자 아저씨인데 페북이나 블로그에 글 올리는 거랑 매치가 안 된단 말이죠. 아니, 온라인에서는 어케 보이는데? 더 이상해요.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아요. 이런. 술이나 마시자.
(더 과거로)
수능을 보고 나서 온라인 상에서 클래식 음악 클럽을 운영한 적이 있었다. 해설, 감상을 자주 올리는 등 꽤나 열심히 활동했다. 그러다 정모를 하게 되었지. 몇 살이세요? 이제 대학생이에요. 오, 어리네요. ID가? ㅁㅁㅁ입니다. 클럽 운영자에요. 아니, 어떻게?.. 글 올리는 거 보고 굉장히 연세가 많으신 분인 줄 알았어요. 20대 후반들이 그렇게 말했다면 도대체 몇 살로 생각한 거지. 게다가 그 모임에선 내가 가장 어렸다. 즐거운 만남이긴 했다만 기분은 찝찝하더라.

불과 몇 년 전까지 현실과 동떨어진 은둔 생활을 해온 터라 외부로 드러나는 이미지에 대해 신경 쓰지 않았다. 글을 쓰든, 음악을 올리든 내가 나를 보는 것이 타인이 나를 보는 것과는 큰 차이가 없을 거라 생각했지. 하지만 아니더라. 여러 반응을 종합해보면 나는 뭔가 꼬여 있고 냉소를 즐기며 쓸데없이 심각한 알콜중독자에 가깝다. 허참. 나는 그저 사람 좋아 보이는 아저씨로 남고 싶은데. 어쩌랴, 이미 내 손을 떠난 문제인 것을.

인생사용법

2013년 1월 8일

언젠가부터 나는 소설 읽기를 다른 이의 경험담을 듣는 것과 비슷하다고 여기게 되었다. 참 재미있고 감동적일 수 있지만 그렇다고 일반화시키기는 어려운 개인의 야그들. 진부한 비유로 표현해보자면. 눈을 가린 채 인생이라는 큰 ‘코끼리’의 일부를 손으로 만져보고 전체에 대해 논하려는 문학 형식이 바로 소설들 아닐지. 이야기 하나하나들이 그 자체로 가치가 있더라도 읽고 듣는 것이 끝나는 순간 삶을 조금이라도 이해했다는 환상은 사라지고 다시 현실로 돌아오게 된다.

이런 냉소적이고 오만한 생각은 조르주 페렉의 ‘인생사용법’을 읽고 나서 와장창 깨졌다. ‘인생사용법’은 한 아파트의 공간을 10×10, 100개로 나누고 임의적인 순서대로 공간들을 묘사한다. 조르주 페렉은 그 곳에 있는 물건들뿐만 아니라 거기 살았던 사람, 가족들, 그 가족의 조상들에 얽힌 야그들까지 들려준다. 100개로 나눠진 이야기의 퍼즐 조각들은 정말이지 다채롭다. 추리소설, 연애담, 출생의 비밀이 얽힌 막장 드라마, 권태로운 일상, 모험담, 기발한 사기행각, 환상 소설 등등 수많은 퍼즐이 모였다가 해체된다. 그리고 계단을 굴러다니는 광고 전단, 창고에 박혀 있는 탁자의 벌레 먹은 다리 같은 잡동사니들도 작가의 손을 거치면 흥미진진하고 사랑스러운 이야깃거리가 된다.

“퍼즐에서 유일하게 중요한 것은 하나의 퍼즐 조각을 다른 조각에 연결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며, 이 점에서 퍼즐의 기술과 바둑의 기술 사이에는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 먼저, 조각들은 오직 짜맞추어졌을 때만 파악 가능한 어떤 형태와 의미를 얻게 된다. 따로 떼어 관찰하면 퍼즐 조각 하나하나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하나의 조각은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자 불투명한 도전일 뿐이다. 하지만 이 조각을 이웃하는 다른 조각 하나와 연결시키는 데 성공하면, 그 조각은 곧바로 사라지면서 조각으로서의 존재를 멈추게 된다. 영어로 ‘퍼즐puzzle’-수수께끼-이라는 말이 아주 잘 나타내듯 이 조각들을 맞추는 데 수반된 강도 높은 어려움 역시 더 이상 존재할 이유가 없을 뿐 아니라, 그럴 이유가 아예 없었던 것처럼 나타난다. 기적적으로 연결된 두 조각은 이제 하나의 조각 역할을 하게 되고, 다시 새로운 실수, 망설임, 혼란, 예상의 출발점이 된다.” – ‘인생사용법’ 서문 중에서

삶의 온갖 변용이 담겨있는 ‘인생사용법’. 책을 덮고 나서, ‘어쩌면 이 작품 안에 인생이라는 코끼리 한 마리가 떡하니 담겨있지 않을까?’라는 환상에 빠진다. 하지만 마술사마냥 수많은 야그의 퍼즐을 능수능란하게 조합해낸 조르주 페렉은 하나 남은 퍼즐 조각을 우리에게 떠넘기면서 소설을 마무리한다. 삶의 여러 야그를 방대한 스케일로, 그리고 아주 정교하게 그려낸 ‘인생사용법’의 아파트에서 며칠 동안은 헤어나오지 못 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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