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은 가장 오래된 TV

2012년 7월 21일

한편에 예술이라고 불리는 것이 있고, 다른 한 편에 커뮤니케이션이라고 불리는 것이 있다. 가끔 둘이 그리는 곡선이 교차한다.(그러나 커뮤니케이션과 전혀 연관이 없는 예술작품도 수없이 많고, 예술적인 면이 전혀 없는 커뮤니케이션도 많다.) 그 지점에 사과 씨앗 같은 것이 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주제이며.. 어쩌면 우리의 꿈일지도 모른다. – “임의접속정보”, 백남준

울창한 숲 속에 TV가 여러 개 박혀 있다. 솔솔 불어오는 바람 속에 인디오의 북소리, 디스코, 생상스의 “백조” 등의 음악이 실려온다. 가공된 정보를 전송하는 스크린이 풀과 나무와 같이 있다니 기묘한 조합이다.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자연을 보며 쉬라는 건지, 아님 정보 기술이 인공적인 면을 벗고 인간화, 자연화하는 걸 상징하는 건지.. 볼 때마다 새로운 생각이 피어나는 ‘TV정원’이다.

이층 계단을 올라가기 전에 볼 수 있는 ‘ 달은 가장 오래된 TV’. 13개의 화면에 달의 여러 모습이 나온다. 보름달, 반달, 초승달, 그믐. 그러면서 드뷔시의 “달빛”이 흐른다. ( http://youtu.be/cJsyMmC76aM ) 옛 사람들은 달을 보면서 온갖 상상을 해왔고 많은 야그를 풀어냈다. 이제 그 자리를 TV가 대신하면서 진정한 쌍방향 매체가 되기를 바라는 백남준의 염원이 담긴 작품 아닐까?

백남준 탄생 80주년 특별전 “노스탤지어는 피드백의 제곱” — 백남준아트센터에서

살인자의 건강법

2012년 7월 19일

죽음을 앞둔 고령의 노벨상 수상 작가 프레텍스타 타슈. 그는 기자들과 인터뷰하면서 독설을 퍼붇는다. <내가 유명해진 건 아무도 내 책을 읽지 않기 때문이다> 베스트셀러 작가인데 아무도 읽지 않다니? <대부분의 사람들은 무슨 책을 읽건 한결 같은 상태로 빠져 나온다>

아멜리 노통브의 “살인자의 건강법”은 처음부터 독서라는 행위에 대해 의문을 던진다. <사이비 독자들은 잠수복을 갖춰 입고, 유혈이 낭자한 내 문장들 사이를 피 한 방울 안 묻히고 유유히 지나간다> 회의에 젖은 주인공은 자신이 저지른 범죄를 그대로 글로 옮겨 ‘미완성’ 소설로 출간한다. 역시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다. 많이 읽히면서도 읽히지 ‘못하는’, 역설이 발생하는 순간이다.

그럼 그는 왜 쓰는가? <매우 엄정하면서도 매우 배타적인 대답을 들려드리리다. 그건 쾌감을 느끼기 위해서요> 이런 ‘배설’된 텍스트를 소화하려면 작가의 모든 과거를 알아내고 그에게 온 정신을 바치는, 철저히 무개성한 독자 혹은 복제된 자아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었다. <추잡함을 숨기지 않는> 글로 장벽을 치고서 이해되기를 원하다니 엄청난 악취미가 아닌가?

아멜리 노통브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대화를 통해 독서와 비非독서의 관계, 이해 받을 수 없는 작가의 절망을 아주 발칙하게 긁어댄다. 25살에 이런 통찰을 보여줄 수 있다니 감탄만 나올 뿐이다. 그녀는 소설 속에서 두 가지 독서법을 제시한다. 자신을 더럽히지 않고 이따금 탄성을 지르고 마는 <은유적 독서법> 그리고 작품 속에 자신을 온전히 던지고 그 안에서 허우적대는 <야수적 독서법>

당신의 선택은?..

적의 화장법

2012년 7월 18일

비행기 이륙이 지연되었다. 세일즈맨은 꼼짝없이, 어떤 정신나간 수다스러운 이한테 붙잡혀 야그를 들어야 한다. 살인, 강간으로 점철된 섬뜩한 야그들이지만 세일즈맨은 빠져든다.. 이렇게 두 명의 치열한 대화로 아멜리 노통브의 “적의 화장법”이 전개된다. 150페이지 남짓한 소설을 읽으면서 온갖 작품들이 생각나더라. 분명 영향을 받은 것 같긴 한데..

대화를 가장한 일방적인 독백. 알베르 카뮈, “전락”
죄의식에 의한 자기 처단, 자아의 혼동. 카프카, “심판”
기억의 조작과 변명. 조르주 페렉, “W또는 유년의 기억”
완전범죄에 대한 도취, 도플갱어.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절망”

반전이 워낙 특색 있어서 자세한 내용을 말하긴 꺼려지지만 이 작품을 정신분석이 가미된 환상소설, 범죄소설로 봐야 할 것 같다. 반전에만 매달리지 마라. “인생의 최대의 모험이란, 모험의 부재라는 것을 알아버린”(1) 자아의 자유 찾기라는 면에서 읽다 보면 새로운 맛이 나니까. 이렇게나 묵직한 주제들을 정신없는 대화들에 버무린 아멜리 노통브에게 경의를 표하면서 그녀의 다른 소설을 집어 든다. 다른 이에게 추천 받은 작가로 또 편식 시작인가!..

(1) “웃음과 망각의 책”, 밀란 쿤데라

미드나잇 인 파리

2012년 7월 15일

“미드나잇 인 파리”? 파리예찬SF영화야. 이렇게 한 단어로 정리할 수도 있겠다만 그러기에는 아쉬운 면이 많아 끄적인다.

선택, 향수, 과거 라는 키워드로 영화를 생각해보자. 주인공 “길 펜더”는 ‘웃기긴 한데 웃고 나면 기억에 남는 게 없는’(1) 영화의 대본을 쓰는 거에 만족하지 않고 소설을 쓰려고 하다가 슬럼프가 오면서 과거의 파리를 방문하는 환상에 빠진다. 새로운 미래로 나아가려 하면서 과거에 빠지다니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허나 낭만으로 가득해 보이던 1920년대의 파리조차도 사람 사는 곳이니 질투, 배신, 싸움이 끊이지 않는다. 현대의 파리에서나 과거의 파리에서나 그저 이방인인 길 펜더가 그 곳에 정착한다고 향수가 사라질까? <향수는 현재에 대한 부정에서 시작한다>(2) 현실에 대한 부정은 과거에 침잠하는 것 외에도 미래로 나아가려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과연 길 펜더의 선택은?

감독은 예전처럼 사정없이 등장인물들을 비틀어대지 않고 따스하게 열린 결말로 인도한다. 아주 멋진 파리의 야경과 함께.. 문득 든 생각. 길 펜더가 우디 알렌의 분신으로서 그의 고민을 대신 표현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다른 시간, 다른 장소였으면 더 잘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어쩌랴. 우리는 물살을 거슬러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려가면서도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는데..(3)

전하의 봄

2012년 7월 10일

“전하의 봄” 중 한 장면. 신숙주를 연기하던 배우는 투덜댄다. 배역에 몰두하면 할수록 동조하게 되는 것 같아 너무 불편하다고. 신숙주는 누구? .. 그는 자상한 남편이자 아버지였습니다. 아내가 자살하고 아들도 제정신이 아니라니 아픔이 많은 남자죠. .. 그는 동료들의 고문을 지켜보고 급기야 노산군(단종)에게 사약을 내릴 것을 수양대군에게 건의한 냉혈한이었다. .. 신숙주의 개인적 경험과 그가 저지른 무시무시한 행동 사이에 엄청난 간극이 있지 않은가? 압권인 건 배우가 처음에 가졌던 거부감은 사라지고 배역에 몰두하며 더 많은 피를 요구하는 장면이다. 너무 많은 야그를 알고 적의는 없어졌으니까. <적이란, 그의 이야기를 당신이 들은 적 없는 사람이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본 “카르트 블랑쉬” 가 기억나다. 중앙아프리카공화국 주민들에게 강간, 학살 등 반인륜적 범죄를 가할 것을 지시한, 콩고의 권력자 ‘장 피에르 뱀바’를 국제사법재판소에 세우기까지의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무지막지한 살육과 통곡의 현장이 지나가고 당황스러운 장면이 나온다. 뱀바의 가족들이 나와 그가 얼마나 다정한 아버지였는지 야그하면서 같이 찍은 사진, 그가 직접 빚어주었다는 컵을 보여준다. 상영이 끝나고 감독과의 영화 야그 중 어떤 관객이 노기 어린 질문을 던진다. 확실히 나쁜 놈이 맞는데 왜 저런 장면을 넣었냐고. 감독은 말한다. 진실은 프리즘과 같은 거라 딱 잘라 말할 순 없고 알아서 판단하세요.

그 땐 이해를 못 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연극의 한 장면에서 깨닫게 될 줄이야. 누군가를 악독한 사람이라고 가정해보자. 피도 눈물도 없는 잔인한, 나와 완전히 다른 존재이어야 ‘믿음’ 이 흔들리지 않는데 풍부한 개인적 이야기를 듣는다면? 신숙주가 되어버린 배우와 질문을 던진 그 관객의 심정.. 가정된 주체는 사라지고 혼란에 빠져버린다. 악은 무엇이지?.. 이런 모호함 속에서 슬라보예 지젝의 말이 그나마 단서가 되지 않을까?

“우리의 내면의 삶에 대한 우리의 경험, 우리의 행동을 설명하기 위해 우리가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우리 자신에 대한 이야기는 근본적으로 거짓말이다. 진실은 외부에, 우리가 하는 행동 속에 있다.” – 폭력이란 무엇인가, 슬라보예 지젝

 

말라스트라나, 군상.

이응노의 “群像군상” 시리즈. 다들 검정색으로 그려진 익명의 군중들이지만 구르고 뛰고 뭔가를 외치고.. 정신없지만 그 안에 각자의 개성들이 담겨 있어 여러번 보게 되는 그림이다. 웬 그림 야그인고 하니. 얀 네루다의 “말라스트라나 이야기”를 읽을 때 “군상” 이 떠올라서. 틀에 박힌 삶을 살아가는 프라하 구시가지 사람들의 애환, 좌절, 다툼 등의 소재를 가지고 자유로운 붓놀림마냥 이렇게 맛깔난 야그를 펼칠 수 있다니. 그림의 군중들이 글 안에서 살아 숨쉬는 듯하다. 상황의 아이러니함 때문에 웃다가 순간 짠해지게 만드는 야그 전개 능력도 대단하다. 물론 작가의 프라하에 대한 진한 애정과 관찰이 있기에 가능한 글들이겠지. 인물 묘사의 생생한 정도만 놓고 봐도 고골의 “뻬쩨르부르크 이야기” 에 비할 만한 단편집인데 많이 알려지지 않아 아쉽다. 얀 네루다의 다른 작품도 많이 번역되었으면..

사진 그림은 이응노의 군상, 1984년작.
얀 네루다의 “말라스트라나 이야기” 알라딘 링크. http://goo.gl/1V1lI

착하지만 도덕적이지 못한 가격

2012년 7월 5일

3240원입니다. 포인트카드 있으세요? 아니오.. 잠깐만. 안동 홈플러스에서 구입한 2L 생수 6개 묶음의 가격으로 리터당 270원이다. 여태까지 500ml짜리를 400원 이하로 사본 적이 없던 나로서는 놀라운 가격이었다. 합리적인 소비를 했다고 흐뭇한 미소를 짓기도 전에 드는 의문은. 이게 말이 되는 가격인가?

첫 번째 가설. “납품업체 단가 후려치기.” 이 방법은 전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방법이다. 독일의 대형마트가 브뢰첸(독일식 빵) 생산공장을 압박하여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납품 받는다는 르포를 본 적이 있었지.(1) 검색해보니 홈플러스에서 납품업체들에게 인건비를 떠넘긴다는 기사가 있더라. ( http://goo.gl/6Xufr ) 의심이 가는 상황이다.

두 번째 가설. “생수는 거들 뿐.” 롯데마트에서 팔던 ‘통큰’ 치킨이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치킨을 미끼 상품으로 활용하려고 했던 것처럼 ‘자체 상표 PB’ 생수도 그런 경우가 아닐까? 미끼 상품을 구석에 배치하고 다른 제품도 더 많이 사게 하려는 전략일 수도 있다.(2)

단지 생수 하나 사면서 든 생각들이었지만.. 더 안타까운 건 안동 홈플러스 코앞에 있는 재래시장들이었다. 인구 17만의 도시 신시가지에 이미 이마트가 들어서 있고 구시가지의 상권의 중심에 홈플러스까지 영업을 한다면 주변은 쑥대밭이 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지난해부터 반대의 목소리가 높았지만 결국 안동시는 개점 허가를 해줬나 보다. ( http://goo.gl/n1YuJ )

매장을 나가면서 보이는 문구. ‘홈플러스에서 착한 가격에 쇼핑하세요~’ 어느 희곡의 표현을 빌려보자면. ‘착하지만 도덕적이지 못한’ 가격(3) 아닐까 싶다.

 

(1)   언더커버 리포트, 귄터 발라프 ( http://goo.gl/rJNIf )
(2)   누가 내 지갑을 조종하는가, 마틴 린드스트롬 ( http://goo.gl/T5nFR )
(3)   보이체크, 게오르크 뷔히너. 원문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인용함..

그는…

2012년 7월 3일

그는 다정하다. 냉담한 나를 대신하여 다른 이들에게 말을 걸고 전화를 하며 문자를 보낸다. 그는 장난스럽다. 이른 새벽에 자는 나를 깨우고 낄낄대며 사라진다. 그는 술을 좋아한다. 이태원에서 그를 떨쳐내기 위해 여러 펍을 돌아다녀도 끝까지 따라다닌다. 그는 끈질기다. 괜찮다. 3시간 정도 걷다 보면 그도 지치니까. 그는 충동적이다. 그가 대책 없이 지른 일들을 수습하느라 진땀 뺀 적이 있었지. 그는 까칠하다. 내 취미를 비웃으며 TV좀 보라며, 주위를 돌아보라며 긁어댄다. 괜찮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이마냥 익숙해졌으니까. 그렇다. 그와 나는 꽤 친하다. 그가 내 책을 읽기도 하고 같이 밥을 먹으며 야그하고 음악을 듣는다. 허나 가끔씩 그가 없다 해도 허전하진 않다.. 웬일인지 그가 며칠 동안 보이지 않는다. 늦은 밤 맥주 한 캔을 딴다. 어디선가 그가 나타나 다가온다. 난 중얼거린다. 또 왔구나. 그는 웃는다. 언제나 곁에 있었어, 내 이야기가 곧 네 이야기이니까. 그렇다. 그는 외로움이다.

허탕

2012년 7월 2일

감옥. 그 곳은 커피, 전화, 담배, 음식 등 모든 것이 갖춰져 있다. 죄수 두 명. 한 명은 사기꾼(장덕배), 다른 이는 사상범(유달수). 모든 것에 만족하면 끝장이다. 카메라와 도청장치가 숨겨진 방 안에서 탈출 시도를 연기하는 것만이 감옥에 대한 죄수의 예의이다. 사상범이 의외로 감옥에 적응을 잘하자 사기꾼이 던지는 한마디. <훌륭한 죄수가 될만한 소질이 있어> 아무리 겉으로는 변화를 외쳐도 마음 한켠에 숨어있는 안주하고픈 욕구를 꼬집는 말 아닐까?

여죄수가 들어오다. 임산부(서화이)다. 제대로 말도 하지 못하는 상태이다. 덕배의 꿰뚫는 한 마디. <게임의 룰이 바뀌었어. 이 공간에서의 최고이자 마지막 배려인 사랑에 중독되면 나가야 할 필요성도 없어지고 바로 끝이지> 달수와 화이는 옥중 결혼을 하게 되고. 여기서 야그가 더 꼬인다. 덕배는 탈출을 위해 화이의 기억을 파헤치고 달수는 그저 자기가 가지고 있는 환상이 깨질까봐 막으려 한다. 화이의 과거가 드러나면서 이어지는 파국.

장진의 “허탕”. 코미디가 아니었다. 하지만 작가의 이런저런 고민이 묻어나는 대사들 덕분에 생각의 가지를 치게 된다. 실존에 대한 공상, 허무, 아무리 일탈을 꿈꿔도 그 자리에서 맴돌고 있는 사람들. 사랑에 대한 정의, 소유욕과 타인에 대한 환상. 장진의 머릿속을 잠시나마 엿본 느낌이다. 그가 쓴 “’허탕’ 치기 전”을 읽어보면 단서를 얻을 수 있다.

“이건 실존이라는 엉망형 명사에 대한 작은 반동이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 내가 머물고 있는 이 공간들이 우리가 믿고 있는 대로 죽도록 아름다운 곳인가. 가족이 죽고, 친구가 병신이 되어 나의 등을 쳐서 먹고 살겠다 하며 우리의 이웃들이 쓰레기가 되어 버릴 때 난 실존하고 있는가. 세상은 실존인가.”

장진이 세상을 보는 방식. 희극으로 시작하여 비극인 척했다가 결국 아무도 웃지 않게 된 연극. 그게 바로 “허탕”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