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티스트

2012년 2월 25일

무성 영화의 아이콘이었던 조지는 유성 영화라는 변화를 거부하고 점점 쇠락의 길로 빠져든다. 유성 영화에 잇달아 출연하면서 성공한 신인 여배우 페피는 조지의 불행을 동정하여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면서 행복하게 마무리된다. 그래. 아름다운 영화다. 표면적으론..

조지는 좋았던 옛날을 상징하고 페피는 ‘당연히 나아가야 할 미래’이다. 유성영화가 대박을 치면서 한껏 기분이 좋아진 페피는 인터뷰에서 선언한다. “That’s life!” 내 방식이 옳다! 얼마나 멋진 승자의 태도인가. 조지는 그 인터뷰를 들으며 퇴장한다. 여기서 끝나지 않고 페피는 조지의 잘나가던 시절의 수집품들을 경매에서 모두 구입해버린다. 도움을 주려고 그런 거였겠지만 조지의 예전 운전기사까지 고용한 걸 보면.. 집착에 가깝다. 조지가 페피의 수집품들을 발견하고 뛰쳐나갈 때 이런 메시지를 느낀 게 아닐까? 네가 가진 걸 모두 가져갔다. 이제 너만 남았다. 허물어져 가는 옛 것을 무자비하게 흡수해버리는 그런 모습. 로맨스로 포장되지 않았다면 섬뜩한 장면들이다.

“아티스트” 는 거의 무성영화에 가까운 흑백영화다. 이런 촬영 방식이 향수를 불러 일으키고 따뜻해서 그런가? 글쎄. 좋지 않은 상황이 벌어질 때도 달달한 오케스트라 음악이 흘러나오니 괴리감마저 느껴진다. 들리는 대사를 은폐하여 밍밍한 장면으로 만들어버린다. 관객은 조지의 고통도 제대로 전달받지 못한다. 격렬한 감정은 일부러 차단시킨다. 이쯤 되니 무성 영화에 대한 오마주인지 비판인지 헷갈린다.

경쾌하게 막을 내렸다만 집으로 걸어오는 내내 몇몇 장면들이 맘을 걸리적거리게 한다. 영화가 말하려는 게 뭐지? 영화는 지고지순한 사랑을 그렸을 뿐인데 내가 까칠한건가. ㅎ

Tinker Tailor Soldier Spy, 2011

2012년 2월 23일

걸핏하면 빌딩에서 뛰어내리고(미션임파서블) 턱시도를 입고 마티니나 마셔대거나(007) 유럽을 방황하면서 들쑤셔놓는(본시리즈) 첩보물이 난무하는 가운데 굉장히 고풍스런 영화가 등장했다.

아직 냉전시대. 비밀스런 문서와 테이프로 녹음되는 전화들, 2차 대전에 쓰였을 법한 암호 타자기. 세상에, 향수를 불러 일으킬 정도다. 그렇다고 무작정 복고풍 영화라고 볼 수도 없는 게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을 오마주한 수수께끼의 장치들을 삽입하면서 스파이의 단골 직업병인 고독함을 절묘하게 끼워 넣는다. 총성은 딱 두 번 들릴 뿐이나 긴장감을 끝까지 유지하는 흔치 않은 영화다.

전체를 살린 건 게리 올드만의 지친 듯하면서도 노회한 연기이지만 조연으로 나오는 배우들도 화려하다. 콜린 퍼스, 톰 하디, 캐시 버크, 좋아하는 배우인데 만년 단역으로 나오는 스티븐 그레이엄, 셜록 홈즈의 베네딕트 컴버배치까지! 최근의 잉글랜드 영화나 드라마를 즐겨본 사람이라면 친숙하면서도 반가운 얼굴들이다.

시끄럽고 화려한 영화에 지친 이들에게 추천하고픈, 잔잔하지만 우아한 첩보 스릴러물.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

2012년 2월 22일

신문들의 칼럼을 읽다 보면 꽤나 당황스러운 글들을 마주하게 된다. 고리타분한 색깔론, 성급한 일반화, 점잖은 충고 등 여러 부류들 가운데 뻔뻔함이 지나쳐 막 끌리는 글도 있다. 도대체 어쩜 이렇게 매력만점의 수사학을 구사하는 걸까?

앨버트 O. 허시먼은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에서 역효과 명제, 무용 명제, 위험 명제라는 3가지 반동적 명제로 정리해낸다. 역효과 명제에 따르면 정치사회경제 질서의 일부를 향상시키려는 어떤 의도적인 행동도 행위자가 개선하려는 환경을 악화시킨다. 예를 들면 ‘복지 기금이 확충되면 가난한 이들을 더욱 게을러지게 할 것이다’, ‘학생 인권 조례 때문에 학교는 엉망이 될 것이다.’ 라는 것들이 있다. 정책 시행 이후 긍정적 혹은 부정적인, 의도치 않은 결과가 나오기 마련이지만 역효과 명제는 전체적인 이득을 무시하고 가장 부정적인 결과에 초점을 맞춰 정책을 공격한다.

무용 명제는 사회 변화를 추구하는 모든 노력은 효과가 없으며 어떤 ‘변화도 만들어내지’ 못한다고 본다. 사회가 인간의 변화를 향한 행동에 어쨌든 반응해서 잘못된 방향으로라도 움직인다면 그것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다는 희망이 존재하지만 무용 명제는 결코 ‘자국도 만들어낼’ 수 없다고 선언한다. 그런 면에서 보면 ‘개혁가’ 들에게 역효과 명제의 주장들보다 훨씬 모욕적인, 보수 진영의 중요한 무기인 셈이다.

마지막으로 위험 명제는 변화나 개혁에 드는 비용이 너무 많기 때문에 그 변화나 개혁은 이전의 소중한 성취를 위험에 빠뜨린다고 주장한다. 뭐만 하면 경제 성장이 저해된다, 종북좌파인 무슨 정당을 지지하면 자유민주주의가 위험해진다.. 익숙한 방법들이다. 이상 세 가지를 조합해서 더 강렬한 호소력을 발휘하는 경우도 많다. 앞서 칼럼들에서 위험론-역효과론, 위험론-무용론 조합이 자주 쓰이는 것 같다. 논리 자체는 위협과 기만으로 점철되어 있지만 ‘이것이 저것을 죽일 것’라는 형태의 제로섬 심리가 주는 흡인력은 대단하다. 풍자나 점잖은 충고까지 곁들이면 효과만점!

좀 비틀면 진보 진영에서도 쓰이는 수사법이다. 3개의 명제는 ‘행동하지 않으면 비참한 결과가 나올 것이다, 신-구의 개혁은 서로를 강화시킨다, 우리의 행동은 역사의 힘에 뒷받침되니 거기에 맞서는 것은 쓸데없다.’로 변용된다. 이렇게 서로에게 답답한 어법을 안고 가면 양 진영간의 토론은 합의하지 않는 다는 합의가 있을 뿐인 ‘귀머거리의 대화’가 된다. 상대방을 공격하기 위해 닮아가는 기이한 현상. 누가 먼저 ‘듣기’ 시작할까? 수사학 분석의 한계인가. 책을 덮으니 이런저런 의문만 많아진다.

Todo cambia

2012년 2월 21일

Mercedes Sosa – Todo cambia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Habemus Papam)을 보다 듣게 된 음악.

이 곡을 부른 메르세데스 소사는 군부독재 시절의 아르헨타니에서 박해를 받다 추방당하기도 했다는데..

그래서 그런지 노래 가사가 더 애절하게 느껴진다.

 

Cambia lo superficial 피상적인 것도 변하고
cambia también lo profundo 심오한 것도 변하고
cambia el modo de pensar 사람들의 사고 방식도 변하고
cambia todo en este mundo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변하네.

Cambia el clima con los años 세월이 흐르면서 기후도 변하고
cambia el pastor su rebaño 양치기도 양떼를 바꾸고
y así como todo cambia 그렇게 모든 것이 변하듯이
que yo cambie no es extraño 내가 변하는 것도 놀라운 일이 아냐

Cambia el mas fino brillante 가장 빛나는 것도
de mano en mano su brillo 사람들의 손을 거치며 빛을 잃고
cambia el nido el pajarillo 새들의 둥지가 바뀌고
cambia el sentir un amante 사랑의 감정도 변하네.

Cambia el rumbo el caminante 여행하던 이들은 방향을 바꾸지,
aunque esto le cause daño 그게 아플지라도 말이야.
y así como todo cambia 그렇게 모든 게 변화하니…,
que yo cambie no extraño 내가 변하는 게 이상할 게 뭐야.

Cambia todo cambia 모든 것은 변해 가네.

Cambia el sol en su carrera 태양도 가는 길을 바꾸지,
cuando la noche subsiste 여러 밤이 계속되면서 말이야.
cambia la planta y se vista 봄이 되면서, 나무들은
de verde en la primavera 초록 빛으로 옷으로 갈아입고

Cambia el pelaje la fiera 동물들은 털갈이를 하고
cambia el cabello el anciano 노인의 머리칼이 변해.
y así como todo cambia 그렇게 모든 것이 변하듯이
que yo cambie no es extraño 내가 변하는 것도 이상 할게 없지

Pero no cambia mi amor 하지만, 나의 사랑은 절대 변하지 않아!
por mas lejos que me encuentre 내가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ni el recuerdo ni el dolor 슬픔이든 기억이든
de mi pueblo y de mi gente 그들에 대한 사랑은 변하지 않았어.

Lo que cambió ayer 지난 날 변해왔던 것은
tendrá que cambiar mañana 내일도 틀림없이 변해가겠지.
así como cambio yo 그래, 내가, 이렇게 먼 땅에서,
en esta tierra lejana 변해 온 것처럼.

Cambia todo cambia 모든 것은 변해가네.

Pero no cambia mi amor… 나의 사랑만은 변함이 없지만…

긍정의 배신

2012년 2월 20일

인생이 꼬였다고 생각될 때 웃어보세요. 긍정의 자세는 병을 예방해주고 다른 사람들도 행복하게 한답니다. 뭔가를 하고, 가지고 싶다고요? 마음 속으로 자꾸 그려보고 이미 가진 듯이 행동하세요. 그러면 원하던 게 이뤄질 겁니다. 긍정의 힘을 믿으세요!

쭈구리한 표정보다 미소가 보기 좋긴 하지만 그걸 넘어선 긍정의 자세가 항상 답일까? “긍정의 배신”에 의하면 계속해서 자아에 긍정을 주입하려는 건 긍정이라는 이름의 채찍질과 최면을 하는 셈이다. 여러 매체들은 시나브로 생기는 분노나 의심과 관련된 부정적인 생각을 계속 경계하게 한다. 현재 상황에 대한 지나친 분석을 막고 개인들에게 책임을 전가시킨다. 너희들의 ‘부정적인’ 마음가짐 때문에 그런 거라고.

책을 읽는 동안 짐 캐리가 주연으로 나온 영화 “예스맨”이 생각났다. 주인공은 매사에 부정적으로 우울한 삶을 살고 있는 것으로 그려진다. 친구의 권유로 참석한 어떤 세미나에서 ‘긍정적인 사고가 행운을 부른다’ 라는 계시를 받고 무슨 일에든 YES! 하니 친구들이 돌아오고 여친도 생기고 승진도 하네? 영화를 파고들어 가면 무한 긍정의 자세는 거의 강박적으로 유지된다. 분명히 거북한 부탁인데도 YES! 상사로서 친한 동료를 해고해야 할 때도 YES! 은행대출 담당자로 일하면서도 대출신청이 들어올 때마다 YES! 재미있게도 “예스맨”은 금융위기가 시작된 2008년에 제작되었다..

좋자고 하는 긍정인데 사람을 피곤하게 만들고 사회를 거덜낸다. 그렇게 놀라운 일도 아니다. 긍정적 사고는 끊임없는 경계의 필요성을 폐기한 것이 아니라 경계의 방향을 내부로 돌린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통제에 반발하는 몸과 마음을 쉬지 않고 감시해야 긍정적 사고를 유지할 수 있다. 이제 개개인마다 긍정으로 가득찬 우주 속에서 살게 된다. 그 곳은 완벽하다. 바라는 그대로 이루어질 테니까. 다만 그 우주는 지독히 외로운 곳이다. 거대한 현실의 문제는 저 밖에 있어 작게만 보인다. 이런 우주를 부수기 위해선 필요한 건? 눈치보지 말고 No!를 외쳐라!

굿 워크

2012년 2월 17일

런던에서 글래스고까지 비스킷을 운반하는 트럭이 있다. 그 안엔 도로를 덮어 버릴 정도의 비스킷이 담겨있다. 반대편 차선에도 글래스고에서 런던으로 가는 마찬가지의 트럭들이 많다. 이 광경을 본 외계인은 비스킷이 제 맛을 내려면 고속도로 600마일 이상을 달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E.F. 슈마허는 “굿 워크” 에서 길 잃은 현대 기술을 설명하며 위 일화를 예로 든다. 가령 런던에서 비스킷을 생산하는 사람이 원가 절감을 위해 런던에서 팔 수 있는 물량 이상을 생산하는 기술을 도입했다 치자. 남는 비스킷을 팔려면 다른 도시로 운송해야 한다. 여기서 경제학의 맹점이 시작된다. 대량 생산하여 대량 운송하면 어쨌든 이득이 남는다. 그런데 이게 진짜 이익일까? 석유가 아직 저렴해서 그나마 유지될 수 있는 위태로운 구조에 불과하다.

현대 기술의 발전은 더 커지고, 더 복잡해지고, 더 자본집약적이며, 환경에 더 폭력적인 흐름으로 진행되어 왔다. 분업화를 극도로 추구하니 노동의 소외가 발생하고 에너지를 많이 소비하니 외부 자원의 수급에 크게 휘둘린다. 이 상황을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하는가? 국유화, 거대 기업의 해체 혹은 인간의 본성 변화? 기술은 가치 중립적이니 상부구조만 바뀌면 해결될까?

E.F. 슈마허는 기술이 바뀌어야 상부구조가 바뀐다면서 중간 기술을 제안한다. 소규모지만 생산성이 높고 자본이 덜 들어가는 기술로 지역 기업에 안착한다면 지역 내에서의 고용을 증가시킬 수 있고 에너지 소비의 절감이 가능하다. 더 나아가 기업을 직원 공동 소유로 운영하며 남는 이득을 복지에 쓰는 선순환 형태도 그려본다. 과학과 기술을 부정하지 않고 단지 그 방향을 바꾸는 게 필요한 것이다.

읽으면서 언제 어떻게 쓰여진 책인지 궁금했다. 저자가 1970년대 중반에 강연한 걸 정리한 거라는데 지금의 생활협동조합, 환경을 고려한 지속가능한 발전과도 맞닿아 있을 만큼 꽤나 톡톡 튀는 내용들이다. 강연을 그대로 옮긴 거에 가깝다 보니 다소 거친 비유와 저자의 종교관이 거슬리긴 했지만 이런저런 공직에 몸을 담은 경험을 토대로 던지는 메시지들이라 묵직하게 다가온다. 이 책에서 가장 맘에 드는 문구.. “’최선’ 만을 쫓는 시대 흐름에 휩쓸려 ‘최선’ 을 누릴 형편조차 안 되는 이들에게서 그들이 누려야 할 ‘차선’ 마저 앗아가면 안 됩니다.”

통증연대기

2012년 2월 15일

통증이란 무엇인가? 인류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기 위해 애써왔다. 도무지 표현할 말이 없어 오직 은유로만 전달되거나 신에 의해 주어진 고난으로 이해되기도 했다. “통증연대기” 는 인류의 역사를 통증의 역사라 가정하고 인간이 고통과 함께 어떻게 살아왔는지 차근차근 설명한다.

밀란 쿤데라가 “고통이야말로 자기중심주의의 위대한 학교이다.” 라고 말한 것처럼 통증이 한 개인의 자아를 구분짓는 무언가였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점차 해부학 등이 발전함에 따라 논란의 매듭이 풀린다. 통증은 은유가 아니라 질병의 생물학적 부산물이었다. 통증은 신이 내린 수난도, 시험도 아니었다. 결국 인간은 마취법에 눈뜨게 되고 자신만만하게 선언하였다. ‘통증은 정복되었다.’

저자 멜러니 선스트럼은 목, 어깨, 팔에 만성적인 통증을 앓고 있다. 통증이 정복되었다는데 왜 나는 아픈걸까? 개인사와 결부시켜 아픔이 시작되었던 때를 회상하기도 하고 이런저런 의사, 물리치료사를 찾아다니면서 통증에 대한 공부를 시작한다. 그러면서 성별, 인종, 계층 편견이 통증치료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통증관련 유전자를 찾는 실험도 결과를 보기엔 아직 멀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더 나아가 만성통증은 신경이나 조직이 새로 손상되지 않아도 뇌에 통증을 조절하는 부위를 감소시킨다는 비밀도 드러난다.

이제 그녀는 뇌과학을 파고든다. fMRI(기능적 자기공명영상)와 PET(양전자 방출 단층촬영) 기술은 어떤 자극을 받았을 때 뇌의 어떤 부위가 활성화되는지를 보여준다. 피험자는 다양한 통증자극을 받고 뇌 영상을 보면서 자극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꿈과 같은 실험적인 요법이 개발되고 있다. 그러나 사람의 생리는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통증과 고통을 기능적 뇌 영상화로 측정하겠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라는 반박도 만만치 않다. 혹시 통증의 신경망 패턴은 지문과 같은 것이 아닐까?

책을 읽는 내내 ‘통증 대 인간’ 대신 ‘개인 대 객관화’, ‘의사 대 환자’ 대결구도가 연상되어 흥미로웠다. 아직도 통증은 ‘개인’적인 경험이다. 환자는 몇 달, 아니 몇 년 동안 통증과 길고도 친밀한 관계를 맺은 상태에 있는 경우가 많아서 주관적인 통증 경험에 건조한 생물학적 언어를 들이대는 걸 탐탁치 않아 한다. 의사와 환자는 계속 서로 다른 언어를 말한다. 우리가 통증을 완전히 이해하여 객관화시켜 야그할 수 있는 날이 올까? 긴긴 글이 끝났음에도 여전히 통증의 역사는 계속되고 있다.

신의 뇌

‘달팽이의 별’ 이라는 다큐를 본 적이 있다. 시청각 장애라는, 듣기만 해도 먹먹한 짐을 지고 살아가는 사람을 소재로 한 영화다. 주인공 영찬은 매일 절대자에게 기도를 하는데 이 부분에서 의아해졌다. 종교가 저 사람에게 그렇게 큰 버팀목이 될 수 있나?

‘신의 뇌’에 따르면 기도를 할 때 감정·행동을 통제하는 전두엽과 사고·연상·인식 기능을 하는 하두정엽이 활성화되면서 감정 조절과 사고·인식 기능, 기억력이 향상된다고 한다. 결국 기도는 신을 만나는 행위이기 이전에 사람들이 자신의 뇌와 마음을 달래고 적극적으로 변화시키려는 노력이기도 한 것이다.

더 나아가서 종교의 중요한 요소엔 ‘교류’ 와 ‘의식’ 이 있다. 아무래도 적대적인 직업생활보단 교회에서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신호를 많이 받게 된다. 이 때 뇌의 세로토닌 수치가 높아지는데 세로토닌은 불공정에 대한 행동 반응을 조절하게 하고 자기통제에 영향을 준다고 알려져 있다. 사회 지위의 차이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감소시켜주는 효과를 지속적으로 보려면 의식이 필요하다. 해마와 전전두피질은 기억의 강화와 저장을 관장하는 영역으로 감정의 영향을 크게 받는 편도와 연결되어 있다. 감정적으로 고양된 순간에 긍정적인 신호가 뇌에 각인이 되는 셈이다.

‘신의 뇌’ 는 현명하게도 신이 있느냐 없느냐 혹은 종교의 필요성에 대한 논쟁을 비껴 나간다. 신앙인은 종교가 뇌를 위안한다는 주장에서 힘을 얻을 것이고 종교에 의문을 품은 사람들은 이 책의 내용을 바탕으로 하여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칼 마르크스의 말을 기억해낼 수도 있을 것이다.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예측으로 지친 뇌에 종교가 납득할 만한 스토리를 제공해준다.. 점점 아리송해지는 가운데 이 책의 결론은 이렇다. 믿음은 뇌를 편하게 한다.

서툰 사람들

2012년 2월 12일

추운 밤의 도시. 여자 혼자 사는 방에 도둑이 침입했다. 그런데 이 도둑 어딘가 어리숙하다. 손목을 묶을 때 수첩에 적어둔 팁을 보면서 하고, 생활비 다 떨어지지 않도록 지갑엔 몇 천원을 남겨두고 간단다. 갑작스레 아래층에 사는 기러기아빠가 자살소동을 벌이고 동네의 경찰차, 소방차가 총출동하면서 도둑은 여자 방에 계속 머무를 수 밖에 없는 상황. 여자와의 야그가 길어지고 통성명, 민증까지 까면서 말을 놓는다. 여자의 아버지가 들이닥치는 등 여러 소동이 벌어지다가 잠잠해지고. 눈이 내리는 밤에 도둑과 여자는 친구가 된다.

여기저기서 지나치는 사람들은 많아도 결국 나에겐 아무것도 아니다. 하지만 극에서처럼 한 명, 한 명 이름을 알게 되고 야그를 시작한다면? 도둑이 여자의 집을 처음 들어왔을 때는 빨리 털고 딴 데 영업뛰자 라는 생각이었지만 여자와 계속 야그를 하다보니 도저히 훔친 걸 가져갈 수가 없었다. 서로 통성명을 하면서 시작되는 인연. 장진은 사람 간의 관계 맺기의 과정을 다소 코믹하면서도 따뜻하게 그려낸다.

왜. 제목을 서툰 사람들이라고 했을까? 삶은 한 번 뿐이니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은 한다만 처음 접하는 여러 상황들이 닥쳤을 땐 서툴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사회는 능숙함, 프로페셔널을 요구하다 보니 삶의 무게가 사람들을 서서히 짓누르기 시작한다.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가족을 불러달라고 울부짖는 기러기 아빠, 30년 이상 돈을 모아 이제야 자기 이름으로 된 집을 마련했다고 뿌듯해하는 여자의 아버지. 술 먹고 여자에게 서툴게 고백하려는 서팔호. 중심 줄거리를 장식하는 곁다리 에피소드들이지만 이 또한 바로 우리 같은 “서툰 사람들” 의 이야기 아닌가.

장면 하나하나들이 웃음과 함께 뭉클하게 다가왔다. 아. 이게 바로 장진 특유의 코미디이구나. 여자 유화이 역을 맡은 예지원의 다소 콧소리 섞은 고음으로 내지르는 연기도 매력적이었다. 아버지, 기러기 아빠, 서팔호 1인 3역을 해낸 김병옥에게 찬사를 바치고 싶다. 배우 김병옥의 연기 때문에 곁다리 에피소드들이 더 묵직하게 느껴졌으니까. 역시 희곡을 살리는 팔 할의 요소는 눈앞에서 벌어지는 배우들의 연기였다. 이채영/조복래 캐스트도 함 챙겨봐야겠다. 같은 동숭아트센터에서 하는 장진의 ‘리턴 투 햄릿’ 과 같이 예매하면 40% 할인해주는 패키지 티켓도 있다 하니 관심 있는 사람들은 확인해보시길~

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

2012년 2월 9일

한글을 추리소설로 배웠다. 엄마덕분에. 애거서 크리스티의 작품에 열광했다. 엄마가 자주 아프셔서 병원갈 때마다 선물로 해문출판사에서 나온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집을 사들고 갔다. 어느덧 애거서 크리스티의 모든 작품을 읽게 되고 80권의 전집을 모으게 되었다. 母子가 다른 작가를 읽을 때마다 한 마디 씩. 엘러리 퀸, 밴 다인, 레이먼드 챈들러 등등. 애거서 크리스티보다 약하구먼.

근데 피에르 바야르 라는 사람이 “누가 로저 애크로이드를 죽였는가?” 에서 감히 에르큘 포와로에게 도전장을 던졌다.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에서의 추리는 잘못되었다! 그는 추리소설에서의 전형적인 기법을 분석한다. 전시. 수많은 증거들을 나열한다. 위장. 유력한 용의자를 명백한 증거들 뒤에 숨긴다. 전환. 범인이 아닌 다른 이를 주목하게 만든다.

애거서 크리스티는 세가지 기법을 능수능란하게 활용하여 소설 안에서 많은 증거들을 보여준다. 하지만 포와로는 그 중 몇몇 만을 취합하여 창의적인 답안을 제시한다. 있을 법 하지 않은 답안.. 추리소설에 대한 추리소설은 이 시점부터 시작한다. 혹시 포와로는 편집광적인 집념에 의해 눈에 보이는 사실을 왜곡하지 않았는가. 그의 추리 이론과 망상의 경계점은 불분명하다. 이렇게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은 미궁에 빠진다.

피에르 바야르는 창조적인 읽기를 제안한다. 이런저런 증거로 떠올릴 수 있는 여러 가능성을, 하나의 결과로 압축하는 것을 거부한다. 포와로의 프레임을 그대로 따라 하는 것은 암묵적으로 그의 망상에 동참하는 것이다. 독자는 각자의 역사에 따라 고독 속에서 텍스트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데 굳이 작가가 의도한대로 맹목적으로 읽을 필요가 있을까?

“끝없는 밤”, “검찰 측의 증인”, “커튼” 을 예로 들어 저자는 텍스트의 모호함을 지적하며 열린 결말을 암시한다. 결국. 숨겨진 범인은 밝혀진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주요 작품들을 섭렵하지 않았으면 심드렁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이 책은 텍스트가 범람하는 시대에 중요한 교훈을 알려준다. 진실은 따로 있을 수도 있으니 언제나 의문을 가지며 읽어야 한다는 교훈을..

그나저나. 금요일 밤 집에 들어갈 때. 이렇게 외칠 것같다. 엄마. 애크로이드를 죽인 범인은 따로 있었어!

 

반란의 조짐

2012년 2월 8일

한 몫 하는 사람이 되라는 소리에 지치십니까. 다른 이에 대한 독설로 당신의 박탈감을 달래고 계십니까. 경제는 성장한다는데 왜 당신은 자꾸 우울해하나요. 매스미디어의 조작과 정보 조작, 경찰력의 강화에 의해 문명과 민주주의가 유지된다는 것을 느끼신 적이 있습니까? 무력한 자신이라는 자유를 만끽하고 계십니까?

“반란의 조짐” 은 80여 페이지 동안 아픈 질문을 던지면서 이젠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한다. 재앙은 앞으로 도래할 무엇이 아니라, 바로 지금의 상태이다. 모든 합법의 틀이 완전히 파괴된 것에 대해 합법적인 이의 제기를 하는 것은 이미 쓸데없는 짓이 되어버렸다. 어떻게 할 것인가?

기존의 게임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진실하게 느껴지는 무언가에 매달려라. 상징적인 점령에 집착하지 말고 되도록 실질적인 타격을 주기 위해 노력하라. 유통망, 네트워크 등 경제에 필요한 요소를 봉쇄하되 그 봉쇄 능력을 조직화 수준에 맞춰 조절하라. 모든 걸 차단하기. 질서에 저항하는 모든 움직임의 시작이다. 익명성 뒤에 숨어 힘을 보호하라. 경찰력이 점거하고 있는 영역을 해방시키되 가능한 한 직접적인 대결을 피하라. 군대에 대해선 정치적으로 승리해야 한다.

어쩌다 이런 아나키스트 매뉴얼을 읽게 되었는지 모르겠다만 최근 이집트, 시리아, 리비아 등지에서 일어난 일들을 연상하게 된다. 폭력은 한 사회의 균열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하나의 파국이다. 그 지경까지 가지 않기 위해 얄팍한 약속이나 핑계를 내세워 간신히 봉합하곤 있지만 도화선이 만들어 지는 것을 피할 수 없다. 이 책에서 연달아 나오는 화려한 수사들을 제외하고 보면 국가에게 던지는 경고의 메시지는 분명해진다. 진정성을 가지고 대비하라. 안 그럼 터진다.

몰락 선진국 쿠바가 옳았다.

2012년 2월 7일

낡은 집은 마이크로 크레디트(소액신용금융)를 받아 친환경자재로 수리한다. 농민이 직접 참여하여 품종을 개량하고 지속 가능한 유기농업을 이끌어간다. 허리케인이 오면 발빠르게 대처하여 사망자가 거의 없다. 튼튼한 공공 의료망 덕분에 영아 사망률이 미국보다 낮고 모유 육아를 위해 최대 1년간 출산휴가를 낼 수 있다. 아바나 시의 문화적 가치가 높은 건물들을 헐지 않고 천천히 복구하며 고용을 창출하고 관광수익으로 지역 복지에 힘쓴다.

“몰락 선진국 쿠바가 옳았다” 에서 밝히고 있는 ‘초저공 비행 국가’ 쿠바의 근사한 모습이다. 어두운 점도 많이 있다. 시장경제의 부분적 도입으로 심해진 빈부격차, 언제나 부족한 물자 배급, 중앙집권적 지배체계 때문에 발생하는 비효율적인 정책 진행, 집단농장의 생산성 저하로 늘어가는 식량 수입, 정부도 묵인하는 지하경제.. 하지만 좋고 나쁨의 기준을 빠르고, 물질적 풍요로움에만 놓지 않는다면 쿠바는 자급자족하는 순환형 사회을 실현하는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쿠바는 공산주의권 국가의 몰락과 미국의 경제 봉쇄 조치 때문에 기존의 경제체제를 유지하는 게 불가능했다. 석유가 없어 운송이 힘드니 지역 단위로 농업과 제조업을 발전시켜야 했고 이를 위해선 중앙정부보단 지역 공동체의 논의가 필요했다. 자연스럽게 민중 참여가 정착되었다. 그렇다. 궁하면 통하는 것이었다.

경제성장을 하지 않으면 풍요롭게 될 수 없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이 나라에서 쿠바 야그를 접하니 적응이 되지 않았다. 검소해도 궁상스럽지 않은 나라. 우아하게 몰락하는 나라. 쿠바는 자원 고갈 이후 세계가 어디로 나아갈지 귀중한 힌트를 던져주고 있다.

안티고네.

2012년 2월 4일

안티고네는 들판에 버려진 폴리네이케스의 시체를 가만히 두라는 삼촌 크레온 왕의 명령을 무시하고 묻어주려다 잡혀온다. 크레온은 안티고네를 어떻게 할지 고민한다. 상당히 간단한 문제다. 자신이 명령을 어기면 엄벌에 처한다는, 즉 실정법에 따라 처형하면 된다. 그렇지만. 모든 비극은 망할 우유부단함에서 시작한다. 내 조카이자 며느리인데 냉정하게 죽일 수 있나. 허나 이 문제를 그냥 덮고 지나가면 왕의 권위가 흔들릴 수 있다. 죽이자. 아니야. 이런 일로 죽이면 시민들의 반발을 사겠지. 안티고네를 설득하자.

두둥. 안티고네 vs 크레온. 격투기에서나 볼법한 케이지 링 안에 들어가 배틀을 시작한다. 그만둬. 싫어요. 꼭 그래야 겠니? 제 오빠를 꼭 묻어야 되요. 아놔. 서로를 설득하려 하면서 언성을 높인다. 흠. 악을 쓴다고 상대방이 더 잘 듣나? 애초부터 듣지 않아서 시작한 건데. 소통의 부재가 계속되다 보니 안티고네와 크레온은 의미없이 소리를 지른다. 이 싸움이 왜 시작되었는지 기억을 못하고 있다. 오직 상대방의 굴복을 원할 뿐. 급기야 안티고네는 의연한 동생의 이미지를 연기하고 크레온은 권위있는 왕의 이미지에 매달린다.

우유부단함은 역시 파국을 부른다. 햄릿도 그랬고. 오이디푸스도 그랬고. 참혹한 결말을 목격한 크레온. 울음을 터뜨린다. 아아. 크레온한테 한마디 하고 싶었다. 그러니까 쿨하게 결정했어야죠.. 잠깐. 사람이 쿨하다면 이런 드라마가 생겨날 수 있었을까? 순간 깨달았다. 소포클레스는 이미 2400년 전에 미련, 애정, 집착의 굴레바퀴를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중앙에 케이지링을 설치해 등장인물간의 대결구도를 강조한 연출은 특이했다. 무대와 객석이 구분되지 않아 처음엔 당황했지만 덕분에 몰입을 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침이 튀길 정도로 가까운 곳에서 배우를 볼 수 있다는 거 흔치 않은 경험이지. 안티고네보다 크레온을 응원하고 싶을 정도로 박완규의 열연은 대단했고. 쿨하지 못한 크레온..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같네.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비망록

2012년 2월 3일

 

호모 사케르. Homo sacer. 문자 그대로 옮기면 신성한 인간. 로마 시대에는 범법자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여 누구나 마음대로 죽일 수 있었지만 대신 신전에 제물로 바칠 수도 없는 존재. 조르조 아감벤은 호모 사케르가 현재까지 존재한다며 ‘벌거벗은 인간’, ‘날 것의 생명’ 으로 다시 명명한다. 법의 바깥에 있어서 인간 이하의 존재로 취급받는 사람들.

“자연 선택 과정에서 생존한, 적응력이 뛰어난 난민들은 잘해 나갈 것이고 나머지는 도태될 것이다. 일부는 사망하고 대다수는 인간쓰레기와 사회 부적응자가 되거나 아랍국가의 극빈곤층에 편입 될 것이다.” – 팔레스타인 난민에 대한 1949년 이스라엘 외무부 보고서의 전망

호모 사케르. 현대사에서 아우슈비츠에서 희생된 유대인들을 먼저 떠올릴 수 있다. 그런데 묘하게도 “팔레스타인 가자 지구 비망록”을 보면서 이 단어를 중얼거렸다. ‘가자 지구’ 라는 게토에서 고통받는 팔레스타인인들과 가자 지구를 봉쇄한 이스라엘인들. 세상에. 70년도 되지 않는 시간에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변신하다니.

저자 조 사코는 1956년에 이스라엘 군에 이뤄진 가자 지구에서의 학살을 추적한다. 많은 팔레스타인인들은 예전 일을 뭣 하러 기억하냐고 손사래를 치지만 그는 여러 보고서에서 분쟁으로 모호하게 표현된 ‘인간쓰레기’ 들의 비공식적인 역사를 다시 기록하려고 노력한다. 그 과정들이 만화로 재현되면서 컷마다 증오와 피비린내가 진동한다. 만화는 1956년과 현재(2000년대)가 동시에 나열하면서 50여년동안 바뀐 게 없고 지옥이 계속된다는 걸 강조한다.

현재도 이스라엘은 테러범을 색출하겠다고, 혹은 유대인 정착촌을 보호하겠다고 가자 지구의 건물을 허물고 있다. 집에서 내몰린 팔레스타인인들은 복수를 다짐하며 자살 폭탄 테러를 감행한다. 이스라엘은 보복으로 난민촌을 습격한다. 그 와중에 유대인들의 로비단체인 AIPAC(미국이스라엘 공공정책위원회) 총회에 미국 대통령이 서두 연설을 한다. 테러와의 전쟁을 계속하겠다고.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는 끝이 보이지 않는 증오의 악순환..

누가 내 지갑을 조종하는가.

2012년 2월 1일

A는 퇴근길에 마트를 들른다. 물건의 위치가 바뀌어서 조금 헤맨다. 그러다 새로 나온 샴푸를 보게 된다. 함 사볼까. 큰 카트에 넣는다. 채소 코너. 물방울이 맺혀 있는 채소들이 싱싱해 보인다. 건강을 위해 저칼로리 시리얼을 골라야지. 계산대에서 목욕/미용용품 쿠폰을 내민다. 포인트 적립카드 있으신가요? 네. 집으로 가는 도중에 택배 기사에게 전화가 온다. 경비실에 맡겨주세요. 그루폰을 통해 싸게 구입한 물건이 왔구나. 흐뭇한 미소를 짓는 A.

이 친숙한 광경을 “누가 내 지갑을 조종하는가” 에 의거하여 분석해보자. 물건의 위치가 바뀐 이유는 소비자가 더 오랫동안 마트에 머무르게 하여 더 많이 사게 하기 위해서다. 새로운 브랜드의 샴푸? 사실 A는 페이스북에서 친한 친구들이 이 브랜드에 대해 야그하는 걸 봤다. 사람은 광고로 받은 정보보단 아는 사람한테 들은 정보를 신뢰하는 경향이 크다. 물방울이 맺혀 있는 채소는 신선함을 가장한 것이다. 일부러 물을 뿌려서 신선하다는 암시를 준다. ‘건강○○’ 이라는 이름의 저칼로리 시리얼. 자연산, 항산화, 생과일이라는 단어들처럼 입증할 수 없는 눈속임에 불과하지만 강력한 효과를 발휘한다.

다음. 목욕/미용용품 쿠폰과 포인트 적립 카드의 관계는 밀접하다. 대기업들은 ‘데이터 마이닝’ 기술로 소비자들이 언제 어디서 무엇을 사는지 적립카드로 축적된 기록을 분석하여 미끼(쿠폰)를 적절한 시기에 내보낸다. 그런 거 동의한 적 없다고? 아무도 보지 않는 가입 약관에 복잡한 어휘로 아주 작게 새겨져 있었다. 그루폰과 같은 소셜 커머스 사이트는 제한된 시간에 제한된 물량을 거부할 수 없는 가격에 내세워 소비자들을 유인한다. 소셜 커머스는 초대된 사람만 살 수 있다는 배타성과 즐거움 같이 중독성 강한 게임이 지닌 요소들을 그대로 지니고 있어 소비자들은 스릴과 성취감에 쉴 새 없이 구매버튼을 누르게 된다.

마케팅과 광고 세상에서 우연이란 없었다. 마케터와 광고업체들은 물건을 팔기 위해 소비자를 압박하고, 부추기고, 거짓과 조작을 예사로 사용하며 심지어 싶은 곳에 뿌리내리고 있는 두려움과 꿈, 욕망까지 먹이로 삼는다. 개인 정보까지 털려 더 이상 숨길 게 없다. 어케하지?

저자는 이렇게 과도하게 네트워크로 연결된 광고 회사와 소비자의 관계를 역으로 이용해보자고 한다. 클릭 한 번으로 기업들의 비밀을 알게 된 세상이 온 이상 가상에서 혹은 현실에서 인맥을 맺고 있는 소비자들이 권력의 주인이 될 수 있다. 결국 개별의 소비자가 아닌 집단으로서 움직이자는 거다. 아직 기업이 갑인 현실에서 다소 맥빠지는 결론이긴 하지만 덕분에 내가 브랜드와 맺고 있는 복잡한 관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지갑을 열더라도 한 번 생각은 해보고 열게 되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