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신자들

2012년 1월 31일

명동 거리를 지나다 보면 3개 국어로 “예수 천국, 불신 지옥.” 으로 외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그 뿐인가. 광화문에서 단순한 음조의 찬송가를 시끄럽게 부른다. 믿어라. 잠시만요. 도를 믿으십니까? 광신자들.. 왜 저렇지?

에릭 호퍼는 “맹신자들” 에서 그들의 속성을 정리한다. 본질적으로 공허한 이들, 공동체에 소속되지 못한 이들, 급격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현실에 불만이 많은 자들. 새로운 종교가 뿌리내리고 세를 확장하기 위해선 이들, 맹신자들이 있어야 한다. 종교만 그런가? 범위를 좀더 넓혀보면 대중운동에서도 물불 가리지 않고 선두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필요하다.

맹신자들은 자꾸 자신의 신념을 전도하려 한다. 허나 여기서 문제는, 이런 전도 충동은 자신이 이미 가진 무언가를 주고자 하는 충동이기 보단 아직 찾지 못한 무언가를 찾고자 하는 열정에 가깝다는 것. 어느 방향이든 상관없다. 우리가 함께 하여 죄의식과 공허함을 잊을 수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들은 성급하여 이것저것 모방하여 획일화되고 창조의 에너지를 질식시킨다.

그들을 이끄는 지도자의 자질에서 사상의 질이 차지하는 비중은 대수롭지 않다. 중요한 것은 자신만만한 몸짓, 타인의 견해는 안중에도 없고 혼자 힘으로 도전하는 근성이다. 좌절한 자들이 지도자를 따르는 것은 단지 자신들이 쓸모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잊게 해주기 때문이다..

감이 잡힌다. 파시즘, 전체주의의 탄생.. 사회, 경제, 역사적인 측면에서 파시즘을 장황하게 분석한 서적은 많았지만 “맹신자들” 은 개인의 입장에서 대중 운동을 바라보고 더 나아가 파시즘의 탄생을 유추하려고 한다. 에릭 호퍼도 사회 변화를 위해선 이런 맹신자들의 필요성을 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대중운동의 격동기가 적절한 선에서 마무리되어야지 끝을 모르면 종교화되고 파시즘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여전히 극단의 믿음이 넘쳐나는 요즘, 한 번쯤은 볼만한 책이 아닐까 싶다.

부자들의 대통령

2012년 1월 28일

니콜라 사르코지는 은연중에 ‘짐이 국가다’ 라고 말한 루이 14세처럼 행동했다. 대통령에 당선되었으니 스스로 국가의 소유주로 생각하고, 그렇게 느끼는 것이다. 그는 프랑스 국민의 대통령이라기보다는 기업체 사장같이 처신했다. 국가에 예속된 모든 기관과 조직 및 기업에 대해서 자기가 원하는 사람을 원하는 곳에 임명할 권리에 대해 누가 감히 왈가왈부 할 수 있느냐는 태도였다.
-“부자들의 대통령”, 미셸 팽송·모니크 팽송-샤를로

이 책의 부제는 ‘니콜라 사르코지의 프랑스에서 벌어지는 과두정치에 관한 연구’ 이다. 과두정치란 돈으로 정치를 지배하고 이득을 쫓기 위해선 이념도 가리지 않는, 똘똘 뭉친 이익공동체가 행하는 ‘사업’을 칭한다. 사업과 정치 간의 경계는 흐려져 국민은 결국 소비자의 위치로 격하되고 정치 참여는 결국 어느 한 쪽만을 향하는 단순한 기술적 선택으로 축소된다.

프랑스의 1%대 99%에 대한 보고서이지만 위에 언급한 문단에 주어와 나라이름만 바꿔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우리나라의 상황에도 잘 들어맞는다. 저자는 그들의 전횡을 막기 위해선 환멸에 차서 투표 기권을 하기 보다는 항상 경계하고 호기심을 가지며 공개되는 문서들을 검토하길 제안하고 있다. 지배자들에 대해 알려고 하지 않는 것은 그 지배체제와 공모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니.. 생소한 프랑스 지명과 유력인사들의 이름들이 별 설명 없이 나열되어 있어 좀 불편하나 정치-경제주체 간의 유착을 파헤치고 있어 여러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에코의 함정

2012년 1월 26일

농협 파머스 마켓에서 유기농 채소를 사고 콜드플레이의 음반을 들으며 하이브리드 차량을 운전한다. 콜드플레이가 음반 만들 때마다 나무 몇 그루씩 심는다잖아. 집에 도착해선 공정무역 커피를 마시면서. 오늘도 지구의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노력했구나.

“에코의 함정” ( http://0.mk/c08ee )에 의하면 별 쓸모가 없는 행동들이다. 유기농이라는 이름의 산업화된 농업이 다시 살아나고 화석연료로 생산된 전기에 의해 굴러다니는 자동차. 묘목을 심지만 불어나는 탄소 배출을 상쇄하지 못한다. 덧붙여 바이오 디젤의 원료인 기름야자 나무 재배를 위해 인도네시아의 밀림이 사라지고 있으며 그 땅에서 지속 가능한 농업으로 먹고 사는 사람들은 쫓겨난다.

굉장히 까칠한 시각으로 ‘녹색 산업’ 을 비틀곤 있으나 독일과 영국에서 건설되고 있는 패시브 하우스의 예를 긍정적으로 보면서 중앙, 지방정부, 지역사회의 긴밀한 협조가 있어야만 진정한 ‘녹색’ 이 실현된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끊임없는 소비에 의해 지속되는 경제 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하고 그러기 위해 필요한 건 정치적 의지임을 강조한다.

옆 나라에 원전사고가 나든 말든 정부에서 녹색이라는 이름으로 원전 확대를 추진하는 나라에서 이 책을 읽으니 다소 이질감을 느꼈다. 책에선 탄소상쇄권의 허구성을 신랄하게 비판하는데 그것마저 없으면 기후 변화는 더 심해질 것같고. 중국, 미국, 인도가 빠진 지금의 탄소 상쇄권 시장이 의미없긴 하지만. 더 어질어질해진다. 결국 소비만 하지 말고 행동하라 이거겠지?

누가 박정희를 용서했는가.

2012년 1월 25일

환상에서 깨어나기. 내가 독서를 하는 즐거움 중 하나다. 방금 다 읽은 “누가 박정희를 용서했는가.”( http://0.mk/fc9c1 )도 ‘환상 깨기’ 의 범주에 넣어야 할 것 같다. 박정희 향수가 아직도 유령처럼 떠도는 현실에 대한 강렬한 한 방이랄까. 10.26사태를 중심으로 군사독재의 어두운 면을 파헤치는 필력은 대단하다. 다만 김재규에 대한 재판을 실감나게 구성하여 재평가를 시도한 것까진 괜찮은데 김재규를 또 다른 영웅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조금 있어 거슬린다. 책에서 밝혔듯이 중앙정보부와 경호실 간의 세력 다툼이 극에 달한 시점이었고 김재규의 ‘거사’ 가 재판 최종변론처럼 순수하게 민주화를 위한 ‘정당방위’ 로만 보기엔 미심쩍은 면이 워낙 많기에. 그래도 하나회의 탄생 비화와 부마 항쟁 당시 지켜지지 않은 발포 명령 등 한국 현대사의 숨가쁜 단면들을 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쓴 소리를 좀 하자면. 인터넷에 게재된 칼럼들을 모아 만들어서 그런지 한 책으로서의 완결성이 부족하다. 김재규 재판에 반 이상의 분량이 할당되어 있고 나머진 뚝뚝 끊어지듯이 에피소드들이 나열되어 있다. 그다지 새로울 것 없는 내용들이 들어있기도 하고. 이 책의 저격 대상이 한나라당 박근혜 비대위원장인만큼 논조는 편향적이고 감정적이다. 재미있긴 하지만 박정희 정권 시절 경제, 노동, 복지 정책의 허와 실을 냉정하게 파헤치고 미약하게나마 방향을 제시하려 한 “박정희의 맨 얼굴” ( http://0.mk/6f343 ) 을 다시 펼쳐보게 된다. 과거의 진실을 욕하는 건 쉬워도 그 걸 뛰어넘는 건 어려우니까..

2020비전

2012년 1월 24일

한국은 어떻게 해서라도 자국 군대를 더 잘 무장시키기 위해 미국의 도움을 바란다. 왜냐하면 한국인들은 자신들을 둘러싼 대국들과 맞설 각오를 하고 있고, 세계무대에서 존중받고 보다 확신에 찬 능력을 지닌 보다 동등한 동반자로서 취급되기를 원한다. 한국은 세계에서 유일하고 진정한 슈퍼 파워와 특별한 관계special relationship를 맺고 있는 것에 대해 자랑할 수 있고, 자랑하고 있다.
– ‘보다 발전적이고 전략적인 한미동맹을 위한 2020비전’

위키리크스에 의해 공개된 알렉산더 버시바우 전 주한 미대사가 2008년 초에 작성한 외교문서. ‘그들은 아는, 우리만 모르는’ 에서 자세히 소개되는 문건인데 보면 한국정부가 ‘글로벌 호구’ 짓을 하고 있었던 게 노골적으로 드러난다. ‘진정한 슈퍼 파워와 특별한 관계special relationship를 맺고 있는 것에 대해 자랑할 수 있고, 자랑하고 있다.’ 우리랑 친하니 자랑스럽지 않아? 미국이 외교문서에 이렇게 적을 정도니 기가 찬다. 한국 정부를 운영하는 그들에겐 국익이 뭔지.. 단지 자신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슈퍼파워 미국의 힘을 빌리고 있었던건가.

Return to Hamlet, 동숭아트홀

2012년 1월 22일

작년 국립극장에서 햄릿을 봤을 때 실망했었다. 뭔가 꼬인 연출은 없나. 꼭 비극으로만 해석할 이유가 있나. 그런 연출이 있다 해도 제대로 구현할 수 있을까. 오늘 그 답을 보게 되었다. 장진이 바라본 햄릿. “Return to Hamlet” 엄밀히 말하면 햄릿을 연기하는 연기자들에 대한 연극이지만 그저 앉아서 변화무쌍한 무대를 감상하면 된다. 배우들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절절히 표현하다가 난데없이 마당극 ‘햄릿’ 으로 바뀌어 햄릿이 “죽어불껀가, 살아불껀가”를 읊조림을 보면서 정신이 혼미해지고 예상치 못한 패러디로 뒤집어진다. 빠른 전개 속에서도 깔끔하게 드러나는 장진 자신만의 연출관과 무대 위에서 땀흘리는 배우들에게 바치는 찬사. 이 모든 게 2시간동안 매끄럽게 이어진다. 연극보러 다닌 게 오래 되진 않았지만 ‘이거다’ 싶은 걸 오늘 보게 되다니. 추운 날의 대학로 원정에서 큰 수확을 얻었네. 4월 8일까지 공연한다니 다른 사람들도 많이 봤으면 좋겠다.ㅎㅎ

The Swell Season, 2011

작년 제천국제음악영화제에서 이 영화를 놓치고 이렇게 위로했지. 그래. ‘원스’ 의 DVD서플 동영상 급일 거야. 영화 뒷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만들었다는, 성의 없는 영화 소개덕분에. 착각이었다. 그 이후 ‘달라진’ 야그와 노래. 영화 주제가로 오스카상을 받고 나서 모든 게 달라지고 서로의 다툼과 술자리까지 촬영 ‘당하는’ 현실에 익숙해지지 못하는 마르케타. 영화 속에선 잘 어울릴 것 같은 커플이 서서히 음악적 견해 차를 확인하면서 돌아서는 순간에서 끝나는.. 줄거리라고 할 만한 건 없지만 흑백의 차분한 영상과 음악덕분에 ‘원스’를 감명깊게 본 사람이라면 꼭 봐야할 다큐멘터리다.

원스 OST중 글렌 한사드의 “Sat it to me now” 에 대한 응답이랄까. 마르케타의 노래로 ”Fantasy man” 이 흘러나올 때 엔딩크레디트까지 다 보고 말았다.

http://youtu.be/c-PEz1TRn_I

가사는.. http://0.mk/fantasyman

There’s diamonds growing in the mountain
Beneath the pressure of all time
They grow in hope and expectation
Waiting for your hands to find
Cause only you could reach inside me
And figure out the worth
Of a life I lived providing
What it was you needed most

And if everything is measured by the hole it leaves behind Then this mountain has been leveled
And there’s no more diamonds in the mine
Go on now just leave it
The timing wasn’t right
And the force that swept us both away
Was too strong for us to fight

Fantasy man you are always one step ahead of me
Well I never heard the warning
I haven’t got things right
Yet the sun came out this morning
And filled my room with light

So go on now, you are forgiven
Let’s put it down to life
The story of two lovers
Who danced both edges of the knife

In the station you’re standing
Not knowing what you want
And the secrets we’re defending
Have become our only bond

Just be patient while I wait here
Our journey is out of sync
While you’re out there running in the chaos
I need some time to think

Fantasy man you are always one step ahead of me
Well I never heard the warnings
I haven’t got things right
Yet the sun came out this morning
And filled my room with light

So go on now, you are forgiven
Let’s put it down to life
The story of two lovers
Who danced both edges of the knife

 

엄마, 아기.

2012년 1월 14일

지난 가을 연합국제보도사진전 중.. 상을 타진 못했지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사진이 있었다. 아프가니스탄의 여자감옥에서 어머니와 아기가 같이 있는 순간을 촬영한 것으로 성화같은 느낌도 주고.. 사진 자체에서 광채가 느껴진다. 소냐 라우디의 사진. 옛 서울역(문화역서울 284)에서 보고 계속 찾다가 포기했는데 며칠 전 부산 전시 관련 기사에서 사진을 찾게 되어서.. 해상도가 낮은 게 안타깝다.

2012년 갈 곳.

2012년 1월 13일
통영국제음악제 2012. 3.23~29
전주국제영화제 2012. 4.26~5.4
대관령국제음악제 2012. 7.23~8.7
제천국제음악영화제 2012. 8월경?
부산국제영화제 2012.10.4~13
광주비엔날레 2012. 9.7~11.11

2012년. 갈 곳이 많다.

부활한 번호.

2012년 1월 11일

카톡 친구 목록에 누군가 새로 떴다. 스맛폰 구입했구나. 추키추키 날려줘야지. 흠칫했다. 익숙한 이름이긴 한데 그 분은 작년에 돌아가셨다. 초딩 딸도 아니고 남편 분도 아니고. 전혀 관계 없는 사람에게 번호가 갔나 보다. 카톡 실행할 때마다 바뀌는 셀카 사진, 삶에 대한 열렬한 긍정의 메시지. 스맛폰 새로 샀구나. 암으로 마지막까지 고생하신 그 분을 생각해보자니 기분이 묘했다. 어릴 때 친구 집 찾아갔는데 전혀 모르는 사람이 살고 있을 때 그 느낌도 들고. 요즘엔 전화번호나 이메일이 제2의 이름이 되버렸으니까. 후. 시간이 지나서 아끼는 사람들 번호로 “김미영 팀장입니다.” 이런 메시지가 날라 온다면?.. 밀란 쿤데라에 따르면 죽음엔 두 가지 측면이 있다고 한다. 죽음이라는 비존재와 시체라는 무시무시한 물질적 상태. 여기에 덧붙이고 싶다. 번호라는 허공을 떠도는 데이터도 있습니다. 그려.

안동, 펑크, 불타는 일요일.

자꾸 잠이 오질 않아, 걸으러 나갔다. 영양군의 랜드마크 ‘SHOW 모텔’ 앞을 지난다. 어라? 저 사람. 몇 번 진료받으러 온 사람이야. 서로 거북하지 않도록. 아니 그 사람이 거북하지 않도록 시선을 다른 데로 돌렸다. 걸음걸이가 불편한 사람인데. 모텔 입구에서 두리번거리다 놀라운 속도로 들어간다. 여기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모텔 옆 가로등에 ‘유교문화축전 영양’ 깃발이 펄럭이네. 큭. 몇 개월 전 일이 생각나서. 막차로 안동터미널에 도착했다. 주차장에 갔는데 글쎄 타이어가 펑크난 거야. 새벽 2시. 해 뜰 때까지 눈 붙일 곳이 필요해. 30분 정도 방황하다 택시를 잡아타고 잘 곳 좀 찾아달라고 했다. 아아. 불타는 일요일 밤 아입니껴. 네? 기사 아저씨가 여기저기 연락하다 고개를 흔든다. 빈 곳이 없어요. 제길. 그렇게 시내 투어 한 번하고 안동역 부근에서 내렸다. 포기하고 차 안에서 자자. 아놔. 궁시렁대며 짐매고 가는데 누군가 붙는다. 쉬었다 가세요. 아뇨. 근데 혹시. 방있는 곳 물어보려다. 그만두자. 결국 차 안에서 일출을 보게 되었다. 아름답더라. 어찌저찌 타이어 땜질하고 영양군으로 운전하다가. ‘안녕히 가십시오.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 안동.’ 그래. 안녕.

이정표

2012년 1월 6일

밤길 걷다 이정표보고 겨울나그네가 생각나 피식. 동쪽은 영덕. 북쪽은 태백. 갑작스레 감정이입. 칼바람 맞으면서 뭐하는 건가 싶다. 어둡디 어두운 한스 호터의 음성으로~

Der Wegweiser (이정표)

Was vermeid’ ich denn die Wege,
왜 난 큰 길을 피하는 것일까
Wo die ander’n Wand’rer gehn,
방랑자들은 큰 길을 찾건만,
Suche mir versteckte Stege
숨겨진 길을 찾는 것일까
Durch verschneite Felsenhöh’n?
눈 뒤덮인 계곡으로 난?

Habe ja doch nichts begangen,
아무 죄도 짓지 않았겄만
Daß ich Menschen sollte scheu’n, –
왜 사람들을 피하는 것일까.
Welch ein törichtes Verlangen
무슨 어리석은 욕망이
Treibt mich in die Wüstenei’n?
아무도 없는 곳에서 헤매게 하는 걸까?

Weiser stehen auf den Wegen,
길 마다 이정표가 놓여,
Weisen auf die Städte zu,
도시로 가는 길을 알려주네;
Und ich wand’re sonder Maßen
나는 계속해서 헤매고 있네,
Ohne Ruh’ und suche Ruh’.
휴식도 없이 휴식을 찾아.

Einen Weiser seh’ ich stehen
한 이정표가 내 앞에 섰다,
Unverrückt vor meinem Blick;
바라봐도 꼼짝 않고.
Eine Straße muß ich gehen,
내 갈 길은 하나 뿐,
Die noch keiner ging zurück.
아무도 돌아온 적 없는 그 길.

빌헬름 뮐러의 시, 한스 호터의 베이스 음성, 제럴드 무어의 피아노.

한국말 참 잘하시네요.

2012년 1월 5일

영양읍내를 산책하다 보게 된 현수막. 이주 여성 우리말 경진대회. 참 잘했어요. 우수상, 장려상. 흠. 켕기는 게 있다. 다문화 정책이라고 하는데 조금만 들여다봐도 한국문화를 교육시키는 ‘단일’ 문화 정책에 불과하잖아. 한글, 음식, 옷, 예의범절 등등. 한국인이 되어라! 한국적인 가치를 지켜야지! 한국인과 결혼하는 이주 여성들이야 의사소통을 위해 지원을 한다 쳐도. 늘어나는 외국인 노동자, 가족 단위의 이주민들한테도 그럴건가. 여기서 살아가려면 우리 문화를 배워야 해. 아님 떠나던가. 오해하지마. 인종이 다르니까 꺼지라는 소리는 아니야. 어디서 그런 큰일 날 소리를! 다만 각자 문화는 지켜야 하지 않겠어? 여기에 적응하려고 하지도 않는데 우리 돈을 가져가려구? 예전엔 과학의 탈을 쓰고 애매한 유전적 차이를 두고 인종을 구분했다면. 이젠 ‘문화’ 라는 탈로 바꿔 쓴 인종주의가 꿈틀거리고 있다. 이런 신인종주의는 비이성적인 신념이나 신앙에 기댄 경우가 많기에 극복하기 참 어렵다. 고민없이 허술한 정책들만 밀고 나가다가는 영국이나 독일처럼 ‘다문화주의는 실패했다.’ 라며 뻘짓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화면 위의 반점.

2012년 1월 3일

이리 줘봐. 쩔쩔매던 어른을 대신해 아이가 조이스틱을 잡는다. 이착륙을 자유자재로 하면서 공격 버튼을 누른다. 아빠 나 잘하지? 그래그래. 광주디자인비엔날레에서 본 광경이다. ‘무인 전투기’ 라는 부스. 약간 어이없긴 했다. 최첨단 무기를 고작 LCD모니터 3대와 조이스틱으로 구현할 순 없지 않은가. 그저 내 생각의 발목을 잡아끄는 건. 저렇게 사람을 쉽게 죽일 수 있나?

‘살인의 심리학’ 에서 데이브 그로스먼은 군인의 살해 행동을 가능케 하는 ‘밀그램 요인’을 제시하는데. 그 중 하나. 피해자와의 ‘기계적’ 거리로서 텔레비전 화면, 열영상 야간투시경, 망원 조준경 등 살해자가 인간성을 부인하게 해주는 여러 기계적 완충장치는 마치 게임을 하듯이 비현실적이고 건조하게 사람을 죽일 수 있게 해준다. 위키리크스에서 공개된 2007년 미군 헬기의 이라크 민간인 학살영상( http://youtu.be/-vtFH79gdxQ )만 봐도 딱 감이 온다.

이제는 이라크나 아프가니스탄으로 직접 갈 필요도 없이 기지 내에서 무인 전투기를 운행하면 된다. 그들이 말하는 ‘안전한 전쟁’. 사람 목숨은 화면 위에서의 반점으로 변할 뿐이고 명령을 성실히 수행한 군인은 퇴근하여 가족들과 식사하며 이런 질문을 들을지도. 오늘은 많이 죽였어?

광주여행 중 찍은 사진과 메모..

내가 사는 피부

2012년 1월 1일

텔레노벨라라는 채널이 있다. 라틴 드라마를 주로 방영하는 곳인데 생각없이 지나칠 때마다 나오는 장면은 대개 이랬다. 흥분하며 속사포같이 대사를 내뱉는다. 격렬하게 몸을 흔든다.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서. 그들에게 ‘죽도록 사랑한다’ 란. 좋든 싫든 간에 상대방도 포함되는 무자비한 말이다. 숨겨왔던 혈연 관계는 촘촘한 그물망을 연상시키고. 우리 식의 막장드라마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런 야그를 꺼내는 이유? 스페인 영화 “내가 사는 피부”의 기본 골격이니까. 여기에 ‘양들의 침묵’ 의 버팔로 빌이 주인공으로 나오는데. 그 버팔로 빌이 부성애도 가지고 있으면서 피그말리온처럼 사람을 하나 주조해내더니 원수와 사랑에 빠지는 거야. 야그만 듣고 보면 상당히 그로테스크할 것같지만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은 영화의 성형외과 의사 마냥 능숙하게 봉합해내고 있다. 지나친 플래시백(회상장면)효과가 거슬리긴 하지만 결말까지의 진행을 위해선 나름 괜찮은 선택이었고 훔쳐보기의 욕망, 거세(!)에 대한 두려움이란 양념을 치면서 하나의 우아하면서도 특색있는 라틴 드라마가 탄생한다. 집까지 걸어오면서 장면들을 곱씹어보니 어두운 구석탱이를 꼬집어 새해의 시작치곤 좀 야릇했지만 뭐 어때.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