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ive New Year!

2011년 12월 31일

토요일 밤마다 심야영화를 예매해둔다. 아 그러고 보니 오늘 12월 31일이구나. 영화관에서 1월1일을 맞겠네. 그래도 상관없어. 오늘 뜨는 해나 낼 뜨는 해는 같지만 오늘은 가만히 있다가 낼은 해를 보려고 우루루 나가고. 2011에서 2012로 바뀌면서 자신도 바뀔 거라 다짐하고. 2013년에도 그러겠지. 몇시간 뒤면 ○○의 해!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Happy New Year! 문자를 돌리고 누군가는 해가 바뀜을 핑계삼아 술을 마실거고. 이 모든. 바뀌지 않는 무한의 대위법 안에서 갑자기 보신각 종이 갑작스런 종지부를 찍고. 해는 변함없이 뜰 거고. 나는 이 모든 것과 상관없이 오리CGV에서 심야영화보고 집까지 걸어오면서. 서기 2012년 1월1일. 음력 1월 8일. 이슬람력(사우디아라비아 기준) 1432년 1월 26일. 단기(!) 4344년를 맞이하겠지.

1년동안 살아오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2012년 어느 좋은 날. 맥주나 한잔 하자구요.
Alive New Year!

꽃봄.

2011년 12월 28일

일어나보니 방 안 온도 13도. 온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스트레칭과 찜질을 하고 나서 출근.
황량한 들판. 얼어붙은 산자락들..
어서 봄이 왔으면.

사진은. 꽃봄, 서다. – 강병인

KCDF갤러리에서.

고통

2011년 12월 26일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는 치통을 과소평과하는 지식인의 말이다. ‘나는 느낀다, 고로 존재한다’ 야말로 모든 생물을 포괄하는, 훨씬 일반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진실이다. 나의 자아는 사유에 의해서는 당신의 자아와 본질적으로 구분되지 않는다. 사람은 많으나 생각은 적다. 우리 모두는 서로 전달하고 차용하고 서로 상대의 생각을 훔치기도 하면서 거의 동일한 것을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만약 누군가가 나의 발을 밟는다면 고통을 느끼는 사람은 나 혼자다. 자아의 토대는 사유가 아니라 고통, 즉 감정 중에서 가장 기초적인 감정인 것이다. 고통을 당할 때는 고양이조차도 상호 교환이 불가능한 자신의 유일한 자아를 의심할 수 없다. 고통이 극에 달할 때 세상은 흔적 없이 사라지며, 우리들 각자는 자기 자신과 홀로 남는다. 고통이야말로 자기중심주의의 위대한 학교인 것이다. – “불멸”, 밀란 쿤데라

블라디미르 나보코프가 ‘인류의 역사는 통증의 역사다.’ 이랬다고 하는데 진짜 그런 것같다. 어느 한 작가의 글들을 주욱 읽다보면 주로 노년기에 자신만의 통증관이 확립되는 걸 느낄 수 있는데 모두 다르다. 작가들만 그러겠는가. 사람들도 각자의 통증관이 있어서 그들의 아픔을 동일시 혹은 계량화 하려하면 화를 낸다. 내 몸은 내가 더 잘안다고. 할머니들, 아줌마들 야그를 주로 듣는 요즘으로선 이런 글들이 계속 와닿는다.

오래된 인력거

2011년 12월 25일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79135

창신시장에서. 어떤 할머니가 리어카를 힘겹게 끌고간다. 아저씨가 묻는다. 오늘 힘들지 않아? 온 몸이 부숴질 것같애. 들어가서 쉬어야지. 싱긋 웃는다. 삼일대로의 고용노동부 건물 앞. 퀵서비스 오토바이가 주욱 늘어서 있다. 그 대열에 오토바이가 하나 선다. 아이고 오늘도 나오셨어요? 쉬셔야죠. 쉬다니! 오늘도 일해야지. 다큐 ‘오래된 인력거’ 를 보면서 그동안 지나쳤던 이들의 대화가 생각났다. 저 분들의 꿈은 무엇일까? 인도 캘커타의 인력거꾼 샬림의 꿈은 오직 하나다. 돈을 모아 삼륜구동차를 마련하는 거. 이제 몇년만 더 고생하면 된다며 웃음을 잃지 않고 땡볕에도 폭우 속에서도 맨발로 인력거를 끈다. 어딘가 어두운 구석이 있는 마노즈. 처음엔 일이 서툴러 샬림의 도움을 받으면서 차차 나아지긴 하지만 여전히 말이 없다. 다큐는 간간히 웃음을 주다가도 사회의 모순에 짓눌리며 살아가는 인력거꾼들을 냉혹하게 카메라에 담아낸다. 인샬라(신의 뜻이니까)! 를 외치며 스스로 위안삼아보지만 그게 쉬운 일인가. 벽에 부딪혀 꿈을 포기해야 하는 샬림의 울부짖음과 처절한 개인사를 털어놓는 마노즈의 흔들리는 눈빛을 볼 때 정말 아찔했다. 그들에게 첨부터 주어진 짐의 무게가 가늠도 되지 않기에. 그럼에도 돈을 벌기 위해 인력거를 끌고. 이렇게 캘커타의 하루는 지나간다. 어떤 희망도 없이..

영화관을 나왔다. 많은 이들이 추위에 몸을 움츠리며 지나간다. ‘이 세상에 흥미롭지 않은 사람은 없다/사람의 운명은 별의 역사와도 같은 것/하나 하나가 모두 독특하고 비범하여/서로 닮은 별은 하나도 없다/../모든 사람에게 그만의 비밀스러운 세계가 있다/이 세계 안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있다/이 세계 안의 가장 무서운 순간이 있다/하지만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알 수 없다’ – “별의 역사”, 예브게니 예프투셴코.

당신은 무슨 이야기를 품고 있나요?..

자화상

크리스마스이브의 계획이 좌절되고. 구질구질하게 집에 있기도 그래서 일단 나갔다. 하아. 사람이 젤 없을 만한 곳은 어딨을까. 추상조각이나 보러가자. 북악산과 북한산 사이에 있는 김종영미술관. 예상대로 한적하다. “인생은 한정된 시간에 무한의 가치를 생활하는 것이고, 예술은 한정된 공간에 무한의 질서를 설정하는 것이다.”– 김종영. 자신만의 ‘완벽한’ 곡선을 위해 돌을 갈아내고 나무를 깎으셨지만 사실 잘 모르겠다. 이게 무한의 질서인가.. 추상조각들, 복잡한 미술관 구조에서 헤매다가 먼지쌓인 가판대에서 도록 하나를 뒤적거렸다. 어라? 조각가의 소묘라. 것두 자화상. 수묵담채, 유화에서 나이가 들어갈수록 단순한 필치로 얼굴을 그려낸다. 1976년 자화상. 종이 위에 사인펜. 휘휘 그은 듯한 선 사이로 굳은 표정과 노려보는 눈이 나타난다. 무한의 가치를 주장하는 가운데 언뜻 보이는 ‘불멸’에 대한 피곤이랄까. 한 조각가의 마음 속을 훔쳐본 것같아 유난히 기억에 남는 자화상이다.

-종로구 평창동 ‘김종영 미술관’ 에서.

궁상.

2011년 12월 23일

똑똑. 네. 쌤. 네. 한방과 진료실 쌤, 여친이 와서 가야 된대. 오후 진료를 대신 봐줘야 겠는데. 별일 없죠?

흙.. 끅. 근원을 알 수 없는 호흡의 용솟음에 목이 메여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거 알아? 지난 저녁에 밥 대신 막걸리 한 병을 마시고 잤어. 아침에 일어나니 속이 아프더군. 그래서 생수 500ml를 철분-비타민제와 함께 흡입했지. 내 몸은 소중하니까. 출근하자마자 대천리 마을회관에 출장 가서 한시간반 타임어택으로 20명한테 침을 놔줬어. 힘들더라. 점심은 보다시피 커피 한 잔과 바게트 빵 몇조각이지. 좀 있다 조퇴를 할 거야. 300km를 3시간 안에 밟아서. 하늘이 두 쪽 나도, 김정은이 축포를 날려도 난 저녁 7시에 집에서 엄마가 해준 따뜻한 밥을 먹을거야. 5일만의 따뜻한 밥. 처음엔 위장이 꼬인 듯 거부하다 싸르르 행복감이 몰려오지. 맥주 한 캔 까고 오리역에 가서 심야영화 한 편보고 추위에 떨며 집까지 걸어올거야. 크리스마스이브 아침 9시에 일어나 인천연안여객터미널로 가서 쾌속선을 타고 연평도로 갈거야. 그래. 연평도. 24시간동안 숨쉬듯이 술을 마실거야. 25일엔 나도 모르게 집에 와있겠지. 26일엔 휴가를 내서 혼자. 영화 두 편과 연극 한 편을 보고 밤새 졸음에 쩔어 영양으로 돌아오겠지.

불과 9초 남짓한 침묵이었지만 여사님은 흠칫하며 뒤로 물러섰다. 내 눈과 표정을 숨길 수 없었기에. 순간 가족들의 충고가 내 귀를 스쳐갔다. ‘형탁아, 넌 가끔 눈빛에 살기가 끼더라. – 아빠’ ‘오빠, 왜 아까 당장 꺼지란 눈빛을 하고 있었어? – 동생’, ‘야, 딴데봐. – 엄마’

아아. 갓 중3되는 아들을 둔 평범한 아줌마한테 무슨 짓인가. 궁상과 회한의 눈물이 나와 얼른 돌아서서 입술을 깨물며 속삭였다. 조퇴할거라서요. 힘들 것같아요. 커피 뭐 드시겠어요? 라떼? 아메리카노? 드립?..

가장 편한 걸로 주세요..

2011년 결산.

2011년 12월 22일

2011년 결산하는데.. 정말 혼자.서도 잘 다녔구나. 기억나는 거 위주로.

간 곳.
강릉. 경포대, 카페거리, 참소리박물관
춘천. 축구보러. 자헌이보러.
양구. 박수근 미술관. 근데 박수근 그림이 별로 없음.
대전. 대전시립미술관, 이응노미술관, 경유지로 여러번 지남.
대구. 공보의 연수. 양꼬치가 땡겨서. 여행다니면서 주로 경유지.
포항. 술마시러. 북부해수욕장, 환호해맞이 공원, 포항시립미술관
영덕. 영해면(대진 해수욕장), 강구항, 하저해수욕장
울산. 술마시러.
부산. 충동여행.자갈치시장. 달맞이길, 해운대, 부산국제영화제.
청주. 공보의 연수, 상당산성
부여. 궁남지, 국립부여박물관, 금강 유역
고창. 기껏 가서 비구경만 하고 옴.
군산. 옥산저수지 둘레길.
익산. 미륵사지. 익산역에서 걸어가다 쓰러질뻔.
전주. 한옥마을, 전주천따라걷기, 7종의 막걸리 마시다 터미널에서 노숙.
광주. 광주디자인 비엔날레, 광주시립미술관, 망월동 묘지
제천. 제천국제음악영화제. 메르세데스 소사의 ‘칸토라’
안동. 병산서원, 농암종택(예던길 강추), 하회마을, 도산서원 등등.
봉화. 청량사..

철도
경부고속선, 경부선, 중앙본선(무궁화), 호남본선, 전라선, 영동선(동해역~강릉역사이 바다끼고 달림)

영화관에서 본 영화.
무산시대, 혜화,동. 파수꾼. 제인에어. 쿠바의 연인. 그을린 사랑. 결혼(소비에트시절, 체호프원작). 트루맛쇼. 캔사스시티. 하얀 정글. 선물가게를 지나야 출구. 50대50, 메카닉, 어이그 저귓것, 메르세데스의 칸토라, 손님들(마테오가로네). 첫사랑(마테오 가로네), 이브 생 로랑의 라무르, 두만강, 소울키친, 거짓의 F, 오슬로의 이상한 밤. 우리에겐 교황이 있다.(BIFF) 평화유지작전.(BIFF) 토르:천둥의 신. 트리오브라이프. 환상의 그대. 아이엠러브. 바빌론의 아들. 굿바이, 평양. 미셸 페트루치아니, 끝나지 않은 연주. 까르트 블랑쉬(BIFF). 돼지의 왕. 에릭로메르 특별전(나무, 시장, 메디아테크. 겨울이야기. 레네트와 미라벨의 네가지 모험. 녹색 광선. 모드의 집에서 하룻밤.)

미술관, 박물관
서울시립미술관 – 이미지의 수사학. 색채의 마술사 샤갈. 베르나르트 뷔네.
한가람미술관(예술의 전당) – 오르셰 미술관전. 훈데르트바서 특별전.
서예박물관(예술의 전당) – 국제 타이포그라피 비엔날레
대림미술관 – 위르겐텔러 사진전. 주명덕 사진전. 칼 라거펠트 사진전.
덕수궁미술관 – 소통의 기술. 휘트니 미술관 초청전
아프리카 미술관(종로) – 존 다 실바(탄자니아) 수채화전.
국립중앙박물관(용산) – 바로크∙로코코 시대의 궁정 문화. 초상화의 비밀.
갤러리통큰(인사동거리) – Fitsum(에리트레아 화가)
관훈갤러리(인사동거리) – 이철수판화전. 기억의 방(사진전), 박불똥 개인전.
토탈미술관(종로평창동) – 댄 퍼잡스키 개인전.
김종영미술관(종로평창동) – 김종영 특별전 ‘곡선’
대전시립미술관 – 모네에서 워홀까지
이응노미술관(대전) – 고암 이응노의 판화전. 이응노와 마르코폴로의 시선.
광주시립미술관 – 조셉보이즈 전시회. 낭만, 현대 판화전
포항시립미술관 – 파라테크놀로지 이상하고도 이로운 기술들

크리스마스의 추억

2011년 12월 20일

크리스마스를 전후해서 연말까지. 망년회다 뭐다, 술이 넘쳐흐르고 뭔가 붕뜬 분위기에서 홀로 관사에 앉아 차분하게 지난 12월들을 돌아본다.

2010년 12월 24일. 동생의 하소연을 들으며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참담했던 크리스마스 이브의 첫 데이트 야그였다. 맞장구치며 욕을 해주고 있는데 걸려온 전화. 지명이 형이었다. 어디서 누구랑 마시니. 집에서 혼자. 마십니다. 아 그래..

2009년 12월 10일. 위닝 마스터리그 네 시즌 연속 트리플을 차지하다. 세이브 파일이 남아 있었다. 27일. 세웅이 형의 추천을 받아 다이어트 약을 먹다. 주문 기록이 남아 있네.

2008년 12월 15일. FPS겜 서버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 때 유저들의 말싸움을 중재했었지. 채팅 로그 파일이 남아 있다. 나보다 나이 많은 이들의 유치한 싸움들. 팀킬했네. 안 했네.

2007년 12월. 안녕 프란체스카 모든 시즌을 다운받아 편의점에서 사온 쓰레기 음식을 흡입하며 보고 있었다. 동영상 파일들의 최종 액서스 날짜. 2007.12.22

2006년 12월. 암담했다. 두번째 본1을 시작하시겠습니까?..

이제 그만. 2011년을 돌이켜 보자. 4월 18일부터 지금까지 118권의 책을 읽었다. 여러 곳을 돌아다녔다. -45kg한 체중 유지에 성공했다. 마시는 맥주량이 너무 늘었다.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바뀌지 않은 건 하나. 극단적인 성향. 아차 둘. 계속 혼자. 였군. 하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2011년 12월 17일

우리는 미국의 프랜차이즈니까. 언제나 이 점을 잊어선 안 돼. <착취>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고통스럽게 행해진 게 아니었어. 실제의 착취는 당당한 모습으로, 프라이드를 키워주며, 작은 성취감과 행복을 느끼게 해주며, 요란한 박수 소리 속에서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형이상학적으로 이뤄지고 있었던 거야. –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추천을 받아 읽게 된 소설인데. 훌륭한 Anti-자기계발서라 할만하다. 뭔지도 모를 행복과 성공을 위해 채찍질 당하는 사람들에게 권하고픈 작품이다. 비슷한 시기에 “자기 계발의 덫” 이라는 서적을 읽어서 그런가. 구절 하나하나가 연관된다. 자기계발서는 실상 개인들의 고통을 잊게 해주는 마취제에 불과하다는 “자기 계발의 덫”의 치밀한 분석을 접하니.. 프로야구리그의 출범으로 모두다 프로페셔널을 외치게 되었다는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의 음모론(?)은 황당하게만 들리진 않는다.

자기계발 서적에서는 주체의 죽음을 읽을 수 없다. 이 서적들에서는 주체의 죽음을 선포하는 것이 신의 죽음의 경우처럼 너무 이르거나 농담처럼 너무 과장된 것으로 보였다. 대신, 이런 상황에서 주체성의 위기는 분명하게 언급되지 않고 오히려 전례없는 자조서 판매고의 급증에 힘입어 활성화되고 위세를 떨쳤으며, 변덕스런 사회경제적 힘에 대면해 자신의 삶의 경로와 자아에 대한 지배가 어렵거나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된 주체들의 삶 속에서 터전을 잡았다. 이 개인들의 경우 자아는 시달리고 있다.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 근원을 지닌 문제들에 대해 개별적 해결책을 추구하는 순환 속에 갇혀버린 것이다. .. 그런 서적들에 푹 빠져들게 만든 거대한 사회 경제적 불공정을 제거하는 데 함께 집중해야 할 시점에 이른 것이다. – “자기 계발의 덫”, 미키 맥기.

경제적 안정의 가능성 없이 자기 계발과 자아 실현을 강요하는 것은 <착취>에 불과하며 사회 안정망의 부재 아래에서는 자기 계발의 추구는 불가능 하진 않더라도 빈약할 수 밖에 없다. 결국 자원의 공평한 분배와 같은 사회적 합의를 위해 힘써야 하는데 자기 계발서들은 이 점을 회피하고 있다. 사회적 합의는 상호 호혜적인 인정을 전제로 하는데. 지금 현실은..

현실은 외투에서 나왔다.

2011년 12월 15일

맥주사러 어두컴컴한 길을 걷는다. 눈이 살짝 내려 앉고 바람은 차고. 누가 내 어깨를 건드린다. ‘내 외투 어딨어?’ 아까끼 아까끼예비치가 헉헉거린다. 큭. 망상. 황량한 거리에서 고골의 소설을 떠올려봤다. ‘외투’가 생각난 김에 다른 작품도 되새김질을 하는데. 어라? 지금이랑 막 겹친다.

저번 주말에 마이클 무어 감독의 “자본주의 : 러브스토리”라는 영화에서 황당한 에피소드를 본 적이 있다. P&G, 월마트 등 거대기업에서 직원들 이름으로 생명보험을 가입해놓고 사고나 질병으로 죽으면 거액의 보험금을 챙긴다고 하네. 기업들에겐 직원들이 죽어야 이득이 되는 놀라운 수익 구조다. 응? 고골의 “죽은 혼”? 치치꼬프는 지주들로부터 죽은 농노를 산다. 명부에 있는 농노들의 숫자를 담보삼아 대출받고 먹튀하려고. 하하. 죽은 직원과 죽은 농노.. 죽음을 가지고 재테크하시는군요!

더 나아가서. 고골의 ‘코’. 코가 없다면 당신은 인간도 아니지만. 코는 당신없이도 인간이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고위 관료가 된다. 뭐라고? 과장이 아니야. 사람 볼 때 얼굴 먼저 보고. 얼굴 볼 때 코가 중요한 요소다. 여기서 코를 이미지로 바꿔 보자. 혹은 금배지로. 그 땐 잘못 알았다. FTA에 대한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의견. 같은 말, 같은 사람, 시간지나 뒤바뀐 입장. 하하. 의원의 이름이 대수이겠는가? 당명과 이미지가 중요한 거지. 코들이 주위를 어슬렁거린다.

소설에선 농담이었다. 허나 현실로 잡입할 땐 괴담으로 변해버린다. 읽으면서 낄낄대던 것들이 현실이 되버리다니. 고골이 지금 시대에 태어났으면 과연 뭘 쓸 수 있을까. 생각의 가지에서 허우적거리다 관사 문을 연다.

에라. 맥주나 마시자.

Le Havre, 2011

2011년 12월 13일

http://www.imdb.com/title/tt1508675/

민감한 사회문제를 소재로 영화를 만든다면 두가지 방식이 있다. 냉정하게 거리를 두며 사건을 그려내거나, 어느 방향이든 적극적인 주장을 전파하거나. ‘르 아브르’는 그 둘에 속하지 않는다. 프랑스의 불법 이민자 문제를 전혀 친숙하지 않게 동화처럼 다룬다. 구두닦이 마르셀이 불법이민자 소년 이드리사를 숨겨주게 되고, 아내는 병으로 쓰러진다. 하지만 모든 건 이웃들과 경찰의 도움을 받아 행복하게 끝난다. 자연스러움과 격렬함이 거세된 채로.

아키 카우리스마키 감독은 도대체 뭘 생각하고 영화를 만든걸까? 아직 세상은 살만하다, 따뜻한 인간성의 발현? 영화에서 구현되는 현실은 있을 법하지 않은 곳이다. 일단 프랑스 영화치곤 말이 없다. 무뚝뚝할 정도로 몇 음절로 이뤄진 대화, 어색한 침묵. 배우들은 카메라를 비춰야만 움직이고 말한다. 장면마다 꽃이 등장하고 정물화같은 색감 위에 배우들이 떠다닌다. 감독은 친절하게도 유머를 삽입하여 관객들이 장면에 빠져드는 걸 방해한다. 알레티(마르셀의 아내)의 병실은 제13병동 13호이다. 이웃들이 환자에게 카프카의 단편소설을 읽어주고 환자는 편안하게(!) 잠든다. 이렇게 짓궂은 장치들을 통해 감독은 지금 보고 있는 건 현실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앞에서 말한 줄거리를 뒤집어보자. 불법이민자 소년은 체포되어 추방되거나 수용소로 보내지고 마르셀의 아내는 죽고 마르셀 혼자 남아 쓸쓸히 살아간다. 비참하지만 이런 경우가 더 많지. 영화는 순수하게 선의와 연대로 극복할 수 있다고 동화를 써나가니. 그저 감독이 기적밖에 답이 없다는 생각아래 뒤틀린 유토피아를 구현한 거 일수도..

‘답변’

2011년 12월 8일

아아! 위안을 주는 것, 살게 만드는 것은 바로 죽음이다.
그것이 삶의 목표, 그것이 유일한 희망이다
묘약처럼 우리를 가득 채워 취하게 하는,
날이 저물 때까지 걸을 수 있는 용기를 주는.

폭풍우, 눈보라, 서리를 관통하는,
그것은 우리의 캄캄한 지평에서 떨리는 광채다
그것은 책에 쓰인 그 유명한 여관이다,
우리가 먹고, 자고, 앉아 쉴 수 있을..

-‘가난한 자들의 죽음’ 중, 샤를 보들레르

미셸 우엘벡의 소설에 낚여 보들레르의 시를 뒤적거리다가.  발견한 맘에 드는 ‘답변’.

 

새는 온몸으로 난다.

2011년 12월 1일

연극보러 신촌을 갔다. 어라? 내 발로 신촌에 온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체호프의 ‘갈매기’. 희곡으로 여러 번 봤어도 연극으로 직접 보긴 처음이다. ‘당신은 왜 항상 검은 옷을 입고 계신가요? 이건 내 인생의 상복이에요. 난 불행해요.’ 글자가 음성으로 행동으로 바뀐다. 어찌나 반가운지. 3시간동안 넋을 놓고 있다가. 서강대를 나오면서 폰을 켠다. 문자가 왔네. 오늘 저녁약속 쫑! 이런. 절묘하게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너 저녁약속 없지? 다 아니까 제발 집에서 밥좀 먹어라. 아냐. 나 약속있어. (나와의 약속..) 이런. 넋놓고 걷다 길을 잘못 들었다. 왜이리 깜깜해. 네이버맵으로 확인하려 했는데 백지에 -북아현동 뉴타운 예정지-. 허공에 둥둥 떴나. 여긴 어디지.
도시vs인간. 이 때는 말입니다. 골목에서 길을 잃었을 때! 당황하지 마세요. 스카이라이프 접시 하나씩은 있잖아요? 무궁화3호 위성. 접시가 향한 곳은 적도 방향입니다. 즉. 남쪽, 정확히 남남서 방향인거죠. 돌아다니면서 얻은 나만의 노하우. 남남서로 진로를 돌려라!

무사히 언덕을 내려와 불빛과 마주친다. 5호선 서대문역. 종점은 마천역. 이 것만 따라가면 광화문이 나올거다. 엄마의 고향. 내가 자란 곳. 너무 많이 바뀌었다. ‘인생은 진지하게 대해야만 하는 건데, 나이 예순에 치료하고, 젊음을 많이 즐기지 못했다고 아쉬워하는 건, 죄송하지만, 경박한 거에요~’ 나이 스물일곱에 서대문 지역이 너무 많이 바뀌었다고 아쉬워하는 건 청승맞은건가? 하하.

경희궁을 지난다. 이런 저녁에 이런 바람에 홍화문을 보자니 으스스하다. 덕수궁 쪽으로 갈까. 아냐 광화문으로 가자. 주위 공원 벤치에 짱박혀 맥주나 까자구. 이상하다. 웰케 사람이 많은거지. 아. FTA. 경찰들도 많아진다. 이순신 동상이 보이는데 가까이 갈 수 없다. 기동경찰대 버스가 올곧은 직선미로 광장을 둘러싸고 있다. 그 벽벽 사이로 경찰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서있다. 이 장면. 어디서 본 것같아. 사진 하나가 생각나네. 진시황릉의 병마용갱. 야광색 조끼를 입고 방패를 든 경찰. 사나운 얼굴로 창을 든 병사. 허겁지겁 김밥을 먹는 경찰. 웃는 얼굴로 주먹을 휘두르는 병사. 심각한 얼굴로 무전기로 야그하는 경찰. 몇 백년이 지나고. 지금의 장면이 나중에 전시된다면 병마용갱을 접하는 거랑 비슷하게. 그럴거다. 헐~

공원 벤치엔 가지도 못하겠다. 전경들의 중심에서 맥주를 깔 순 없잖아. 1인 시위를 하는 사람. 군데군데 모여 구호를 외치는 이들. ‘갈매기’의 마지막 막의 한장면. 카드 게임을 하면서 등장인물들이 떠든다. 하지만 듣는 이는 없다. 지금도 그렇다. 서로 야그할 뿐이다. 끝없이. 전경은 서 있고. 151명의 국회의원 얼굴이 나온 경향신문 페이지가 뒹굴고. 경복궁 뒤 쪽으로 가는 길은 막혀있다. 왜 다들 듣지 않는걸까.

어지럽다. ‘종이 위에선 철학자가 되는 건 정말 쉬운데, 실제로는 너무 어려운 일이에요!’ 어렵다. 교보문고 앞에선 닭둘기들이 비대해진 몸으로 날갯짓을 한다. ‘새는 좌우의 날개가 아니라 온몸으로 난다. 모든 생명은 온전히 한 세계이기 때문이다. – 이철수’ 이 말을 떠올리기엔. 너무 멀리 와버린 것같고.

다시 엄마의 전화. 영양군 내려가기 전에 집에서 밥먹어라. 네. 뜨끈한 집밥먹고 다시 영양군으로. 고요한 영양군으로. 도피가 아니라. 출근하러.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