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시의 분당

2011년 11월 28일

토요일 밤마다 CGV오리에서 심야 영화 한 편보고 야탑역까지 걸어간다. 일단 맥주 두 캔을 가방에 쟁여놓고. 억새와 가로등. 걸으면서 잠을 자는 듯. 꿈을 꾸는 건가. 흥이 나면서 100m 걸을 때마다 사진을 찍어댄다. 순간을 놓치기 싫어하는 공허감이겠지. 이제 길가엔 알콜성 좀비들이 조금씩 보이고. 결의에 찬 눈빛으로 뛰는 사람들도 있다. 화이팅. 미금역. 넌 날 이해못해. 말이 통하질 않아. 두 명이 탄천변에서 싸운다. 말이 통한다. 이해. 그건 내 평생의 과제인데. 다른 사람한텐 쉬운 단어구나. 정자역을 지나 수내역 거리로 넘어간다. 탄천따라 걷는 것보단 재밌으니까. 아직 좀비의 단계에 들어서지 못한 이들의 절규가 들린다. 시끄럽다. 허나 잠시 듣다보면 어느 소설 귀퉁이를 읽는 것같기도. 이거 들어 봐, 내 얘기라고. 완전하다고 여겨졌지만, 결국은 불완전한 이야기. 죽음으로 끝나는 비극적 결말. 그게 바로 인생이야. 세상에. 저 사람도 기예르모 로살레스의 작품을 읽었나. 술집에서 틀어대는 가요. 사랑사랑사랑. 1:99. 난 사랑을 모르는 1퍼센트인가 99퍼센트인가. 모르겠어. 폰을 보면서 바쁘게 뛰어가는 이들. 대리운전기사들. 아직 일거리가 없는 사람들은 난로에 손을 녹인다. 서울가요! 서울가! 택시기사들이 나와서 붙잡으며 묻는다. 서울가냐고. 아뇨. 커피가 땡겨. 맥도날드. 프리미엄 로스트 쇼트 사이즈 하나 주세요. 옆에선 허겁지겁 햄버거와 맥너겟을 마신다. 배고픈가보구나. 분당구청의 잔디밭. 누군가 깔깔거린다. 그래. 여기서 맥주 한 캔 까자. 맥주로 급유하고 이제 서현역 거리. 이봐요. 젊은 아가씨들 많아요. 싸요 싸. 달라붙는다. 이리 오라는 손짓과 함께. 호객행위. 난 ‘날갯짓’이라 부른다. 손을 흔드는 속도를 높이면. RPM이 높아지면 하늘로 날라가겠어. 논산 연무대 근처의 음식점들에서, 안동 중앙 구시장의 찜닭 거리에서, 남산의 왕돈까스집들에서. 날갯짓. 오늘 공쳤어요. 부탁드립니다. 대꾸하지 않고 가볍게 인사하며 지나간다. 안양가요! 안양가! 3km만 걸어가면 된다. 하늘을 본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같은 하늘인데 영양군이랑 다르네. 상념을 깨는 버스 급정거 소리. 어라 이 시간에 버스가? 9403번. 인수분해해보자. 암산으론 안 된다. 집에 갈까. 맥주를 더 사올까. 제발좀 쉬자고. 0시의 분당.. 아. 소수였구나.

파국을 피하라.

2011년 11월 27일

폴리테이너. 시작부터 예사롭지 않다. 연예인이 SNS로 정치적인 견해를 밝히면 ‘폴리테이너’로 불리는 시대이다. 하긴 동아일보에서는 폴리테이너 ‘2.0’ 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고 있으니까. 정치 참여 연예인. 사실 기사에서 언급한 사람들보단 유인촌이 그 부류에 젤 가깝지 않은가. 뭐. 은하계 저 너머를 보자면 허경영까지 포함시킬 수 있겠지만. 어쨌든 이 사람들이 아직도 정신줄을 놓고 있다. 케케묵은 낙인찍기와 위기감 조장. 이봐! 문제는 SNS가 아니라고. 순식간에 소식이 파급되는 SNS의 위력은 인정하지만 이건 단지 ‘도구’ 이자 ‘지표’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서. 저 멀리 중동 이집트, 시리아 등지에서 일어난 일들을 SNS혁명이라 하지. 허나 난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썩을대로 썩은, 도무지 희망이 보이지 않는 현실에서 일어날 수 밖에 없는 사건에 단지 SNS라는 이름을 붙여 버리는 건 폭력에 가깝지. 언어의 폭력.. 단지 SNS는 하나의 계기일텐데.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 눈과 귀가 있으니 이 사람들도 SNS를 모니터링하면서 긴장하고 있다. 풉, SNS를 막는다고 불만이 터지지 않는답니까. 큰 압력솥에서 시끄럽다고 좁은 노즐을 막는다고 폭발이 일어나지 않나? 난 그저 ‘파국’ 을 보고싶지 않을 뿐이다.

http://bit.ly/ujkDSL

인생은 아름다운 것!

2011년 11월 21일

댄퍼잡스키

아침부터 뒤숭숭한 꿈을 꾸면서 일어났다. 하아. 일주일의 시작이 이렇다니. 너무 춥다. 이빨이 부딪히는 소리와 바람 소리가 기막히게 궁상의 대위법을 이룬다. 이럴 때 체호프의 산문을 되뇌여야 하지. “인생은 아름다운 것! 인생은 지독하게 재미없는 농담과도 같지만 그런 인생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랍니다. .. 우리가 비탄과 슬픔에 빠진 순간에도 끊임없이 행복감을 느끼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꼭 필요합니다. a)현실에 만족할 줄 아는 능력. b)’이보다 더 나쁠 수 있다.’ 라고 인식하고 행복해 하기. 이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랍니다.” 그렇지. 언제나 이보다 더 나쁠 수 있어.. 타이어가 펑크나서 도로변에서 해가 뜰 때까지 차 안에서 버티기. ‘지금 이 순간 피고석에 앉아있지 않음을 기뻐하고 눈앞에 채권자가 없음을 기뻐히십시오.’ 운전하다 너무 졸려 임시휴게소에 차를 세우고 자다가 해를 맞이하며 일어나기. ‘만약 누가 자작나무로 때리거든 다리를 바들바들 떨며 기뻐 외치십시오. 쐐기풀로 때리지 않아서 얼마나 좋으냐!’ 어디선가 물이 흘려 관사 열쇠 구멍이 얼어붙어 꼼짝없이 차에서 자기. ‘만일 이가 한 개 아프다면 다른 이까지 몽땅 아픈 것이 아니라는 사실에 미친 듯이 기뻐하십시오.’ 분당의 집의 화장실에서 넘어져 바닥에 머리를 부딪히고 정신을 차려보니 중앙고속도로를 운전하고 있을 때. ‘만약에 멀리 떨어진 유형지로 유배되었거든 더 먼 곳에 떨어지지 않았음을 기뻐하십시오.’ 맞아. 아직 최악은 오지 않았어. 하하. 오라! 운명이여!

지금. 배고프다구요?

2011년 11월 17일

지금 배고프다고요? 배고프다. 배고픔. 이 단어는 반드시 ‘허기’와 ‘식욕’ 으로 나눠야 해요. 허기는 먹지 않으면 가사 상태에 빠지는.. 굶어 죽는다, 생물학적 요구인거죠. 식욕? 그저 하나의 욕망입니다. 뭐가 다르냐구요? 많이 다르죠. 제 야그좀 들어보세요. 예전에 120~130을 오갔을 때가 있었습니다. 네? 당연히 몸무게죠. 배고플 때 정말 미칠 것같더라구요. 먹어야 해. 먹어야 해. 이러고선 패밀리사이즈의 피자와 콜라 1.5리터를 들이키는거에요. 어떻게 사람이 120kg 나갈 수 있냐구요? 어이구. 예전 제 사진좀 보세요. 하하. 다른 사람이라구요? 그나저나. 그 때 배고프다고 먹지 않았음 진짜 ‘죽었을까요’? 아니겠죠. 왜 패스트푸드라 할까.. 어서 많이 먹고 꺼져라. 라는 의미도 있겠지만 음식이 일단 빨리 목구멍을 넘어가야 하지 않겠어요? 설탕, 소금, 그리고 지방. 아. 천상의 조합 아닙니까! 설탕으로 달콤함이 입 안을 휘감고 지방으로 순식간에 녹아 부드럽게 목을 넘기며 소금의 짭쪼름함이 혀에 강렬한 각인을 새기죠. 또 먹으라고. 꾸역꾸역 넘기는 것 있잖습니까. 햄버거, 피자, 도너츠, 이런저런 과자들. 이렇게 보면 사람도 단순하단 말이에요. 세 가지 조합일 뿐인데 여기에 중독되고 그게 바로 식욕이라니. 저만 그런거라구요? 아닙니다. 하하. 다이어트 상담하면서 겪었던 일을 야그해드릴게요. 어떤 아줌마가 왔어요. 자긴 조금만 먹는데 왜 살찌냐고. 뻔하죠. Input 대 Output 비율이 맞지 않으니까. 그런데. 그렇게 야그하면 기분 나쁘잖아요. 배는 이만큼. 이거 부종아니냐고. 이런 말.같지. 않은 소리들으면서 빼빼로를 아무렇지도 않게 뜯어 앞에 놔뒀어요. 웬 빼빼로? 아. 지난 빼빼로 데이 때 남은거에요. 집중하세요. 글쎄. 그 사람이 제 방을 나갔을 때 어케 되었는지 아세요? 이미 빼빼로 봉지가 비어있는거에요. 하하. 숨쉬듯이. 하악하악. 흡츕흡츕. 숨을 쉴 때 누가 오늘 9409번째 숨이야 이러고 있나요? 자 오늘 그만 숨쉬자고. 이러냐구요. 의식하지 않죠. 숨.쉬.듯.이 단 걸 먹는거죠. 그러고선 밥은 적게 먹고. 이리도 당이 넘쳐흐르는 생활을 하니까 잠시라도 입에 뭔가 달려있지 않으면 배고파. 힘들다. 고 징징대죠. 그럼 ‘허기’가 뭐냐구요? 큭. 부끄럽지만 허기의 극단도 다 경험해봤습니다. 일단 굶으면 어지러워요. 식은 땀나고. 힘들어. 힘들어가 입에 달립니다. 여기까진 식욕과 비슷해요. 다만 다음 단계부터 재밌어져요. 과도한 각성 상태에 이릅니다. 연거푸 에스프레소 3잔 마신 상태라 할까? 까칠해지면서 빠릿빠릿해져요. 먹이를 노리는 매의 눈빛 이라고 해야 겠네요. 하하. 먹는 걸 찾기위해 뇌가 몸에게 명령하는 거죠. 뭐 좀 어떻게 해보라고. 더 자세한건 내셔널 지오그래픽 보시구. 여기에서 더 굶으면 시각이 흐릿해지면서 사람이 바보됩니다. 멍때리면서 외부의 자극에 둔감해진 상태.. 뇌가 이럽디다. 자 그만 움직이고 최후를 기다리자꾸나. 어케 아냐구요? 굶어서 살뺐거든요. 각성-둔감 단계를 4~5개월 왔다갔다하니 나에게 배고픔이란..? 이런걸 생각하게 되더라구요. 이상하다고요? 이상하다. 어이쿠. 요즘도 아침마다 제 얼굴 보면서 느끼는 감정이랍니다.

네?

지금. 배고프다구요?

‘보물이 있는 곳’ 동묘앞역 시장 – 종로탐구생활

2011년 11월 5일

티비없는 전용리모컨, 앵그리버드 쿠션, 모델명이 지워진 휴대폰 배터리, 김재박 사인볼, 마주치는 눈빛이~ 세상을 바꾸는 과학자 황우석, 휘어진 안경테, 줄없는 기타, 금간 카메라 렌즈, 만원짜리가 이천원! 흐릿한 브라운관 TV, 세상은 넓고 할일은 많다 – 김우중, 싸다싸! 쓰다남은 향수, 녹슨 전기톱, 걸뱅스러운 먼지덮힌 엘비스 프레슬리, 헤진데를 마커로 급히 칠한 운동화, 여성이여 테러리스트가 되어라 – 전여옥, 책10kg에 만원! 은나노 칫솔, 김치와 과학의 만남 유산균 함 마셔봐. 방금 나왔다는 노인용 전동휠체어 45만원. 하하하. 살며시 키스를 해주며 그대 잠에서 깨어나. 무소르그스키 ‘보리스 고두노프’ 러시어판 악보. 어라? ‘동영상’으로 채워졌다는 80기가 하드, 오늘만 팔아요. 구멍이 늘어난 혁대, 이빠진 칼, 중고 깔깔이.

‘보물이 있는 곳’, 동묘앞역 시장 – 종로탐구생활

잊다.

2011년 11월 3일

나에게. 잊는다. 잊다. 잊어버렸다. 피동. 잊히다. 반의. 기억하다.

잊는다. 잊고 있다. 잊으려 한다. 수많은 가요에 나오는 잊다의 쓰이는 법이다. ‘잊다’ 라고 쓰고 생생히 ‘기억한다’ 라고 이해하면 된다. 상당히 의도적인 표현으로, 잊으려 하지만 자꾸 떠오르는 상황을 암시한다. 다만 기억한다해도 과장과 윤색을 거쳐 가공된 기억일뿐.

잊다. 일상생활을 할 때 떠오르지 않는다. 다만 불안정한 상태로 과거의 사건과 연관된 사물을 접하면 기억이 불쑥 튀어나온다. 이쯤 되면 트라우마와 비견될 만하지만 트라우마의 세 가지 특징인 과각성, 침투, 억제와는 상당히 거리가 멀다. 그냥 꿈에서만 떠오를 수도 있다. 사람에 따라 갑작스레 떠오르는 기억에 대하는 자세는 다르다. 씩 웃거나. 술을 찾는다.

나에게.
‘잊는다’ 와 ‘잊다’의 중간 상태.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보면 발현. 눈을 보면 천천히 운전하거라. 네. ‘경원대’ 세종관 비탈길을 운전하다 미끄러져 본초밭의 수호신이 될 뻔. 어디서 달려오는 관리인 아저씨. 아이구 가드레일 값 물어내야 겠네. 네? 지금 산골짜기에서 지낼 때도. 자꾸 물어본다. 여기 눈 많이 오나요? 당근요.
‘잊다.’ 몸이 힘들 때. 꿈을 꾼다. 지금 내 상태에서 50kg 불어난 상태로 깨어나는 꿈을. 무슨 꿈을 꾸었느냐. 살 뺀 꿈을 꾸었습니다. 왜 그리 슬피 우느냐.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을 꾸었기 때문입니다.

잊어버렸다. 아무리 기억해내려 해도 기억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의식을 가진 상태에서 혹은 아닌 상태에서 뭔가 본듯한 사물을 대할 때. 내가 어디서 이걸 본거지? 머릿속를 긁어대도 떠오르지 않는다.

나에게.
‘잊어버렸다.’ 6주동안 군립요양원에 방문 진료를 나가게 되었다. 세 번째 주까진 날 반가워 한다. 네 번째 주. 날보고 긴가민가 한다. 누구? 다섯 번째. 날 무서워 한다. 여섯. 흐리멍텅. 외할머니가 생각났다. 누구? 할머니 손자에요. 응? 엄마. 왜? 엄마가 날 기억하지 못하면 어케 하지? 어쩌긴. 우리가 다 거쳐야 할 길인데.

피동. 잊히다. 반의. 기억하다. 사진은 묘한 매체이다. 2개월 전 대림미술관 “주명덕 사진전”에서 어느 한 사진에 시선이 멈췄다. 1971년의 논산의 한 마을에서 사람들이 단체로 나온 사진. 논산. 훈련소땜에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곳이긴 하지만 아버지의 고향아닌가. 1971년. 아버지가 중3일 때다. 물론 사진에는 없지만 어렸을 때의 아버지를 찾는 마냥 몇 분이고 그 사진을 바라봤다. 사진이 찍힌 연도와 장소를 증거 삼아 내가 존재하지도 않았던 시기를 기억하려 한다. 일주일 전 관훈갤러리에서 ‘기억의 방’이란 사진전을 본 적이 있다. 후원. 국방부. 6.25당시 전투기 앞에서, 막사 안에서 모두 다 활짝 웃는다. 아무리 봐도 나보다 어린 나이들이다. 사진에선 웃지만 그들은 곧 죽는다. 그리고 유해조차 발견되지 않는다. 잊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