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에 대한 하나의 글.

2011년 10월 24일

아무렇지도 않았다. 이태원을 걸을 때만 해도. 이태원 지구촌 축제. 하나되는 지구촌~ 진부하군. 케밥하나 사들고 남산 소월길로 들어선다. 단풍이 절정이구나. 남자가 여자한테 야그한다. 우린 하나라고. 좋겠네.

후암동으로 내려가 서울역에 다가섰지. 노숙자들을 앉혀두고 설교를 한다.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됨에 있어서.. (찬송가) 하나됨이 우리 안에. 무서워진다. 난 누구지? – ‘존재한다’ 는 말은 독일어로 두 가지 뜻이 있다. 즉, ‘현존’과 ‘그것에 속해있다.’는 것이다. 카프카

시청을 지났다. 웰케 시끄러울까. 광화문 광장에 Nike We Run 2011. 아 저거. 모두 붉그죽죽한 티셔츠에 번호표를 달고 뛰어오른다. 사회자가 외친다. 여러분 준비되셨나요. 우리는 하나입니다. 나이키는 위대합니다. 각자의 옷을 벗어던지고 하나의 색으로 통일. 관악대의 빨간 제복. 그들은 함성을 지르며 뛰기 시작한다. – 행진은 사람의 생각을 딴데로 돌린다. 행진은 생각을 없앤다. 행진은 개성을 죽인다. 헤르만 라우슈닝 – 난 헐렁한 유벤투스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그래. 쫄았다. 무력하게 광장 옆의 공원 벤치에 앉아 맥주캔을 깐다. 너무 쓰다. 다 마시지도 못하고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고작 10km뛰는데 저난리인가 라는 생각보다도 순간적으로 압도됨에 부끄러워..

광화문을 벗어나 안국동으로 뛰다시피. 보궐선거운동이 한창이다. 나경원은 넘버원. 박원순은 손가락 열개. 그러나 그들 모두. ‘우린 하나에요~ 한 표를!’ 이건 아냐. 그런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음악. J.S.Bach의 BWV645. 눈떠라, 부르는 소리있어.http://youtu.be/NHhuyhlSSiA 뭐야. 편집증인가. 수많은 소리를 거르는 마음 속의 필터가 고장난건가.

인사동.. 북적거리는 사람들 사이로 누군가가 기타를 친다. 아리~랑~ 한 노인이 옆에서 박수를 치며 소리를 친다. 우린 하나입니다! 뭔가 잘못되었어. 난 당신들과 하나가 아니야. 피하고 싶었다. 허둥지둥 아무 갤러리나 들어갔다. 포토샵으로 조작된 이미지들을 전시해둔 곳이었다. 아무도 없다. 편안해.. 하던 차에. 마지막 사진. 이소선 씨의 이미지 밑에 쓰여진 메시지.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가 되면 삽니다. 하나가 되면 이깁니다.

하루 내내. 하나됨을 들었다. 그래. 난 이방인이었다.

드럽고 훈훈한 기분.

2011년 10월 22일

걷다가. 남부터미널 앞 사거리. 녹색 신호등. 건넌다. 빵빵. 택시가 경적을 울린다. 뭬야. 지나치려다가. 경적이 더 크게 울린다. 거기. 학생! 아놔. 귀먹었어? 네? 귀먹었냐구! 이 분주한 사거리에서 시비라. 새롭군. (귀 안먹었는데?..) 받아치려는데. 택시 기사가 나에게 천원을 내민다. (아 그런거였군요. 제가 불쌍해보였군요. 불쾌하지만 일단은 받아두겠습니다..) 말없이 천원을 고이 받으려는데. 저기. 그래. 터미널 앞에서 구걸하는 사람한테 줘. 어서 빨리. 이 신호가 바뀌기 전에! 나도 급해져서. 동전 통에 그 천원짜리 지폐를 밀어넣는다. 오케이! 택시기사는 경적을 두 번 울리며 사거리를 지나친다. 뭐지. 이 드럽고도 훈훈한 기분은 처음이야. 피식. 이러면서 걷는다.

버스. 리비아.

숨이 거칠어진다. A가 하얗게 질려 부들부들 떨다가. 아저씨. 네. 여기가 어디쯤이에요? 하남IC를 방금 지났네요. 네? 좀 있으면 도착해요. 여기 첨 와서 모르겠어요. 리비아 해방.. 도착시간을 한시간 이상 넘겨버렸다. 아까부터 아이폰으로 겜하던 B는 털썩. 폰이 방전된건데. 너도 방전되었니. 포스트 카다피는 누가 될 것인가. 버스 안의 TV는 계속 반복한다. 아이구 허리아파. 끙. C는 친구와의 저녁 약속이 날라갔다. 외교통상부 관계자의 답변을 들어보겠습니다. 빌어먹을. 딴 뉴스 없나. 리비아랑 나랑 무슨 상관이야. NATO 카다피 사망 확인 보류. E는 반가운 전화를 받는다. 너 결혼한다구? 어이구야. 부케받을 사람없나 보구나 가주마. 비꼼이 가득하다. 아 미안. 지금 4시간째 버스안이라.. 어짜피 도착할거잖아. 역시 상대방은 이해하지 못한다. 리비아, 축제의 도가니. 하하. 아저씨 딴데 틀어줘요!

올림픽대교가 보이고 이제 터미널이 저발치 보인다. 모두 일어선다. 터미널 입구에서 버스가 멈춰선다. 앞에 지나가던 행인 3명에게 23쌍의 증오에 찬 눈이 집중된다. 대 리비아 수출효과 증대. 그리고 행인 3명. 10년 수명 연장. 정말 나가고 싶다. 아아. 이렇게 단결되다니. 아이고. 좀 앉아 계세요. 나가고 싶다. 지금 보시겠습니다. 리비아 국민들의 환호하는 모습을. 지금 보시겠습니다. 저희들의 도착한 모습을.

4시간 반동안 안동발 동서울행 버스 안에서 같이 호흡한 이들에게 이 글을 바칩니다. 리비아 국민들에게도 축하드리고요.

쇼핑 – 거룩한 집

2011년 10월 20일

쇼핑-거룩한 집

뜻밖의 장소에서 의외의 음악을 마주친다. 안동 이마트에서 장을 보다 흘러다니는 음악. J.S.Bach의 BWV564중 아다지오.. http://youtu.be/bROUHLzb1Bk 뭘까. 경건하게 쇼핑하라는 건지. 아님. 우연히 튼 ‘바로크명곡집’CD에 포함된건가. 왜 난 이런 걸 생각하고 있지. 아무도 음향따위에 신경을 쓰지 않잖아. 반짝 세일에 사람이 몰려들고 번잡한 가운데 이 음악이 흐르다니. 카트를 밀면서 잡생각을 하다가. 봉투 드릴까요? 아 네. 아주머니가 능숙하게 바코드를 스캐너에 갖다대며 계산을 하신다. |1I|||I┃I|… 풉. 이철수의 판화중 하나가 생각난다. ‘성소순례를 마치고, 물질의 축복에 감사하며 기꺼이 헌금을 봉헌한 우리는 기쁨에 차서 거룩한 집을 나왔다.’ – “쇼핑-거룩한 집”. 바코드, 바흐의 음악, 그리고 이마트. 일시불로 해드릴까요? 아 네.

A대B

2011년 10월 14일

그래. 할매 A와 B로 부르자. 방문진료를 갈 때마다 이 두 사람이 있으면 분위기가 냉냉.. A.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른 말로 공격을 한다. B. 조용히 있다가 자리를 피하지만 표정은. 더러워서 피한단다.

왜 저러는거에요? 오래전에 안좋은일이 있었어. 그게 뭔데요? 몰라. 너무 오래되서. 경로회관에서 A와 B가 만나면 그 사이에 보이지 않는 문이 생긴다. 문열면 다른 은하계로 들어갈 듯한 그런 스타게이트. 두 분에게 침을 놔드리는 내 입장으론 난처하지. 친절하게 혹은 무덤덤하게 침 놔줘도 네편 내편 갈리니까.

허나 늦더위 속의 냉냉함에 갑작스런 평화의 유예기간이 찾아왔다. A의 남편되시는 분이 세상을 떠나고. B는 안동병원을 가시더니 이내 대구까지 들락날락. 4주 뒤에 봅시다. 한 달뒤에 다시 본 할매 A. 말붙이기가 어렵네. 안그래도 많은 나이에 이십년 이상을 타임워프하신 듯.

일주일 후. B가 경로회관에 천천히 들어온다. 좀 슬펐다. 내가 정말 싫어하는 요양원의 그림자가 B의 뒤를 붙잡고 있기에. 그런 안타까움도 잠시. 긴장감이 흐른다. 둘은 아무 말도 없다. A는 그저 허공을 응시하고. B는 무표정으로 자리를 피하려 한다.

순간. B는 몸을 돌려서 A에게 말하기 시작한다. 어라? 이런 적이 있었나요? 시끄러. 들어보자구.

미안하네. 정말 아파서. 장례식에 찾아 뵙지도 못했네. 정말 미안하네.

A의 표정은 묘했다. 슬픔인지 미소인지. B가 돌아설 때. 소리친다. 화투 패에 그토록 찰진 국방색 담요를 펼치면서.

어디 가? 한판 쳐야지.

다른 열 댓명에게 침을 놔주고 그 곳을 나오면서도. 그 판은 끝나지 않았다. 나오면서 슬픔인지 미소인지. 미소겠지? 그 판이 끝나지 않기를..

답.

2011년 10월 11일

때론 내가 내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더 잘 알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 그래서 자기계발서에나 나올 법한, 실없는 메시지를 던진다. 자기 앞가림은 못하면서.

근데 그게 나뿐만은 아닌 듯 싶다. 원치 않겠지만. 너에 대한 걸 알려주지. 널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 새겨들어. 요렇게 시작하여 계속 반복되어왔던, 그러니까 나중에 ‘아아, 그 사람 말이 옳았어.’ ‘옛말이 틀린 거 하나도 없지.’ 라는 탄식을 내뱉을만한 뻔한 말들이 나오겠지. 곱씹어보면. 들어왔던 충고가 아무리 괜춘한 것이었다 하더라도. 그 당시의 내 성향에 맞지 않거나 들어먹히지 않을만한 상황이었다. 허나. 워낙 길이 보이지 않다보니. 뭐라도 조언을 듣길 원하고 이리하여 서로에게 선지자가 되는 무한 순환이 계속된다. 선지자. 자기 앞가림은 못하지.

다른 사람한테서 답을 찾지 마세요. 우리를 믿어보아요. 널 믿어. 잘될 거야…

다 식상한 말들이야. 어쩌면 ‘답’이 없을 수도 있다. 아니. 죽지 않고 삻이 지속된다면 그게 각자의 답일수도. 원치 않아도..

9409. 그리고 검문.

2011년 10월 10일

오늘은 쉬자. 쉬자고. 이랬는데 몸이 근질거려 다시 버스타고 종로로. 남산 소월길을 거닐면서 9409번 버스를 보고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2, 3, 5, 7.. 인수분해가 안되잖아. 소수인가?

온갖 잡생각을 하면서 걷다보니 경복궁 옆길에 이르고. 웬 깍뚜기 머리의 아저씨가 길을 막는다. 사복 경찰이겠지. 어디서 오셨어요. 분당이요. 왜 오셨어요. 걸으러요. 혼자.요? 네. 이 날씨에, 이 거리를 혼자.걷는다고요? 네. 아무런 목적없이? 네. 왜 이렇게 땀을 흘리는거죠? 이태원에서 걸어왔거든요.. 아 이분 짓궃네. 내 언어중추에 이상이 있는 건가. 아님 이 사람 억양이 이상한 건가. 왜 혼자라는 단어가 부각되어 들리는걸까.

가방좀 봅시다. 그랴. 맥스 한캔, 셔츠, 양말, 면도기, 칫솔, 노트북, 책.. 그는 파일에 주목한다. 이건 뭐죠? 파일이요. 등판대용으로 씁니다. 뭐가 들어있죠? 종이요. 꼼꼼하게 뒤져본다. 어라? 등본을 왜 가지고 다니죠? 그러게요. 여기 한의사 면허증과 재직증명서도 있네요. 그건 사본이에요. 영양군이 어디죠? 안동에서 동쪽으로 70km정도 떨어진 곳입니다.

…(사이).. 불과 3분도 안되는 시간에 그는 나에 대한 너무 많은 정보를 알아버렸다. 그는 피곤해보인다. 어디 모임에 있다 지나시는거죠?. 피곤하구나. 그렇다 해야지. 어서 가세요. 원래는 부암동까지 걸어가려고 했지만. 방향을 틀어 서울역까지 걸어갔다.

혼자. 다니지 말아야지.

9409는 소수 97의 제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