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호프와 보드카.

2011년 8월 30일

체호프의 서간집을 읽다가..

“좋은 문학 작품을 대하는 것은 한 잔의 보드카를 마시는 일과 같다.”

아무 맛도 없는 보드카를 주욱 마시고 나면 속에서 불이 난다.

좋은 건 분석이나 논리가 끼어들 틈도 없이 가슴 속에서 느껴진다는 거지.

월요일.

2011년 8월 29일

월요일이라 아무것도 먹지 않고 차만 홀짝이고 있다.

어질어질하고 피곤에 허덕이고 있다.

몸이 아플 징조다.

새벽운전땜에 몸이 점점 상하고 있다.

그래도 계속 서울 올라갈 거긴 하지만.

술좀 줄여야 하는데. 이러면서도 밤마다 한 두병은 마시니 원..

심야 열차.

8시 반 쯤에 청량리역에 도착한다. 윗 층에 있는 롯데마트에 허겁지겁 올라가 MAX 6캔 들이 하나를 산다. 9시 기차. 출발과 더불어 한 캔을 따고 책읽는 척하면서 세 번째 캔까지 거침없이 마신다. 옆에 있는 사람이 어르신이라면 알 수 없는 미소를 띠면서 잠들 거고 불편한 사람은 자리를 바꿀 거다.

이번엔 좀 다르다.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네번 째 캔을 잡는 순간 묻는다. “왜 그렇게 마시세요?” “부끄러움을 잊으려구요.” “뭐가 부끄럽죠?” “술마시는 게..” 흠. 난 그저 ‘어린왕자’로 농을 건거다. 허나 상대방은 심각하다. 뭔가 말을 계속 한다. 아뿔싸. 종로에서 스치던 도인을 기차 안에서 만났구나. 거리에서라면 말없이 지나친다. 그런데 여긴 피할 수 없는 열차 안이다. ‘오리엔트 특급 열차’이라면..?

계속 듣다가 예의상 물어본다.”어디서 내리세요?” 무례하게 들릴 수도 있는 질문이지. 불행히도 역효과가 났다. “영주역이요.” 하고 신이 난 듯 떠든다. 난.. 소귀에 ‘경’읽듯이. 아 물론. 반야심경이나 코란같은 걸로 야그 했다면 흥미롭게 들었을 거다. 근데 아니잖아. 한 시간정도 참고 있으니 상대방은 드디어 졸기 시작한다. 안식의 시간이다. 마침 읽고 있는 게 단편 ‘지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이다.-_-; 한 시간이 지나고 잠시 후 영주역에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이 나온다. 깨울까. 말까. 허나 정차역을 뻔히 아는데 깨우지 않는 건 범인류적 약속에 위배되는 거지. 툭치고 화장실로 후퇴. 돌아오니 내렸더라. 후.

이래서 기차가 재밌다.

오전 9시 44분.

2011년 8월 27일

오늘의 시작은 MAX.

길동무는 필립 K 딕.

자 이제 나가봅시다.

기억.

기억.

페북의 잦은 오류를 보면서 상상한다.

여러 하드에 나눠 저장된 나의 기억. 중앙 서버의 기록에 의해서 통합되어 웹페이지에 나온다.

그런데 하드디스크 중의 하나에 배트섹터가 생긴다면?

중앙서버에서조합해주는 일련의 기록에 오류가 발생한다면?

쓴 기억조차 없는 글이 나타나고 정작 내가 쓴 답글은 증발된다면?

이젠  우리의 기억을 하드디스크, 클라우드, 스마트폰의 플래시메모리에 저장시킨다.

그러면서 우리 고유의 기억력은 점점 퇴화되고 종이에 쓰여진 건 점점 보지 않는다.

어떻게 될까? 아까 말한 상황들은 ‘실수’ 에 의한 것이지만 고의로 그런다면?..

원체 가지고 있던 기억도 쉽게 변형되고 윤색되는 물러터진 덩어리에 불과하니.

그래서인지 순간의 편린을 기록해둔 메모장이 소중해진다.

나중에 다시 볼지 말지도 모를 그런 메모들이지만 내가 직접 쓴 거 잖아.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

2011년 8월 25일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75466

 

‘선물 가게를 지나야 출구’를 보고 고민을 하게 된다.

좋다. 고 느끼는 건 우리가 주체적으로 느낄 수 있는 감정인가.

미디어, 아는 사람의 야그 등 이런 외부의 영향없이도 ‘좋다’ 할 수 있는 건가.

전시회같은 데 가서 순수하게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는가.

 

거리예술가들의 작품을 무제한 복제해대는 티에리.

온 재산을 쏟아붓고 전시회를 열려 하는데 그에겐 하나의 무기가 있었다.

뱅크시가 한 줄 적어준 추천사와 지역 일간지의 광고.

복제된 작품들은 순식간에 고가의 미술품으로 대접받고 그는 LA의 대표적인 예술가가 된다.

관람객의 인터뷰 한 마디 ‘신문에서 좋다고 해서 와봤어요.’

 

나도 신문 평따라 영화보러 제천가고, 그림보러 대전가기도 한터라 뜨끔했다.

편히 앉아 저들의 어리석어 보이는 행태를 비웃고 있지만 나도 저렇잖아.

돈주고 ‘문화’ 의 향을 잠시라도 맡아 봤다는 자기 만족감..

 

티에리는 사기꾼에 불과한 건가? 아님 그를 대접해주는 사회가 사기인 건가?

 

미디어에 노출되고 사람들이 모이고 결국 그 곳엔 돈이 모여 하나의 산업이 된다.

어느 분야든, ‘예술’ 이라는 분야도 피해갈 수 없는 법칙인가 보다.

 

라마단.

2011년 8월 24일

다리에는 모래주머니를 찬 듯. 머리에는 차가운 물수건 여러 개를 두른 것같다.

그럼에도.

평상시처럼 월요일에는 금식을 한다. 그리고 1000칼로리 식단과 운동을 병행한다.

날 지탱해준 게 알콜과 카페인이었는데 그걸 조금씩 줄이니 나타나는 금단현상인가.

오늘의 첫 커피를 이제야 마신다.

머리에 피가 돈다. 사물의 색감이 돌아왔다.

방금 빵 한 조각을 먹었다.

저녁은 굶어야겠군.

대림미술관 “주명덕 사진전”

2011년 8월 21일

대림미술관 “주명덕 사진전”

모두다 흑백 사진이었다. 흑백이 주는 느낌은 좀 남달랐다. 아무리 최근 사진이라도 고색 창연하게 만들어주게 하는 효과가 있으니까.. 안동의 기와집, 사람들, 시장을 찍은 사진들이 많아서 그런지 더욱더 정감이 갔다. 이미 안동에선 지워졌고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도 없는 옛 자취들이지만. 매주 두번씩 안동시내를 지나치다 보니 자연히 눈길이 갔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가게 된 촌구석 영양의 사진도 있었다. 고추말리는 걸 찍은 사진보고 낄낄거렸다. 영양고추. 이 지역의 정체성을 특징지어줄 거의 유일한 사물이지. 아마.

내가 주5일 동안 살고 있는 영양과 그 옆의 안동 사진들을 보다가.. 어느 한 사진에서 시선이 멈췄다. 1971년의 논산의 한 마을에서 사람들이 단체로 나온 사진. 논산. 훈련소땜에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곳이긴 하지만 아버지의 고향아닌가. 1971년. 아버지가 중3일 때다. 물론 사진에는 없지만 어렸을 때의 아버지를 찾는 마냥 몇 분이고 그 사진을 바라봤다. 사진이 찍힌 연도와 장소를 증거 삼아 내가 존재하지도 않았던 시기를 거슬러간다. 아버지가 간혹 옛날.. 아주 옛날 야그를 하시면 옆에 있는 어머니는 핀잔을 준다. 촌사람 출신인 거 다 안다고. 그 끊어진 야그의 분절과 사진이 함께 마주치니 연상이 시작된다. 이게 사진의 위력 아닌가 싶네.

여기저기 여행다니다 보니 그 사이 지나친 곳들의 사진들이 막 눈에 걸린다. 아. 그 곳의 예전 모습은 저랬구나. 문득 나의 뿌리에 대해 생각한다. 나는 서울 출신이다. 서울에서 살다 분당으로 이사왔다. 그래서 시골의 이미지는 항상 아주 가끔씩 내려가는 할아버지의 고향, 공주밖에 없다. 하루정도 밤새우다 도망치듯 다시 집으로 올라오곤 했으니까. 자의든 타의든 산골짜기에서 생활하게 된 지금. 시골 생활이 뭔지 대충 알게 되고 사진으로 공감까지 하게 된다. 이 서울 한복판에서 열리는 사진전에 와서 젊은 사람 중 막 고개를 끄덕일 이가 있을까.

하나의 사진으로부터 이렇게 브레인스토밍이 시작되었다. 전시회 갔다온지 이틀이 되었건만 그 흑백의 이미지는 계속 머리 속에 남고 안동으로 내려가는 기차 안에서 이렇게 글을 끄적인다.

 

밤 기차.

음소거가 제거되었다.

시끄러운 대화 소리. 따닥. 폰 문자 소리.

고스톱 겜 하는 소리. 폰으로 DMB보는 소리.

시간이 지나감에 따라. 소리도 점점 잦아든다.

밤 기차의 풍경.. 대부분 여행객들이 아니다.

다들 자신들의 삶의 터전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나도 그렇다. 두 시간 후엔 안동. 정줄놓지 말자.

 

종점은 해운대.

 

숨쉬듯이.

숨쉬듯이 책장을 넘긴다.

그래 이게 문제야.

한 숨, 두 숨. 쉴 때마다 의문을 가지지 않잖아.

허나 비스므레하게 책장을 넘기면 안 되겠지.

의심하며 텍스트를 보는 건 참 피곤한 일이지만 꼭 필요하다.

빚.

요즘 편입 공부 중인 동생이 한 마디 던진다. 자기가 공부 중인데 집에서 별 신경 안 쓴다고.

누굴 만나러 간다거나 사소한 일로 외출할 때 어디로 가냐, 뭐하러 나가냐 묻지도 않는다고.

내가 동생 스트레스 받을까봐 부모님한테 미리 야그해뒀다. 괜히 건드리지 말고 놔두라고.

어디 가냐 이 말. 동생은 일단 짜증을 내긴 하지만. 그 관심담긴 한 마디가 필요했던 거다.

 

동생과 내가 그동안 받아왔던 관심들을 돌이켜보자면. 내가 빚을 참 많이 지고 있는 셈이다.

시작.

2011년 8월 20일

늦었다고도, 빠르다고도
할 수 없는 11시의 광화문.
오늘의 시작은 아사히캔.
몇 cc가 끝이 될진 모른다.
조금은 두렵고 설레인다.

삶에의 사랑 – 알베르 카뮈

여행을 귀중한 것으로 만드는 것은 바로 두려움이다. 여행은 우리들의 마음속에 있던 일종의 내면적 무대장치를 부숴버린다. 이제 더 이상 속임수를 써볼 수가 없다.-사무실과 작업장에서 일하며 보내는 시간들 뒤에 숨어서 가면을 쓰고 지내는 짓은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보내는 시간들에 대해 우리는 그토록 심하게 불평을 해대지만, 실은 고독의 괴로움으로부터 그토록 확실하게 우리를 방어해주는 것도 그러한 시간들이다.)

“삶에의 사랑” 알베르 카뮈.

 

카뮈의 에세이집 “안과 겉” 중에서.. 서울 올라오면서 계속 읽었다. ‘남자’의 글을 보면서 이렇게 가슴 두근두근거리기도 오랜만인 것같다. 젊은 날의 열정이 듬뿍 담겨진 글을 읽으니까 나에게도 열정이란 게 있나하고 자문한다. 정열, 열정.. 글쎄다. 충동과 메마른 집요함이 있을 뿐이다.

퇴근 시간 기다리다가.

2011년 8월 19일

http://www.youtube.com/watch?v=3jwFp4IMEDA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7번 op.10-3 2악장

퇴근 시간 기다리면서 멍때리고 있는데 이 음악이..

주말에 뭐하지? 어디 가지? 누굴 만나지?

오른손의 조용한 하행 멜로디가 이렇게 말한다.

뭐하겠니. 어디 가겠니. 누굴 만나겠어.

 

귀가 어떻게 되었나.-_-;;

아름다운 악장인데.ㅎㅎ

요즘 심정이 이런가 보다.

위건 부두로 가는 길 – 조지 오웰

밑줄긋기

나는 이따금 자유의 대가는 언제나 긴장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언제나 지저분한 것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P.96

중산층은 ‘속물’ 이라는 말에서 그쳐버린다면 아무 도움도 안 된다. 속물근성이란 것이 일종의 이상주의와 결부되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없다. P.177

번민 끝에 결국 얻은 결론은 모든 피압제자는 언제나 옳으며 모든 압제자는 언제나 그르다는 단순한 이론이었다. P.200

계급적 편견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지만, 동시에 누구나 ‘자신’ 은 무슨 신기한 수가 있는지 그런 편견에서 자유롭다고 주장한다. 속물근성이란 다른 모든 사람들에서는 확인할 수 있지만 자기 자신만큼은 예외인 악덕이다. P.211

우리 모두 계급 차별을 맹렬히 비난하지만 그것이 정말 없어지기를 진지하게 바라는 사람은 아주 드물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 하나와 맞닥뜨린다. 그것은 모든 혁명적 소신이 갖는 힘의 일부는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은밀한 확신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다. P.212

유감스럽게도 계급 차별이 없어지기를 바라는 것만으로는 아무 진전도 있을 수 없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이 없어지기를 바랄 ‘필요’ 는 있되, 그만한 대가가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 하는 한 그 바람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P.217

자신이 믿고 있는 바가 정말 무엇인지 깨닫기 위해서는 다른 문화의 사람을 만나봐야 한다. P.223

기독교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사회주의 홍보에 가장 해를 끼치는 것은 바로 그 신봉자들인 것이다. P.232

우리가 인간의 자질로 찬미하는 것 가운데 상당수는 사실 재앙이나 고통이나 어려움에 맞서는 과정에서만 발휘될 수 있다. P.262

연합해야 할 사람들은 사장에게 굽실거려야 하고 집세 낼 생각을 하면 몸서리쳐지는 모든 이들이다. P.306

해고당하는 꿈을 자주 꾸는 모든 은행원은, 파산 직전을 오가는 모든 가게 주인은 본질적으로 같은 처지이다. 그들은 침몰하는 중산층이며, 그들 대부분은 세련됨이 그들을 띄워주는 부표인 양 세련됨에 매달린다. 그러니 구명기구를 던져버리라는 말부터 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앞으로 중산층 가운데 상당 부분이 갑자기 우파 쪽으로 대거 몰려갈 위험이 상당히 크다. P.308

 

조지 오웰의 르포. 읽은 지 좀 오래 되긴 했지만 이 책이 차 안에서 뒹구는 걸 보고 있으려니.. 다시 한번 읽고 정리한다. 1부는 직접 현장에 뛰어들어 가난이 대물림되는 현장을 철저하게 기록했다면 2부에선 본격적으로 자신의 견해를 밝힌다. 버마에서 식민지 경찰로 일하고 나서의 죄책감 속에 그가 얻은 결론. “번민 끝에 결국 얻은 결론은 모든 피압제자는 언제나 옳으며 모든 압제자는 언제나 그르다는 단순한 이론이었다.” 자신에 대한 반성 이후에 그 특유의 뾰족한 문체로 파시즘에 대한 대응논리를 펼쳐 나간다. 1930년대에 쓰여진 글이 왜 이렇게 익숙하고, 지금 상황이랑 겹쳐보이는 걸까. 그 많은 세월이 흘렀건만 아직 발전이 없는 건가. 대단한 글들을 보면 간혹 미래를 예견한다는 느낌이 드는데 이 글 또한 “미래의 역사가”가 쓴 것같다. 문득 차에 쌓여있는 책들 중에서 조지 오웰의 에세이를 읽고 싶다.

6월 18일~ 8월 18일 읽은 책들.

작가 위주로 읽은 게 많다. 본 건 꼭 정리를 하곤 있지만 꽤 시간이 걸리는 작업이네.

목록 보면서 웃음이 나오는게..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읽으면서 옐리네크의 ‘연인들’ 을 보다니. 서로 대척점에 있는 작품들이다.ㅋㅋ

파시즘 관련 서적을 여러 권 동시에 보고 있지만 속도가 나지 않는 게 아쉽다. 로버트 O 팩스턴의 ‘파시즘’ 읽을 땐 하루에 한 챕터씩 꼬박 읽어나갔는데 마틴 브로샤트의 ‘히틀러 국가’, 빌헬름 라이히의 ‘파시즘의 대중심리’는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비만 관련해서 최근에 나온 서적도 여러 권 읽어 봤고.. 나중에 비만 상담 할 때 써먹을 게 많다.

유럽의 환상을 철저히 깨버린 귄터 발라프의 ‘언더커버 리포트’ 는 옛 조지 오웰의 향기가 난다. 최근 노르웨이 테러랑 관련해서 유럽의 다문화주의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는데 유용한 내용이 가득 담겨있다. 비정규직이나 대형 유통업체에 쥐어 짜이는 소규모 식품제조회사에 이르기 까지 결코 남의 나라 야그라 할 수 없는 것도 많고.. 여튼 다시 보고픈 로포다.

최근 두 달 동안의 가장 큰 발견은 이탈로 칼비노와 아지즈 네신의 작품이었다. 이탈로 칼비노는 친구의 추천 덕분에 접한 작가이고 아지즈 네신은 단지 책이름에 혹해서 고른 건데 이리 대박을 칠 줄이야.ㅋㅋ “이렇게 왔다가 이렇게 갈 수는 없다”

역시 주류는 소설이다. 아르헨티나, 터키, 이란, 이탈리아, 독일, 벨기에, 잉글랜드, 러시아, 스페인, 오스트리아, 프랑스, 미국의 작가. 책으로 세계 여행했군.ㅋ 이번 2달은 특이하게 러시아 소설을 별로 읽지 않았네.

아. 언제 다 정리하지.-_-

6월 18일 이후
반쪼가리 자작 – 이탈로 칼비노
이성과 감성 – 제인오스틴
연인들 – 엘프리데 옐리네크
오만과 편견 – 제인 오스틴
나무위의 남작 – 이탈로 칼비노
거미집으로 가는 오솔길 – 이탈로 칼비노
존재하지 않는 기사 – 이탈로 칼비노
사적인 기록 – 벱페 페놀리오
과식의 종말
파시즘 : 열정과 광기의 정치 혁명
나는 왜 과식하는가.
언더커버 리포트 – 귄터 발라프

7월 18일 이후
감상소설 – 미하일 조셴코
절망 – 블라디비르 나보코프
알리스
형사실프와 평행우주 인생들.
분노하라.
젊은 소설가의 고백 – 움베르토 에코
이란의 검열과 사랑 이야기
인공호흡 – 리카르도 파글리아
사물의 안타까움성
달에서 떨어진 사람들 – 알베르트 산체스 피뇰
이렇게 왔다가 이렇게 갈 수는 없다. – 아지즈 네신
7인의 미치광이 – 로베르토 아를트
생사불명 야샤르 – 아지즈 네신
차가운 피부 – 알베르트 산체스 피뇰
일단, 웃고나서 혁명 – 아지즈 네신
Fat 비만과 집착의 문화인류학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 아지즈 네신
칼로리 플래닛
왜들 그렇게 눈치가 없으세요? – 아지즈 네신
콩고의 판도라 – 알베르트 산체스 피뇰
개가 남긴 한 마디 – 아지즈 네신

불면증

2011년 8월 10일

지난 월요일 새벽에 영양에 돌아온 이후로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고 있다.

잠의 리듬이 깨지다 보니 낮에 축 처지고 기력이 딸린다.

이틀 동안은 운동하고나서 바로 맥주마셔서 피곤함과 취기에 기대어 자려 했지만 처절하게 실패했다.

3시간만에 깨서 자정부터 뒤척이는 꼴이란..

누워있으면 잠이 오겠지 라는 미련함으로 30분마다 시계확인하다보면 날이 밝아온다.

그 때쯤되면 지쳐서 눈을 감지만 자는 것도 아니고 그저 휴식에 가까울 뿐이다.

자고 싶다.

차가운 피부 – 알베르트 산체스 피뇰

2011년 8월 9일

우리는 우리가 증오하는 사람들과 결코 멀리 떨어질 수 없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도 진정 가까이 다가가지 못한다. p.5

내가 저주를 퍼부은 것은 과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는 나의 감정이었다. 나는 섬의 은둔자가 아니라 내 기억 속에 갇힌 은둔자였다. p.27

우리 시대에 관대함이란 탄환 하나를 더 갖는 것뿐이다. p.32

나는 수천 마리의 괴물들을 상대로 싸우고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그들은 나의 적이 아니었다. 지진이 건물의 적이 아니라 그냥 지진인 것처럼. p.71

무질서는 없다. 그것은 인정해야 한다. 무질서는 다만 새로운 질서와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우리에게 없기 때문에 존재할 따름이다. 우주는 무질서에 민감하지 않으나 우리는 민감하다. p.119

탁 트인 이 거대한 공간에는 끝도 없이 펼쳐진 어둠뿐이었다. 카톨릭의 가르침과 모순되는 광경이었다. 지옥은 갑자기 들어가는 곳이 아니라,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빠져드는 곳이라고 가르치지 않았던가. p.164

우리가 짐승인지도 모른다고요! 당신과 나, 엽총, 소총, 탄약, 폭탄! 죽이는 건 쉬워요. 적과 협상하는 게 어렵죠. P.231

나는 그들이 결국 돌아오리라는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여기에서 바로 인간의 나약함이 드러난다. 희망을 지나치게 믿은 나머지 나중에는 현실과 혼동하는 상황에 이르는 것이다. P.245

최후가 가까웠다는 생각에 나는 입을 다물었다. 침묵은 언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P.262

그녀는 한번 폭발하면 모든 것을 파괴해버리지만 또 한편으로 모든 것을 그대로 보존했던 폼페이의 화산과 같았다. P.272

너무 슬폈다. 진실이 삶에 아무런 변화도 주지 않는다는 것을 등대가 가르쳐주었기 때문이다. P.275

어떤 사람들은 심연을 맛보면 충동적으로 말을 많이 하게 된다. P.289

그의 단편집을 보고 장편 소설을 읽게 되었는데.. 처음엔 당황했다. 웬 괴물이 나오는 거지. 마치 할리우드 영화마냥. 괴물 이라는 심볼은 결국 우리 자신이 괴물이라는 걸 가리켜주는, 그런 상투적인 내용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작가는 더 나아가 괴물과 싸우는 사람에 대해선 그닥 관심은 없고 괴물들에 대해서 온갖 정성을 다해 묘사해낸다. 괴물과 사람의 입장이 바뀐 것처럼 말이다.

섬에 침투해서 일방적인 ‘전쟁’을 선포한 사람들을 보자니 여러가지를 떠올릴 수 있었다. 이스라엘이 하고 있는 행위나. 아님 미국이 일으킨 이라크 전쟁. 혹은 인간들의 자연파괴. 어찌보면 거기 살고 있는 주체들이 당연히 저항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우린 무기를 든 강자의 입장에 서서 전혀 고민없이 그걸 지켜보거나 혹은 동조한 적이 많지 않았나. 사람vs사람 혹은 사람vs자연..

소설에서 가장 주목해야 될 것은 그 수많은 충돌에도 여전히 버티고 있는 ‘등대’ 이다. 등대는 인간에게 생존의 수단이자 요새이지만 괴물들에겐 침략의 상징이고 무너뜨려야 하는 대상이다. 하지만 소설이 끝날 때까지도 등대는 굳건하다. 밑줄 긋기에서 언급된 ‘너무 슬폈다. 진실이 삶에 아무런 변화도 주지 않는다는 것을 등대가 가르쳐주었기 때문이다.’ 에서 더욱 더 명확해진다. 작가의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단지 노력해봤자 변하지 않는다는 냉소주의의 확인? 작가는 우리에게 숙제하나 건네준 셈이다.

비현실적인 소재들을 가지고 쓰면 현실적인 소재의 작품보다 독자로 하여금 상상의 나래를 펼칠 여지가 많아지나 보다. 작가가 노린 것이겠지?

신문읽다가..

2011년 8월 6일

신문읽다 김창완 씨의 인터뷰기사 중에서 무릎을 치게 만든 말.

“글이야 ‘아’ 다르고 ‘어’ 다르지만, 음악은 ‘아’와 ‘아’도 다른 겁니다.”

정말 그렇다. 음의 높낮이, 화성, 멜로디.

거기에다가 그 음이 연주되는 장소와 시간.

개개인마다 간직하고 싶은 순간들.

이 많은 것들 중 달라지는 게 있어도 서로에게 다가가는 음향의 의미는 달라진다.

이렇게 왔다가 이렇게 갈 수는 없다 – 아지즈 네신

2011년 8월 3일

밑줄 긋기.

 

생각하고, 사랑하고, 웃는 것. 삶의 진실이란 이것이 전부가 아닐까요? 인간에게 있어 이것 이외는 모두 거짓말입니다. – 서문 중에서

관료주의 사회에서 ‘책임’ 이란 한마디로 불덩이 같은 거다. 내게 불똥이 튀지 않으려면 한시라도 빨리 다른 사람에게 넘겨버려야 한다. 그렇다고 불덩이를 땅에 떨어뜨려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의무는 신성한 것이니까. – <날아오는 불덩이를 피하는 법>

“손에 든 게 뭔가?” “담요 하나 샀네.” 나는 서둘러 내 방으로 올라가 젖은 담요를 침대 위에 펼쳐 놓았다. 너무나 기뻤다. 벼룩시장을 찾지 못해 담요를 팔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만약 팔았다면, 내게 있던 무엇인가가 떨어져나갔을 것이었다. 그것은 담요가 아니라 내 마음 속에 숨겨진 신념이나 의지, 혹은 설명할 수 없는 그 어떤 것이었다. 난 하염없이 기뼜다. – <담요의 의미>

한 번 탈출했다가 돌아온 부르사에서의 유배 생활은 이전보다 더욱 견디기 힘든, 희망이 거세된 시간이었다. 세월이 흐른 뒤에도 나는 나 자신에게 놀라곤 한다. 그 시절을 어떻게 견뎠을까? 어떻게 중심을 잃지 않고 살았을까? 절망은 인간을 절대 무너지지 않는 가장 견고한 마지막 지점까지 인도해가는지도 모른다. – <희망이 거세된 시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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