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검열과 사랑 이야기 – 샤리아르 만다니푸르

2011년 7월 31일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까?
생각같은 것을 전혀 하지 않는 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갈색기가 도는 금색입니다.. 불에 탄 갈색이랄까. 뭐라 말하기 어렵습니다. 이 망할 놈의 위스키는 색이 매우 독특하군요.

나보코프는 뛰어난 문학 강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문학은 한 소년이 늑대가 나타났다, 늑대가 나타났다, 라고 외치며 뛰어왔으나 그의 뒤에는 늑대라곤 없던 바로 그날 태어났다.”

“누구나 단 한 번 사랑에 빠지는 것입니다. 지성인이라는 사람들은 화장실 드나들듯이 사랑에 빠집니까?”

여자들이 지닌 재능은 여려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남자의 기억을 수정하거나 지우는 법을 안다는 것이다.

자기 검열에 빠진 작가가 시도하는 사랑 야그.. 제대로 된 묘사조차 종교 교리에 살짝이라도 거슬리면 바로 삭제당하는 현실에서 사랑야그를 쓰려면 두가지의 방법이 있다. 모두다 포스트모더니즘 작가가 되거나. 아님 이란 바깥에서 책을 출판할 수 밖에.. 이렇게 외부의 상황덕분에 꼬여버린 야그에 자꾸 꽂힌다. 조쉬쳉꼬, 불가코프, 솔제니친같은 ‘반골’ 작가 리스트에 샤니아르 만다니푸르를 추가시켜야 할 것같다. 물론. 한 작품만 보고 그러기엔 너무 섣부른 판단이긴 하지만.

덧붙임. 소설에서 묘사하는 영화 한 장면. 서로 사랑하는 남녀가 테이블에 앉아서 서로 손은 못 잡고. 신체접촉이 있는 장면은 무조건 가위질. 그렇다면 감독은 이 위기를 어케 넘겼을까. 교묘하게도 남녀의 손 사이엔 참새가 한 마리 있고. 남녀는 서로 손이 닿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그 참새를 미치도록 손으로 부비댄다. 정말이지.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장면이다. 이란 영화를 몇 편 보진 못했지만 대부분 어린 아이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왜 그랬을까. 아이의 시선으로 처리하여 교묘히 검열을 피해나가려는 감독들의 애처로운 몸부림아니었나 싶다.

귀환.

안동까지 내려갈 때 버스아니면 기차를 탈 것인가. 무척이나 행복한 고민에 빠진다.
기차를 타면 맘껏 맥주를 마실 수 있을 것 같으나. 결국에는 영양까지 운전해야 되니 참아야 한다.
버스를 타면 출발 시간의 선택은 무척 자유로우나. 3시간동안 어두컴컴한 좌석에 앉아 있어야 한다.
그나마 기차타면 밝으니 책이라도 읽을 수 있으나. 달빛이 새겨진 낙동강 상류보면서 정줄 놓는다.

정줄놓으면 안 된다. 종점이 해운대.

여튼. 이틀 동안의 카니발은 점점 끝나가고 있다.

금요일.

2011년 7월 29일

5일동안의 라마단. 이틀동안의 카니발.
어느 쪽으로든 절제따윈 없다. 극과 극이 있을 뿐.
주말. 자. 먹고 마시자.

노르웨이 테러.

2011년 7월 27일

영양군내를 출장다니다 보면 국제결혼으로 한국에 들어오신 분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그 분들의 가족들도 같이 들어오고 아이도 낳고 그러니 군청에서도 ‘다문화가정 적응프로그램’을 실시하여 한글을 가르쳐주거나 한국 문화를 접할 수 있게 해주고는 있지만 정작 교육을 받아야 할 사람은 우리들 아닌가. 노르웨이 테러범이 한국을 ‘지향해야 할 나라’ 로 꼽았다니 아찔할 뿐이다. 그저 뭘 잘 모르고 말한 것이길 바라지만 초등학교 오전 조회에서 아직도 ‘단일 민족’ 운운하고 있고 ‘외국X들 땜에 일자리가 없다’ 라는 글도 심심찮게 보이니.. 우리 나라에서도 제2의 브레이비크가 나올까 두렵다.

7 Days Later… – 거리망상

2011년 7월 22일

길을 걷다가 들리는 소리가 뭔가 어색하더라.
매일 즐겨 듣던 곡에서 악기하나 빠진 것처럼.
아. 복날이 지나니 개짖는 소리가 사라졌구나.
키우던 개를 직접 먹었나. 아님 바꿔 먹었나.
냉혹함에 떨며 걷는데 어디선가 생존신호가..
넌 살아남았구나. 반갑다. 중복에도 살아남길.

절망 –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2011년 7월 21일

기억이 아물다.. 아무는 건 기억이 아니라 상처다. p.39

열시 십분발 기차였다. 긴 시곗바늘이 사냥개처럼 꼼짝않고 눈금을 노려보다가 갑자기 그쪽으로 건너뛰더니 이내 그 다음 눈금을 탐했다. p.152

어느 한 구절에 꽂히기보다는.. 나보코프가 페쟈를 경쟁상대로 두고 소설을 쓴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죄와 벌의 패러디도 있고 솔로구프의 ‘작은 악마’의 주인공인 페레도노프의 찌질한 면도 많이 느껴졌다. 예술적인 범죄를 창조해냈다는 자아 도취감을 실감나게 파헤친 작품으로 내 자신에게도 해당되는 면이 좀 있었다. 자기 자신만이 독창적이고 새로운 표현을 했다고 착각하지만 그건 결국 어디에선가 보고 들은 걸 다시 인용하거나 복제한 거에 불과하지.

혜안을 지닌 사람이면 누구나 익명으로 다시 이야기되는 그의 과거 가운데 이 대목둘울, 결백한 것같지만 역겨운 표절의 기미를 보이는 이 디테일들의 조합을 안다.

심지어 내 눈에 그 도시는 내 과거의 쓰레기 조각들로 건축된 것같았다. p.81

주인공 자신도 아는 듯하면서도 결국엔 아주 식상한 시나리오의 범죄를 저지르고 모든 이들이 다 속아넘어가길 바라는 걸 보고 웃음이 나왔다. 게르만(주인공)의 행동에 대한 비웃음 한 30퍼센트, 나머진 내 한계에 대한 비웃음으로 채워진 웃음. 왜 자꾸 찔릴까.

감상소설 – 미하일 조쉬쳉꼬

밑줄긋기.

 

재앙이 있긴 있었을까? 사실대로 말하면 재앙은 없었고, 단순한 보통의 삶이 있었다. 천 명 중 두 명만이 사람답게 살고, 나머지는 살아남기 위해 사는 그런 삶이. – ‘아폴론과 타마라’

 

삶이란 지상에서의 존재권리를 획득하기 위한, 목숨을 건 투쟁같았다. – ‘사람들’

 

냉소는 생활에 전적으로 필요하고 정상적인 것이다, 냉소와 잔혹없이는 단 한마리의 짐승도 살아갈 수 없다, 아마도 냉소와 잔혹은 생명의 권리를 제공하는 가장 올바른 수단일 거라고 그는 어느 정도 감격한 어조로 말했다. – ‘사람들’

 

언뜻 보면, 우리의 존경하는 삶에서 모든 것이 실제로 어느 정도는 우연인 것처럼 보인다. 우리의 우연한 출생도, 우연적 정황들로 구성된 우리의 우연한 세상살이도, 우연한 죽음도. 이 모든 것이 정말로 지구상에는 우리의 삶을 보호하는 어떠한 확고부동한 법칙도 없다고 생각하게 만든다. 우리 눈앞에서 가장 큰 사물부터 가련하기 짝이 없는 인간의 망상까지 모든 것이 변하고 동요하는데, 실제로 어떤 확고한 법칙이 있을 수 있겠는가. – ‘무서운 밤’

 

러시아 문학에는 터무니없는 날씨가 대부분이다. 눈보라나 폭풍, 혹은 바람이 주인공의 면상에 휘몰아친다. 마치 일부러 그런 것처럼 사랑스럽지 못한 주인공이 선택된다. 끝도 없이 욕을 해단다. 옷도 형편없이 입는다. 즐겁고 신나는 모험대신 내전 시대의 피투성이 싸움이 묘사된다. 묘사된 것은 대체로 책에 코를 박고 졸게 만드는 것이다. – ‘즐거운 모험’

독서는 마음을 풍요롭게 한다.

2011년 7월 13일

독서는 맘을 풍요롭게 한단다.
난 읽을수록 맘이 황량해진다.
풍요롭다는 거는 묘한 말이다.
알고 싶지 않은 것도 알게 된다.
눈만 넓어져 부조리함을 본다.
하지만 바꿀 힘은. 없단 말이지.

독서는 마음을 풍요롭게 한다.

길.

 

당신이 그렇게
걷고 또 걸으면
언젠가 사람들이
길이라 부르겠지.

이철수 ‘길’

아날로그.

3달동안 TV, 인터넷없이 지내보니. 그럭저럭 살만해.
쉴 새 없이 정보를 주입시키던 도구가 둘 사라지는 셈.
스마트폰으로 뭘 보느니 차라리 신문보는 게 편하다.
저녁엔 2시간 걷다가 도서관열람실로 책읽으러 간다.
잘 먹지도 않고 이러니. 흡사 이슬람 라마단같네그려.
아날로그 인간으로 거듭나는 중. 다 영양군때문이야.

말은 이렇게 해도 스스로 즐기는 중이라. 재밌다니까.

ㅋㅋ

틀.

2011년 7월 12일

마음의 틀을 깨기 위해 책을 읽는다.
그런데 점점 틀이 단단해지고 있다.
틀에 도금하고 주위에 시멘트 바르고.
이러라고 하는 독서가 아닐텐데 말야.

파리야 고맙다.

2011년 7월 11일

정신을 차려보니 맥주는 식어 있었다.
아깝잖아. 근데 컵 안에 파리가 둥둥.
아. 여기가 인당수니. 왜 뛰어들었니.
심청이 파리땜에 이렇게 멈추는구나.

홀로.

2011년 7월 6일

옆엔 소주병. 반찬엔 이미 파리가 드글거린다.
붙들고 웅얼거리며 야그한다. 난 언제 죽냐고.
옆엔 요양급여 신청서. 부적합등급으로 판정.
보호자 연락처로 전화해봤지만 받지 않는다.

관 속에선 어짜피 혼자다.. 근데. 나의 종말은?

교훈.

나에겐 당연한 게 누군가에겐 전혀 아니다.
일상에선. 웃기지만, 성격이 곧 기득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