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

2011년 4월 29일

그의 에세이를 읽다보니 문득 박노자가 생각났다.

뾰족함. 독특함. 까칠함.

글을 보면서 되뇌인다. 내 사고는 편견으로 오염되어 있는가.

충분히 오염되어 있지.

조지 오웰은 말한다.

일단 그걸 아는 것과 모르는 건 차이가 크고.

네가 여태까지 받아왔던 교육과 편견이 너의 사고를 오염시키지 않도록 깨어있으라.

어려운 일이지만. 맞아. 정말 어렵다.

온갖 물질이든 감정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지만 노력이라도 해봐야지 않겠는가.

굴.

2011년 4월 26일

예전에 카프카의 ‘굴’이란 소설을 읽은 적이 있다.

쉬지 않고 굴을 파는 주인공(혹은 비버?-_-; 일단 ‘그’로 지칭하겠다.)

그는 항상 불안해했다.

자기가 애써서 파놓은 굴, 그리고 방, 거실이 침범당할까봐.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외로웠다.

끊임없이 자기 자신만의 고요함 혹은 고립을 위해 노력했는데. 웃기잖아?

어느날 그의 예민한 청각으로 누군가 자신의 굴을 향해 침입을 시도하고 있음을 느낀다.

물론. 일단 불안함을 느끼겠지.

어울리지 않게 그는 흥분한다.

퇴색되가던 삶의 의미가 되살아나는 마냥. 새로운 보금자리이자 탈출로인 굴을 판다.

그러면서 귀를 기울인다. 침입자가 굴파는 걸 그만두면 어떻하나 하면서.

연식이 오래된 그는 금방 지치고 만다.

누군가가 굴파는 게 환청인지 아닌지.. 혼동될 정도로 지친다.

자신을 외부와 단절시키려고 하지만 소통을 갈구하는 모순덩어리 인간.

카프카. 무섭다.

 

박범신의 연작 소설 ‘빈 방’ 중 ‘별똥별’을 읽고 쌩뚱맞게 카프카의 소설이 생각나더라.

잠 못이루는 영양군의 밤. 강충모의 골드베르크. 온갖 몽상이 시작된다.-_-;

 

혼자.

2011년 4월 25일

20평 남짓한 아파트. 이 곳이 1~3년정도 지내게 될 숙소이다.

터무니없이 크다.

마루. 부엌 각각 따로 있고. 방 두개, 화장실.

너무 커.

이런 빈 공간에 나 혼자 덩그러니.

마루정도 공간만 있어도 뭔가 공허한 느낌은 나지 않았을거다.

방금 전에. 아버지한테 전화가 왔다.

훈련소에서 3주만에 어머니 목소리를 들었을 때도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지금. 막 울컥거린다.

아오. 26년만에 자취. 이렇게 초보티를 내서야.

이제 난 혼자.

설레이기도 하지만. 막막한게 더 크다.

여전해.

2011년 4월 24일

알콜의 결핍이 커피에 대한 욕구 증폭으로 이어진 것같다. 물질의존증은 여전하군.

처음이야

2011년 4월 21일

동대구역에 내리고나니 그제서야 내가 처음 와 본 도시라는 걸 깨달았다.  경상북도청까진 4킬로 약간 넘는 거리이긴 하지만. 구글맵하나 믿고 걸어갔다. 40분만에 도착하긴 했지만 땀이 줄줄. 내가 왜 이 곳에서 뻘짓을 하고 있나 하는 의문이 불쑥불쑥 올라왔으나. 이미 늦었어. 울릉도간다고 노래를 부르긴 했다만 내가 만일 높은 순위의 번호를 뽑는다면? 그건 모르겠다.

출발 전.

아. 설레인다.

국시. 훈련소퇴소 전날보다 더한 설레임.

어째 설레임의 주기가 점점 짧아지는 것같다.

어떻게 될까?

사진전.

2011년 4월 16일

위르겐 텔러와 유서프 카쉬의사진전에 다녀오다.

위르겐 텔러 사진전을 염두에 두고 광화문에 간 건데 마침 세종미술관에서 카쉬 사진전도 하길래 패키지로 갔다오게 되었다.

사진에 대해서 아는 것도 없고 똑딱이 사진기하나만 달랑 가지고 있으나.. 두 사진작가의 차이는 크게 느껴졌다. 카쉬는 자신의 일정한 틀에 유명인의 특징을 딱 맞춰 찍어내지만 텔러는 그보다 훨씬 자유롭다. 예기치 않을때 사진을 찍어서 유명한 디자이너나 모데도 할 일없는 백수처럼 보이게 만들지만 평범하지 않은 작품을 만들어 낸다.

뭐가 더 좋다고 평할 순 없다. 카쉬는 인물사진을 찍을 때 최대한 그 사람의 특징을 잘 포장하여 결과물도 훌륭하다. 내가 눈여겨 본건 음악가 사진들이었다. 피아니스트면 피아노 앞에 앉아 있고 바이올리니스트는 바이올린을 옆에 끼고 있는 등.. 다소 재미없는 게 많더라. 다만 란도프스카가 자신의 손을 얼굴을 감싸고 있거나 파블로 카잘스가 첼로 연주하는 걸 뒤에서 찍은 사진들은 굉장히 맘에 들었다. 일부만으로도 그 사람이 뭐 하는 사람인지 확 드러나니까.. 글렌 굴드는 느끼는 사진이 아니라 그런지 다소 밍밍했다. 음악가들 빼고.. 무하마드 알리의 호전적인 포즈도 재밌었다. 님 싸울래? 이런 게 사진에서 묻어나온다..ㅎ

텔러의 사진은.. 어디로 튈지 예측이 힘들다. 패션 모델들의 사진들이야 그 목적이 뚜렷하니 어려울 것도 없었지만. 빅토리아 베컴을 큰 쇼핑백 안에 눕히고 찍은 것도 황당했다. 어찌 보면 상대방이 불쾌하게 여길수 있는 자세 혹 은 소품들인데 그런 걸 용인하고 사진 찍었다는 게 신기하네.. 유명인들보단 자기 아이들을 미용실에 찍은 사진들이 낫더라. 머리깎을 때의 그 오묘한 표정들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잡아내서 보면서도 따뜻한 사진집이었다.

두 사진전 다 사진집 가격이 비싸서 구입은 포기했지만.. 따로 고해상도 사진을 구해보고픈 작품들이 꽤 있었다. 나중에 인연이 되면 만나겠지..ㅎ

강릉 가는 중.

어제 부산갈려고 기차표를 예매해놨다가 서울 돌아다니는 거랑 별 차이가 없을 것 같아 취소했다. 6시쯤에 눈이 떠져서 어디 갈지 고민하다가 바다는 보고 싶고.. 당일치기로 강릉 가기로 했다. 그냥 버스표만 끊고 나머지는 가서 해결하자.

그리하여 강릉가는 버스에 몸을 싣고 책읽는 중. 바다보면서 콘 비라 한 잔이나 만들어 먹자.

서버 이상..

2011년 4월 15일

하드디스크가 맛이 가려고 하나.. 왜 자꾸 글이 조금씩 잘리지..

낙서 혹은 일기. 아님 말고.

훈련소에 있는 내내 외로웠다. 야그가 통하는 사람도 없고. 그저 피상적인 대화뿐. 편지를 쓰긴 했지만 항상 회의에 차곤 했다. 어짜피 내 야그하고 싶어서 쓰는 건데 받는 사람 입장에선 얼마나 와닿을련지.

그래서 지급받은 훈련용수첩에 그 때 흘러가는 모든 생각을 적었다. 내가 시도 때도 없이 적는 걸 본 사람들은 궁금해했다. 훈련소 매뉴얼을 위해 족보를 정리하는거냐. 심지어 살생부 정리하는 거냐 등등. 난 그저 낙서 혹은 훈련소 감상을 적는 거라고 둘러댔다.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기회되면 블로그에 올리라고 했다. 재미있을거라고.

지금 다시 펴보니. 거의 참회록이더라. 그 때 흘러가는 감정의 조각들. 혹은 한끼 식사의 칼로리를 계산하며 내 계산질 버릇을 후회하기도 했으며.. 지나치는 글귀로 패러디하거나. 1984에 이반데니소비치의 하루 그리고 우리들 믹스. 마음 속에서 홀로 재생하는 음악을 끄적였다. 아침점호때 단조로 조바꿈 해버린 우울한 애국가를 들으며 나름 변주곡을 흥얼거리기도 했지.

이 낙서들을 읽으며 깨달았다. 날 이해할 사람은 결국 나밖에 없어.  누군가에게 기대서 공감을 얻으려하겠지만 그건 다 부질없다. 적당히 타협하고 살아가는거겠지.

널 이해할 사람은 없다. 포기하면 편해. 그러니까 혼자 술마시면서 궁상떨지말고 커피나 마시면서 정신차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