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맹

2018년 8월 25일


5개월만에 주문한 종이책 “문맹”.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을 쓴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에세이집이다.

작가들의 개인적 배경을 근거 삼아 소설을 이야기하는 걸 피하는 편이다. 그래도 망명 작가의 언어에 대한 고민을 엿볼 수 있어서 좋았다. 작가의 소설을 읽어본 사람이라면 한 번 읽어볼만한 책이다.

전자책만 산다는 방침을 바꿔서 전자책으로 절대 나오지 않는 종이책도 같이 사서 읽어야겠다. 말랑말랑한 여행 에세이나 장르 소설을 결코 폄하하는 건 아니지만 전자책으로 나오는 신간들이 무척 한정되어 있다. 책에 대한 갈증을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일주일에 한두 권 사되, 다 읽으면 다음 책을 사고 읽은 책을 알라딘 중고서점에 팔아야지. 색다르고 빡센(?) 책은 읽고 싶지만 짐이 쌓이는 것도 골치 아프니까. 물론 전자책도 계속 읽을 예정이다.

늙음

2018년 8월 16일

자리가 난 곳은 공교롭게도 내 모교인 무아상 중고등학교였어. 나는 조금 망설였어. 아주 나쁜 추억이 있는 곳이라 그럴 만도 했지. 하지만 세 시간쯤 요모조모 따져보고 나니까,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늙는다는 게 바로 그런 걸 거야. 감정의 반응은 무뎌지고 원한도 기쁨도 별로 간직하지 않게 돼. 그 대신 몸 여기저기에 이상은 없는지, 기관들의 균형이 무너져 있지는 않은지에 주로 관심을 갖게 되지.

-알라딘 eBook <소립자> (미셸 우엘벡 지음, 이세욱 옮김) 중에서

분열하는 제국

2018년 7월 29일

미국 헌법은 결국 서로 경쟁관계인 국민 사이에서 벌어진 골치 아픈 타협의 결과물이다. 우리는 타이드워터의 젠트리와 디프사우스로부터 평범한 시민의 직접 투표가 아니라 ‘선거인단’에 의해 선출되는 강력한 대통령제를 물려받았다. 뉴네덜란드는 양심과 표현, 종교와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는 권리 장전을 물려주었다. 오늘날 미국이 영국식 의회 모델을 따라 강력한 단일 국가를 형성하지 않은 것은 남부의 폭정과 양키의 간섭에 대항할 수 있도록 각 주의 주권을 보장해달라고 요구한 미들랜드 때문이다. 양키는 인구 비례대로 의석을 배정하기 원했던 타이드워터와 디프사우스를 상대로 싸워 이겨서 작은 주들도 상원에서 동등한 발언권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었다.

-알라딘 eBook <분열하는 제국> (콜린 우다드 지음, 정유진 옮김) 중에서

카프카의 농담

2018년 7월 27일

그러니 학생들이 카프카의 농담에서 진정한 핵심을 음미하지 못하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그 핵심이란 이것입니다. 인간이 자아를 구축하고자 지독하게 분투한 결과는 그 지독한 분투로부터 떼려야 뗄 수 없는 인간성을 지닌 자아라는 것. 우리가 집을 향하여 끝이 보이지 않는 막막한 여정을 밟아가는 과정 그 자체가 사실은 우리의 집이라는 것. 이런 것을 말로 풀어서 칠판에 적기는 어렵습니다. 정말입니다. 차라리 학생들에게 너희가 카프카를 ‘이해하지get’ 못하는 것은 어쩌면 잘된 일인지도 모른다고 말해줄 수는 있을 것입니다. 차라리 학생들에게 카프카의 모든 이야기를 일종의 문으로 상상해보라고 요구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그 문에 다가가서 두드리는 모습을 상상해보라고, 우리는 점점 더 세게 두드리고 또 두드리는데, 그냥 들어가고 싶어서가 아니라 꼭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라고. 우리는 정확히 그 절박함의 정체가 무엇인지는 몰라도 하여간 그 문으로 꼭 들어가야 한다는 필사적인 절박함을 느끼고 있고 그래서 문을 두드리고 들이받고 찬다고. 그러다 이윽고 문이 열리는데… 문이 바깥쪽으로 열린다고. 그러니까 우리는 내내 그토록 들어가고 싶었던 곳에 그동안 내내 들어 있었던 거라고. 다스 이스트 코미시.(‘이것이 웃긴 것이다’라는 뜻의 독일어―옮긴이)

-알라딘 eBook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지음, 김명남 엮고옮김) 중에서

거짓말

2018년 7월 11일

인간이 하나의 동물로서 자신의 개별적인 삶을 자각하는 것은 먼저 고통을 통해서다. 하지만 사회적인 존재로서 자신의 개별적인 삶을 완전하게 자각하는 것은 〈거짓말〉을 매개로 할 때이다. 개별적인 삶은 사실상 이 거짓말과 혼동될 수 있다.

-알라딘 eBook <소립자> (미셸 우엘벡 지음, 이세욱 옮김) 중에서

광고

2018년 7월 9일

성인을 대상으로 한 보통 광고에서는 매력적인 사람들이 어떤 가상 시나리오 속에서 제품에 둘러싸여 거의 불법으로 보일 지경으로 멋진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나온다. 그런 광고가 우리에게 바라는 바는, 우리도 그 제품을 구입함으로써 광고 속 완벽한 세상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는 환상을 품는 것이다. 우리의 성인다운 주체성과 선택의 자유에 아부해야 하는 보통 광고에서는 제품 구입이 환상의 선결 조건이다. 광고가 판매하는 것은 환상이지, 광고 속 세상으로 실제로 넣어주겠다는 약속이 아니다. 이런 광고는 어떤 의미로도 실제적인 약속은 하지 않는다. 성인을 대상으로 한 보통의 광고들이 기본적으로 은근한 것은 이 때문이다.

-알라딘 eBook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지음, 김명남 엮고옮김) 중에서

절망

2018년 7월 6일

절망이라는 단어는 워낙 남용되어 이제 진부해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진지한 단어이고, 나는 지금 이 단어를 진지한 의미로 쓰고 있다. 내게 절망이란 다음 두 가지의 혼합을 뜻하는 말이다. 죽음에 대한 이상한 갈망, 그리고 나 자신의 시시함과 쓸모없음에 대한 통렬한 자각에서 비롯한 죽음에 대한 공포. 어쩌면 이것은 사람들이 불안이나 고뇌라고 말하는 기분과 비슷할지도 모르지만, 이것들은 같지 않다. 최소한 정확히 같지는 않다. 절망은 내가 참으로 작고 약하고 이기적이고 의심의 여지없이 언젠가는 죽을 존재라는 사실을 인식할 때 느끼게 되는 견디기 힘든 기분으로부터 탈출하고 싶어서 죽고 싶은 것에 가깝다. 배 밖으로 뛰어내리고 싶은 기분이다.

-알라딘 eBook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 (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지음, 김명남 엮고옮김) 중에서

모두 거짓말을 한다

2018년 6월 28일

페이스북은 친구들에게 내가 얼마나 괜찮게 사는지 자랑하는 ‘디지털 허풍약’이다. 페이스북 세상에서 보통의 성인들은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고, 카리브해로 휴가를 가고, 《애틀랜틱》을 정독한다. 실제 세상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화가 잔뜩 난 채 슈퍼마켓 계산 줄에 서 있고, 《내셔널인콰이어러》를 몰래 보고, 수년간 잠자리를 함께하지 않은 배우자의 전화를 무시한다. 페이스북 세상에서는 가정생활이 완벽하다. 실제 가정생활은 엉망이다. 얼마나 엉망인지 아이 가진 것을 후회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페이스북 세상에서는 토요일 밤이면 모든 젊은이들이 근사한 파티에 간다. 실제로는 대부분이 집에서 혼자 넷플릭스Netflix 드라마를 몰아서 본다. 페이스북 세상에서 여자친구는 남자친구와 다녀온 행복한 휴가 사진을 26장 올린다. 실제 세상에서는 이런 사진을 올린 직후, 구글에 ‘남자친구가 나와 성관계를 갖지 않으려 해요’라는 질문을 올린다. 이때 그 남자친구는 〈최고의 몸매, 최고의 섹스, 최고의 구강성교〉를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알라딘 eBook <모두 거짓말을 한다> (세스 스티븐스 다비도위츠 지음, 이영래 옮김) 중에서

칠레의 밤

2018년 6월 22일

삶은 계속되고 계속되고 계속되었다. 마치 알갱이마다 미세하게 풍경을 그려 넣은 쌀알 목걸이 같은 삶이었다. 모든 사람이 그런 목걸이를 하고 있지만, 그 누구도 목걸이를 벗어 눈에 가까이 대고 알갱이마다 담겨 있는 풍경을 해독할 충분한 인내심이나 용의가 없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쌀알 미니어처가 살쾡이나 독수리의 눈을 요하는 측면도 있고, 그 풍경들이 관(棺), 공동묘지 조감도, 인적 없는 도시, 심연과 정상(頂上), 존재의 하찮음과 그 존재의 우스꽝스러운 의지, 텔레비전을 보는 사람들, 축구 시합을 하는 사람들, 칠레의 상상력을 순회 항해하는 거대한 항공모함을 방불케 하는 권태 등의 불쾌한 놀라움을 안겨 주곤 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진실이었다. 우리는 권태에 찌들어 있었다. 우리는 책을 읽었고, 권태를 느꼈다.

-알라딘 eBook <칠레의 밤> (로베르토 볼라뇨 지음, 우석균 옮김, 알베르토 모랄레스 아후벨 그림) 중에서

투쟁 영역의 확장

2018년 6월 20일

나는 초원의 태양 아래 드러눕는다. 초원의 너무도 다정하고 안정되고 온화한 풍경 한가운데에 누워 있는 나는 지금 몸이 아프다. 참여, 기쁨, 감각의 조화 따위의 원천이 될 수도 있었을 모든 것이 이제는 고통과 불행의 원천이 되었다. 그와 동시에 나는 아주 격렬하게 기쁨의 가능성을 다시 맛본다. 몇 년 전부터 나는 이론적인 파라다이스에서 세상과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살고 있는, 나를 닮은 유령의 주변을 맴돌고 있다. 오래전부터 나는 그를 만나는 것이 내가 할 일이라고 여겨 왔다. 그런데 이제 끝났다.

-알라딘 eBook <투쟁 영역의 확장> (미셸 우엘벡 지음, 용경식 옮김) 중에서

세이지 오자와

2018년 5월 18일

일괄적으로 싸잡아 말하면 안 되겠지만, 일본 음악가는 뛰어난 기술은 갖췄어도, 기법에 파탄이 없는, 평균점이 높은 연주가 가능해도, 명확한 세계관이 전달되지 않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자기만의 독자적인 세계를 이룩해서 그걸 있는 그대로, 날것으로 다른 사람한테 전하고 싶다는 의식이 다소 약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오자와 그런 게 음악에서 제일 안 좋은 경우죠. 그러기 시작하면 음악 자체의 의미가 없어집니다. 정말로 잘못하면 엘리베이터 음악이 돼요. 엘리베이터를 타면 어디선가 들려오는 음악. 내 생각엔 그런 게 제일 무서운 종류의 음악이에요.

-알라딘 eBook <오자와 세이지 씨와 음악을 이야기하다> (무라카미 하루키.오자와 세이지 지음, 권영주 옮김) 중에서

이토록 멋진 마을

2016년 9월 18일


모리 시장은 시청에서 ‘시민의 목소리를 들으라’는 격려문을 자주 돌린다. 이 정도는 흔히 듣는 이야기다. 하지만 모리 시장이 여기에 덧붙이는 단서가 있다.

“지금 시민의 목소리를 듣고 정책에 반영하는 것은 인기영합주의다. 30년 후의 시민 목소리를 의식하라.”

가로축인 현재의 시민 목소리가 아니라 현재에서 미래로 이어지는 세로축의 목소리를 들으라는 것이다. 그것이 미래의 시나리오를 그리는 토대가 된다. 그 토대 위에서 현재와는 다른 새로운 번영의 모습을 그린 뒤 시민이 돈을 갹출해 도시를 만드는 것이다.

-<이토록 멋진 마을>, 후지요시 마사하루.

그녀의 진정한 이름은 무엇인가

2016년 8월 18일


“‘글쓰기’는 특권적인 행위다. 글을 쓰는 사람은 글쓰기로 자기와 타자를 표상한다. 그러므로 ‘글쓰기’는 특권적이면서 타자를 일방적으로 표상한다는 점에서 월권적 행위이기도 하다. 이때 침해받는 것은 일방적으로 타자로 표상되는 사람의 권리, 특히 그/그녀들이 스스로를 표상하는 권리이다. 따라서 ‘글쓰기’라는 행위, ‘글쓰기’로 타자를 표상하는 행위는 지배의 한 형태이다.”

영국에서 사흘 프랑스에서 나흘

2016년 7월 21일


오늘날에는 연락이 두절되는 경우가 적다. 휴대전화, 이메일, 페이스북, 트위터 등으로 쉬지 않고 연락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게 항상 도움이 되는가? 나는 잘 모르겠다. 때로는 그렇게 다양한 방법으로 연락이 되는 게 내가 정말로 함께 있고 싶은 사람들과 같이 있지 못 하다는 사실을 끊임없이 깨우쳐 주는 것에 불과하다.
– <영국에서 사흘 프랑스에서 나흘>, 이안 무어

팩트체크

2015년 11월 26일


출근하면서 읽기 시작해서, 집에 틀어박혀 읽어댔더니 하루 만에 완독했다. 페이스북에서 많이 나오는 “카드뉴스”를 책으로 읽은 느낌이었다. 속도감 있게 시사를 다루고 진짜 팩트인지 따지고 있어 평소 시사에 관심있던 사람이라면 편하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그 점이 바로 한계다. 편한 가독성이 장점이지만 그 이상은 찾아보기 어렵다. 수많은 쟁점을 정리하면서 지나친 점도 많으니 말이다.

사실 이 책은 jtbc 뉴스룸의 “팩트체크”를 갈무리한 책이다. 매일 뉴스에서 이런 식으로 꼭지를 잡아 간결하게 풀이해준다면 좋은 일 아니겠는가? 간단한 시사비평집으로 한 번 읽어보면서 근 1년 간의 쟁점들을 주욱 훑어보긴 좋다.

지방시(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2015년 11월 16일


지금 나를 사회적으로 보장해주는 명목상의 직장은 대학이 아닌 24시간 패스트푸드점이다. 대학은 대학원생과 시간강사에게 각각 행정과 강의 상당 부분을 의존하고 있지만, 정작 그들을 ‘노동자’로 대우하지 않는다. 대학원생과 시간강사는 대부분 지역 가입자로, 혹은 부모님의 피부양자로 건강보험에 등록되어 있다. 오히려 패스트푸드점에서 건강보험을 포함한 4대 보험을 모두 등록해주었다. 내가 흔치 않은 직장 가입자가 된 것은 맥도날드에서 월 60시간 이상 노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주일에 사흘, 아침 7시부터 낮 1시까지 맥도날드에 나가 냉동 감자를 나르고 설거지를 하고 테이블을 닦는다. 아침 6시면 일어나 주섬주섬 아침을 챙겨 먹고 출근길에 나선다. 춥다, 더 자고 싶다,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지, 하는 생각이 온몸을 감싼다. 그래도 매장에 도착해 일하다 보면 그저 감사하다. 최저 시급 5,580원의 육체노동이지만, 적어도 나를 사회적으로 보장, 보호해주는 유일한 공간이다.
(…..)
부모님께 건강보험 피부양자로 들어오세요, 하자 두 분은 무척 반가워했다. 대학에서 이제 건강보험을 해주는 거냐, 물으셔서 나는 지도 교수님이 연구원으로 등록해주어 그 동안 건강보험료가 나올 거에요, 했다. 물론 거짓말이다. 도저히 저 맥도날드에서 일해요, 하고 말할 자신이 없었다. 이런 식으로라도, 한평생 열심히 일해 모든 가족을 피부양자로 든든히 품어준 내아버지를 ‘부양’할 수 있다는 것이 기쁘고, 서럽고 그저 너덜너덜하다.
(….)
지식을 만드는 공간이, 햄버거를 만드는 공간보다 사람을 위하지 못한다면, 참 슬픈 일이다.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309동1201호

진보정치, 미안하다고 해야 할 때

2015년 10월 21일


책 읽다 동의하는 부분이 있어 스크랩. 책 제목처럼 새정치민주연합이 진보정당이라는 야그는 아니다.

——————–

문재인 대표가 확고한 지지를 얻어 2017년 대선에서 승리할 가능성이 크다고 가정하면, 새정치민주연합이 지금과 같은 난맥상을 보일 것이라 보기는 어렵다. 문재인 대표의 지지 유세가 당락을 가르고, 국회의원이 아니더라도 자신의 정치적 뜻을 펼질 수 있는 자리가 있다면 새정치민주연합의 내홍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일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재보궐선거와 지방선거에서 연이어 패배했기 때문에 패권주의 논란이 그만큼 거세졌다고 보는 게 합리적이다. 새누리당 내에서 패권주의 논란이 상대적으로 적은 것도 이런 까닭이다. 그들의 정당 민주주의 수준이 높아 다수파와 소수파가 화합하기 때문이 아니다. 국회의원이 아니더라도 나눠줄 수 있는 권력자원이 많아서다.

물론 과거의 ‘제왕적 리더십’으로 돌아가는 게 해법이 될 수는 없다. 김대중 전 대통령처럼 강한 카리스마를 갖춘 정치인이 다시 등장할 가능성도 없고, 강력한 리더십의 이면에 있는 낡은 정치관행을 되풀이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다만 패권주의 논란의 본질을 직시하고 솔직하게 인정하는 게 패권주의 극복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 길이라면, 이런 점에 대한 균형감각과 현실감각을 갖춘 시각은 충분히 의미가 있다.

대한민국에서 안전하게 살아남기

2015년 10월 8일


4분의 1 남짓 읽었지만 하도 답답해 평을 남긴다. 책을 쓸 땐 사실 관계나 논쟁점을 잘 정리해봐야 할 텐데 이 책은 깊이도 없거니와 편파적이다. 뭐,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으니 깊이야 그렇다쳐도 한 쪽으로 쏠린 관점은 참기 힘들다. 특히 GMO나 식품첨가물은 아직 연구해봐야 할 게 많은데 칼로 자르듯이 결론을 내리면 어떻게 하나? 환경 운동도 좋고 유기농도 좋다만 일단 관련 분야의 과학적 지식은 철저히 살펴보고 논쟁에 뛰어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논거없는 주장은 자칫 맹신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있다.

사회적인 실정과 버무려 여러 안전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은 높이 평가하고 싶으나 여러모로 빈약한 책이다. 더 읽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콜리마 이야기

2015년 7월 23일

오늘의 마무리, 오비 필스너와 콜리마 이야기.

오랜만에 지독한 작품을 마주쳤다. 러시아 문학 그 중에서도 수용소 문학으로 간주할 수 있는 소설이면서도 그 유명한 도스토예프스키의 “죽음의 집의 기록”, 솔제니친의 “수용소군도”와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와는 궤를 달리 하는 작품이다.

구타, 기아, 질병, 약탈 등 삶과 죽음이 뒤엉켜 있는 수용소의 현실을 너무 무자비할 정도로 무심하게 묘사를 한다. 어떤 사건에 대해 울분이나 공감 그런 거 없이 그저 천천하고 간략하게 보여준다. 안톤 체호프가 수용소에 들어갔으면 나올 법한 소설이랄까?

글쎄다, 안톤 체호프가 쓴 사할린 섬은 자세한 르포르타주에 가깝다면 콜리마 이야기는 여러 인간 군상들의 짧은 에피소드를 점묘화처럼 모아서 콜리마 수용소 이야기를 차츰차츰 쌓아간다. 그 점과 같은 이야기들조차도 짧고 단순해 보이나 가볍게 지나칠 수 없는 무게를 지니고 있다.

오랜만에 접하는 러시아 문학이자 수용소 문학. 전원 예찬, 노동 착취, 이별, 죽음, 배고픔, 애착 등등 다양한 엽편 소설로 이루어져 있어 맥주 한 잔이 잘 넘어가지 않을 정도네.

노년의 비극

2014년 12월 26일

“노년의 비극은 늙었다는 것이 아니라 젊음을 기억하는 것이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오스카 와일드

← Previous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