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를 걷는다

2014년 6월 16일

경주 올 때마다 느끼는 거다만 외계인이 불시착한, 시간이 멈춘 곳 같다. 큰 무덤가 옆엔 작달막한 상점들이 있고, 이따금 나오는 공터엔 여지 없이 문화재 발굴 표지판이 있다. 유래를 알기 힘든 경주빵, 찰보리빵, 주령구빵을 파는 가게들이 대릉원 곁에 주욱 붙어있고, 점점 옆으로 기운다는 첨성대 주변엔 화려한 정원과 콘크리트 건축물이 세워지고 있다. 다시 시내로 진입하면 단란주점에서 강렬한 비트의 노래가 흘러나오고 다방 아가씨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바삐 커피를 나르고 있다. 잠시 숨을 돌리기 위해 고개를 기웃거리면 큰 고분들이 뭔 일 있었냐는 듯이 앞을 가로막는다. 다시 걷는다. 어떤 골목으로 들어가니 낮은 담장과 다 무너져가는 한옥들이 즐비하다. 길이 점점 더 좁아진다. 길을 잃은 걸까? 괜찮다. 늘 그러했으니까. 아, 익숙한 간판이다. 경주빵, 찰보리빵, 주령구빵. 그리고 점점 옆으로 기운다는 첨성대가 나타난다.

이사

2013년 4월 25일

처음 관사 방문을 열고 보니 눈물이 났다. 슬퍼서가 아니라, 방 안 공기가 왜 이리 매캐한 건지. 벽지에서 허연 가루가 떨어져 그 유명한 석면인가 했다. 발리의 청정 공기에 너무 익숙해져서 그런가. 짐 옮기다 눈물, 콧물을 뚝뚝 흘리다 안 되겠다 싶어서 보건소에서 다른 방 열쇠를 받아냈다. 퀴퀴한 냄새가 나긴 해도 버틸 만하네. 원래 방에 있던 걸 다시 빼서 가방 풀고 책도 풀고 나니 땀나더라. 씻으려고 수도 꼭지를 트니 녹물이 좔좔. 변기의 물도 내려가지 않는다. 재앙에 가까운 관사의 상태에 순간 맥주 한 캔을 따고 싶었으나 간신히 참았다. 그래, 몸만 누이면 되지. 걷다가 도서관에서 책 읽고 11시쯤에 들어오는 거야. 그런데 겨울엔 어케 하지? 자려고 누웠건만 잠이 오지 않는다. 이런저런 미래에 대한 고민 때문이 아니라, 시끄러워서. 알고 보니 아래층은 시청 산불감시대가 쓰는 숙소라 밤마다 남자들이 모여서 술 마시고 담배 피는 그런 곳이었다. 담배 연기가 스믈스믈 올라온다. 세상에.

다음 날, 근무를 마치고 대릉원을 걷는다. 음, 어디까지 가야 4시간정도 걸을 수 있을까? 걸어서 불국사까지 가볼까? 관사에 들어가기가 싫었다. 어디 가지? 성동시장을 서성이다가 보건소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는다. 다른 방 있다네요. 네? 원래 내과의사 샘이 쓰던 곳인데 계약기간이 남았으니 함 보시고 짐 옮기세요. 받은 주소까지 걸어갔다. 원룸이다. 너무 깨끗하다. 세탁기도 있어! 따뜻한 물이 나와! 변기 물도 잘 내려가네. 세상에.

결국. 일주일에 이사를 세 번 한 셈이 되었다. 남들은 한 번 하면서도 진땀 빠져하는 걸 세 번 하다니. 그래서 몸살 기운이 있는 건가. 웃기게도 더 좋은 곳 있다고 거기 가라 하면 또 짐 싸고 이사할 수 있을 것 같다. 안녕하세요, 이사의 달인입니다.

결국. 나에게 남은 것은 세 집의 열쇠이다. 눈물 나는 집, 녹물 나는 집, 좀 살만한 집. 어째 부자가 된 것 같다..